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호 영화비평: <부산행>(2016)] 부산행 열차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mov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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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연상호, 2016)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동시대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 사회가 점점 계층화되고 경쟁이 심화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표현한 영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과연 그것을 제대로 구현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많은 이들이 언급한 것처럼 <부산행>이 가지고 있는 재난의 풍경은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 이후의 현실을 반영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런 식의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영화 곳곳에 배치되어 있긴 하다. 그런데 이 요소들은 영화 내러티브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라기보다 표층적인 차원에서 움직이고 있어 사회적인 조건과 쉽게 결합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부산행>을 대사회적 의미가 있는 영화라고 말하는 작업은 영화 그 자체의 내적 완결구조보다 영화가 풍기는 분위기에 편승한 것처럼 보인다. <부산행>은 사회 비판적인 요소보다 그것과 정반대의 것들이 숨어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부산행>의 좀비는 발생 원인이 불분명하다. 기껏해야 원인은 펀드매니저이자 주인공인 석우(공유)가 주식에 관여한 회사의 사고 정도로 묘사된다. 이것을 통해 <부산행>은 기업의 탐욕과 거기에 기생한 석우의 비윤리적인 모습이 이 사태의 원인처럼 은밀히 발화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더는 나아가지도 않고 명확히 보여주지도 않는다. 게다가 석우와 작전주를 관리했던 그의 부하 직원만이 좀비가 자신들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짐작할 뿐, 확신이나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는다. 또한 좀비 때문에 발생한 재난의 피해자들을 도와주는 정부의 모습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일찌감치 사태를 폭도들의 소행이라고 규정한 다음 방송을 통해 제자리를 지키라고 선언해 버린다. 이처럼 <부산행>은 구체적이고 인과적인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대신 열차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좀비와의 사투와 다양한 인간군상을 배치한다. 따라서 <부산행>에서 유심히 봐야 할 지점은 좀비가 아니라 재난을 맞이한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이다. 그것을 통해 영화는 초반에 보여주었던 석우의 이기심과 좀비를 탄생시켰을지 모를행위를 슬그머니 지워가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부산행>이 가장 공들이는 인물은 두말할 나위 없이 석우이다. 영화 초반 그는 냉정한 기득권의 일원이며, 딸 수안(김수안)에게 어린이날 줬던 선물과 똑같은 것을 생일 선물로 다시 주는 무신경한 가장이다. 그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모습은 대전역 장면에서 정점에 이른다. 당국은 좀비가 점령한 부산행 KTX를 대전역에 정차시킨 다음 군대를 동원해 사태를 진압할 계획을 세운다. 불안의 끈을 놓지 못한 석우는 대전의 지인에게 종목 추천을 약속하며 탈출 경로를 확보한다. 수안이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석우는 그런 수안이를 말리며 “신경 쓰지 마, 그냥 각자 알아서 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정보에 접근할 힘을 가졌으며 다른 사람들의 안전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이기적인 인물이다.

그런 석우는 재난을 통해 아버지로서 한층 성장하게 된다. 대전역에서 지인이 알려준 샛길로 빠져나가려 하지만 이미 그곳도 좀비들이 창궐한 상태이다. 석우는 좀비를 피하다가 수안이와 헤어지게 되고, 위험에 빠진 수안이를 같은 기차의 승객인 상화(마동석)와 만삭인 그의 아내 성경(정유미)이 구출하게 된다. 생존자들은 우여곡절 끝에 부산행 열차에 다시 올라타게 되지만 일행은 서로 분리되어 각각 좀비들의 위협에 노출된 상태이다. 석우는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다른 이들과의 연대감을 배우고 위험에 빠진 딸을 구하기 위해 위험에 당당히 맞서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아버지로서 성장하는 석우의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수송회사의 중역인 용석(김의성)을 적극적으로 배치한다. 그는 석우처럼 자신밖에 모르고 어느 정도의 지위와 부를 가지고 있는 인물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용석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부산행>은 서로 비슷해 보이는 두 인물을 상반된 방식으로 묘사함으로써 좀비를 뒤로 밀어내고 아버지-되기의 여정을 부각하기 시작한다.

