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호 기획: 장애등급제] 장애등급제: 물건너 간 폐지 약속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을 의학적인 기준으로 장애 정도를 판단해 등급을 부여하는 제도로서 등급에 따라 복지서비스 수급 여부를 결정해왔다. 그러나 장애인들의 사회·환경적 요인을 반영하지 못하는, 의학적 기준에만 의존한 등급판정으로 서비스 편중과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또한 개인의 욕구와는 다른 판정과 ‘등급’이라는 개념은 인권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본보는 장애등급제의 개념, 문제점, 해결 방향 등을 짚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제2조 (장애인의 종류 및 기준)와 [별표 1]을 통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애의 종류’(총 15종)와 기준을 정하고 있고, 시행규칙 제2조(장애인의 등급 등)에서는 장애 종류와 장애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있다. 그런데 2010년 들어 보건복지부가 장애인연금과 활동보조서비스 등을 새롭게 신청하는 사람에게 장애 상태와 등급의 심사를 의무화하면서 장애등급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표면화되었다.

장애계의 의견이 철저히 무시된‘낙인의 사슬’장애등급제. ⓒ www.skkuw.com

장애계의 의견이 철저히 무시된‘낙인의 사슬’장애등급제. ⓒ www.skkuw.com

장애등급제의 문제점

그렇다면 장애등급제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첫째, 장애인의 교육, 고용, 소득, 의료, 주거 등 다양한 복지 영역의 욕구를 장애등급 한 가지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건복지부와 대법원이 의뢰하여 수행된 ‘한국장애평가기준개발사업 보고서’에서도 지적된 사항이다. 그러니 자신이 의뢰하여 수행된 사업의 보고서 내용을 보건복지부가 채택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둘째는 인권의 문제이다. 사람을 함부로 분류하고 숫자로 등급을 매기는 것은 그 자체가 반인권적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한 수업 시간에 한국에서 장애인으로서의 삶 에 대하여 발표하면서 내 장애가 한국에서 지체장애 2급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그 사실을 말했다가는 당시 수업 분위기상 내 조국이 미개국 취급 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권적 관점은 2010년에 장애등급의 문제가 표면화되자 장애인 등급이 기록되어 있는 장애인복지카드를 장애계가 반납하겠다고 한 데서 그대로 투영된 바 있다.

실제로도 장애인에게 굳이 등급을 매기지 않더라도 복지 영역별로 장애인의 욕구를 측정하는 다양한 도구를 채용할 수 있으며, 장애등급제를 똑같이 채택하고 있는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그런 방식으로 별 무리 없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 ‘장애인 지방센터(La Maison D´epartementale des Personnes Handicap´ees)’에서 의사, 사회복지사, 직업재활사 등 다양한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종합사정팀이 신청인의 장애 판정 및 서비스 욕구 사정 등을 하면, 그 작성된 평가 결과를 토대로 ‘장애인 권리 및 자립위원회(Les Commissions des droits et de l’autonomie des Personnes Handicap´ees)’가 보건의료 서비스, 각종 수당, 세금 면제, 장애인 카드, 옹호·상담 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의 제공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의 장애등급제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장애등급제, 개편 혹은 폐지

이에 장애인 등록제, 판정 절차 등 장애인 등록·판정 체계의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자 보건복지부는 2010년 11월 2일에 ‘ 장애인서비스 지원체계 개편 기획단’을 구성하였다. 또한 이  ‘장애인서비스 지원체계 개편 기획단’의 해산에 대한 일체의 언급 없이 보건복지부는 2013년 4월 15일에 ‘장애판정체계기 획단’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기획단을 구성하였다. 그러다 2014년 들어서는 4월 4일에 보건복지부가 ‘장애종합판정체계 개편 추진단’이라는 세 번째 회의체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장 애등급제와 관련하여 그동안 장애계에서 요구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구성되어 온 민관 회의체들의 운영 상황은 매우 우려스러운 것이었다. 즉, 지난 세 개의 민관 회의체는 민주적인 운영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이러한 현상은 세 번째로 운영된 ‘장애 종합판정체계 개편 추진단’에서 더욱 심하여 구성 초기부터 끝까지 장애계의 의견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두 번째 회의체인 ‘장애판정체계기획단’에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중간 단계로 중증/경증의 단순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를 비롯한 몇 가지 합의 사항이 도출된 것은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러나 2015년에 보건복지부가 장애인단체 관계자 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발표한 ‘장애등급제 개편 시범 사업 계획안’에 따르면 장애등급제 완전 폐지가 아니라 우선은 중·경증으로 단순화해 적용할 방침이어서, 결국 ‘장애판 정체계기획단’에서 도출된 합의도 깨진 셈이다. 여섯 개의 장 애등급이 있기는 하나 현실적으로 많은 서비스에서 1~3급과 4~6급이 구분되어 적용되고 있었으므로, 장애등급을 중·경증 으로 단순화한다고 해서 실제적으로 바뀔 것은 거의 없다. 이렇게 정부가 한 약속을 스스로 어겼는데도 합의 당시 담당 과장은 이미 다른 과에 가 있고 그 뒤를 이은 책임자마저도 일언반구 사과가 없다. 개인 간의 약속도 어기면 최소한 사과를 하기 마련인데도 말이다. 이러다보니 보건복지부가 2017년 하반기부터 장애등급제를 완전 폐지하겠다던 당초 약속 역시, 말이야 향후 장애계의 의견 수렴과 동의 후 폐지 여부를 정할 계획이라지만,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장애등급제 개편 시범사업 진단

