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호 문화비평: 여성혐오] 여성혐오의 범죄화와 감정의 정치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혐오’라는 기표를 사회적으로 안착시키면서 다양한 사회적 반응을 낳고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나는 페미니스트다’선언이나 ‘메갈리아’등을 통해 터져 나오던 반-여성혐오 운동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질적인 단절을 겪은 듯 보인다.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들에게 혐오표현을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마음껏 ‘설치고 말하고 떠들자’던 자부심과 발랄함은 일순간 공포와 두려움으로 전환되었다. 여성혐오에 대한 투쟁이 여성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사회구조에 맞선 ‘문화전쟁’이 아니라, 실질적인 살해 위협에 맞선 ‘생존투쟁’으로 전환된 것이다.

▲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글을 적은 포스트잇을 벽에 붙이고 있다. ⓒ www.news1.kr

▲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글을 적은 포스트잇을 벽에 붙이고 있다. ⓒ www.news1.kr

잔혹한 사건 현장이 이내 거대한 추모

현장으로 변모한 현실은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던 공포와 두려움이 얼마나 심원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일상생활에서 24시간 내내 폭력과 추행, 멸시와 관음증적 시선의 위협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응어리진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강남역 추모게시판에 붙은 ‘살女주세요’라는 다섯 글자는 여성들의 절박함 심경과 그들이 공유하는 두려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건 이후 여성들이 겪은 고통과 위협에 대한 고백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간 여성혐오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고민과 공감이 없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통의 경험에 기초하여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고 직접적인 감정적 연대를 구축해가고 있다.

이러한 집단적인 공포와 두려움의 정동은 여성혐오를 둘러싼 일련의 재현과 해석을 통해 특정한 방식으로 의미화되면서, 정치적 논쟁과 사회적 갈등을 낳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강남역 추모현장에서는 여성혐오 담론이 성대결을 조장한다는 사람들과 여성혐오가 범죄의 원인이라는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고, 범죄의 성격규정을 놓고 ‘묻지마 범죄’냐 ‘여성혐오 범죄’냐에 관한 논쟁도 지속되고 있다. 다양한 쟁점의 계열들이 공존하나 논쟁의 구도는 기본적으로 여성혐오를 개인적 일탈행위로 볼 것이냐, 구조화된 사회문화적 현실로 볼 것이냐를 놓고 형성된 듯하다. 이는 단지 경합하는 해석들의 충돌이 아니라 여성혐오 현상의 본질을 억압하고 회피하려는 이데올로기적 충동과 결부되어 있으며, 그러한 시도는 정부와 언론을 비롯한 일부 남성들의 ‘여성혐오의 범죄화’ 프레임으로 전개되고 있다.

