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호 인문학술: 미래파] 미래파-존재에 대한 시간적 이해

미래파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전위적 예술운동으로 산업혁명 이후 발달해가는 기술 문명에 고무되어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미래파의 속도와 기계에 대한 찬미는 존재를 시간적으로 이해하는 사고의 전환으로 연결되어 표현상의 획기적 시도로 드러났다. 미래파의 급진적 사상과 예술의 영향 관계는 오늘날 존재와 움직임에 대한 사유에도 참고할 만하다. 이에 본보에서는 미래파의 예술운동과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래파는…

디지털 문명의 시대인 현대는 가히 기계와 속도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스마트폰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기계가 인간의 삶에 이 정도로 개입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100년쯤 전에 마치 이런 현대의 모습을 예견이라도 한 듯한 예술사조가 있었다. 인류의 미래가 대단히 영광되고 흥분될 만한 것이라는 낙관 속에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새로운 세계의 미는 현대문명을 창조해가는 기계의 미라고 생각했던 예술가들. 이들은 “전속력으로 달리는 자동차가 니케(Nike)여신상보다도 아름답다”고 선언하고 기계와 관련된 속도를 찬양하며 속도가 가져오는 소음, 힘, 운동, 충돌, 모험, 그리고 젊음 등 다이나미즘(Dynamism)을 지향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았다. 이 예술가들의 그룹을 미래파(Futurism)라고 부른다.

미래파는 1909년 이탈리아의 시인 필립포 마리네티(Filippo Marinetti)가 《르 피가로(Le Figaro)》지에 발표한 ‘미래주의선언’을 효시로 한다. 20세기 초 이탈리아는 로마의 후예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유럽의 변두리 처지를 면치못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통일된 민족국가를 이루게 되는 정치적 후진성의 탓이 크다. 낙후된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에 대한 자각은 그러한 면모를 일신하고 민족적 자존감을 고양하는 새로운 예술운동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미래파는 이러한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탄생하였다. 공업화를 서두르고 있던 당시 이탈리아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예술적 반영인 셈이다.
마리네티에 이어 1910년 조각가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 화가 카를로 카라(Carlo Carra), 지노 세베리니(Gino Severini), 음악가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 그리고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Antonio Sant’Elia) 등에 의해 <미래파 화가 선언>이 발표되었다. ‘미래파’라는 명칭은 자신들이 끝없는 미래를 향해 전진해간다는 자부 속에서 스스로 명명한 이름이었다. 1912년에 파리의 베르하임 죈느 화랑에서 전람회가 개최되면서 미래파는 본격적인 하나의 예술사조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와 기술이 발달해가던 당시 유럽 분위기속에서 미래파는 기계과학문명에 입각한 가치관에서 예술을 새롭게 하고자 하였다. 미술의 경우 미래파 화가들은 기계문명에 경도되어 질주하는 자동차, 운행 중인 기차 등 현대생활에서 많이 발견되는 산업 생산품들을 즐겨 묘사하였다. 표현양식에 있어 이들은 입체파의 기법을 차용하였지만 역동적인 감각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입체파와 구별된다. 기술과 기계는 미래파 회화의 정신적 차원은 물론 조형상으로도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였는데, 예를 들어 발라는 당시 새로운 발명품이었던 사진술에 고무되어 그림으로 사진효과를 이루고자 하였다. 이는 사실 미학적이라기보다는 과학적인 목적에서 시도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과학적 시도는 역동성의 미학으로 나가게 되었고 예술의 표현대상으로서 역동성에 대한 천착은 훗날 다다이즘(Dadaism)으로 이어졌다. 뒤샹(M. Duchamp)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1912)가 좋은 예이다.

문학 분야에서, 마리네티는 “언어에게 자유를!”이라는 주장과 함께 논리적인 문장구조를 완전히 거부하고 지극히 실험적인 작품을 창작하였다. 그는 시의 운율, 각운 등 채널화된 소리를 부정하고 운율 파괴, 무질서, 부조화를 시의 중요한 요소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 역시 훗날 다다이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시문학 탄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음악에서는 루솔로가 “잡음의 예술”을 선언하였는데 이는 물리적 소리나 잡음을 음악의 핵심 요소로 사용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정거장, 철도, 군중의 함성, 공장의 소리 등의 잡음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악기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요컨대, 음악은 이제 더 이상 가락이나 선율에 의존하지 말고 단순히 물리적 소리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위적이고 혁신적인 음악관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당시로서는 뉴웨이브 음악이었던 전자 음악이 등장하는 데 결정적인 영감으로 작용하였다. 아울러 현대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J. Cage)에게 끼친 영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1909년에 시작하여 이탈리아 동시대의 거의 모든 화가들의 참여를 끌어내면서 전 국민적으로 확산되던 미래파 운동은 1914년 로마에서의 제1회 미래파 예술 자유국제전을 절정으로 단명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1916년 그룹의 리더인 보치오니의 갑작스런 사망이라는 외적인 사건이 큰 요인이었지만, 보다 큰 이유는 그 많은‘선언문’들에도 불구하고 그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충분한 구체적 조형표현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데에 있다.

