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호 특강취재: 철학아카데미, <정치철학 고전강좌2: 근대 이후>] 정의(正義)의 철학자,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

서울 통의동에 위치한 철학아카데미는 7월 14일부터 9월 29일까지 매주 목요일 오후 7시에 <정치철학 고전강좌 2: 근대 이후>를 진행한다. 본 특강은 칼 슈미트부터 에티엔 발리바르까지 총 10명의 20세기 주요 정치 철학가들의 사상을 살펴보고,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짚어본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지난 8월 11일 김은희(건국대 교양대학 교수) 강연자가 ‘존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주제로 네 번째 강의를 진행했다.

이날 강연은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의 가장 유명한 저서 『정의론』(1971)에서 시작됐다. 롤스가 정의론 이후 받은 비판을 토대로 새로이 고민해 만든 결과물이 『정치적 자유주의』(1993)이기 때문이다. 김은희 강연자는 『정의론』과 『정치적 자유주의』, 두 권의 책을 동시 상영하듯 풀어내며 롤스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롤스의 정의론은 많은 이들을 감화시키며 20세기 미국 철학계의 주류를 이루었다. 서구 민주주의 가치를 바탕으로 당시 미국사회에서 정의를 찾고자 했던 그의 사상은 여러 면에서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시사점을 남긴다.

▲김은희 강연자가 롤스의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은희 강연자가 롤스의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롤스의 정의의 두 원칙

롤스는『정의론』전반에 걸쳐 자신의 정의론을 상세화하며 정의의 최종 원칙을 정립한다. 제1원칙을 이끌어내는 기본 생각은 “정치적인 권리와 의무 할당에 있어서 완전히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롤스의 정의는 공리주의자의 것과는 다르다. 옳은 것을 좋은 것과 구분한 롤스는 정의를 사회 전체의 공리보다 우위에 있는 사회윤리로 본다. 롤스에게 정의는 사회경제는 성장하지만 자신은 권리조차 찾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권리와 의무의 분배에 관한 것이었다. 또한 정의롭지 못한 이유를 사회구조에서 찾음으로써 개인적 요인을 따지는 개인 윤리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

롤스는 정의에 대하여 정의(定義) 내리지 않는다. 아무도 정의를 모른다는 가정 하에 합의의 절차가 공정하다면, 그 결과를 정의로운 것으로 받아들이자는 순수절차적 정의관을 제안한다. 이성적이고 상호무관심한 합의당사자들은 사회운영원리를 논하는 자연상태와 유사한 원초적 입장에 서게 된다. 누구도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계층, 지능, 가치관, 심지어 심리적 성향까지도 알지 못하도록 ‘무지의 베일’을 쓴다. 살아가는 데 장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지식들에 베일을 씌우고, 수요공급이론과 같은 일반적 지식과 선택할 사회가 천국도 지옥도 아닌 정의의 여건 하에 놓여 있다는 사실만을 알도록 남겨두는 것이다. 이는 철학자의 정의(定義)보다 공정한 절차에 대한 이견이 적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무지의 베일을 쓴 합의당사자들은 최대수혜자와 최소수혜자의 몫이 10:1인 A사회와 5:3인 B사회 중 어느 사회를 선택할 것인가? 롤스는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B를 선택할 것이라고 감히 선언한다. 자신이 처할 사회를 선택하는 중요한 선택에서는 최소극대화 규칙에 따라 최악의 결과가 가장 우월한 것을 고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최소수혜자 몫을 가장 높게 하여 그들이 겪게 될 경제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제2원칙을 이끌어낸다.

 

정의론에 대한 의문과 롤스의 입장 변화

한 수강생은 왜 롤스가 더 완전한 평등을 추구하지 않는지 질문했다. 이에 강연자는 롤스가 사회제도의 가장 상위 가치를 정의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평등이란 가치 자체가 바람직하다기보다 정의로운 평등을 가치있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완전한 평등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고, 때로는 평등이란 이름 아래 효율성이나 이윤과 같은 가치를 훼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의로운 효율성, 정의로운 이윤 등으로 정당화 될 수 있다면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것이다.

그간 학계에서는 롤스의 방법론이 비중립적이라는 공동체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판이 있었다. 가치관을 배제한다는 무지의 베일에는 이미 합리성이라는 개인주의적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원초적 입장에는 칸트주의가 깔려 있어 실존적인 특수 상황이나 경험보다 그것을 추상화하는 이성을 중시한다고 주장한다. 원초적 입장에서 ‘나’를 추상화하는 데 정의에 관한 실존적인 고민이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샌델은 역사 속 나를 보아야 선택할 정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며 “서사적 인간”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에 롤스는 자신의 정의론이 중립적이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는 서구 민주사회 전통과 가치들에 비추어 볼 때 가장 알맞은 정의를 모색하는 것이 자신의 과제임을 밝혔다.

