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호 인터뷰: 안창모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교수] 근대건축은 살아있다

어제는 있었던 건물이 오늘은 없고, 언제 그랬냐는 듯 새로운 것이 들어서는 일은 이제 익숙하다. 수많은 건축물 중 근대의 건축유산은 역사의 증거물인 동시에 현재 우리 삶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가치평가가 끝나지 않았으며,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도시 속에서 그 존립에 대한 논의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본보는 지난 8월 8일, 서울시청 신청사에서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건축역사문화보존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안창모 교수를 만나 근대건축유산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216-01-1

시대의 유산

Q. 한국 근대건축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막연합니다. ‘한국 근대건축’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대상과 시대적 범주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근대건축은 ‘근대’라는 특정시간대에 존재했던 건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술적으로 근대에 대한 정의는 정확하게 합의된 것이 없습니다. 시대 구분이 명확치 않지만, 근대건축은 우리 사회 변혁기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근대건축 중 산업유산을 보면, 유럽 같은 경우 산업혁명 이후 새롭게 재편된 경제구조와 함께 시민계급의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근대를 맞았습니다. 산업혁명을 겪은 유럽의 국가들은 제철·화학 관련 시설이 근대산업시설의 주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산업혁명 없이 일본의 식민 지배를 겪으면서 근대사회로 접어들었죠. 우리나라 근대산업시설은 주로 수도·정수·방적 시설 등 의식주와 관련된 생활형 산업시설이었습니다. 1930년대에 제철·화학 등의 산업시설들이 등장합니다만 일본의 전쟁수행 목적 아래 한반도의 병참기지화와 함께 이루어진 산업이었습니다. 우리의 근대산업시설은 우리가 산업구조를 바꾸면서 지은 것이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 수탈구조 속에서 그들의 필요에 의해 세워진 것이었죠. 같은 근대건축유산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서구와 다르게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느냐가 중요합니다.

Q.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근대건축유산의 가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근대건축은 어느 시대나 존재했던 것 중에 근대의 것이 아닙니다. 단순한 물건이 아니죠. 우리가 겪었던 사회적 변동과 지금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삶의 결과물이자 역사적 증거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역사는 자랑스러운 역사뿐 아니라 잊지 않아야 할, 반복하지 말아야 할 역사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듯 자꾸 보지 않으면 잊어버립니다. 때문에 눈에 보이는, 역사의 증거물로서 건축유산이 중요한 겁니다.

근대건축유산 바라보기

Q. 개별 근대건축유산의 가치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처음 자기가 직접 돈을 모아서 산 것은 무지하게 오래 가지고 있지 않나요? 자신의 추억이 담긴 것이니까요. 유산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러한 기억이나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대상이라고 봅니다. 한 가족의 역사를 보면 그 가족이 소중히 여기는 장소, 가훈, 물건 등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보(家寶)죠. 유산은 누구와 공유하느냐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지는 것뿐입니다. 기억을 공유하는 범위가 한 동네일 때는 향토유산이 되는 것이고, 국가 차원이면 국가유산이 되는 겁니다.

유산에 대해서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서울시에서 선정하는“서울미래유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모든 것을 보존하고자 시행되고 있는데요. 시민들이 유산을 발굴·제안합니다. 저는 이것을 서울사람들의‘고향 만들기’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 중 서울이 고향인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이 서울미래유산을 통해 기억을 공유하고, 지역사회에서 지켜야 할 것을 만들어가는 겁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현재 공유하고 있는 가치가 오래도록 남으면 유산이 되는 거죠.

Q. 일제 강점기 일본에 의해 지어진 건물이나 군사독재 때 이용된 시설 등, 어두운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건축유산들을 지금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마주해야 할까요?
제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우리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졌다고 배웠습니다. 당연히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찬란하지 않은’ 것은 문화유산이 아닌 걸까요? 일반적으로 ‘찬란하지 않다’고 인식되는, 부정적 역사의 유산을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라고 합니다.
지우고 싶은 역사를 가진 나라는 많습니다. 프랑스 같은 경우, 어두운 역사와 관련해 그에 편승한 사람들을 잔인하게 숙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잘못에 관한 물적 자원은 증거로 남겨서 역사적 교훈으로 삼았어요. 그러나 우리는 아주 불행하게도 해방 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죠. 친일파들이 권력과 부를 가져가는 상황에서, 식민지배의 증거인 물적 자원을 없애는 것이 마치 식민 잔재가 청산되는 것인 양 여겼습니다. 문제는 사람인데 말이죠.
네거티브 헤리티지의 가치를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 바로 유태인들입니다. 그들은 세계 곳곳에 홀로코스트 뮤지엄을 만들어서 비극적 역사를 알리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 LA 등 실제 홀로코스트가 일어나지 않은 장소에도 뮤지엄을 세웁니다. 독일의 잘못을 알리고, 학살·전쟁에 대한 반성으로서 자신들의 역사를 인류사적 가치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또 유태인 후손들에게 교육하는 것이죠. 이를 통해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네거티브 헤리티지를, 민족과 국가를 보존할 수 있는동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화유산의 가치는 ‘찬란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훈’에 있다고 봅니다. 그 교훈 중에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는 거죠. 네거티브 헤리티지 논의는 주로 일제강점기의 문화유산에 초점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그 이후의 한국전쟁이나 민주화 관련 유산에 대한 논의는 좀 더 복잡한 구조를 띠게 될 것입니다. 이는 사회가 가진 가치관과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보존과 활용 그리고 개발 사이에서

