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호 영화비평: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2016)] 진정한 보수주의의 가치를 생각하다

ⓒmovie.naver.com

ⓒmovie.naver.com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Sully)>(이하 <설리>)의 초반부에서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톰 행크스)는 자신이 조종하는 여객기가 뉴욕 도심의 숲을 가로질러 빌딩과 충돌하는 악몽을 꾼다. 이 이미지는 즉각적으로 우리의 기억을 15년 전 뉴욕으로 이끈다. 9·11은 자신의 영토에서 외부로부터 공격 당해본 적 없는 미국인들에게 심대한 트라우마를 야기했으며, 부시 정권은 상처받은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복수심으로 치환시켜 악무한의 폭력으로 치달은 ‘테러와의 전쟁’을 벌였다. 우리는 그 참담함의 끝을 기억한다. 거기에는 ‘나의 국민이 이런 일을 당했으니 내가 책임진다’는 국가적 리더의 어떤 결연함이 있다. 물론 그 결연함이 그릇된 사고방식과 잘못된 방향으로 치달을 때 어마어마한 비극도 있다는 것 또한 우리는 안다. 그것은 책임 있는 자가 자신의 책임을 광적으로 완수하고자 할 때, 역설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무책임의 극치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십여 년 후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그 당 출신의 전직 시장(카멜 시)이자 할리우드 보수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진짜 리더십과 책임감이 어떤 것인지를 9·11의 악몽 위에 포개 놓는다. <설리>는 그것을 말하는 영화다.

개인의 책임, 참된 리더십

영화는 2009년 1월 15일 설리 기장이 이끄는 여객기가 허드슨강에 비상 착수하여 155명 전원이 생존한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내가 여기서 ‘이끄는(leading)’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정말로 그가 허드슨강으로 여객기를 이끌지 않았다면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며, 비행기 안에 탑승한 승객들에 더해 빌딩과 거리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극을 이끌어가는 서사구조는 ‘이 선택이 과연 최선의 것이었는가?’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다. 설리는 기적처럼 비상 착수에 성공하여 하룻밤 사이에 전 미국의 영웅이 되지만 조사위원회는 동력이 여전히 남아있으며 왼쪽 엔진이 작동하고 있다는 추측하에 그를 다그친다. 더 나아가 여러 번의 시뮬레이션 테스트 결과 근처 공항으로 회항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것은 155명의 승객을 살린 영웅을 대하는 ‘예의’가 아니지만 어쩌랴,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해야만 했다. 아마도 이것이 표면적으로 보이는 이 영화의 주제일 것이다. 설리는 말한다. “난 내 일을 했고,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는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비상 착수할 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자. 설리 기장과 제프 스카일스(아론 에크하트) 부기장은 추락하는 여객기를 어떻게 해서든 살려내기 위해 보조동력장치를 켜고 관제탑과 교신하며 긴급사태 매뉴얼을 확인한다. 관제탑은 어떻게든 여객기를 가까운 공항에 착륙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한다. 승무원들은 동요하는 승객들을 안정시키며 비상 착수에 대비한 행동요령을 외친다. 비상 착수가 행해진 후에도 침착하고 안정적인 통제는 변함이 없다. 구명보트를 꺼내고 승객들을 먼저 내리게 한다. 강 인근에 있던 배들은 경찰에 앞서 구조에 나선다. 연락을 받은 경찰들은 긴급히 출동한다. 먼저 내리겠다고 아우성치는 승객 하나 없다. 설리 기장은 마지막까지 단 한 명이라도 남아 있지 않나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정말이지 이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2년 반 전 우리 사회를 ‘그 이전’과 ‘그 이후’로 갈라놓은 사건이 떠올라 왈칵 눈물이 솟구친다. 혹자는 도시 인근의 강에서 벌어진 사건과 바다 한가운데에서 벌어진 사건을 단순 비교할 수 있겠느냐고 묻겠지만 중요한 것은 환경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겠는가?