그렇다면 ‘장애종합판정체계 개편 추진단’에서 논의된 바 있는 판정체계가 2015년에 6개 지방자치단체를 통하여 시범사업의 형태로 일부나마 모의적용에 착수한 것이 그나마 외견상 유일한 진전으로 보인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시범사업의 실시 결과가 성공적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전달체계 개편 모형의 검증 결과에 혹 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이와 더불어 검증된 판정체계 역시 본인이 ‘장애종합판정체계 개편 추진단’에 있을 때나 나와서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왔던 바로 그 체계인지라, 이 유일한 진전마저도 솔직히 회의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올해 하반기에 2차 시범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러다보니 근 6년 동안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 기울여왔던 노력의 결과 우리나라에서 실제적으로 바뀐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도, 비록 예산이 확충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선진국처럼 장애에 등급을 매기지 않고 개인의 욕구와 환경에 기초한 서비스별 장애 사정 기준을 마련하였으면 하는 희망에서 세 개의 민관회의체 모두에서 기울여왔던 나름대로의 열심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느낌에 심한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나아가서 그동안 보건복지부를 비판하는 가운데 보건복지부 공무원에게 미운 털이 박혔으니 앞으로 나를 부르겠나 싶기도 하지만 혹 부른다 하더라도 지금까지처럼 의욕을 가지고 임할 수가 있겠나싶다.

어쨌든 장애등급제 개편이 이 지경까지 이른 데에는 어떻든 그 과정에 발을 담갔던 본인으로서도 책임이 없지 않고, 이에 장애인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본인의 무능함과 무력함은 개인의 못남의 문제이지만, 지금까지 장애등급제 개편과 관련하여 작동되었던 민관회의체의 구성과 운영과 해산 과정에서 그리고 그 결과를 통해 드러난 약속의 거듭된 파기는 분명 정부 시스템의 문제이다. 결국 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회보장제도의 정책 결정 및 시행 과정에 공익의 대표자 및 이해관계인 등을 참여시켜 이를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시행하여야 한다”는 사회보장기본법 제25조(운영원칙) 제3항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적 회의체를 통한 문제 해결 필요

이에 현 정부가 이를 실행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보건복지부와 산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주도하는 회의체가 아닌 범정부적인, 그리고 장애인단체가 골고루 참여하여 민관이 동등하게 장애등급제와 관련된 이슈를 협의하여 결정하는 민주적인 형태의 회의체가 다시 구성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렇게 회의체가 구성되어 그 회의체의 각 위원들이 학자의 입장에서, 장애인단체 활동가의 입장에서, 연구자의 입장에서, 공무원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오늘도 장애등급제 때문에 죽어가는 장애인의 절박한 사정을 헤아릴까를 생각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장애등급제가 없는 선진국이야 어떻든 우리나라 현실만 반복적으로 주장한다면, 장애 판정 체계가 선진화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는 사라져버리고, 장애인이 항상 비장애인 전문가에 의하여 분류되고 또 그것에 의하여 장애인 서비스의 종류와 양이 결정되며 그 와중에 장애인의 생존권이 심대하게 위협받는 악순환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본인은 확실히 보장하는 바이다.

조한진 /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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