[217호 테마서평: 황순원, 소설 속 공간] 6·25 전후(戰後) 공간의 의미 -황순원의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곡예사」 (『황순원 전집 2』, 문학과 지성사, 1992)

「참외」 (『황순원 전집 3』, 문학과 지성사, 1992)

「모든 영광은」 (『황순원 전집 4』, 문학과 지성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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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순원은 1915년 평양 대동군에서 출생하여 104편 가량의 시와 단편 104편, 중편 1편, 장편 7편을 창작하고 2000년 작고하셨다. 1946년 5월, 황순원 일가는 토지개혁이 시행되던 평양을 떠나 38선을 넘어 남한에 정착하게 된다. 고향을 등지고 자유를 찾아 내려온 월남민의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치러야만 했던 6·25전쟁체험은 작가로 하여금 역사와 현실,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감당해야만 했던 정신적 갈등과 절망감을 그의 문학 속으로 끌어들이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황순원에게 있어서 6·25의 전쟁체험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해 커다란 억압관념으로 자리 잡게 되고, 그의 문학세계에서 뚜렷한 분기점을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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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黃順元, 1915~2000) ⓒ www.humanistbooks.com

6·25 전후 공간의 의미: 전쟁의 상흔과 현실인식의 확대

황순원문학을 통시적으로 살펴볼 때, 제2기는 현실인식과 역사의식이 확대된 시기(1950-1955)로 단편집 『곡예사』·『학』, 『카인의 후예』, 『인간접목』을 들 수 있다. 특히 6·25전쟁 발발부터 약 5년간에 걸쳐 창작된 이들 작품들은 대부분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분단 역사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단편집 『곡예사』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들 속에는 작가의 현실인식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으며 전쟁의 상흔과 생명옹호의 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단편집 『학』은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보다는 우정이나 따뜻한 인간애로써 갈등을 뛰어넘는 화해와 극복 의지를 보여준다.

생존의 위기와 타산적 인간상: 「곡예사」

전쟁의 상흔과 함께 부정적 현실 속에서 나타나는 타산적 인간상은 단편 『곡예사』등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는 전쟁의 비극적 상황 속에서 불안과 초조와 위기의식을 느끼는 작중인물의 내면상황이 리얼하게 묘사된다. 「곡예사」(1951.5. 탈고)는 대구와 부산으로 피난 가서 한 가족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고통과 굴욕, 분노 같은 감정들을 직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작중 화자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황순원이 겪은 피난살이의 설움은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드러난다. 부산에서 ‘나’의 아내는 옷가지를 가지고 국제시장으로 나가고, 큰애 둘은 미군부대 장사를 시작한다. 아이들은 변호사댁으로 돌아가기 전에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른다. 거기서는 마음껏 노래를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 문득 ‘나’는 ‘곡예사’를 떠올린다. “동아의 풀리즈 쌜 투미도 그런 곡예요, 허리춤에서 담배보루며 껌곽을 재빨리 꺼내고 넣는 것도 훌륭한 곡예의 하나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황순원곡예단의 어린 피에로요, 나는 이들의 단장인 것이다. 지금 우리의 무대는 이 부민동 개천둑이고”라고 나는 자조한다. 그리고 “그저 원컨대 나의 어린 피에로들이여, 너희가 이후에 각각 자기의 곡예단을 가지게 될 적에는 모쪼록 너희들의 어린 피에로들과 더불어 이런 무대와 곡예를 되풀이하지 말기를 바란다.”라고 기구한다. 그러나 “내일을 기대해 주십시오”라는 말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나는 부정적 현실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이렇게 절망을 초극해내려는 힘은 황순원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긍정의 철학과 삶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전쟁의 상처와 어머니에 대한 절대적 사랑: 「참외」

