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호 인터뷰: 전원책 변호사]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의 보수논객

전원책 변호사는 본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법조인, 시인, 경제인,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조선일보 시 부문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자유경제원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요즘 여러 방송사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방송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 보수논객’으로 불리는 전원책 변호사. 본보는 지난 4월 26일 서울 서 초구에 위치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전원책 변호사의 정치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214-1-1

정치평론, 순수한‘독설’

Q. 정치평론가로서 정치평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치를 평론하고 분석하기 위해선 민주주의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합니다. 정치학, 법학, 철학과 같은 기본적인 인문학에 대한 충분한 공부가 돼야 하고, 현실 정치의 구조를 알아야 정치평론이 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는 정치평론가라는 직업 자체가 사실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평론이라는 것은 남을 비평하는 것이죠. 칭찬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한쪽 편에 서서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 비평해야 합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특히 종합 편성 채널에 수많은 평론가들이 나와서 한 마디씩 했지만 정책을 분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잖아요. 그런 것들은 평론을 빙자한 편들기입니다. 정치평론가를 우리나라에서 직업처럼 생각하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에요. 대학 교수가 나와서 정치도 이야기하는 그런 게 아닙니다. 현 재의 상황을 독자적인 시각으로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할 때 그때 평론가의 반열에 올라간다고 봅니다.

 Q. 다양한 학문을 융합한 정치평론가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학문을 한다는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에 빠져야 하고 미쳐야 됩니다. 경제학이든, 정치학이든, 법학이든 하나에 미쳐서 하면 계속 미치게 됩니다. 정치학을 공부하게 되면, 정치학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거든요. 법학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학, 경제학, 법학 등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집단주의, 독재주의를 공부하다가 자연스럽게 아돌프 히틀러를 공부하게 되면, 그 배경에 대한 칼 슈미트를 공부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철학을 공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문이라는 것이 계속 넘어가게 되죠. 끊임이 없습니다. 책 한 권 읽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융합학문이라 하는데, 공부를 하게 되면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융합될 수밖에 없습니다.

Q. 현재 방송에 출연하면서 정치평론을 하고 계신데요. 정치평론에서 주로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지적하시나요?

정치평론을 할 때 대중들은 그런 걸 많이 요구합니다. 새누리당의 김무성은 어떻고,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은 어떻고…. 사실 그런 건 정치평론의 영역이 아닙니다. 예컨대 김무성 대표가 지금까지 내놓은 정책이 있는데, 이것은 어떤 문제가 있고, 그래서 만약 권력을 잡았을 때 이러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런 걸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정치평론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요즘 ‘정치공학평론’을 합니다. ‘Political Engineering’이라고 하죠. 저도 방송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사실 ‘Political Engineering’자체가 정략에 대한 공학적인 분석이죠. 엄밀히 말하면 정치평론의 영역은 아닙니다.

보수논객, 훌륭한 정치를 위한 평론

 Q. ‘단두대’  발언으로 다양한 연령층의 지지를 받으셨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단두대’ 발언은 <썰전>이 시사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인데, 사실 우리나라에는 허물어야 할 장애요소가 너무 많아요. 특히 관료주의, 기득권층의 부패. 그리고 정치인들부터 입신양명하려 하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노력하지, 공동체를 위해서 희생하려는 열정은 전혀 없습니다. 정치인의 요건은 지식, 정의감, 균형감각, 용기, 결단력입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게 용인술이구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막스 베버가 늘 이야기했던 ‘열정’입니다. 헌신하고자 하 는 소명감을 갖고 헌신하려는 열정이란 말입니다. 나의 이익 을 위해서, 나의 출세를 위해서 국회의원을 자원하면, 결국에는 부패합니다. 따라서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 내가 봉사를 해 야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열정을 가질 때 비로소 훌륭한 정치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단두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비판적 용어로 사용하는 것이죠. 소신 있는 발언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말이죠.

Q. 우리나라에선 “제대로 된 보수주의가 없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단순한‘좌’와‘우’의 차이가 아닌 진 정한 보수주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반공만 하면 보수주의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국민의 90%입니다. 그리고 “진보는 ‘평등’이고 보수는 ‘성장’ 이다”라는 생각이 팽배합니다. 사실 보수주의의 미덕이자 핵심은 ‘자유’와 ‘책임’입니다. 미국의 보수주의를 만든 사람은 윌리엄 버클리입니다. 윌리엄 버클리가 원래 정치를 분석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미국에서 보수가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했을 때 미국에 보수라는 걸 꾸준히 알렸습니다. 덕분에 배리 골드워터 같은 사람이 대통령 후보를 나갈 수 있었고, 나중에 레이건이 등장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윌리엄 버클리는 미국의 새로운 보수주의를 정립시킨 정치평론가예요. 근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214-2-1

20대 총선, 이모저모

Q. 이번 총선결과에 대한 전반적인 소감이 궁금합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민주주의의 후퇴’입니다. 공천 과정에서부터 세 당의 선거 전략, 그리고 정책 없는 선거를 보면 그렇지요. 특히 정책들을 보면 다 코미디입니다. 세 당이 공통적으로 모두 포퓰리즘입니다. 세 당 모두 노인 연금을 50만 원 까지 올리겠다고 합니다. 청년수당도 다 주겠다 그러지, 그 돈 이 다 어디서 나옵니까? 1년에 국가 빚이 50조 이상씩 늘어납니다. 그런데도 그런 공약을 한단 말인가요? 국가가 스페인처럼, 그리스처럼 되어야만 정신을 차릴까요. 그걸 알아야 할 젊은이들이 모르니까 황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소한 5~60대 는 몰랐다 치더라도 2~30대는 그동안 접할 기회가 많았으니 알아야죠.

