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호 인문학술: 질베르 시몽동] 시몽동의 철학 읽기

시몽동은 최근에 발굴되기 시작한 철학자이지만 매우 독창적이며 현대적인 사유를 전개하는 철학자라는 데 이견이 없다. 시몽동은 생성철학의 입장에서 존재의 문제에 답하고자 하는 자신의 고유한 형이상학적 입장에서 시작하여‘개체화’라는 독창적인 문제틀을 가지고 물질과 생명의 문제에 접근하고, 기술의 탄생에 대한 반성을 경유하여, 다시 인간과 정신과 사회의 발생과 변화라는 문제를 고찰한다. 이에 본보에서는 시몽동이 누구이고,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어떠한 사상을 전개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시몽동의 철학 읽기

 시몽동 사상의 등장과 작품의 형성과정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 1924~1989)? 현대 프랑스철학자? 아마도 위키피디아와 같은 짤막한 소개 글에는 그의 이름이 있을지 몰라도 ‘현대프랑스철학’을 다루는 책에서 그의 이름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시몽동은 일찍이 1958년에 기술철학 분야에서 중요한 책을 출판하고 어느 정도 자신의 이름을 알린 바 있다. 하지만 이 시기가 어떤 시기인가? 레비 스트로스의 인류학을 시작으로 하여 라깡의 정신분석학, 곧이어 푸꼬의 고고학과 계보학에 이르기까지 구조주의 인간과학 방법론을 통한 새로운 사유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시기 아니던가? 자연과학으로부터 시작하여 기술과 공학에 대한 전문적 고찰을 두루 섭렵하는 것으로 보이는 시몽동철학의 전모가 드러나기에 이 시기는 너무도 인간적인 문제에 몰두해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는 인간의 해체에 몰두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는 너무도 인간적인 관심의 이면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시몽동은 기술철학에 대한 저작 외에 1964년에 『개체와 그 물리생물학적 생성』이라는 책을 출판한 이래 생전에 어떤 책도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시몽동의 사상은 그가 활동하던 20세기 후반기 내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있었다. 물론 프랑스의 철학계와 지식인들 사이에서 시몽동 사상의 매우 독창적인관점이 회자된 것은 사실이다. 특히 1966년 들뢰즈가 위 책에 대해 썼던 유려한 서평 이래 시몽동은 일부의 철학자들에 의해 간헐적으로 언급되고는 했지만 이 경향이 그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과 연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14-04-1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 1924~1989) ⓒiphilo.fr

지금도 어떤 계기로부터인지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시몽동의 철학은 갑작스럽게 주목받기 시작한다. 1990년대에 기존의 학자들 중심으로‘시몽동의 개체화 이론’에 관해 두어 번의 콜로키움이 있었고 2000년대부터는 주로 젊은 학자들 중심으로 몇 개의 그룹이 시몽동의 연구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들은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의 흐름 이후에 또 다른 사유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숨은 보석을 발견한 것은 아닐까. 물론 거기에는 시몽동이 남긴 막대한 양의 미출간 원고가 빛을 보기 시작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 강의록 형태로 남겨진 것인데 최근 10여 년간 계속 출판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몽동은 1958년 국가박사학위 논문으로서 매우 두터운 양의 「형태와 정보 개념으로 본 개체화」를, 부논문으로「기술적 대상들의 존재양식에 대하여」를 제출했다. 후자는 그 해에 바로 출판되어 기술철학자로서 시몽동에게 어느 정도의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시몽동 사상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전자는 상당부분이 누락된 채로 앞에서 말한 것처럼 1964년에 출판되어 그 진면모를 알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으며 너무 깊게 들어간 자연과학적 고찰로 인해 당시 인문적 지식인들에게 접근이 어려웠으리라 짐작된다.

