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호 인문학술: 쿠바의 정체성] 쿠바의 정체성 담론의 변화와 발전

한국인들에게 쿠바라는 나라는 언젠가는 한번쯤 가보고 싶은 미지의 나라이다. 체 게바라, 헤밍웨이, 시가, 살사, 모히또 등이 많은 사람들을 쿠바로 이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쿠바의 역사, 정치, 경제 등은 잘 알지 못한다. 이에 본보에서는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후, 쿠바에서 이루어진 정체성 담론을 쿠바 작가의 작품을 통해 알아본다.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라울 카스트로(좌)와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우)의 포스터. 스페인어로 “쿠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적어 놓았다. (AP Photo/Ramon Espinosa, 2015. 03. 17)(www.apimages.com)

최근 들어 쿠바는 전례 없는 변화를 겪고 있다. 2014년에 미국과 쿠바의 수교 정상화가 발표 되었고, 이어 미국은 여행금지 조치 해제, 정기 항공노선 취항, 우편 자유화를 비롯해 우회적 방식으로 경제제재의 상당 부분을 해제했다. 또한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88년 만에 처음으로 버락 오바마가 쿠바의 땅을 밟았고, “쿠바의 운명은 쿠바인 스스로 정하고 만들기 바란다”라고 밝히면서, “양국은 여전히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서로를 적으로 삼던 냉전 시대는 이제 끝났다”라고 천명했다.

이렇듯 쿠바는 이제 세계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여기서 오바마 대통령이 연 설에서 언급한 ‘쿠바인 스스로’라는 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은 쿠바의 정체성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족주의가 종말을 고한 지금, ‘쿠바의 정체성’ 을 말할 수 있을까? 쿠바의 정체성은 ‘혼종성’을 주축으로 하는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정체성과 차이가 있을까?

사실 쿠바의 정체성은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정체성 과 그다지 큰 차이가 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쿠바를 비 롯한 카리브 해 지역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원주민이 거의 완전히 학살되었던 유일한 장소였고, 이것은 토착주의를 강조하지 않는 반(反)식민주의적 담론의 등장을 용이하게 해 주었다. 또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1935~2003)와 호미 바바(Homi K. Bhabha, 1949~)를 비롯한 탈식민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혼종성이나 ‘제3의 공간’을 현실 속에서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쿠바에서 유럽중심주의의 산물인 순수성과 기원을 거부하는 ‘문화 횡단(transculturation)’이나 ‘칼리반 (Caliban)’의 개념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호세 마르티의 ‘우리 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 정체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스페인에서 독립하기 시작하는 19 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에 관심을 보인 대표적 지식인으로는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ivar, 1783~1830), 아르헨티나의 도밍고 파우스티노 사르미엔토(Domingo Faustino Sarmiento, 1811~1888), 쿠바의 호세 마르티(José Martí, 1853~1895), 우루과이의 호세 엔리 케 로도(José Enrique Rodó, 1871~1971), 멕시코의 호세 바스콘셀로스(José Vasconcelos, 1882~1959),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안드레스 베요(Andrés Bello, 1781~1865)를 들 수 있다. 당시 라틴아메리카 지성계를 대표하던 이들의 생각은 라틴아메리카 정체성 탐색과 국가 정체성 구성에 기초를 제공한다. 이들은 모두 국가 공동체를 상상하고 구성하려고 노력했으며, 파편화된 문화에 통일성을 제공했다.

이 지식인들의 담론을 살펴보면,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대부분이 유럽이나 미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호세 마르티는 이런 지식인들에게 전율을 느끼면서 자신의 생각을 「우리 아메리카(Nuestra América)」(1891)라는 글에 집약해서 기술한다. 그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응용하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 자체의 역사에 바탕을 두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세 가지를 주장한다. ①라틴아메리카는 새로운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②정신적·사회적 심리로 이루어진 아메리카의 자연이 존재 한다. ③아메리카의 특징과 특수성은 스스로의 분석과 해결을 요구한다.

「우리 아메리카」에서 마르티는 미국을 거인 혹은 ‘또 다른 아메리카’라고 지칭하고, 라틴아메리카를 ‘우리 아메리카’라고 부른다. 이 표현은 미국과 유럽 인종과 라틴아메리카 혼혈 인종의 차이를 평가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지만, 인종적 관점에 머무르지 않고 문화적·정치적·사회적 정체성의 문제로 나아간다. 여기서 ‘우리’라는 형용사는 그가 라틴아메리카를 하나의 공통 개념으로 만들어 정체성을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상아색 피부를 지닌 금발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변별적 특성도 드러내고, 라틴아메리카가 그 어떤 지역보다 더 많은 자연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면서 자아의 존재의식을 보여준다.

