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호 인터뷰: 김익한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세상을 직시하는 ‘기록’

김익한 교수는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에서 기록관리를 강의하고 있다. 그는 국가 기록관리 제도의 틀을 마련하는 데에 공헌했고, 2014년 4월부터는 현장에서 세월호 참사의 기록을 수집하여 ‘416 기억저장소’를 만드는 데 힘썼다. 국가적 기록에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지키는 힘이 있고, 소외된 이들의 기록에는 우리를 왜곡된 권력에 맞서게 하는 힘이 있다. 매일 수많은 사건과 기록들이 쏟아지고 있는 현재,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지난 11월 12일, 명지대학교에서 김익한 교수를 만나 기록이 가지는 의미와 가능성에 대해 들어봤다.

캡처

모든 것의 기록

Q. 기록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잘 통찰한다면 현재의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중에서도 현실과 깊은 상관관계를 지닌 것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로 사회사나 행정사를 공부했어요. 예를 들면 면사무소, 주민센터처럼 사람들의 삶에 직접 닿아 있는 부분이었죠. 그러다가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사료(史料)’가 바로 ‘기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사료학이 발전되어 있더라고요. 사료 속에 담긴 이야기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사료 자체를 연구하는 거죠. 기록을 남기고 잘 정리해 관리하면, 시간이 흐른 뒤 그것은 사료가 됩니다. 이 사료를 역사 연구의 기본 자료로 삼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메가 프로세스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은 사람의 행위를 기록으로 온전히 남기는 것입니다.

Q. 기록이라고 하면 다소 막연한 느낌이 드는데요. 기록학에서 ‘기록’이란 무엇을 의미하나요?

기록하고자 하는 어떤 것과 관련된 모든 것을 하나의 기록으로 봅니다. 공유해서 가치 있는 것들은 모두 기록이죠. 예를 들면 유태인 수용소에서 수용자들이 사용하던 숟가락이나 편지 역시 중요한 기록의 형태입니다. 또한 그것을 소재로 창작된 여러 예술 작품들도 포함됩니다. 여기에서 그 기록물들을 모으는 것이 중요한데요. 이것을 ‘기록화’라고 합니다. 그런 기록들을 보존하고 소통하게 하는 것이 기록 전문가들에게 가장 중심이 되는 일입니다.

기록이 가진 힘

Q. 국가적으로 관리되는 기록은 어떤 특성을 가지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공공의 기록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한 기록을 온전히 남기면, 중간에서 권력으로 공을 가로채거나 사실을 왜곡하는 등의 비정상적 사태가 일어날 수 없게 됩니다. 즉, 기록은 사람들이 절차적으로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보이지 않는 제재를 가하게 되죠. 또한 모든 공적 행위는 설명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어떤 정치활동을 했으면, 대통령은 그 권한을 위임해준 국민들에게 자신이 한 정치활동에 대해서 설명해야 합니다. 이때 그 책임을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 기록입니다. 과정과 결과를 기록으로 잘 남긴 다음에 그 기록을 국민들에게 공개하면 자동으로 설명할 책임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기록에는 이러한 힘이 있습니다.

Q. 교수님께서는 국가 기록관리 제도의 틀을 마련하는 데 공헌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제도인가요?

현재 국가 기록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관리되고 있습니다. 이 법의 핵심은 공무원들의 공적 업무와 관련된 모든 형태의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남기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함부로 버리면 처벌받게 돼있어요. 이를 감시하고 기록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기록 연구직’이라는 공무원 직제가 각 기관별로 소속되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정보공개법>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 법을 통해 국민들은 국가 기록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죠. 이처럼 공적 행위가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은 최소한의 민주적 권리가 확보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기록 관련법은 1999년에 만들어지고 2000년부터 시행됐는데, 그 이전에는 세종로청사 주차장 뒤 소각장에서 각 부처 마음대로 공공기록물을 태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록 관련법의 제정과 시행은 우리 사회의 민주적 성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죠. 이 제도는 사회 전체적인 변화의 산물입니다.

Q.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중요한 기록은 무엇인가요?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삶을 책으로 쓴 ‘프리모 레비’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는 아우슈비츠에 대한 기록을 통해 홀로코스트의 일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나치를 향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인간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통해 우리를 반성하게 하는 진실입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기록이란 레비의 기록처럼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 슬픈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런 기록이야말로 세상을 빛내는 보석 같은 기록이고, 그들에 대해 온전하게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기록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 민중권력이고, 이 힘이 살아있어야 우리가 세상을 왜곡시키는 권력과 최소한 의 길항을 유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 힘을 잃어버리면 제가 보석이라고 말했던 기록의 삶부터 깨져 갑니다. 그리고 점차 많은 사람들의 삶이 깨져 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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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장

Q. 416 기억저장소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어떤 공간인가요?

416 기억저장소는 세월호 참사의 기록을 관리하고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참사에 대한 기억을 잘 모아 두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기억을 모은다는 것은 즉,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자원봉사자, 기자, 경찰, 현장지원 공무원 등을 상대로 구술 채록을 하고 그들이 현장에서 촬영한 휴대전화 사진과 영상, 활동일지, 메모 등을 수집하거나 기증받았습니다. 수집품에는 진도체육관과 광화문 농성에서 유가족들이 쓰던 이불과 시민들의 추모 리본, 포스트잇 등도 포함되고요. 이에 더해 희생된 아이들의 집을 찾아가 그들의 일상이었던 사소한 물건들을 하나하나 수집했습니다. 서고와 기억저장소는 각각 안산시 상록구와 단원구에 있습니다. 기억저장소 1호관은 사무실처럼 사용되는 유가족들의 소통공간이고 2호관은 전시관입니다. 기억저장소가 문을 여는 과정에서 많은 시민단체와 개인들의 지원이 있었습니다. 시민적 힘이 무엇인지 보여준 굉장히 좋은 사례죠.

