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호 인문학술: 댄디즘(Dandyism)] 댄디즘과 21세기 미학적 사회에 대한 전망

댄디즘은 19세기 유럽의 통합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의 문화 · 예술의 흐름으로, 댄디에게 있어 ‘겉모습’은 단지 외적인 모습만을 뜻하지 않는다. 하지만 외적 이미지가 중요시되는 현대사회에서 댄디즘은 단편적 혹은 표면적인 의미로만 사용되고 있다. 이에 본보는 19세기와 21세기에서 각각 바라본 댄디즘의 의미와 사회문화적 함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21세기: 댄디의 시대

21세기는 댄디가 범람하는 시대이다. 그야말로 여기저기에서 댄디가 툭툭 튀어나온다. 영화제나 팬미팅에 나온 유명인들은 저마다 댄디룩을 ‘장착’하고, ‘꽃미남 스타’들은 댄디 스타일의 멋진 모습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어쩐지 그저 잘생기고 옷 잘 입는 연예인들은 모두 댄디라고 부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인들의 블로그에서조차도 댄디함의 정석이나 댄디하게 옷을 입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구구절절 늘어놓은 것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물며 이제는 의복의 범주를 넘어 댄디 컷, 댄디 펌, 유리피언 댄디 스타일 등 서로 구별되지 않는 이런저런 머리모양을 가리키는 신조어를 파생하거나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댄디 샾’과 ‘댄디 클럽’, 그리고 그들의 ‘댄디 라이프’까지 넘나들고 있으니, 우리 사회가 이토록 ‘댄디스러움’을 열망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지경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댄디즘으로 불리는 이 현상이 과거 유럽사회를 미학적으로 성숙하게 만든 문화 · 예술 흐름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즉 이것이 그저 옷을 말쑥하고 근사하게 입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외적 형태를 통해 정신을 드러내는 매우 심오한 학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런 오해와 왜곡은 비단 우리 사회에서만이 아니라 21세기 사회 전체에서 이루어진다. 오죽했으면 “댄디는 죽고 매장 당했다”라는 선언이 나왔겠는가? 그러므로 부족한대로 이 적은 지면을 통해 중구남방으로 쏟아지는 용어를 정리하고, 벙거지 시울 만지는 소리를 명확히 하고자 한다. 우선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댄디는 누구인가? 그리고 댄디가 추구한 댄디즘은 무엇인가?

19세기 댄디의 등장

댄디즘은 19세기 초 영국의 귀족사회에서 처음 등장했다. 조지 브러멀(George Bryan Brummell)은 영국 국왕이었던 조지 4세(George Augustus Frederick)의 친구로 다른 사회구성원들과 구별되게 옷을 입음으로써 동시대 귀족들의 의상을 선도했다. 그는 구체제의 지나친 장식들은 거둬낸,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여성스러운 스타일의 옷을 선호했는데, 주로 8~9부 정도의 검은색 바지와 몸매를 따라 흐르는 연미복, 그리고 오늘날 여성의 블라우스와 흡사한 형태의 흰색 셔츠, 머플러를 즐겨 착용했다. 이것은 그 시대 귀족들이 즐겨 입던 옷과는 다른 매우 우아하고 아름다운 복장이었고,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그를 “보 브러멀(Beau Brummell)”, 즉 ‘아름다운 브러멀’로 불렀다. 댄디즘의 시조로 여겨지는 브러멀의 스타일은 당시 프랑스대혁명을 피해 런던에 정착해 있던 프랑스 왕당파 귀족들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그들은 왕정복고 이후 이 유행을 파리로 가지고 들어왔다. 그러므로 댄디즘이 패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예술이며, 외적인 형식에 치우친 사회현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다일까?

댄디즘의 시조 ‘보 브러멀(Beau Brummell,1778~1840)’

댄디즘의 시조 ‘보 브러멀(Beau Brummell, 1778~1840)’ ⓒ wikipedia.org

 

프렌치 댄디즘과 대표적인 댄디들

만일 댄디즘이 영국에서 시작된 형태 그대로 유지되었더라면, 19세기 프랑스 사회를 정신적으로 고양시킨 고유한 삶의 양식으로 발전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댄디즘이 프랑스에 처음 상륙했을 때에는 외적 인상에 치우친 ‘나르시시즘’으로 여겨지며 비판의 대상의 되기도 했다. 하지만 자아도취를 반영하는 이 현상은 이후 육체와 영혼을 하나로 만드는 방식을 통해 산업혁명 이후 지극히 물질적으로 흐르던 시대에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소위 ‘정신적 귀족주의’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발현 당시 지극히 과시적으로 보였던 이 ‘자기표명’을 스토이시즘 혹은 미학적 통제에 근거한 하나의 철학으로 발전시킨 사람들은 19세기 프랑스의 지적·예술적 흐름을 주도했던 문학가와 예술가들이었다. 그들은 때로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기이한 취향의 사람들로 평가 절하되기도 했지만, 대중적 유행이 지배하는 저속한 사회에 반기를 들고 개인이 대중으로부터 드러나는 법을 내적성찰을 통해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제 댄디즘은 단순한 외양의 차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타입의 삶의 양식, 사회를 움직이고 정화시키는 존재양식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댄디즘의 정수이다.

