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호 기획: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위험관리책임]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와 국가의 위험관리책임

최근 옥시레킷벤키저 가습기살균제 사망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지난 15년간 이 제품을 사용한 피해자들의 고통이 온세상에 밝혀졌다. 그렇지만 가해 기업과 회사 대표, 관련 연구진은 도의적 책임에 대해선 인정하나 법적 책임은 서로에게 떠넘기며 일명 ‘핑퐁게임’을 벌이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화학물질 오남용으로 인한 인재(人災)다. 국가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이에 본보는 ‘국가는 어떻게 위험관리를 해야 하고, 관련 법안은 무엇이 있는지’등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둘러싼 문제점과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 해결 방안 등을 알아보고자 한다.

▲단순히 옥시제품을 불매하는 것만으로 이번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 kfem.or.kr

▲단순히 옥시제품을 불매하는 것만으로 이번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 kfem.or.kr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개요
2011년 4월 25일 서울의 모 의료기관 중환자실에서 급성호흡부전을 주 증상으로 하는 중증폐렴 임산부 환자의 입원이 증가하면서 질병관리본부에 조사요청이 접수되었다. 당시 특정 인구집단(임산부)에서 급성호흡부전을 초래하는 질환이 유례없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발생하였는데, 환자들의 초기 증상은 대부분 기침이었고, 이후 호흡곤란으로 진행하여 증상의 발생부터 입원까지의 평균 기간은 34일이었다.

2012년 8월 31일 질병관리본부의 조사결과 “가습기살균제가 원인미상의 폐 손상을 일으키는 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는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확실한 인과관계는 증명되지는 않았으나 국민건강보호를 위하여 향후 위해성 조사와 추가 역학조사 등을 통하여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국민들에게 “가습기살균제 사용을 자제토록 권고”를 하고, 제조업체에 대해서는 “가습기살균제의 출시를 자제”해 줄 것을 권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정부에 접수된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자 신청건수는 530명(사망자 143명)이었으며, 그 가운데 정부는 221명(사망자 95명)이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의 손상이 거의 확실하거나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잠재적 피해자가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피해 규모는 그 보다 더 심각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특성과 구제의 곤란성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피해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즉 치사율이 매우 높다는 점, 발병 후 사망에 이르기까지 매우 짧은 ‘아급성 독성사건’이라는 점, 어린이와 산모 등 생물학적 약자 그룹에서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었고 영유아 피해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볼 때 정부는 이미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피해를 인지하였다고 예상할 수 있는 점, 가족단위의 피해가 많았으며 피해 대상이 불특정 다수인으로 모두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1994년부터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여 왔다는 점에서 그 피해 규모는 더 클 수 있다는 점, 세계적으로 생활제품에 의한 화학물질오남용의 첫 번째 피해 사례라는 것 등이다.

제품안전을 위한 국가의 의무
국가는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민의 신체 및 재산권의 보장과 청구권적 기본권의 보장은 물론 국민의 안전 등 질서유지를 위하여 노력해야 하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건강과 재산상의 피해를 예방하여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하여야 한다”(제품안전기본법제1조). 이 목적을 위하여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제품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제품으로 인하여 위해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그 피해를 최소한 줄이기 위한 노력”과 “제품의 생산·조립·가공이나 수입·판매·대여 또는 사용과 관련된 행위를 할 때에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제품안전기본법 제2조). 또 “제품의 제조·설계·제품상의 표시 등의 결함으로 소비자의 생명·신체·재산에 위해를 미치거나,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해당 제품의 사업자에 대하여 수거·파기·수리·교환·환급·개선조치 또는 제조·유통의 금지 기타 필요한 조치를 권고할 수 있다”(제품안전기본법 제10조). 나아가 “사업자가 이 같은 권고에 따르지 않는 경우에는 해당 제품에 대한 수거명령과 직접 해당 제품의 강제수거 등을 할 수 있다”(제품안전기본법 제10조).

국가의 적극적 행정과 재량성의 제한
현대사회에서 제품을 제조·생산하는 기업들이 제조공정에서 다양한 합성화학물질을 첨가하거나 부재료로 사용하여 대량으로 생산·판매·소비하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들은 제품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제품을 제조·판매하는 업자들에게 고도의 주의 의무를 부담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의무를 기업의 자주규제에 맡기는 경우 안전성을확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국가는 위해의 발생 방지를 위한 목적의 적극적인 행정이 요구된다. 특히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합성화학물질이 포함된 제품의 경우에 한번 사고가 발생하면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합성화학물질 제품으로 인한 위해가 의심되는 경우는 물론 개연성이 있는 경우 국가의 재량권은 제한되며 규제권한을 행사해야 할 법률상의 의무만이 주어지게 된다.

국가의 권한행사와 국가배상법과의 관계에서 국가의 권한행사의 여부는 국가의 재량권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으나 ⅰ.국민의 권리침해에 긴박한 위험이 존재하고, ⅱ.국가가 이 같은 위험의 심각성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고, ⅲ.국가가 그 같은 위험회피를 위하여 유효적절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인 때에는 국가의 재량권은 제한된다. 따라서 이 같은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을 때에는 국가배상법상의 위법성이 인정된다. 특히 국가의 권한 불행사가 ⅰ.국민의 생명·신체 건강상 위해 발생의 위험성이 있고, ⅱ.국가가 이 같은 피해의 발생을 알았거나, 알 수 있는 상황에 있었으며, ⅲ.국가가 위험회피를 위한 유효적절한 권한을 행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그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 국가는 그에 따른 책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국가는 적극적으로 피해자 보호를 위해 나서야
국가는 가습기살균제의 흡입독성의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반상품으로 분류하여 관리해 왔다. 나아가 가습기살균제 피해에 대한 역학조사와 독성평가에 대한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았으며, 유통되고 있는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실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2012년 8월 31일 보도자료에서 전체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의 수, 성분 등에 대해서 그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판매와 사용만을 자제해달라는 수준의 대책만을 발표하였다. 나아가 국가는 가습기살균제가 폐질환으로 인한 사망과 간질성 폐렴 등 심각한 폐해의 원인이라는 점을 예지할 수 있었음에도 피해 확대의 방지를 위한 사전적 조치를 강구하지 않았으며, 피해 구제에 있어서도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자 사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만을 유지하였다. 물론 살균제 성분을 공개하지 않고 유럽 등에서 안전성 검사를 충분하게 받았다고 허위로 표시하여 제조·판매한 기업에게 우선적으로 그 책임이 있다고 하겠으나 유해화학물질의 관리주체인 국가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왜냐하면 국가는 유해화학물질이 국민의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파악하여 국민의 건강과 환경상의 위해를 예방하기 위한 시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유해화학물질 관리 목적의 오염도 측정, 조사·연구, 기술의 개발, 전문 인력의 양성, 교육 및 홍보시책 등을 강구하여 유해화학물질의 안전관리에 필요한 행정 및 재정적 지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가습기살균제에 의한 사고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은 국가의 위험관리정책 부재와 가습기 제조회사 및 가습기살균제를 생산·판매한 기업의 과장광고 및 판매전략 등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국가의 초기대응이 미흡하여 손해가 확대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가는 그의 책임을 부정할 수 없으며, 따라서 국가는 적극적으로 피해자 구제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 성 제 / 선문대학교 법학과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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