Q. 이번 총선에서 몇몇 지역에서는 지역구도가 허물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서울 강남, 대구, 순천 등에선 많은 이들의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는데요. 이번 선거는 지역구도에 있어 어떤 의미였을까요?

제가 어릴 때에는 ‘여촌야도’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1971년 선거에서 김대중과 박정희가 맞붙었을 때인데요.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는 박정희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농촌에서는 박정희를 지지했죠. 그래서 ‘여촌야도’라고 불렀습니다. 그 당시 도시는 깨어있었지요. 박정희의 공로도 알고 있었지만, 반면 군사 독재를 하는 것이 얼마나 나쁜 것인가에 대한 것도 물론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따라서 군사 독재에 대한 어떤 반발심이 있었습니다. 사실 지역주의라는 것은 정치인들이 만들었어요. 근데 이번에 지역구도가 일부 허물어지는 모양새를 보였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영남에서 낙동강 벨트가 무너진 것을 지역주의가 완전히 허물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영남과 호남 에서 각각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패배한 것은 반(反)여당, 반 (反)야당에 대한 감정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러한 모습들이 지역주의가 허물어지는 첫 단추라고 봅니다. 저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고인이 되신 것을 주된 원인으로 봅니다. 문자 그대로 이제는 이념대결이 되어 버린 겁 니다. “왜 우리는 야당을 지지해야 하지? 왜 우리는 새누리당을 지지하지?”하는 어떤 자각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고 생각합니다.

투표, 소심하지만‘소신’의 표명

Q. 젊은 세대와 고령 세대의 정치성향을 미루어 볼 때, 각각 야당과 여당을 지지하는 구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의 야당 선호현상은 단순히 현 고령 세대에 대한 반발성일까 조금은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나이가 들면 보수화되고 젊은 세대가 진보적인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건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젊은 나이 때에는 누구나 다 휴머니즘을 갖 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보주의를 휴머니즘과 결합합니다. 하지만 보수주의는 상식과 전통을 존중하기 때문에 휴머니즘보다 좀 더 냉정합니다. 차가운 머리를 더 좋아하죠. 선거는 사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에선 세대 간의 대결인데, 우리도 지금 세대 간의 대결이 시작됐습니다. 근데 우리는 세대 간의 대결만 하면 좋은데, 그게 아니더란 말이죠. 분위기에 편승된 세대 간의 대결구도입니다. 결과적으로 지역주의와 세대 대결의 결합인 셈입니다.

Q. 청년층의 투표율이 점차 높아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좀 더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투표 당시에만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 외에는 무관심과 무기력이 팽배합니다. 투표 이외의 민주주의에 대한 방안이 있을까요?

민주주의는 투표율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최선도 없고 차선도 없으면 최악을 버리고 차악이라도 선택하기를 바라죠. 사실 듣기 좋은 이야기이긴 하나, 성숙한 민주주의가 된다면 ‘기권’으로서도 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아직까지 역사가 너무 짧습니다. 물론 70년 가까이 되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선거날 투표소에 가서 투표지 상에 제시된 선택지에 기표하는 것만으로도 자기가 주권을 다 행사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TV에 나오는 정치 관련 뉴스를 보는 것으로 자기는 충분히 주권을 행사했다고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해하려면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남에 대한 배려를 할 수 있는 시민의식이 커야 합니다. 그런데 그걸 단순히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어릴 때부터 교육을 하고 공동체를 위한 배려를 체득해야 합니다.

Q. 대학원생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제가 가진 소신이나 목소리, 스타일이 저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진 않습니다. 제 자신만의 고집과 소신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력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청년 시절을 지나고 있는 대학원생들, 대학생들은 일단 자기 실력을 쌓아 야합니다. 실력을 쌓아야만 판단력이 생기고, 자신의 잣대와 기준이 생기는겁니다. 그래야 그 다음에 보수든 진보든 이야기를 할 수 있죠. 낭중지추(囊中之錐). ‘호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사자성어입니다. 경희대 대학원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사자성어입니 다. 아무리 겸손하고 아무리 감추고 싶어도 실력은 반드시 뚫고 나오게 되어 있어요. 저는 법조인이지만,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도 되고, 한국문학 시부문 신인상도 받아봤습니다. 그러고도 저는 문단에 제 인맥이 없어요. 법조계에도 전 단 한 번이라도 경희대 출신이라고 덕 본 적이 없습니다. 근데 어디 가더라도 제가 무시당하지는 않잖아요. 제 평생 아직까지 넋 놓고 잠을 자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도 마찬가지고요. 기본적으로 제일 필요한 것은 확실한 자기 실력입니다. 단순한 책임감으로는 안 됩니다. 책을 읽으면 제대로 읽어야 하고, 자기 스펙을 쌓기 위한 공부로는 도저히 안 되는 세상이에요. 지금부터라도 ‘낭중지추’가 되기 위해선 노력해야 합니다.

대담·정리: 황정환 | delijh@khu.ac.kr
사 진: 송영은 | lovericki@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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