공간에서 시간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미래파 회화에서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래파 회화는 인상파적이거나 입체파적인 수법을 사용했으므로 사실 혁명적인 조형방식을 구사한 것은 아니었다. 미래파 회화에 담겨있는 괄목할 만한 혁명성과 획기적 성격은 양식사적인 측면이 아니라 정신사적인 측면에서 드러난다. 미래파는‘시간’을 그리고자 했다는 점에서 서양 예술사상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서양회화는 항상 묘사대상을 정적으로 표현해왔다. 미래파 이전에 대상의 움직임, 운동 그 자체를 그리고자 했던 회화적 시도는 전무하다. 이는 존재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와 궤를 같이 한다.

주지하는 대로 서양에서 존재에 대한 이해는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와 헤라클레이토스(H ̄erakleitos)의 대립이라고 하는 고대적 시원을 갖는다. 변화, 생성하는 것(Becoming)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요, 존재라 함은 고정불변하는 것(Being)이라고 보았던 파르메니데스와 반대로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유전(Panta Rhei)’을 주장하면서 오히려 변화, 생성을 존재의 참된 보습으로 보았다. 따지고 보면 파르메니데스는 관념론을, 헤라클레이토스는 유물론을 각각 외친 셈이다. 이후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의 생각을 우위에 두면서 두 입장을 절충하였다. 변화, 생성의 헤라클레이토스적 시각이 배제당한 것은 아니지만 이데아계로 자리매김된 파르메니데스적 시각에 비해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한, 덧없고 가치없는 현상세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내려앉고 말았다. 이데아계를 완벽하고 참된 존재의 세계로 보고 현상세계는 허상이라고 간주하는 관념 우위의 사유는 이후 서양의 사상과 문화의 기본전제가 되어왔다. 서양철학은 물리학에서 그러했듯, 존재를 규명함에 있어 그 존재를 그 존재로 만들어주는, 변하지 않으면서 더 이상 분할될 수 없는 최종의 것을 찾았고 이를 그 존재의 본질로 이해했다. 변화, 생성은 현상적인 것이요, 불완전함의 증거로 간주하고 운동을 하지 않는, 사물의 고정 불변의 본질을 그 사물의 근원적인 참 모습으로 보았던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존재 개념 이후로 서양철학은 이렇게 시간을 배제한 공간적 사유로 일관되어 왔다.

존재 이해에 있어 전통이 되어 온 서양의 공간적 사유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시각을 되살리면서 변화, 생성을 오히려 존재의 참 모습으로 본 니체(F. Nietzsche)에 이르러 반격을 당하기 시작한다. 베르그송(H. Bergson) 역시 모든 것이 변하는 현재의 시간이야말로 우주의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공간적 사유 대신 시간적 사유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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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모 발라(Giacomo Balla, 1871~1958), <줄에 묶인 개의 역동성(Dinamismo di un cane al guinzaglio)>, 1912, 캔버스에 유채, 110×91cm. ⓒ wikiart.org

