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호 인터뷰: 김종영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이 땅에서 학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 유학파 엘리트의 신화는 여전히 견고하다. 현대의 신화란 본디 그 근원을 감춤으로써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인 양 스스로를 자랑스레 전시한다. 김종영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작년에 펴낸『지배받는 지배자』에서 이러한 한국 학벌사회의 폐쇄성과 허구성을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와의 위계 속에서 정치하게 분석해냄으로써 학계와 대중 모두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이에 본보는 지난 5월 26일(목), 김종영 교수를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눠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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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상과 만나는 창

 

Q.『 지배받는 지배자-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를 집필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저도 대학 다닐 때 대다수의 교수님들이 미국 유학파였습니다. 물론 학문적으로 뛰어나신 분들도 계셨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계셨죠. 그분들이 어떻게 대학에서 그렇게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있느냐는 누구나 한번쯤 갖게 되는 의문일 겁니다. 한편으로는 매우 상식적인 질문이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보기보다 간단하지가 않아요. 그래서 심층적으로 분석을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죠.

제가 전공이 지식사회학과 과학기술사회학입니다. 글로벌 지식 위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미국 유학 지식인의 트랜스내셔널 궤적을 추적함으로써 근접해보려 했죠. 당시로서는 이런 종단연구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동일인을 추적해서 그 사회적 궤도를 그려보는 것인데 쉽지도 않을 뿐더러 한국에서는 선례도 드물었죠. 미국에는 그래도 종단연구가 꽤 있는 편입니다. Jay MacLeod의 『Ain’t No Makin’ It』이라든가, Annette Lareau의 『Unequal Childhoods』같은 책을 대학원 때 접하면서, 이렇게 접근하면 되겠구나하는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Q. 이 한 권의 책을 내는 데 무려 1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15년간 110명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얻어낸 값진 성과라 생각됩니다. 혹시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지요?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를 해보지 않으면 이게 잘 이해가 안 갈 텐데, 사실 대단한 집념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죠. 연구 초기 단계에서 멈췄었다면 이정도 분석이 결코 안 나왔을 겁니다. 분명히. 학문하는 사람에게는 뭐든 간에 질문이 중요합니다. 질문이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파고들어야 하죠. 물론 중간에 힘든 부분이 많았지만, 미국 유학 경험을 가진 인터뷰이들을 만나면서 굉장히 즐거웠어요. 애플이나 구글 직원들, 한국의 대기업 직장인들, 미국 유수의 대학 교수들을 만날 기회란 사실 흔치 않거든요. 연구가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죠. 고통의 과정이라고만 생각했다면, 잘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한편으로 연구자로서,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넓어지고 깊어지고, 세심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한분 한분의 인터뷰이들이 굉장히 소중했고,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제가 어떻게 이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겠습니까. 그 다양한 인생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것에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연구자로서뿐만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도 굉장히 풍부한 경험과 밀도 있는 지식을 제고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보기,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

 

Q. 미국 유학 지식인들을 ‘지배받는 지배자’로 명명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배받는 지배자’는 부르디외의 계층이론에서 ‘지식인’을 일컫는 말입니다. 부르디외는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층은 자본가와 지식인으로 양분된다고 보죠. 지식인은 지배층에 속하지만 지배층이면서도 자본가 계층의 지배를 받는 모순적인 집단입니다. 저는 이를 약간 비틀어서 미국 유학파 한국 지식인을 일컫는 데에 적용을 했습니다. 이들은 지식인의 글로벌 위계에서 미국 대학 지식인들보다 열등한 위치를 점하지만 한국의 국내 학위자들보다는 우월한 위치를 점하죠. 학문 생산의 글로벌 구조 속에서 미국 지식인과 한국 지식인, 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의 격차 속에서, 그 격차를 이용해 중간에 끼어서 이득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Q.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되는지요?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은 미들맨 소수자(middleman minority) 이론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만 기계적으로 대입시킬 수는 없습니다. 미들맨 소수자 이론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행위와 인종 간의 관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미들맨 소수자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지위 간극’의 중간에 위치해 이 둘 사이의 경제적 활동을 연결하며 이익을 보는 계층을 일컫는 말이죠. 저는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 트랜스내셔널 위치 경쟁, 트랜스내셔널 직업 기회들 사이의 역학 관계 속에서 지식인과 지식 생산의 문제를 짚어내기 위해 비틀어 해석했습니다. 미국 대학과 한국 대학 사이에서 ‘중간에 끼인 존재’로서, 글로벌(미국 또는 서구) 지식 집단과 로컬(한국) 지식 집단의 ‘지식 간극’을 이용해 이득을 취한다는 의미로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죠.

 

Q.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한국 대학의 고질적 병폐를 진단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학의 짧은 역사, 일천한 근대 과학의 전통, 열악한 재정, 학문 후발주자로서의 위치, 영어의 세계적 지배력 등은 한국 대학과 학계를 구조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놓이게 만듭니다. 또한 첨단 연구 시설의 부족, 연구 조직의 비전문화, 소규모의 교수진, 행정 잡무로 인해 학문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업무 체계, 젊고 유망한 학자를 부려먹는 조직문화, 철저하게 실력 검증을 하지 않는 교수 사회 등 조직적 열악함도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입니다. 또 한국 대학 같은 경우는 일극체제라고 그러죠. 하나의 극을 중심으로 학벌체제가 견고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미국도 물론 좋은 대학과 덜 우수한 대학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다원체제입니다. 서로 경쟁구도가 형성돼 있죠. 독점을 하게 되면 우선 효율적이지가 못합니다. 학벌이라는 상징적 지대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될 뿐만 아니라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경쟁문화를 이끌어내지 못합니다. 이러한 구조적, 조직적, 문화적 취약함으로 인해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가 더욱 공고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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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체제로서의 연구중심 대학