마르티의 생각이 당대의 다른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에 비해 더욱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것은 그가 피지배층인 원주민과 흑인의 문화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이 라틴아메리카 문화의 통합적 요소이며, 그런 다양성과 혼혈이 바로 라틴아메리카의 문화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의 중심 사상은 새로운 대륙의 거주민들은 아메리카인이 되어야지, 원주민과 흑인들 사이에서 사는 유럽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바탕을 둔다. 하지만 그는 유럽의 모든 전통을 배척하려고 하지 않고, 양 문화의 좋은 점 을 취해서 조화롭게 결합시키자고 호소한다. 여기서 최근 문화이론에서 말하는 혼종성과 문화 횡단 현상을 볼 수 있다.

마르티는 라틴아메리카와 관련하여 “건전하고 강건한 우리 아메리카에서 우리의 모든 작품은 정복 문명의 표시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다른 나라의 열정과 창조력으로 그것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며 놀라게 할 것이다”라고 확신 한다. 여기서 모방, 즉 기계적인 모방은 거부된다. 이것은 보편성의 파괴나 다른 지역의 공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수용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문화로 통합되어 풍요로워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정복과 독립 이후 라틴아메리카 지역이 겪은 신식민화와 강요된 문화를 경멸하라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의 문화적 자 산은 다른 나라가 만든 생동적이고 보편적인 것 을 수용하면서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쿠바 혁명과 정체성 개념:

로베르토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의 『칼리반』

쿠바 아바나 공항의 공식 명칭은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이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한 ‘알리시아 알론소’ 대극장은 ‘호세 마르티’ 대로에 있다. 이렇듯 혁명 이후 쿠바 정부는 마르티를 국가 영웅으로 추앙하며 그의 사상을 계승한다. 1970년대 이후 쿠바 혁명정부의 문화노선을 주도 한 로베르토 페르난데스 레타마르(Roberto Fernández Retamar, 1930~)의 칼리반은 쿠바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정체성에 관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호세 마르티의 관점을 이어받는다. “라틴아메리카 문화는 존재합니까?”라는 어느 유럽 기자의 질문을 출발로,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는 라틴아메리카가 다른 대륙과 구별되는 특수한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페르난데스 레타마르의 주장은 라틴아메리카인들이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가 유럽 문화의 단순한 반영에 불과하다는 믿음에 대한 반응이다. 그는 라틴아메리카가 언어적 식민화를 강도 높게 겪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서구어들은 라틴아메리카의 자체적인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점에서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 『태풍(The Tempest)』(1611)의 등장인물인 ‘칼리반’은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당한 상징으로 사용된다. 칼리반은 프로스페로 덕택에 언어를 배우지만, 동시에 프로스페로를 욕하기 위해 이런 지식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칼리반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나에게 말을 가르쳐주었다. 그 덕택에 나는 욕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당신은 단독(丹毒)에나 걸려 온 몸이 썩어 문드러져라. 말을 가르쳐 준 벌로!”

한편 여기에는 라틴아메리카 문화를 동질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다. ‘칼리반’을 통해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는 라틴아메리카를 섬의 합법적인 소유자라고 서로 다투는 프로스페로와 칼리반의 충돌로 간주한다. 이번에 프로스페로는 제국주의 침략자를 상징하며, 칼리반은 부당하게 억압받은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작가들과 지식인들이 라틴아메리카의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 있기를 원한다. 다시 말하면, 칼리반 쪽에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칼리반은 이중적 상징이 된다. 특정한 사회계급, 즉 수탈자와 반대되는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문화적 공동체인 라틴아메리카를 의미한다.

페르난데스 레타마르는 전통적으로 주변인으로 간주되었던 인물인 칼리반을 이야기의 중심인물로 부각시킨다. 그는 칼리반을 비(非)순종적인 노예가 아니라, 억압받은 원주민으로 본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칼리반의 변증법’을 통해 칼리반의 타자, 즉 프로스페로가 제시한 왜곡된 그림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그것을 ‘영광의 기호’로 각인시킨다.