이런 변화는 예술에서도 나타났다. 바로 미래파의 등장이었다. 미래파는 존재를 동일성에 의한 고정된 실체로 보지 않고 시간의 추이에 따라 그때그때 변화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서양 미술 최초로 존재를 움직임으로 파악한 것이다. 혹자는 입체파 역시 대상을 하나의 모습으로 고정시키지 않고 다시점에 의한 다층적인 모습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미래파의 존재 이해와 유사하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입체파가 이해한 존재의 다층성이란 어디까지나 공간적 다층성이다. 비록 사물을 다양한 시점에서 해체, 분석한 뒤 거기서 추출된 사물의 다층적인 모습을 그려냈지만 여전히 존재에 대한 공간적 이해라는 전통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존재를 이해하는 전통적인 사유 지평인 단일한 공간을 극복하고 다층적인 복수의 공간을 도입했다는 성과가 있을 뿐이다. 미래파의 대상 묘사는 공간이 아닌 시간적 다층성이라는 점에서 입체파의 그것과 극명하게 다르다. 대상을, 존재를 이해함에 있어 시간이라는 계기를 도입한 것이다. 발라의 1912년 작 <줄에 묶인 개의 역동성>이나 <바이올리니스트의 리듬>같은 독특한 그림은 미래파 화가들이 추구했던 이러한 존재 이해 방식을 잘 드러내준다. 이 그림들은 시간에 따라 각각 변하는 대상의 실제 모습을 무시하고 그 대상에 대한 개념적 사유에 의해, 즉 동일성 개념을 적용하여 대상을 하나의 모습으로 그려내는 그림이 아니다. 그는 대상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임 속에서 이해함에 따라 달리는 개의 다리를 모두 그려야 했던 것이다. 세베리니나 다른 미래파 화가들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시간으로 초래된 사물의 차이나는 모습들을 그 사물의 참 모습으로 인정하고 이 모습들을 하나의 화면에 담고자 하였다. 이것은 존재의 문제를 고정된 실체에서 찾아왔던 전통적인 서양의 공간적 사고에 대한 예술적 반기요, 고대 헤라클레이토스 이래 배척당해왔던 변화, 생성에 대한 인정, 시간적 사유의 긍정을 의미한다. 시간에 따른 존재의 변화를 인정하는 입장, 곧 파르메니데스적인‘존재’보다는 헤라클레이토스적인‘변화, 생성’에 대한 주목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동일성보다는 차이에서 존재의 궁극적 답을 찾고자 하는 현대 철학에 대한 예견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적 지평에서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운동, 움직임을 존재의 본질로 보는 것과 같다. 움직임이란 시간을 인식하게 만들며 시간이란 하나의 어떤 ‘흐름’이다. 그런데 과거, 현재, 미래라는 흐름은 인식주체의 의식에서 존재할 뿐 외부 사태나 사물에서는 사실상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파 화가들은 묘사 대상의 지금 모습을 그림과 동시에 그 대상에 대한 기억과 예상을 함께 그려야 했다. 움직이는 사물의 상은 사실 지나온 공간에 연속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모든 것은 움직인다. 프로필은 결코 부동적이 아니고 항상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망막에 부각되는 이미지의 지속성 때문에 움직이는 사물들은 항상 복수화해 가며 그들의 형태는 변화하는 진동과 같다”라고 했던 미래파 화가들의 주장에는 이러한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결국 이들의 그림은 지속에 대한 묘사가 되는 셈이다. 이 점에서 미래파는 베르그송의 철학과 일치한다. 베르그송 역시 시간의 계기가 포함된 ‘지속’이라는 개념으로 존재를 이해함으로써 공간적 사유 대신 시간적 사유를 서양철학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제시했던 것이다.

물리적 초월주의

또한 베르그송은 “물질을 절대적으로 결정된 윤곽선을 갖는 독립적인 대상들로 분할하는 것은 모두 인위적인 분할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사물을 하나의 ‘유동(flux)’으로 간주했는데 미래파 화가들 역시 여기에 동의하였고 이를 수용하였다. 문제는 유동 또는 흐름, 즉 대상의 움직임을 캔버스라는 정지된 하나의 공간 안에 어떻게 그려 넣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물리적 초월주의(Physical Transcendentalism)’라는 개념이었고 역선(force line)의 사용이라는 방법이었다. 이들이 내세운 물리적 초월주의란 사물 간의 상호침투를 의미한다. 보치오니의 조각 작품 <머리와 창의 융합>(1912)은 인간의 머리와 창이라고 하는 사물이 상호 침투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회화에서도 미래파 화가들은 사물 간의 침투를 표현하기 위해서 대상과 그 주위뿐 아니라 모든 사물들 사이의 정확한 윤곽선을 배제했다. 이들의 그림이 추상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물의 분명한 윤곽선이 파괴되면서 사물이 자기 주위의 환경과 상호 침투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미래파 미술가들에게 있어 공간이란 사물의 연장(extension)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사물의 연장은 운동을 전제하고 운동은 시간을 함유한다. 미래파 미술가들이 사물을 시간적 사유에 의거하여 이해하고 있었고 이들의 이러한 사고는 베르그송의 그것과 유사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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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 1882~1916), <머리와 창의 융합(Fusione di una testa e di una finestra)>, 1912, 복합 매체. ⓒ artdreamgude.com