Q. 416 기억저장소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나요?

416 기억저장소는 유가족과 그들을 지원하는 안산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그들이 직접 기억을 모으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가 무엇을 단독으로 해석해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유가족들 스스로가 기억을 형성하고, 그 기억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입니다. 앞으로는 그것을 역사의 중심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416 기억저장소는 기록학자 중심이 아닙니다. 그들은 구성원 중 일부일 뿐이죠. 저장소장은 유가족이 맡고 있고 사무국장은 안산의 시민운동가입니다. 그 외 안산지역의 시민을 대표하는 사람들과 연극배우, 큐레이터 등 사회 여러 영역의 사람들이 같이 운영합니다. 이게 새로운 모델이죠. 이상하게도 기록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중심이 되니 운영이 더 잘 되더라고요(웃음). 기록이 35만 건이나 모였어요. 엄청난 양입니다.

Q. 앞으로 416 기억저장소와 같이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자발적인 기록이 더욱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그랬으면 합니다.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과 관련해서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아쉬운 것 중 하나가 용산참사에요. 용산참사를 416 기억저장소와 같은 방식의 사회적 기억으로 형성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 있습니다. 시민 주체적 기록이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기록을 전공하는 이들에게 아키비스트 액티비즘(archivist activism)이 필요합니다. 기록전문가 행동주의, 실천주의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요. 사회적 기억으로 형성시켜 공유해야 하는 사건현장에 기록전문가들이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록전문가들에게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새로운 기억의 장을 만들고 사회와 소통하게 하는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죠.
아직은 시민 주체적 기록들의 활발한 소통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416 기억저장소 역시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시스템을 갖춰 35만 건의 기록을 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서비스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분류도 잘 하고 목록도 상세하게 만드는 것을 비롯해 몇 개의 기록을 묶어서 이야기로 만드는 등의 작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공공의 자금 없이 십시일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인건비 등의 비용을 처리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기억과 공유

Q. 사회적 기억이란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나요?

기록을 남기는 것이 첫 번째, 그 기록에 대한 소통을 촉진하는 것이 두 번째, 소통에 의해 사회적 기억이 형성되는 것이 세 번째 단계입니다. 기록이 사회적 기억의 토대가 되고 그 이후의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요즘은 이러한 과정이 온라인을 통해 활성화되죠. 인터넷 사이트, SNS로 소통이 이루어지고 그 소통의 큰 트렌드로서 사회적 기억이 형성됩니다. 사회적 기억에는 이론이나 당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현상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의 흐름이 결국 사회적 기억이니까요. 이것은 대중이 반드시 좋은 공동의 사유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신뢰를 전제로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 번도 그 신뢰를 져버린 적이 없어요. 그 신뢰를 져버린 사람들은 자기만 옳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죠.

Q. 사회적 기억의 공유는 공동체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요.

416 기억저장소와 같은 경우 세월호 참사가 가지고 있는 큰 아픔 때문에 공동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기억 공동체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억저장소는 그 공동체의 기억을 잊지 않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사람들이 여러 가지를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거죠. 지금은 진상규명과 함께 소비문화와 교육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부분을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고 밥 나눔, 공방 등이 같이 이루어지게 되었어요. 이는 유가족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준비 단계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 공동체 운동과 함께 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봅니다.

Q. 마지막으로, 2015년에 가장 기록할 만한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지난 10월 31일과 11월 1일, 안산에서 열린 <엄마랑 함께하장: 세월호 엄마, 아빠와 함께 따뜻한 세상을 그리는 축제>를 꼽고 싶습니다. 416 가족협의회에서 주최한 문화장터인데, 유가족들이 손수 만든 각종 공예품을 팔고, 그 수익금을 안산 시내 지역아동센터에 기부했습니다. 작은 일처럼 보이지만 의미가 남다릅니다. 유가족들은 보통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보상금을 많이 받아 호위호식 하는 줄 아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보상금은 통장에만 있지 한 푼도 못써요. 어떻게 그걸 쓰겠습니까. 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정리하지도 못한 채 분향소로 나옵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의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움직인 것입니다. 장터를 위해 밤새 지갑이나 팔찌를 만들면서요.
그날, 장터의 물건들이 다 팔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사람들이 조금씩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엄마랑 함께하장>은 우리 사회의 모순이 응집되어 사람들을 괴롭히는 암울한 상황 속에도 빛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어느 때가 되면 모두가 알게 되겠죠. 우리가 이것을 또 기록으로 공유했으니까요.

대담·정리 : 고희영 | khyhy825@khu.ac.kr
사 진 : 박혜영 | hy000p@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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