기만과 위장의 서사

석우의 아버지-되기의 여정은 상화의 의미가 더해지면서 한층 더 강화된다. 하드 바디를 가진 상화는 만삭의 아내인 성경을 구하기 위해 타의 추종을 불허한 능력을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비교적 선한 심성을 가진 인물인 상화 역시 아버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상화와 성경이 수안을 처음 만났던 장면을 떠올려 보자. 좀비의 습격으로 놀란 수안을 달래주기 위해 성경은 다정하게 말을 거는데, 이때 수안이 만삭인 성경의 배를 신기하게 바라보자 옆에 있던 상화는 성경의 배를 가리키며 “아저씨가 만든 거야”라고 말을 한다. 짧게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이것을 언급한 이유는 아버지로서 상화의 모습을 순간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여성을 임신의 도구처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화는 석우와 함께 좀비와 싸우며 기차 화장실에 고립된 여자들을 구출한다. 그곳엔 성경과 수안, 또 다른 승객 중 하나인 할머니가 고립되어 있었는데, 임산부, 아이, 노인이라는 약자의 표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석우 일행은 열차 마지막 차량에 머무는 생존자들과 합류하려 하지만 좀비의 수가 만만치 않다. 결국 상화는 좀비에 당하고 마는데 그는 마지막 순간에 석우에게 성경과 태어날 아이를 부탁한다. 이처럼 <부산행>은 가족의 가치, 그중에서도 아버지로서 모습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부족했는지 영화는 서사 이전의 사건까지 불러오면서 아버지로서 석우의 모습을 정점에 올려놓는다.

결국 좀비에게 물려 죽게 된 석우는 자신이 딸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빠지게 된다. 이때 카메라는 갑작스럽게 그의 기억 하나를 불러온다. 그것은 바로 지금 막 태어난 수안이를 안고 있는 석우의 모습인데, 이 장면은 하이키 조명과 고속촬영, 배경음악으로 꾸며져 있다. 좀비가 되는 순간에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이 장면은 서사의 논리를 뛰어넘는 잉여의 쇼트이자 스타일로 점철된 과잉의 쇼트이다. 또한, 수안이가 태어나 기뻐했던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는, 즉 아버지가 된 자신의 모습에 감격하는 자기만족적인 장면이다. 이 과잉의 쇼트이자 잉여의 쇼트는 영화 어디에도 달라붙지 않고 오로지 관객이 석우의 죽음 그 자체를 숭고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부산행>의 서사가 부성애로 흘러가는 사이 영화가 표방했던 좀비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못하고 사라지고 만다. 결국, 좀비는 석우의 아버지-되기를 가속하는 촉매제 같은 기능만 수행할 뿐이다. 다른 등장인물도 마찬가지다. 악의적인 용석은 석우의 상반된 거울상이며 하드 바디의 가부장인 상화는 이상적인 석우의 모습이다. 냉소적인 할머니와 순박한 그녀의 언니, 이성에 관심 많던 학생들,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줄 알았던 노숙자 등은 모두 적당한 때에 영화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을 소비하고 살아남은 이들은 시종일관 보호 대상으로 호명되었던 만삭의 성경과 수안이다.

아버지로서 석우와 상화가 보호하고자 했던 만삭의 성경과 수안은 마침내 그들이 가고자 했던 부산에 무사히 도착하게 된다. 전국 유일의 좀비 청정지역인 부산은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영화 내내 존재감이 없었던 국가 시스템은 성경과 수안이 부산에 무사히 안착하는 것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럼으로써 무능력의 절정을 보여주었던 시스템은 아버지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이어받는다. 여기가 바로 사회 비판적이라는 <부산행>의 해석에 위화감을 느끼게 되는 지점이다. 지키고 보호해야 할 사람은 사회적 약자의 표상을 끌어와 수동적인 모습이면서 그들을 보호하는 주체는 비도덕적인 측면이 있어도 사면과 복권으로 정당화한다. 보호하는 주체가 사라지면 시스템은, 설령 그것이 무책임하거나 재난의 상황에도 아무런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그 자리를 자연스럽게 이어받는다. 이쯤 되면 영화가 표층에 그렸던 지옥도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구조의 부재와 각자도생하는 사회상은 관객을 동원하기 위한 하나의 기만술이며 가부장의 재정립을 위한 퇴행적 위장술이다.

백 태 현 /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강사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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