황순원문학은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경외감을 기저로 하여 그 위에 모성의 절대성, 애정의 절대성, 자유지향성을 그 특질로 한다. 특히 다른 작가와 달리 모성의 절대성을 추구하고 있는 양상은 많은 작품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이는 남녀의 애정관계에서도 발견 가능하다. 단편「참외」(1950.10. 탈고)는 작가의 어머니를 모델로 쓴 유일한 작품으로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작가의 성격을 유추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작중화자 ‘나’의 어머니는 “제 물건을 남 주시긴 좋아하여도 남의 물건이라면 여하한 물건이건 안중에 두는 일이 없으신 어른이다”라고 묘사되고 있다. 이런 어머니가 피난시절 손자들을 위해 값을 치르지 않고 청참외를 따왔다는 게 밝혀질 때 나는 분노한다. 나에게 있어 어머니의 존재는 절대적이며 신성한 존재이다. 그런 어머니가 비록 손자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청참외를 따 왔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무슨 항의라도 하듯이 어머니 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머니는 거기 더 서있을 수 없다는 듯이 밖으로 나가신다. “순간 나는 어머니의 몸 전체가 이런 말을 하고 있음을 느꼈다. 아들아, 그 참외는 결코 값없이 손에 넣은 물건이 아니다. 그 값은 넉넉히 갚았다. 이미 갚았을 뿐만 아니고 지금도 갚고 있고 앞으로도 더 갚을 생각이다. 그 값에 지나칠 만큼 그렇게 얼마든지.” “문득 내 가슴속에 복받쳐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요 세상에 빼뚤어진 놈아, 어쩌자고 네가 이처럼 어머니 마음을 상해놓느냐. 어서 어머니께 사과를 드려라.” 나는 스스로를 꾸짖는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 번 어머니에게 심술이나 부리듯 소리를 질렀다. “얘, 선차미 그만들 먹어라!”라고. 여기서 보여주듯 나의 분노는 근본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절대적 사랑과 신뢰에 기인한다. 이렇게 단편「참외」에서 볼 수 있듯이 ‘모성’에 대한 절대성은 단편「별」, 「왕모래」, 「사마귀」등에서 역설적으로 강조되기도 한다. 특히 단편 「별」, 「왕모래」에 나타나는 ‘모성’에 대한 절대성은 일제 치하에서는 ‘조국’의 상징으로써 황순원의 민족혼과 정신적 투지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이념의 갈등을 생명존중사상사랑으로 초극: 「모든 영광은」

단편 「모든 영광은」(1958.5. 탈고)은 전쟁 상황 하에서 이념의 갈등이 빚어낸 상처를 생명존중사상과 사랑으로써 치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황순원의 작품 중에서 드물게 작가의 인품과 생활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작중 화자인 ‘나’와 사내와의 사이에서 빚어지는 감정의 대립과 끌림, 친숙의 단계를 거치면서 휴머니티를 보여준다.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나’는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작품을 구상한다. 그런 어느 날 한 사내가 술잔을 내민다. 나는 누군가 자기를 엿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끼고 자리를 일어나버린다. 그 후 오히려 나는 작가적 호기심이 발동하여 사내를 찾게 되고 사내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내는 전쟁 하에서 영문도 모른 채 동료 교사로부터 손가락으로 지목 당해 옥살이를 하고 돌아와 보니, 아내와 갓난애가 모두 죽어 있었고, 복수하기 위해 밀고한 동료를 찾아 헤맨다. 1·4후퇴 당시 동료의 뒤통수를 발견하고 순경에게 달려가 손가락으로 “그 자의 뒤통수를 똑바루” 가리킨다. 그런데 휴전 협정 후 동료의 부인이 찾아와 남편의 행방을 묻는다. 사내는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사내가 무심코 교정을 내다보다 동료 아들의 뒤통수가 동료의 뒤통수와 똑같이 닮아 있음을 발견하고 놀란다. 동료에게로 향했던 사내의 분노와 미움은 사내애의 ‘뒤통수’를 매개로 반전된다. 즉 사내애의 뒤통수를 통해 그의 휴머니티가 회복되는 것이다. 사내는 그들을 부양하며 죄의 무게를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고 결심하고 그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생활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그들이 사랑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사내는 괴로워한다. 나는 “노형, 나 같으면 결혼을 해버리구 말겠수”라고 말한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 나는 사내를 그의 집까지 배웅해준다. 소복이 쌓인 눈으로 자기의 얼굴과 성기를 닦는 사내. 이 작품에서 ‘사내애의 뒤통수’가 생명존엄사상을 표상하는 내면적 화해 동인의 이미지였듯이, ‘눈’의 이미지는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소거하고 사랑의 세계로 순환시키는 화해의 이미지로 표상된다. 특히 “모든 영광은 술에게, 눈에게, 새로운 생활을 향해 나아가는 저 가엾도록 착한 한 사람의 사내에게” 라는 마지막 대목은 이 소설을 시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린다. 이렇게 6·25로 인한 이념의 대립과 갈등을 우정과 사랑과 생명존엄사상과 인간애로써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지향성은 단편 「학」, 「산」, 「가랑비」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 황순원은 역사와 사회에 대한 현실인식을 배면에 깔면서, 생명주의·인도주의·자유주의·영원주의를 지향해 나아간 작가로서 한국문학사에서 한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인간적 절조와 그의 투철한 작가정신은, 일제하의 암울한 시대상황 속에서도 모국어를 갈고닦으며, 잃어져가는 한국적 이미지와 전통문화와의 접맥을 통하여, 한국의 얼을 고양시키려 한 그의 민족혼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눈」, 「독짓는 늙은이」, 「별」, 「그늘」, 「기러기」 등). 특히 작가는 예술정신의 자유로움과 실험적인 소설 기법의 창조로써, 특정한 형식과 이즘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에의 길로 나아갔다(「막은 내렸는데」, 「탈」, 「차라리 내 목을」 등). 이점에서 황순원문학의 지향성이, 생명과 사랑과 자유라는 인간구원의 양식에 놓여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다양성을 실험한 문학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장현숙 / 가천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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