댄디즘을 형이상학적 방향으로 이끈 대표적인 사람들 중에는 가장 전형적인 댄디이자 댄디즘 이론가인 바르베 도르비이(Jules-Amédée Barbey d’Aurevilly)가 있었다. 그의 저서 댄디즘과 조지 브러멀에 대하여는 댄디즘에 관한 첫 개론서로 이 특별한 사회현상을 학문화 시키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스로 댄디임을 자처하고 브러멀식의 절제된 우아함을 찬양했지만 부르주아 시대의 평등과 일치된 유행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도르비이는 자신만의 독특한 댄디즘을 완성하였다. 특히 그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 조끼는 우아함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것은 바이런의 머플러처럼 자신의 존재감에 변별력을 더해주는 액세서리이자 취향의 일치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위대한 시인이자 미술비평가, 번역가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역시 댄디즘을 심오한 학문으로 발전시킨 사람 중 하나이다. 보들레르는 댄디를 ‘정신의 귀족적 우월성’을 가진 사람으로 보았고, 따라서 그의 댄디즘은 내면화, 정신화 또는 내적 투사로 표현된다. 그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거부감을 증오로 발전시켜 스스로 문란하고 혼란스러운 사회 속으로 빠져듦으로써 ‘추한 것의 미학’을 탄생시켰다. 동시대 사진가 나다르(Nadar)가 찍은 보들레르의 모습 속에는 비록 오늘날의 기준에 맞는 ‘꽃미남’은 보이지 않지만, 말쑥한 옷차림에 우아한 태도, 그러면서도 예술적 고뇌와 자유분방함이 넘치는 도발적인 시선의 댄디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외적으로는 다른 댄디들과도 구분되는 ‘데카당’한 지적 이미지를 창조했고, 내적으로는 저서를 통해 19세기 후반의 부조리하고 부도덕한 종교와 풍속, 미덕에 신랄한 도발을 던졌다. 보들레르는 육체가 원하는 정신, 정신이 원하는 물질 속에서 늘 갈등하며 혼란과 고통을 겪었지만, 자신의 몸과 정신의 연합을 통해 결국에는 비밀스러운 예술의 정점에 이를 수 있었다.

바르베 도르비이와 보들레르 이외에도 초기 조지 브러멀의 계승자였던 최초의 시인 댄디 로드 바이런(Lord Byron), 프렌치 댄디인 알프레 드 오르세 백작, 알프레 드 뮈세, 으젠 수, 칼 위스망스, 그리고 19세기 후반 프렌치 댄디즘이 영국에 재유입되며 시작된 뉴댄디즘의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등도 언급할 만한 댄디들이다.

댄디의 조건

19세기를 살았던 댄디들의 결과물을 21세기에 대입하는 것은 다소 억지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 중에는 드물지만 내적인 사상을 외양을 통해 발현하고자 애쓰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산업혁명 이후 저속화된 19세기 사회보다 훨씬 더 물질적이고 경박해진 오늘의 우리 사회를 미적으로 이끌 만한 댄디를 찾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따져보는 것은 나름 흥미로운 일일 법도 하다. 21세기 댄디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어떤 조건들을 갖추어야 할까?

첫째, 댄디는 외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은 19세기든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든 여전히 유효한 가장 기본적인 댄디의 조건이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일차적으로 외적인 체형과 복장을 지칭한다. 댄디는 자기 스스로를 고유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육체적 통제를 실천해야 한다. 그러므로 아주 잘생길 필요는 없어도 우아한 몸매와 이를 강조하는 옷 입기는 필수불가결하다. 날씬해야 한다는 전제가 다분히 외모비하 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적어도 19세기 댄디에게 그것은 자신들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필수조건이었고,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또한 의복은 사회를 반영하는 동시에 개인의 정신과 사상을 보여주는 매개체로, 특히 외적 변별력을 중요시하는 댄디에게는 존재의 내재성을 드러내게 하는 도구이다. 여기에는 모자나 머플러, 장갑, 지팡이, 화장 등 다양한 요소들이 포함된다. 댄디에게 있어 옷을 입는 행위는 하나의 의식이자 욕망의 표출이다. 말년의 바르베 도르비이는 쭈글쭈글해진 손을 가리기 위해 장갑을 꼈고, 희끗희끗 듬성듬성해진 머리를 감추기 위해 가발을 썼으며, 자기 영혼의 반영인 겉모습이 스러져 가는 것을 외면하고자 분칠을 하고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인 채 살았다. 자기고행이 따르지 않는 아름다움은 없다. 그러므로 뚱뚱한 댄디도 없다. 발자크가 그토록 원했지만 ‘실패한 댄디’로 분류되는 이유이다.