 

Q. 연구중심 대학을 위해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근대대학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연구중심 대학의 승리입니다. 새롭고, 가치 있는, 혁신적인 지식을 창출하는 대학이 명성을 얻게 돼 있고, 가치 있는 대학으로 인식됩니다. 물론 굉장히 많은 돈이 듭니다. 작년에 노벨상을 받았던 일본 학자들은 광산에 1,000억 원을 투자해서 실험 장비를 마련했다고 그러죠.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인건비도 지급해야 하고, 교수 숫자도 늘려야 하죠. 학문이라는 건 전문화와 특화입니다. 학문자본의 양과 질을 다 제고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지원, 조직적 지원, 문화적 지원 모두가 필요합니다. 다만 연구중심 대학이라는 말은 상대적인 것이죠. 미국의 연구중심 대학에 비해서는 압도적인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상황에 맞는 정책적 고민과 개선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Q.『지배받는 지배자』의 후속작업으로 정책적 차원의 고민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 대학의 여러 문제점들 중에서도 어떤 게 가장 핵심적인 문제일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그중 우리가 가장 피부로 느끼는 것이 바로 학벌체제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연구중심형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 평준화죠.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라는 건 이미 10여 년 전부터 나온 얘기입니다. 서울대 학부제를 없애고, 대학원 기능만을 남기는 거죠. 그 다음에 모든 신입생들을 한꺼번에 뽑는 겁니다. 구분 없이. 예를 들어서 부산대학이면 한국국립대 부산 캠퍼스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단순히 평준화만 하게 되면 안 됩니다. 서울대 학부제를 없애더라도 공부 좀 잘하고 여유 있는 학생들은 서울로 모일 테고, 사립대로 가겠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지방으로 갈 텐데, 이런 걸 피하기 위해서는 지방의 국립대에 대대적인 투자를 해야 됩니다. 연구중심으로. 이번 프라임 사업 같은 경우 연간 2,000억을 지원한다고 그러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대학의 구조개혁을 위해서는 22조를 투자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이 죽겠다고 말하는 교육에는 투자 안하고 4대강에 투자된 게 22조잖아요. 돈이 있어요. 투자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정책만 마련되면 되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죠. 연구중심 대학을 지방에 세우면, 또 이분법이 생기는 게 아니냐? 물론 그렇다고 해도 지금보다는 독점에서 오는 구조를 훨씬 많이 깨뜨릴 수 있어요. 한국 대학의 문제가 뭐냐하면 특화가 안 돼 있어요. 모두가 서울대 모델로 가요. 무조건. 그런데 다원체제로 간다면 좀더 특화를 시켜서 전문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하버드 영문학과 교수진을 보면, 아이오와대학 출신들이 꽤 있습니다. 아이오와대학은 우리로 치면 시골 구석에 박혀 있는 대학인데 몇 십 년 전부터 창의적인 라이팅 분야에서 미국 내 명성이 대단합니다. 다원적 체제가 되면, 이렇게 각 학교에서 키울 수 있는 전문 분야를 선택적으로 집중 투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전문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죠. 그런 다원체제의 모델을 좀 더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또 이걸 정책적으로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미들맨 지식인 넘어서기

 

Q. 한국 지식인 집단의 폐쇄적이고 냉담한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요즘 뭐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이 핵심적인 말 중의 하나일 텐데, 그렇죠? 모두가 다 바쁘고 개인주의화되어, 불합리한 제도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집단적 노력이 예전보다 힘들어졌다는 건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누군가가 조직을 하고, 개선을 요구해야 되겠죠. 그런데 이런 부분들은 재정적, 법률적 제약 때문에 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좀 더 대학원생들이 목소리를 키워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의 반값등록금 같은 경우 상당히 정부를 압박하면서 꽤 영향을 미쳤습니다. 물론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반값등록금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그 효과라는 건 등록금 동결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죠. 대학원생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서 정치 세력화하는 건 굉장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수들도 대부분은 제자들에 대한,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감을 집단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대학원생들이 좀 더 큰 목소리를 내어준다면, 또 기존의 기성세대들을 깨울 수 있는 정치세력화를 해준다면, 변화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Q.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학문적 배척’의 고난을 헤쳐 나가야 할 대학원생들을 위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책의 결론이 아카데미아 임문다(Academia Immunda)입니다. 학문은 더럽다. 대학원생들은 나이도 어리고, 사회적 경험도 없으니까 대학에 대한 기대수준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럴수록 현실에서 부딪치는 절벽은 너무나 크게 다가오겠죠. ‘학문은 더럽다’라는 말 자체는, 어떤 의미에서는 기대수준을 약간 낮추라는 의미도 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집요하게 추구하라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학문이라는 게 즐거움이 없으면 평생 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여러 제약에도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끝까지 긍정적으로 매진해 나가는 게 학문하는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마지막에 “여기에서 학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적었습니다. 니체한테서 빌려왔어요. 니체가 스위스에서 교수 생활을 했잖아요. 그러다 그만두고 연금 받아 생활하는데, 어느 독일의 누추한 마을을 지나면서 “여기에서 살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해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여기에서 살아왔으니까. 그런 누추한 곳에서도 삶을 긍정하라는 메시지죠. 비록 굉장히 더럽고 열악한 곳이지만, 학문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학문에 대한 열정, 이런 것들이 지속된다면, 자기가 구하고자 하는 해답들을 구할 수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대담·정리 : 이철주 | vertigo1985@khu.ac.kr

사 진 : 김예정 | yjeongkim@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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