미래파 화가들은 당시 뢴트겐(W. K. Rontgen)에 의한 X선 발견에 크게 고무되었고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X선의 효과를 그림에 응용하였다. 마치 인상주의 회화에서 묘사 대상과 그 주변의 색채가 붓 자국을 매개로 서로 섞이듯 미래파 화가들은 X선에 의하여 이제 색채뿐 아니라 형태까지도 상호침투될 수 있다고 여겼다. 이들은 회화에 X선적인 시각을 구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들의 X선적 시각이란 가령 동물을 그릴 때 겉 윤곽선과 함께 그 속의 뼈까지 그리는 식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상과 그 주위가 형태, 색채상으로 섞이는 것을 표현하고 대상에 내재하는 운동성을 가시화하는 표현을 의미한다.

요컨대, 미래파 화가들은 X선의 투사능력을 자신의 시각에 부여하여 색채뿐 아니라 형태까지도 서로 침투하도록 그려 운동감으로 충만한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미래파 회화에서 모든 대상은 서로 침투하고 중복되게 표현되는데, 미래파 화가들은 이것을 가리켜 ‘면(面)의 상호 침투(Interpenetration of Surfaces)’라고 불렀다.

상호 침투성은 원근법적인 공간을 파괴한다. 앞서 말했듯 미래파 화가들에게 공간은 대상의 연장(연속)이며, 사물을 싸고 있는 대기는 빛과 같이 물체의 물질성을 파괴하는 물질적인 실체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미래주의자들은 베르그송의 인식론을 받아들여 모든 사물은 추진력(impulse)을 가지고 있는데 이 추진력이 대상과 환경 간, 대상과 대상 간의 상호 침투를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이 현상은 대상 스스로가 전위(轉位)하는 운동을 통해 극대화된다. 미래파 화가들은 달리는 전차는 그것이 지나가는 집들 사이로 돌진해 오고 집들은 스스로를 전차에 던지고 함께 섞이게 된다고 보았다. 또 그들이 붉은 소파에 앉을 때 그들의 옷이 붉은 색이 된다고 봄과 아울러 그들이 소파에 앉아 있을 때 소파는 그들의 몸을, 그들의 몸은 소파를 뚫는다고 보게 되었다. 그 결과 달리는 말의 다리는 4개가 아니라 20개고 그들의 운동은 삼각형이라는 미래파 선언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을 표현하기 위해 미래주의 그림은 인상주의의 분할기법으로 출발했지만 빛과 같이 대상의 변형에 영향을 주는 요소 자체를, 밀도를 지닌 질료로 고체화시켜‘면’으로 극단화하였다. 그리고 강한 동세를 느끼게 하는 힘찬 선(역선)을 사용하여 면으로 현상되는 형체들 간의 상호 침투 및 변화되는 추이를 묘사하였다. 이렇게 해서 정지되고 동일한 하나의 공간에 지속되는 운동의 추이가 그림으로 그려지게 되었다.

강력함에의 동경

미래파가 지향했던 힘과 속도 개념, 그리고 다이나미즘은 니체의 위버멘쉬(¨Ubermensch)개념에 경도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낙후된 조국 이탈리아의 부흥을 갈망하던 이들은 위버멘쉬를 강한 힘의 개념으로, 즉 현실적이고 보다 구체적인 능력 개념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또한 강하고 힘찬 것에 대한 미래파의 과분한 찬미는 결국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부르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난도 있다. 실제로 마리네티의 궁극적 목표는 ‘위대한 이탈리아의 탄생’이었다. 그는 무솔리니와 접촉하면서 파시즘의 창립멤버가 되었으며 다른 미래파 화가들도 이른바 회복주의(Irredentism, 당시 오스트리아 영토 내에 있으면서 이탈리아어를 사용하는 지역을 이탈리아로 합병하려는 운동)를 내세우면서 정치 운동에 참여하였고 나중에는 이탈리아의 세계대전 참전을 지지하였다. 이렇게 볼 때 미래파의 파시즘 관련 비난은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닌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들의 예술적 성취는 아방가르드 예술계보에 있어 선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현대미술 전체에 끼친 영향 또한 실로 대단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파 회화가 서양의 전통적인 존재 이해방식을 뒤엎고 존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래파는 존재를 이해함에 있어 서양의 전통적인 공간적 사유의 한계를 절감하고 시간적 사유를 새로운 방법론으로 제시한 예술적 변혁이었던 것이다.

 노 영 덕 / 공연예술학과 강사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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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1. 미래파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빚겨져 새로운 시각을 확장시킬 수 있는것에 빚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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