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호 인터뷰: 박상준 SF전문가] 이런 세상일수록 SF를 읽어야 한다

박상준 SF전문가는 한양대학교 지구해양과학과를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비교문학과를 수료했다. 학부 재학 중 SF전문기획번역가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SF 관련 출판·강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지 올해로 25년이 됐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한 가지 일을 오래도록 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이에 본보는 지난 9월 23일,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박상준전문가를 만나 그가 오래도록 해온 SF라는 분야에 대해 알아보고, 그의 삶에 대해들어 보았다.

217-01-1

 

성공한 덕후, 박상준의 삶과 미래

Q. ‘SF전문가라는 직업이 조금은 생소합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사실 직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SF관련 분야에서 계속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문가’라고 불리게 된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SF를 좋아했는데 제가 학생 때는 한국어로 완역된 성인용 SF소설이 몇 개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원서로 책을 읽다가, 학부 때 해외 SF단편들을 번역해서 잡지에 연재해보면 어떨까 싶어 잡지사에 기획을 제안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출판사와 연이 닿아 SF전문기획번역자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출판계에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관련 콘텐츠에 대한 지식이 필요할 때 연락이 왔습니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다보니 이 분야에서 제가 처음이었던 거죠. 남들이 안할 때 먼저 시작했다는 것 때문에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Q. 대학원에 진학하시면서 전공을 바꾸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어떻게 보면 저는 잘 마무리 된,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닙니다. 사실 제 어릴 때 꿈은 과학자, 정확히 천문학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과학자가 되려면 수학을 잘해야 하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수학을 잘 못했고 대학교에 가서 나는 과학자가 될 깜냥이 안되는 사람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과학자가 못될 바에야 좋아하는 SF를 통해서 우리나라를 더 살기 좋게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80년대에 저는 SF가 우리나라에 제대로 소개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었거든요. 그래서 고려대학교로 학사 편입 후 SF전문기획번역가로 활동하다가, SF문학을 아카데믹하게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에 대학원에 늦게나마 진학한 겁니다.

Q. SF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신 것 같습니다. SF의 매력이 궁금합니다.
저에게 SF는 단순히 재미를 넘어서 새로운 인식의 계기였습니다. 다들 어린 시절에 SF나 판타지 소설 같은 것들을 통과의례처럼 접하게 됩니다. 요즘은 ‘해리포터’가 그렇고 제가 어렸을 때는 ‘아동용 SF전집’이 그랬습니다. 그때는 현재 살고 있는 시공간이 아닌 다른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낯설고 이질적인 스토리가 좋았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때 아서 클라크의 『지구유년기 끝날 때』를 읽고 SF에 외계인, 타임머신 같은 엔터테인먼트적인 내용뿐 아니라 인류의 장래를 논하는 심오한 이야기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본 거죠. 대학 때는 “소설 자본론”이라 불리던 잭 런던의 『강철군화』를 통해 사회과학적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게 됐습니다. SF의 매력은 읽고 나면 전보다 좀 더 트인 시야를 가지게 된다는 겁니다.

 

SFSF적 사고

Q. 말씀하시는 SF가 사색소설(Speculative Fiction)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생각하시는 SF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SF는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큰 틀을 계속 가져간다고 생각합니다. 사색소설은 1960년대 이전 유희적 측면이 강했던 SF와는 다르게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생각들이 들어있는 작품들을 말합니다. 영미권에서 “뉴웨이브SF”라고 하는데 기존에 주류인 SF(Science Fiction)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전혀 결이 다른 SF입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사이언스 픽션에 녹아들어서 뉴웨이브SF나 사색소설이라고 분류하지는 않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이것들을 포함해 더 확장된 거죠. 덧붙이자면 SF를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은 것들로 생각하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특히 SF영화라고 하면 특수효과(SFX, Special Effects) 때문에 제작비가 많이 들 거라고 생각하십니다. SF영화에 SFX가 들어가기는 하나 그것이 SF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연출이나 스토리, 구성과 같은 작품성으로 이야기되는 것들입니다.

Q. SF는 흔히 장르문학으로 구분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전에도 지금도 그런 시선들이 있습니다. 저도 학부 때까지는 SF를 장르문학, 통속문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순수문학과 비교해봤을 때 약간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SF를 다룬 영미권 문학평론서들을 읽어보고, 더 많은 SF문학을 접해갈수록 SF가 그렇게만 취급될 장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등 순수문학으로 분류되는 작품들도 사실 다 SF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의 하위 장르인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소설에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작품들까지 SF문학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SF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인식이 필요할 것입니다.