Q. 우리 사회의 경제논리 속에서 근대건축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운 부분인 듯합니다.
근대건축유산은 보존과 함께 활용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활용’은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 가치로 이야기되죠. 그러나 어떤 것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은 그것이 공공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공재에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는 것은 맞지 않죠. 보존과 활용에 경제논리를 들이대는 순간, 문화재는 망가집니다.
개인이 소유한 건축물의 경우, 문화재로 지정되면 재산권을 침해받는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박물관의 도자기처럼, 신줏단지 모시듯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이 역시 문화유산에 대해 우리가‘찬란’하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건축물은 활용할수록 가치가 더 올라갑니다. 때문에 인식전환이 필요합니다. 거래도 자유로워야 하고요. 단, 중요한 것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이 문화재를 가지고 있으면서 공공에 기여한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 그것을 구축하지 못했어요.

Q. 건축물이 다른 용도로 활용될 경우, 기존 건축물이 지니던 가치가 변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건물이 하나의 기능을 갖추는 것이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형적인 모더니즘 사고라고 봅니다. 하나의 기능에 최적화된 형태는 그 용도가 끝나면 못 쓰게 됩니다. 건축물은 그러기에 단가가 비쌉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건축물의 수명이 사람보다 깁니다. 사회가 변하면 용도도 변하게 마련이죠.
따라서 건축물이 여러 용도로 활용됨에 따라 그 가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의미도 생기고요. 그중에서 무엇을 챙겨갈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이때 보존할 가치를 한 두 사람의 전문가나 지도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결정하는 것이죠. 문화유산의 기본은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Q. 역사적 입장에서 보존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낙후되어 개발의 필요성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건축물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어떻게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가회동이 있는 북촌이 20여 년 전에는 굉장히 낙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보존을 지원해주고,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오가면서 변화됐습니다. 그저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면서 주거환경을 바꿔간 것이죠.
이런 부분은 처음에 정책결정을 잘해야 합니다. 주변이 아파트로 바뀐 상태에서 방치하면 환경이 낙후될 수밖에 없어요. 또한 아파트는 건축물의 지속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북촌에 단독주택을 가진 사람들은 건축물을 고치면서 살아가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파트는 고치기 쉽지 않아 돈들여서 고칠 생각을 안 하게 되죠.

오래된 것들과 함께

Q.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 위해선 50년이라는 시간적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50년을 채우지 못한 건축물들은 어떻게 보존되고 있나요?
앞서 말한 서울미래유산이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유산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유산을 발굴·제안하고 위원회가 심사를 통해 선정합니다. 이후 유산 소유자가 동의하면 인증서와 표식을 제공합니다.
이와 함께 주목할 만한 것은 국토교통부에서 제정한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입니다. 등록문화재는 아니지만 유산으로서 잠재적 가치가 있는 것들을 관리하고자 만들어졌습니다. 지금까지 국토교통부는 국토 개발을 통해서 부를 만드는 것을 그 목적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법안은 개발이 아니라 기존에 가지고 있는 건축자산을 잘 관리해서도 국가의 부를 유지하거나 증진시킬 수 있다는 사고의 전환입니다.
집을 부수고 다시 지어 이익을 남기는 사회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까지 단독주택을 재개발해서 아파트를 만들어 왔었죠. 하지만 계속 용적률을 높여서 이익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는 듯합니다.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사회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시의 성장이 멈추거나 축소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또한 그런 도시에서 살아가는 연습도 전혀 안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오래된 것과 함께 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래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는 것 말입니다.

Q. 마지막으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학원생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작지만 자기가 오래 할 수 있는 취미나 컬렉션을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좋겠어요. 나 자신과 오랫동안 함께해온, 내가 보듬지 않으면 어디 가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물건이나 일이 옆에 있으면 힘들 때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았으면 합니다. 그래야 후회도 덜 하는 것 같습니다. 당장 도움이 되는 눈앞의 일이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든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그러나 오직 돈 때문에 하는 일들은 성공하면 반은 위안이 되지만 실패하면 남는 게 없죠. 좋아하는 것을 하면 실패해도 ‘좋아하는 것을 했다’는 사실에 위안이 될 겁니다.

대담·정리 : 고희영 | khyhy825@khu.ac.kr
사 진 : 지여정 | ceravi@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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