시몽동은 1924년 10월 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도시 생떼띠엔느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1989년 7월 빠리 교외의 빨레조에서 꽤 이른 나이에 건강악화로 사망하였다. 시몽동의 부친은 아들의 탁월한 성적을 보고 프랑스의 이공계 명문대학인 에꼴 뽈리떼끄닉에 입학하기를 원했지만 그는 부친의 바람과는 반대로 문과를 선택하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다. 시몽동은 일찍부터 추상적인 주제들만큼이나 삶의 구체적 문제들,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동일한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관심은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들보다는 과학기술적 발명, 산업과 기술, 노동자 문제, 그리고 이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들로 향했다. 그는 재난방지와 안전에 대한 연구 및 산업화에서 나타난 문제들과 농업노동자들의 문제들에 대한 연구를 주도적으로 이끌기도 했다. 또한 그는 여러 직업군의 기술들을 관찰하고 장인들에게 질문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시몽동 철학이 갖는 장점인 구체성과 생산성은 바로 이런 데서 기인하는 듯하다. 대학에서의 수학기간 중에도 철학 외에 물리학, 광물학, 심리학, 심리생리학, 의학 등의 분야에서 수료증이나 학위를 받는 등 매우 다양한 영역의 학문적 수련을 쌓았으며 이러한 결과가 고스란히 그의 작품에 반영된다. 시몽동 저작에 대한 접근의 어려움은 이런 데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몽동은 이와 같은 종합적인 연구를 토대로 국가박사논문에서 새롭고도 강력한 힘을 가진 사유를 선보인다. 사후에 출판된 저작들을 보면 이 최초의 사유를 토대로 다양한 영역에서 – 주로 심리학과 기술철학의 영역 – 더욱 더 정밀하게 전개시킨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그만큼 그의 철학은 최초에 완성된 형태로 제시되었고 차후에 수정을 거치기보다는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시몽동의 스승들 – 아낙시만드로스, 베르그손, 바슐라르, 메를로뽕띠

 

시몽동의 사유는 모든 종류의 안정된 본질이나 실체를 전제하는 철학적 전통, 특히 근대과학 및 근대철학의 전제들을 심층적으로 전복하는 사유이다. 그는 열역학이론과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드 브로이의 파동역학 등 현대의 과학적 성과들을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반영하면서 비평형열역학을 예견하는, 철학적으로 매우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개념틀을 구성하고있다. 서양철학사 속에서 볼 때 시몽동의 사상은 니체, 베르그손, 화이트헤드를 잇는 생성철학의 흐름에 위치한다. 한편 현대 프랑스철학의 흐름에서 그의 직계 조상이라고 할 만한 중요한 철학자들이 있다. 현대 프랑스철학은 사회철학이나 예술철학 등 세부적 분류를 제외하고 형이상학이나 인식론과 같은 더 근본적인 틀에서 볼 때 하나는 베르그손과 시몽동, 들뢰즈로 이어지는 생성철학의 경향, 다른 하나는 바슐라르, 깡길렘, 푸꼬로 이어지는 인식론의 경향으로 말할 수 있다. 사실 시몽동은 이 두 흐름에 동시에 위치해 있다. 그것은 그가 베르그손을 비판하는 대목에서 잘 나타나는데 베르그손이 흐름으로서의 생성을 강조하는 반면 시몽동은 이로부터 존재자를 구성하는 불연속적 계기들을 탐구하기 때문이다. 이 불연속적 계기들은 시몽동에서는 물론 존재론적인 것이지만 바슐라르, 깡길렘 등에서 나타나는 인식의 불연속적 구조와도 관련되어 있다. 이 외에도 시몽동이 직접 자신의 사상적 대부로서 참조하는 이들은 고대 그리스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 프랑스의 현상학자 메를로뽕띠이다.