Q. SF의 미덕 중 하나를 시공간적 시야 확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과학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사람들이 전과 동일한 시야를 가지고 있으면 과학기술에 발목을 잡힐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과학기술이 생기면 그것이 가져올 부정적 결과를 따져보고 선택적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그것을 최소화 시킬 방법을 한 발 앞선 SF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사람들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데도 SF가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페미니즘은 SF에서 예전부터 반복적으로 진지하게 다루던 소재였습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1960년대에 ‘스타트렉 TV시리즈’는 흑인과 백인이 키스하는 장면을 방송에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청자들은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는 설정 때문에 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드렸습니다. SF라는 형식이 당대에 금기시되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겁니다. 이 때 시야가 넓어진다는 말은 열린 마음으로 역지사지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인거죠.

Q. SF에서는 인공지능(AI)을 가진 로봇에 의해 인간이 배제되기도 합니다. SF가 현실에서 실현되는 것에 불안감이 들기도 합니다.
SF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걱정하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같은 영화에서의 AI는 인간이라는 예측불가능한 존재를 제어하기 위해 인간을 배제하기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원칙론적인 측면일뿐 입니다. 현실에서는 테러리스트 한 명을 죽이기 위해 무고한 민간인을 희생시킨 미국의 무인항공기를 비난합니다. 이런 기술이 인간적으로 용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AI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은 인간이 하는 일을 도와 더 뛰어난 결과물을 낼 수 있게 하고, 혹시나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체해주는 조력자가 되는 겁니다. AI로 인해 지금 내가 하고있는 일들이 얼마나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
SF의 현실과 전망

Q. SF의 영향력과 잠재력에 비해 한국에서 SF는 오락거리 이상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발달 정도가 비슷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SF분야가 발달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 SF분야에 발을 들였을 때는 우리나라 현실이 SF같아서 SF가 발달하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습니다. 굳이 사람들이 SF를 보지 않아도 될 만큼 현실에서 거짓말 같은 일을 많이 겪었던 거죠. 남북분단, 노동탄압 등 정치적으로 엄혹한 세상에 살고 있었으니까요. 80~90년대에는 문단의 엄숙주의 같은 것 때문에라도 SF가 크게 주목받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SF문학에 관심을 가집시다!’ 하면 순수문학을 하는 분들이 ‘지금 같은 세상에 무슨 뜬구름 잡는 태평스러운 SF냐’ 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현실이 SF보다 믿기지 않는 건 마찬가지여서 우리나라에서 SF에 대한 관심이 덜 한 것 같다고 반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합니다.

Q.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SF계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까요?
분야와 매체를 막론하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SF작품들이 알려지고 노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SF이면서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합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좋은 사롄데 사람들이 재미있게 보고서 주인공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역사의 단계를 뛰어넘는 초월적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조금씩 저변을 넓혀 가야 합니다. 또한 SF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현재 SF분야는 1차 자료 목록화조차 안되어 있습니다. 필요성을 느껴 <서울SF 아카이브>를 차리고 20년 넘게 자료를 모았는데도 작년, 올해 처음 보는 자료들이 계속 나옵니다. 가능하다면 제 자료를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공개해 공유하고자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 아쉽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자료들을 아카이빙 해 온라인으로 공개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Q. SNS이런 세상일수록 눈을 크게 뜨고 SF를 읽어야 합니다라는 글을 게재하셨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SF는 어떤 지표가 될 수 있을까요?
제가 말한 ‘이런 세상’은 지금 현실을 이야기한 것이었을 겁니다. 세월호 문제도 있었고, 요즘 사람들이 대놓고 후안무치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전에는 옳지 않은 일을 하면 부끄러운 줄은 알았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정치적 입장이나 이데올로기를 떠나서 가장 기본적인 한국적 정서로 이야기하자면,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나 염치를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SF를 읽어서 시야가 넓어지면 사람들이 한번 씩은 자기 삶에 대해 성찰해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가 열린사회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SF 좀 읽어보시죠!

Q. SF처럼 미개척된 분야로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늘 막연함이 존재합니다.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 분야에서 말하자면 요즘은 과학과 인문학, 기술과 문예창작 등 융합적인 프로젝트가 확실히 많아졌습니다. 저도 SF에 관심 있는 미술관계자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융합예술에 대한 관심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단계이고, 아직 틈새는 많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융합적 세부전공을 잡고 꾸준히 투자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SF분야에서 그나마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유는, 다른 것들을 다 떠나서 제가 20년 동안 다른 데 가지 않고 여기 남았기 때문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입에 풀칠하면서 한 분야를 붙들고 있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끈을 놓지 않도록 애써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박상준’s Pick

어슐라 르 귄의 소설『어둠의 왼손』(1969)

테드 창의 소설『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2013)

칼 세이건의 소설『콘택트』(1985)

조나단 글레이저의 영화 <Under The Skin> (2013)

대담·정리 : 지여정 | ceravi@khu.ac.kr
사 진 : 고희영 | khyhy825@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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