누군가의 말처럼 <설리>는 각자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것이 올바른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영화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인간이 먼저고 양심이 먼저라는, 되지도 않는 소리는 하지 말자. 인간과 양심을 따지는 데에도 진보와 보수는 갈릴 수 있다. 나는 <설리>가 명백히 보수주의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고 설파하는 영화가 보수주의적이지 않다면 무엇이 보수주의적이란 말인가? 물론, 비행기가 추락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동요하지 않고 맡은 바 할 일을 하는 것에 진보와 보수가 따로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을 예외로 한다면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의 책임을 다하라는 주장은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노동자는 열심히 일하고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해라. 정치와 경제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그러나 <설리>가 진정 보수주의적인 것은 따로 있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설리 한 사람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그의 악몽은 당연히 주관적이며, 첫 비행장면과 공군 조종사 시절 불시착 장면은 그의 기억을 담은 플래시백으로 전달된다. 허드슨강에 비상 착수하는 장면 역시 여러 번 플래시백으로 반복되는데 어김없이 그의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시뮬레이션 테스트에 인적 요소(그런 위기상황에서 기계처럼 정확하게 행동할 수 없다는)가 반영되지 않았음을 인정한 조사위원회가 설리에게 어떻게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었냐고 물을 때, “나 혼자한 것이 아니라 부기장, 승무원, 승객 모두가 한 것”이라는 설리의 말은 이 영화가 캐릭터에게 부여하는 서사의 권력과 배치된다. 모든 시점은 그가 통제하고 있다. 이렇게 어렵게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이 영화는 설리라는 한 리더의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면 모두가 죽게 되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내가 이 영화에서 보수주의를 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든 캐릭터에게 골고루 서사를 안배하는, 9·11 소재 영화의 최고 걸작 <플라이트 93(United 93)>(2006)은 더 진보적이다. 단지 그 영화의 마지막이 죽으면서도 더 많은 희생을 피하기 위해 도심이 아니라 들판에 비행기를 추락시킨 사람들의 필사적인 자기희생으로 끝나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9·11을 겪은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서사의 독점 없이 ‘평등하게’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설리>는 비행기의 상하를 뒤집는 아찔한 곡예비행으로 승객들을 살리는 영화 <플라이트(Flight)>(2012)보다 더 보수적이다. 여기에도 영웅이 등장하지만 그는 알코올 중독과 불륜이라는 치명적 결함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그의 판단에 작용하는 복합적인 갈등을 다루고 있다. 이에 비한다면 <설리>에서 설리는 완전무결한 리더이자 개인 영웅에 가깝다.

따뜻한 보수주의의 가치

이제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의 보수주의를 결론지을 때다. 우리가 그의 영화를 놓고 진보냐, 보수냐를 따지는 것은 보수주의에 대한 우리의 기준이 참혹할 정도로 낮기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단지 낡은 것을 고수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저 졸렬한 수구 상판대기들의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약자들을 배려하고 양심과 도덕에 따라 행동하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개인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가치이다(그에 비해 진보와 좌파는 인류보편의 정의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누구의 정의인지를 물으며, 개인들의 책임이 아니라 집단의 연대와 우애를 강조한다). <설리>를 포함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는 이러한 가치를 찬양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 속에서 개인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게 될 때 이룩할 수 있는 조화로운 사회.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보듬을 줄 알고, 오랜 세월 쌓인 전문가적인 직업의식과 경륜이 적재적소에 사용되어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사람들(보수주의적 개인 영웅들)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 누군가는 권력을 쥐고 있고 그 기득권은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자신을 흔들지 않는다면 베풀고 품어주는 따뜻하고 안온한 보수주의의 가치. 바로 그것이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의 보수주의이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유일하게 진심을 다해 존중할 수 있는 보수주의의 가치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2년 반 전의 참혹한 사건을 덮으려는 저 무능하고 무치하며 무정한 인간들의 간교한 정치적 레토릭이 아닐 것이다.

정 영 권 / 동국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강사

작성자: khugnews

이글 공유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