밀레토스의 아낙시만드로스(B.C. 610~546)는 철학과 과학이 분리되기 이전에 만물의 원리를 학문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가 만물의 근본 원리이자 근본 요소로서 구상한 아페이론(apeiron), 즉 무규정자는 모든 한계와 규정을 넘어서 있는 가능성의 상태에서 스스로 규정됨으로써 만물을 이루어 낸다. 스스로를 규정하는 힘은 어떤 초월적 원인에 의지하지 않는 점에서 내재적이고 대립자들의 공존을 감내하면서 이로부터 생성을 촉발하고 또한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존재자에 내재한다. 시몽동 철학의 핵심 개념인‘전개체적인 것(le préindividuel)’은 아페이론이 가진 무규정성, 양립불가능한 대립자들의 공존, 그리고 생성하는 존재자의 자가구성이라는 모든 특징을 공유한다. 이 전개체적인 가능성의 상태로부터 시몽동은 현대과학의 상전이 개념을 통해 개체의 생성을 설명한다.

두 번째로 시몽동의 사유에서 베르그손은 출발점인 동시에 넘어야 할 산이다. 베르그손에 있어서 생성은 불변의 존재보다 우선하는 것이고 따라서 존재를 파악하는 논리적 사고는 생성을 파악하는 데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유동하는 실재는 동일률과 배중률 같은 논리적 원리들로 적절히 설명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베르그손과 시몽동은 일치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지적을 하는 데 있어서 베르그손은 생명현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반면 시몽동은 전개체적 상태를 보여주는 물리적 힘에 기반을 둔다. 가령 베르그손에 의하면 생명은 끝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개체로서 존재하는지, 종으로서 존재하는지, 하나인지 여럿인지 하는 물음들에 논리적으로 대답하기 쉽지 않다. 한편 시몽동에게서 결정이 되기 전의 무정형용액은 마치 화산활동 시에 흘러나온 마그마처럼 서로 대립하는 힘들이 고도로 농축되어 양립불가능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공존하는 상태이다. 이는 결정의 형성에서 나타나듯이 곧 무언가로 ‘될’ 가능성 자체로서 비록 물질이지만 퍼텐셜에너지의 생성하는 힘을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이런 범례의 선택에서의 차이는 시몽동이 베르그손에서 보이는 생기론적 함축을 거부하고 좀 더 일반화된 존재론을 꿈꾼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로 시몽동은 베르그손의 생성의 연속성이라는 생각을 비판하고 바슐라르의 불연속성 개념에 의지한다. 물론 생성은 연속적이지만 시몽동은 존재자를 존재자로 구성되게끔 하는 불연속적 조건들을 강조하면서 이를 ‘문턱 조건’이라고 부른다. 바슐라르는 양자역학이 보여주는 단절과 불연속성에 영감을 얻어 ‘인식론적 단절’의 개념을 내세운다. 우리의 인식은 연속적이 아니라 단절적으로 진행된다. 감각에 기초한 상식과 과학적 작업 사이 그리고 과학 이론들 가운데서도 뉴튼 물리학과 아인슈타인의 물리학과 같은 거대이론들 사이에는 언제나 어떤 단절이 작동하고 있다. 그의 ‘인식론적 단절’의 개념은 쿤의 ‘과학혁명’의 이론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만 바슐라르는 이러한 단절을 인식론적 차원에서 주장하였다면 시몽동은 이를 더 멀리, 더 깊이 밀고 나아간다. 시몽동은 생성과 존재를 결합하려는 의도와 존재자의 불연속적 구성이라는 존재론적 기획에 양자역학적 불연속성을 참조한다.

마지막으로 메를로뽕띠의 철학은 전개체적인 것을 정신적 개체화에 적용할 때 중요한 영감으로 작용한다. 개체화는 하나의 존재자가 구성되는 과정을 말한다. 시몽동에게 개체화는 전개체적 에너지퍼텐셜이 물리적 현상에서 시작하여 생명을 관통하여 정신적 현상에 이르기까지 존재자가 생성되는 과정이다. 정신의 영역에서 우선 지각은 세계로부터 초연한 반성적 주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고 신체적 도식에 의해 체화되어 실질적 내용을 얻는다. 신체는 대상의 작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의식도 능동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동성과 능동성이 혼합, 교착된 더 원초적인 상태가 있어서 주체로서의 개체를 선행한다. 보는 것과 보이는것, 촉지하는 것과 촉지되는 것 사이의 얽힘, 더 나아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심층적인 교착, 결국 신체와 세계의 교착을 의미하는 이른바 ‘살의 존재론’을 관통하는 영감이 시몽동의 정신적 개체화에서 전개체적인 상태의 구상에 영감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생성과 관계의 존재론 그리고 개체화