 

정치적 자유주의의 시작

롤스는 자신의 정의론이 다양한 가치관의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 구심점이 될 정의관으로서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의로운 사회에서 정의로운 행동을 하면 행복하다는 도덕 심리학만으로는 구성원들에게 구속력을 주지 못하며 사람들이 언제든 정의롭지 않은 상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롤스는 ‘정치적’인 사유를 시작한다.

자유주의의 범위를 정치 영역으로 한정하는 것이 “정치적 자유주의”다. 다양한 종교·철학을 가진, 그러면서도 합당한 사고를 가진 사회구성원들이 살아가는 합당한 다원주의 현실에 수용되기 위해서 정의관은 최소한만을 합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롤스의 “정치적 정의관”을 강연자는 ‘겸손한 정의관’이라고 소개했다. 정의관이 시민적 평등, 시장의 존재와 같은 사회 기본구조의 합의만을 담당하고, 그 외에 것들은 개인의 선택에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롤스는 우주관부터 인생관까지 모든 것을 다루는 포괄적 교리의 정의관을 경계하고, 기본구조만을 합의 대상으로 두어 공존을 꾀했다.

롤스는 정치적 정의관은 정치적 문제만을 다루며, 철학적, 종교적 입장에 근거를 두지 않는다는 회피전략을 사용한다. 대신 롤스는 철학의 빈 공간을 자유, 평등과 같은 민주사회 정치문화의 가치들로 채운다. 다양한 합당한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정치적 정의관에 합의한 상태를 “중첩적 합의”라 한다. 이 합의는 우연한 잠정협정이 아닌 각자의 교리에서 찾은 정의의 구심점이다. 합의한 이들은 정치적 정의관의 정당화 근거를 스스로에게서 찾았기에 충성심을 가지고 정의를 도덕적으로 내면화한다. 이렇게 롤스는 정당화 근거를 제시하기를 회피함으로써 오히려 합의당사자들에게 공적 정당화를 얻어낼 수 있다.

 

롤스의 한계와 믿음

중첩적 합의를 받은 정치적 정의관은 공적이성의 지위를 가진다. 공적 사안에 한정된 이성으로, 오늘날 사법판단자들이 포괄적 교리를 개입시키지 않고 판단할 때 사용하는 사법이성과 유사하다. 샌델은 미국 남북전쟁 시기의 링컨과 현대의 임신중절 찬반논쟁 예로 공적이성이 정치사안에 대한 해결능력이 없음을 비판한다. 링컨은 흑인노예해방을 위해 대중들에게 “하나님의 자식이고, 똑같은 형제다”라는 기독교 정신, 즉 포괄적 교리에 호소하여 시민평등이라는 정치적 발전을 이끌어냈다. 또한 현대 미국의 임신중절 찬반 여부로 극심한 국론분열 상태인데, 이때 공적이성은 기준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이에 롤스는 공적이성 사용만을 강조하던 배제적 공적이성관에서 수용적 공적이성관으로 입장을 바꾸게 된다. 사회상황에 따라 공적이성과 함께 포괄적 교리가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링컨의 예에서와 같이 질서정연하지 않은 사회는 정치적 정의관에 있어 극심한 분열 상태이기에 공적이성과 추구하는 바가 같은 포괄적 교리가 정치 토론에 좋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강연자는 롤스의 한계 몇 가지를 지적했다. 극심한 분열 상태를 명확히 할 수 없다는 점과 포괄적 교리와 공적이성의 일치 여부는 당시에는 알 수 없고 후대에서만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강연에서 다룬 롤스의 사상적 흐름을 통해 그의 사상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고민하는 롤스를 통해 그의 사유의 기반을 엿볼 수는 있다. 롤스는 가치판단의 주체가 개인이라고 생각한 개인주의자였다. 공동체의 역사 속에서 답을 찾자는 말에 롤스는 공동체의 권위마저도 스스로가 판단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인다. 롤스가 남긴 것은 창의적이고 현실적인 철학만이 아니다. 중요한 선택 앞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만을 두고 생각하는 자세, 판단하는 인간 주체에 대한 믿음. 옳고 그름이 흐릿한 혼란한 사회에서 새겨볼 만한 가치가 아닐까.

지여정 | ceravi@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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