둘째, 댄디는 자기 삶을 ‘시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쓴다. 만일 댄디즘이 첫 번째 조건을 충족하는 것에서 멈췄다면, 그것은 스탕달이 지적했듯이 ‘헛된 인간들’의 퇴폐적인 문화로 전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댄디는 자신의 존재가 그저 나르시스트로 남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보완하고 스스로를 형이상학적 존재로 상승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사회의 보편적 가치관에 반순응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신들만의 고유한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다. 외적 아름다움을 탐하는 동시에 우아한 태도를 겸비했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대중의 관심을 끄는 동시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자 했다. 보들레르는 댄디를 ‘자기정화’를 실현하는 사람들로 정의했는데, 이는 ‘예술적 영감의 형태’에 이르기 위해 이처럼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댄디는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 재능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댄디의 변별력은 ‘우월함’이다. 19세기 당시 프렌치 댄디즘을 이끌었던 대부분의 댄디들은 그들의 문학적·예술적 재능을 바탕으로 자신들을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과 구별했다. 그들은 몇몇 이론서에서 댄디즘과 관련된 철학을 개진했고, 소설 속에서는 댄디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미적 삶을 대신 살게 했다. 완전한 댄디가 되고자 하는 현실 속에서의 욕망을 펜을 통해 실현한 셈인데, 댄디즘은 그들의 저서 덕분에 하나의 현상에서 학문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바르베 도르비이와 보들레르의 글은 댄디즘을 이해하는 데 있어 지금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이론적 배경이 되고 있다.

넷째, 댄디는 정신적 귀족주의를 지향한다. 댄디즘은 신분사회가 무너진 19세기 부르주아의 일률적인 문화에 대한 반동으로 발현되었다. 댄디가 보여준 취향의 일치에 대한 저항은 그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 본래 귀족주의는 지배와 피지배라는 계급의 구도 속에서 발생한 역사적 부산물로 소수의 선택된 특권층만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지배자나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댄디는 이런 고전적인 엘리티시즘과는 다른, 말하자면 외적 변별성을 강조하면서 이념과 정신의 결합을 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귀족주의를 추구한다. 전통적인 귀족주의가 대부분의 사회구성원이 갖지 못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에 집착한다면, 댄디가 꿈꾸는 정신적 귀족주의는 ‘우아함’을 제외한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한다. 댄디는, 오스카 와일드의 표현에 따르자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귀족예술 속의 거장”이며, 보들레르의 표현에 따르자면, “생각하고, 느끼고,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생각 외에 아무 것도 없는” 존재이다.

결론적으로 21세기 댄디가 되기 위해서는 19세기에서와 마찬가지로 날씬한 몸매뿐 아니라 우아한 복장, 냉담한 태도, 미학적 자기통제와 더불어 지적 재능, 취향의 고유함, 스스로를 조각하듯 예술품을 만들어 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니 댄디가 되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 주위에 있는 그토록 많은 댄디들 역시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두 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국민MC’ 유재석은 댄디일까?