여성혐오의 범죄화

여성혐오를 둘러싼 해석적 갈등은 여성혐오 개념 자체가 가진 모호함에서 일부 연유한다. 여성혐오는 때로 개별 남성들이 지닌 여성에 대한 멸시와 비하의 감정을 뜻하기도 하고, 때로 여성착취와 억압의 사회구조 및 제도적 차별 등 거시적인 구조를 가리키기도 한다. 여성운동 진영은 대체로 후자의 관점에서 여성혐오를 사고하나, 그러한 구조적 조건 하에서 여성혐오 발언이나 행태가 발현되기에 둘은 첨예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다만 여성 ‘혐오’라는 개념은 불평등이나 차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문화적 차원까지 포괄하면서, 상호 의례적 실천이나 감정적 수준에서 작동하는 여성(성)에 대한 멸시와 비하, 모욕 등을 사고하게 해준다. 단적으로 남성들은 ‘OO녀’라는 ‘낙인찍기’를 통해 여성들에게 수치심을 안기는 한편, 특정한 속성으로 환원된 정체성을 여성 집단 전체에 투사한다. 이러한 행태가 언론에서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은 여성혐오가 얼마나 지배적인 문화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처럼 구조와 행위주체 사이에 느슨하게 걸쳐져 있는 여성혐오 개념은 ‘강남역 살인사건’이라는 특정한 범죄현상과 결부되면서 불가피하게 첨예한 논쟁을 촉발시켰다. 여성들은 이 사건을 여성혐오라는 구조적 현실의 발현으로 보았지만, 일부 남성들을 비롯한 정부와 언론은 조현병 환자의 일탈적 범죄행위로 규정했다. 둘 중 하나를 원인으로 규정하기 위한 공박이 지속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이 둘의 관점은 서로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범죄의 사회적 속성을 점검할 때에는 개인적 차원을 괄호 치고, 개인의 책임을 물을 때에는 구조적 요인을 괄호 치는 식의 해석적 전환을 통해 두 차원을 얼마든지 동시에 사고할 수 있다. 범죄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나 위계적 문화, 개인적 이력, 범행의 가능성과 조건 등 다양한 요인들의 중층적인 결정에 의해 발생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조에 처해 있다고 해서 모든 개인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우리는 여성혐오를 범행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로 사고하되, 여성혐오적 인식이나 행태를 보인다고 해서 모두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나아가 이는 범죄를 저지른 개인이 사회경제적 곤궁이나 불우한 가족사, 여성에게서 겪은 좌절감 등을 이유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범죄의 구조적 요인들은 사후적인 소급을 통해서만 식별되므로, 우리는 범죄의 원인과 발현에 관해 단순한 인과관계를 설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언론 그리고 대중적 통념은 늘 범죄에 대해 단일하고 선형적인 인과관계를 설정한다. 우리는 범죄에 대해 개인의 행위성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데 익숙하며, 그리하여 ‘범죄화’의 프레임은 중력처럼 끊임없이 논의를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린다. “여성혐오가 죽였다”는 여성들의 주장은 여성혐오가 범죄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번 사건의 배경에 놓인 여성혐오의 구조적 현실에 대한 각성과 대안 마련을 촉구하는 의미일 것이다. 정부는 결국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대책으로‘CCTV 확충, 정신질환자 관리·감독 강화’등을 내놓으면서, 여성혐오 문제를 개별적이고 일탈적인 사건으로 치환시켰다.

감정의 정치와 그 딜레마

여성혐오를 비롯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 지배의 현실은 강력범죄와 같은 이례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에야 비로소 사회문제로 가시화된다. 그러나 범죄화의 프레임을 거치면서 사건 자체가 지닌 강렬한 이미지와 일탈적인 성격이 전경화되고, 그러한 사건을 초래한 구조적 현실에 대한 강조는 계속해서 뒤로 밀려난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 여성들의 공포와 두려움이 더해지면서 사건에 대한 의미화는 일찌감치 ‘공포와 안전’의 문제로 정향되었다.  ‘나는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희생자에 대한 추모, ‘나는 잠재적 가해자입니다’라는 일부 남성들의 성찰, 뻔뻔하게 여성혐오를 인정하지 않는 남성들에 대한 분노 등 감정적이고 도덕적인 분위기가 사건을 휘감고 돌았다. 물론 이러한 정서적 반응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감정적 유대는 의식적인 사회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원천이자 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감정은 단지 순수하고 인간적인 것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세월호 사태를 비롯해 강남역 사건에 대한 추모현장에서 ‘추모행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요구와 곧잘 맞닥뜨리곤 한다. 감정의 순수성과 자생성에 대한 강조가 의식적이고 전략적인 정치성을 배제하는 데 동원되는 것이다.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 귀결된 안전에 대한 요구가 지속적인 사회문화적 변형이 아닌, 정부의 즉각적인 통제와 관리강화로 귀결되기도 한다. 예컨대 오늘날 각국 정부는 테러나 이민자의 위협 등 공포를 사회통제의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시민들은 안전에 대한 열망으로 그러한 통제를 쉽게 받아들이곤 한다. 이러한 사태는 오늘날 공적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감정의 정치’에 내재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견고한 현실의 벽과 공적인 정치의 무력함, 사회적 가치의 탈각과 냉소적인 태도의 지배 앞에서 감정은 인간적인 것을 되살리는 한편, 직접적으로 공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러나 감정의 동원은 자칫 탈-정치화로 귀결되거나, 지배질서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로 활용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감정의 정치가 정치적 항의와 대안적 사회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다는 점을 받아들이되, 그러한 열망이 탈-정치화로 흐르거나 일시적인 분출로 끝날 위협을 경계하면서 꾸준히 정치화해야만 한다.

최철웅 / 계간《문화/과학》편집위원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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