213-04-1-2

쿠바에서는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La Habana Vieja, La Habana, Cuba. (Jose´ Manuel Azcona Photo, 2014. 07. 26)(ⓒ www.flickr.com)

 

난시 모레혼의 <흑인 여인>과 아프리카계 쿠바 여인의 정체성

쿠바인들은 ‘과히로(guajiro)’라고 자신들을 부르면서 공동체의식을 갖는다. 이 용어는 쿠바의 가난한 혼혈 농민들을 지칭하지만, 여기에는 흑인/물라토(백인과 흑인의 혼혈 인종)가 배제된 인종차별적 의미가 숨겨져 있다. 흑인은 쿠바 주민의 다수를 이루지만, 19세기부터 진행된 국가 정체성 담론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가 쿠바 혁명 이후에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이런 점에서 흑인/물라타이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중 차별을 경험한 목소리가 쿠바 혁명 이후 어떻게 재평가되는지에 관한 것은 쿠바 혁명 정부가 추구하는 정체성 작업의 핵심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정체성 작업은 특히 문학 영역에서 실천된다. 난시 모레혼(Nancy Morejón, 1944~)은 쿠바 혁명의 딸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녀는 젠더와 인종과 문화적 차원에서는 주변성을 보여주지만, 쿠바 혁명 내에서는 중심에 있다. 아프리카계 쿠바 여인을 혁명적 인물로 그리는 <흑인 여인>(1975)은 모레혼의 시 중에서 가장 널리 번역되고 알려진 작품이며, 계급, 인종, 국가, 그리고 젠더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서술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쿠바인으로서 지리적,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경계 속에서의 경험을 보여준다.

<흑인 여인>은 아프리카계 쿠바 여인들이 보여준 집단적 저항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이 시에서 주인공이자 화자인 흑인 여인은 아프리카의 서해안과 서인도 제도를 잇는 대서양 중앙 항로 여행부터 혁명의 현재에 이르는 역사를 들려준다. 모레혼은 여성 중심적 서사를 통해 흑인 여성 노예를 쿠바 국가독립의 상징으로 위치시킨다. 그러면서 시적‘나’는 집단적인 ‘우리’가 되고, 거기에서 각 개인들은 투쟁 속에서 하나가 된다. 즉, 역사를 구조적 장치로 사용하여 흑인 여인의 관점에서 쿠바 역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인 아프리카 흑인의 강제 이주, 노예제 시대의 사탕수수 농장, 독립전쟁과 카스트로 혁명을 서술한다. 이렇게 여자 노예의 목소리를 반란자로 여겨지는 흑인의 목소리 속에 삽입시키면서, 쿠바 혁명 안에서 아프리카계 쿠바 여인의 역할을 정의한다.

따라서 이 시는 쿠바 혁명 역사의 관점에서 아프리카계 흑인 여인의 투쟁의 끝으로 읽힐 수 있다. 이런 것을 보여주듯이 <흑인 여인>은 흑인 여자 주인공의 참여를 공통적으로 서술하면서, 과거의 독립전쟁과 현대의 혁명 투쟁을 연결시킨다. 그리고 그런 투쟁을 통해 혁명이 주장하는 민족 투쟁의 연속성 이라는 역사 다시 쓰기를 강조한다. 특히 모레혼의 이 시가 다른 쿠바 혁명 작품과 다른 점은 여성 노예의 역할이 자유의 적극적 참여자로 재평가된다는 사실이다.

모레혼은 아프리카계 쿠바 여인의 이미지를 통해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 이 시는 흑인 여인을 주변에서 쿠바의 중심으로 이동시킨다. 이제 그녀는 식민 역사의 희생자가 아니라 사회적·정치적 행위자로 행동하면서, 억압에 대해 순종보다는 저항으로 응답한다. 그렇게 과거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상태를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며, 전통적으로 흑인 여인을 타자로 간주하던 남성적 관점에서 해방된다. 이것은 과거에 목소리가 없던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줌으로써 카스트로 체제의 평등주의 윤리를 실천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쿠바성에서 쿠바혼으로:

마르타 로하스의 반노예주의 소설

1990년을 전후로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소련이 해체되면서 쿠바는 사회경제적 위기를 맞는다. 이로 인해 사회적 불평등이 가중되면서 인종 문제도 다시 부각된다. 쿠바 당 국은 1960년대 초부터 인종차별이 쿠바에서 축출되었다고 주장했으며, 인종주의적 편견과 사고방식이 완전히 일소되지는 못했지만, 그것들을 머지않아 사라질 과거 자본주의의 잔재라고 설명했던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이런 생각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인종 문제는 사라지지 않은 채 쿠바 사회에서 의미 있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었고, 흑인/물라토들에 대한 사회적 의문이 형성되고 있었다. 1990년대 중반에 이미 쿠바는 쿠바 당국이 한때 주장했던 인종 천국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 기간에 쿠바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이것은 쿠바성(쿠바性, cubanidad)이란 용어가 쿠바혼(쿠바魂, cubanía)으로 대체된 것에서 잘 나타난다. 쿠바혼은 개인의 내면적 삶의 일부를 이루며, 주장되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것이고, 뽐내지 않지만 소망되는 것이다. 이런 쿠바혼의 추구는 이 시기의 사회경제적 상황뿐만 아니라, 세계화와 국제화로 인해 제국주의 문화가 민족주의 표현 양식을 갈수록 망가뜨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기인한다.

이렇게 쿠바성이 재정립되는 가운데, 흑인성과 인종 그리고 인종주의에 관한 새로운 반(反)담론 소설이 등장하고, ‘흑인’은 다양한 양식과 인식이 수렴되는 논의의 장이 등장하면서 의미를 획득한다. 마르타 로하스(Marta Rojas, 1931~)의 작품은 쿠바 문학사, 쿠바 역사, 그리고 민족과 인종 논의와 관련되어 쿠바 내에서 이루어진 1990년대 정체성 담론과의 대화를 재구성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로하스는 흑인 여성과 물라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문화 횡단 현상을 소설화하며, 그것을 통해 여성의 관점에서 현재 쿠바의 정체성을 공고하게 만드는 데 이바지한다.

마르타 로하스의 반노예주의 소설 3부작은 『레이 스펜서의 그네 (El columpio de Rey Spencer)』(1993), 『성스러운 육욕 (Santa lujuria)』(1998), 『오비에도의 후궁(El harén de Oviedo)』(2003)으로 이루어진다. 이 작품들에서 마르타 로하스는 노예 노동력으로 카리브 해 지역으로 끌려오거나 이주한 아프리카인의 시각으로 쿠바의 국가건설을 되돌아본다. 그래서 마르타 로하스의 소설에서 역사는 매우 중요한 기초로 작용하지만, 그것은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전설과 문학과 구전 전통을 통해 다루어진다. 로하스는 노예제 시기와 식민지 시절의 이야기를 다시 쓰면서, 19세기 문학작품이 흑인이나 물라토에게 부여 한 순종적 역할을 탈신비화하면서 저항의 역사를 추구한다. 그래서 19세기 반(反)노예주의 소설과 달리 로하스의 작품은 노예폐지주의자들의 정치적 선전물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로하스는 쿠바 정체성 형성에 역동적 동인으로 공헌했으면서도 역사에서 소외된 인물, 즉 쿠바의 흑인 여성이나 물라타, 그리고 다른 서인도제도의 흑인 여성과 물라타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러면서 1990년대에 형성된 쿠바혼으로 규정되는 단일 국민성과 혼혈로 이루어지는 다민족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쿠바 국가정체성의 선구자로서 흑인 여성/물라타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또한 아프리카인들이 음탕하며 육욕적이라는 신화를 해체하며, 유럽 노예주의자들의 성폭력을 밝힘으로써, 쿠바 혁명 정부의 사상적·미학 사상에 부응한다. 그렇게 1990년대에 촉발된 인종주의적 행동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계급 없는 사회에서는 인종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는 혁명 정부 입장을 재생산한다. 다시 말하면, 로하스의 작품은 혁명 정부의 목표와 문화적 전략의 수정에 따라 변화한 아프리카계 쿠바인의 정체성 과 의식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는 정체성과 사회정치적 변화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시사한다.

현대 쿠바에서 정체성 문제에 접근한다는 것은 19세기 국가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배제된 흑인/물라토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들을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살펴보며, 인종주의와 유럽 중심주의적 시각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흑인/물라토들이 공헌한 문화적 상상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소외되고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21세기 쿠바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묻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흑인/물라토 문화를 강조하는 것은 혼혈 과정이 다양한 문화들이 교차된 결과임을 보여주면서도, 그동안 억압과 차별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다인종의 혼혈 패러다임을 통해 인종과 문화에 바탕을 둔 국가 정체성을 구현하며, 그것을 국민성으로 수렴시키고 쿠바를 다시 정의함으로써 쿠바 문화를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송병선 / 울산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작성자: khugnews

이글 공유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