그래도 댄디즘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을 예로 들어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도 같다. 아주 잘생긴 꽃미남은 아니지만, 날씬하고, 옷 잘 입고, 재능 있고, 대중과 매우 가깝지만 소셜 네트워크로는 만나지지 않는 유재석은 어떨까? 그를 댄디라고 말할 수 있을까? 19세기 댄디의 조건을 그대로 21세기 인물에게 대입하는 것은 여전히 논쟁의 여지를 남기지만, 유재석은 소위 ‘꽃미남’으로 불리는 대다수의 유명인들, 즉 우아한 외모와 재능으로 우리 사회의 특수계층을 차지한 많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댄디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그는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이고, 다소 여성적인 스타일의 옷 입기를 즐기는 듯 보인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라 불릴 만큼의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매우 절제된 사회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가 연예인이라는 특수한 직업의 종사자로서 삶의 많은 부분이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행을 조심하고 사적인 삶을 가능한 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역시 사회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려는 댄디와 괘를 같이 한다. 그는 그 흔한 SNS조차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유명인들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더 많이 공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자신과 자신의 삶을 더 많이 미화하는 것과는 상충되는 일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댄다면 우리의 ‘국민MC’가 댄디로 추앙받기 어려운 지점도 여러 곳 눈에 띤다. 예를 들어 그의 댄디스러움에는 ‘미적으로 만들어진 자아’라는 중심축이 견고하지 못하고, 무심하고 지루하며 냉정해야 하는 ‘닐 미라리’의 댄디적 태도가 결여되어 있다. 19세기 댄디즘은 귀족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과정 중에 발생했기 때문에 댄디 역시 혼란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부르주아지의 천편일률적인 유행에 저항하고자 했지만 아름다워지기 위해 물질의 힘에 기대는 부조리함을 보였고, 때로는 무절제한 취향에 빠지기도 했다. 자신들이 속한 사회의 흐름을 거스르고 싶어 하면서도 대중들의 시선에서 완전히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댄디는 실상 매우 복잡한 존재였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유재석은 댄디가 되기에는 너무나 선명하다. 지나치게 밝고 순응적이다.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악센트가 거의 없는 프랑스어를 섞어 느린 톤으로 말을 하던, 적당히 지적이면서도 회의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던 오스카 와일드 같은 댄디들과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팬심이든 그렇지 않든 이 사회 구성원들 중 그래도 댄디의 원형에 가까운 사람이 있다면 나는 유재석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러 필요충분조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적인 우아함과 자신의 삶을 미학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 그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21세기 댄디즘의 사회 · 문화적 역할

오늘날 댄디즘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여전히 우리 시대를 이해하기에 매우 유효한 ‘현대적’ 현상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앙리 메쇼닉(Henri Meschonnic)은 현대성을 “끊임없이 새로 시작하는”, “그리하여 끊임없이 탄생하는 상태가 되는”, “투쟁”으로 정의했다. 따라서 댄디즘의 현대성은 현재와 과거의 대립이 아니라 아도르노(Theodor Ludwig Wiesengrund Adorno)가 주장했던 것처럼 “예술의 발전에 있어 의도의 부재를 향해 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19세기 댄디들이 부재한다고 믿었던 의도는 특화된 삶의 양식, 즉 ‘미를 위한 미’의 양식이었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시성을 가지고 고려될 만하다.

21세기는 댄디가 차고 넘치지만 댄디를 찾을 수 없는 시대이다. 비문에 속할 법한 이 문장이 이 시대의 귀족주의를 대변한다는 것이 참으로 슬프다. 남들과 구별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어찌 보면 인간의 본능과도 같다. 그 방식이 어떤 이들에게는 문화적으로, 또 어떤 이들에게는 예술적으로, 다른 이들에게는 정치적으로, 가장 단순하게는 외양을 통해 표출된다. 그러므로 의복과 치장을 통해 스스로를 대부분의 사람들과 구별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별에 돈과 정성을 쏟았다고 해서 댄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댄디 연구가 중 한 명인 에밀리엥 카라쉬(Émilien Carrassus)가 보들레르를 인용하여 주장한 것처럼, 댄디즘은 오히려 “저속함과 싸워 그것을 무너뜨린 뒤 일종의 새로운 귀족주의를 세우는” 계획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화려하고 아름답기만 할 뿐인 ‘댄디스러움’에는 태초부터 있어 왔던 엘리트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엘리트의식이 없다면, 소위 그 ‘댄디’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리고 아무리 우아해도, 또는 아무리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라 해도 그는 ‘진정한’ 댄디가 아니다. 아니, 그는 댄디가 아니다.

19세기 댄디들이 보여준 귀족주의는 자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회구성원을 개, 돼지로 만듦으로써 스스로를 높이는 엘리티시즘이 아니다. 자신들만의 ‘카르텔’ 안에서 수백억을 주고받으며 상상할 수 없는 이익을 독점하는 비도덕적 엘리티시즘 역시 아니다. 그것은 정신적 귀족주의라는 용어가 함축하듯 자신의 몸을 예술작품으로 선택하여 ‘내적 투사’에 힘쓰고, 미적 시도를 통해 정신을 고양시킴으로써 자기 존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댄디가 제시하는 아름다움과 엘리트의식을 예술과 철학을 거둬낸 저급한 외형 중심으로 형태로 이해하는 것은 한 시대를 정신적 상승으로 이끈 주체에 대한 모욕이다. 댄디에 대한 우리 시대의 오해는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되었고, 치유할 수 있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서부터이다. 댄디즘의 미학이 올바르게 이해된다면, 어쩌면 우리 사회에 댄디가 ‘차고 넘치지는’ 않아도 때때로 만나질 수 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그리고 그들의 도움으로 물질적 향락에 빠진 우리 사회를 고양시켜 조금은 덜 저속한 사회로 방향을 틀 수 있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시적 향락’을 누리는 사회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조은라 / 홍익대학교 국제언어교육원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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