 

시몽동은 개체 존재자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와 생성의 혼합”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흐름이라면 개체를 존재자라고 부를 수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만이 실재라고 해도 생성은 환상이 되지만 흐름만이 실재라고 해도 개개의 존재자들의 실재성은 확보할 수 없다. 다만 존재와 생성의 대립을 지양하고 그것들의 혼합을 꿈꾸는 철학이 흔히 빠져들기 쉬운 환상은 실체로서의 존재에 무게 추를 두고 생성을 그것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로부터 벗어나 생성과 존재의 역동적인 상관관계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전개체적 상태는 아낙시만드로스의 무규정자와 열역학적 비평형상태 혹은 ‘준안정상태’를 결합시킨 개념이다. 그것은 에너지퍼텐셜들로 충만하며 완전한 평형에 이르기는커녕 불안정한 긴장들이 양립하고 있는 상태이다. 양립 불가능한 상태들이 양립하기에 곧 폭발할 것 같은 상태. 그렇기 때문에 이는 단일성과 동일성, 배중율이라는 존재자의 논리적 조건을 넘어서는 상태이다.

흐름으로서의 생성에 머물지 않고 이로부터 존재가 구성되는 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 중요한 것이 ‘관계’라는 개념이다. 생성은 존재자를 구성할 때‘관계의 존재론’이 된다. 여기서 관계는 동사적이고 명사적인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우선 존재자를 ‘발생’시키는 과정이다. 전개체적 실재는 자기동일적이지 않기 때문에 개체화는 힘들 간의 관계맺음을 통해 그것들을 양립가능한 관계로 만든다. 다른 한편 그것들은 개체화와 동시에 존재자 안에‘구조적 관계’로서 현전한다. 힘들 간의 이질성 자체는 존속하지만 개체화 속에서 각자의 이질성을 반영한 채로 평형을 찾는다. 이러한 발생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에너지 조건에서 유래한다. 이것은 평형열역학에서 말하는 잠재에너지와 같은 것이 아니라 비평형 열역학에서 ‘소산구조(structure dissipative)’를 가능하게 하는 ‘자유에너지’에 가깝다. 그것은 에너지의 상태를 바꾸어 계를 변형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다.

개체화는 전개체적 상태의 퍼텐셜들을 고갈시키면서 그것들의 양립불가능성을 해소한다. 여기에 특이성 혹은 우발성의작용이 필요하다. 그것은 퍼텐셜들을 작용하게끔 야기하는 내외적 자극이다. 그 결과로 개체라는 상(相, phase)이 탄생한다. 개체는 상으로서만 존재하는 상대적인 실재이다. 그래서 개체화는 물리학의 상전이(transition de phase) 현상에 비유된다. 아니 상전이라는 말은 실제적 생성을 설명하는 데 이용되기 때문에 단지 비유가 아니다. 섭씨 0도 이하에서 과포화된 수용액은 작은 덩어리(씨앗)를 넣으면 얼기 시작한다. 액체상에서 고체상으로 상전이가 일어난다. 과포화 용액의 퍼텐셜은 고갈되면서 긴장은 해소되고 안정된 상태로 된다. 이처럼 전개체적 존재는 개체화 과정에서 자신의 본래 상태를 해소시킨다. 그렇게 해서 개체라는 상들이 출현한다. 상들은 어떤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따라서 생성의 과정은 존재의 무화가 아니다. 존재는 스스로 해소 또는 용해되면서 새로운 상들, 구조화된 상들을 탄생시킨다. 그래서 생성이 곧 존재이며 존재는 자신을 해소함으로써만 생성 속에서 보존된다는 것, 바로 이런 상황을‘생성의 존재론’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개체화의 의미

 

개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철학의 초기부터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철학은 이 질문에 직접 대답하기보다는 우회로를 통해 접근하곤 했다. 모든 종류의 본질주의 철학은 본질에 우선성을 두고 개체들을 그것의 모방이거나 부산물이거나 환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세 말기의 유명론과 개념론의 논쟁도 실재가 본질에 있는가, 개체에 있는가 하는 것이었지 개체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지에 대한 것은 아니다. 시몽동에 의하면 모든 개체화에 공통적인 특징은 세 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다. 우선 개체화는 미시계에서 출발하여 거시계에 도달하기 때문에 크기의 두 급 사이의 소통을 함축한다. 예를 들어 생명적 개체화는 광합성작용을 통해 태양에너지와 분자적 크기라는 양극단의 크기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개체는 자신 안에 미시계에서 거시계에 이르기까지 전우주적 소통을 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개체화과정은 개체화는 전개체적 퍼텐셜을 단번에 모두 써버리는 것은 아니다. 개체는 에너지를 잃은 만큼 안정화되지만 그것을 완전히 고갈시키지는않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운 개체화에 대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즉 존재자는 언제나 생성 도중에 있거나 아니면 생성을 위한 잠재력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개체화는 언제나 개체와 환경을 낳는다. 환경은 언제나 개체에 연합된 환경’이다. 결정 작용이 일어나는 물리계라든가 생명체가 살아가는 생태적 경,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 환경이 그것이다. 개체들이 존재자의 전부는 아니며 개체존재자의 경계가 그렇게 뚜렷한 것도 아니다.

개체화과정은 차례로 물질과 생명, 정신, 집단의 생성 과정에 차례로 해당한다. 관계맺음으로서의 생성은 존재자의 발생을 주도하고 발생한 존재자의 구조에 반영된다. 결정이나 생명체의 개체발생, 사회집단의 발생은 바로 과정과 구조라는 관계맺음 활동의 이중적 국면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관계는 개체화 이전과 이후에 동시에 존재한다. 관계의 활동은 이미 어떤 종류의 자기동일성이나 본질을 내포하는 존재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로 이 자기동일성 자체를 구성하는 힘이자 원리이다. 이러한 생각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완고한 자기동일성 개념의 해체를 수반하는 동시에 생성이 관계로서 구체화되고 조직화되는 양상을 부각시킨다. 개체화된 존재자는 이러한 관계적 작용의 결과로서 나타난다. 관계는 개체들을 통합하는 추상적인 원리가 아니라 각각의 독특한 개체발생에 의해 개체의 이질성을 보존하게 하는 원리이다.

존재자의 생성은 규정이 불가능한 전개체적 상태가 개체화를 통해 스스로 규정가능한 존재자로 되는 ‘자가구성적 과정’이다. 또한 존재자가 구성되는 과정은 무수한 내외적, 역사적 우연들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며 각 존재자들 안에서 고갈되지 않고 남아있는 전개체적 퍼텐셜은 바로 이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시몽동은 전개체적 퍼텐셜을 자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는 여기서 생성철학의 공통된 문법을 발견한다. 어떤 종류의 힘에의 의지와 힘들 간의 관계(니체) 또는 이질적 경향들의 양립불가능성에 의한 잠재성의 현실화(베르그손) 그리고 우발성과 역사성을 말해야 하고 또한 이 모든 것들의 만남이 필요하다. 우리가 더 나아간다면 아마도 이러한 유사성들은 불교나 동아시아의 기철학에서도 발견될 수 있음직한 것들이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가까이서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환경으로 존재하던 것을 긴 우회로를 통해 낯선 대상으로 마주하게 된 것은 아닐까.

황 수 영 / 세종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

작성자: khugnews

이글 공유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