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호 기획: 성소수자] 성소수자가 마주한 혐오와 배제의 장벽

지난 9월 29일 유니세프, 국제보건기구,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국제노동기구를 비롯한 국제연합의 12개 기구는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 인터섹스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종식하자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모든 사람들은 폭력, 박해, 차별과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동등한 권리가 있다”로 시작하는 성명은 현재 대한민국 성소수자의 인권에 질문을 제기한다. 대한민국 성소수자의 인권은 존재하는가. 이에 본보에서는 성소수자 인권의 현재를 살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성소수자 인권단체가 생겨난지 20년이 지났 다. 성소수자 관련 이슈와 투쟁이 간헐적으로 사회적 주목을 받았지만, 공히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년 간 성 소수자들은 커밍아웃을 통해 성소수자를 친숙 하게 느끼는 대중의 저변을 넓혀왔다. 성소수 자 인권단체들은 홀로 고립된 성소수자들을 커뮤니티로 불러내어 사회적 낙인을 극복할 수 있도록 당사자들의 힘을 북돋고, 차별과 낙 인을 거둬내기 위해 캠페인과 제도 개선 운동 을 벌여왔다.

성소수자 인권의 ‘사회문제화’

최근 성소수자들이 하나의 사회적 집단으로 등장하고 성소수자 인권이‘사회문제화’되고 있지만, 오히려 성소수자 인권담론이 위협받고 있으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공격, 인권 규 범의 후퇴가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퀴 어문화축제에 대한 반대와 방해, 차별금지법이나 인권조례 등 의 인권규범에서 성소수자 보호 조항을 넣지 못하도록 하는 캠 페인과 로비, 성소수자 관련 행사에 공공시설을 대관하는 것에 대한 조직적 항의가 거세다.

성소수자 인권이‘사회문제화’된 배경은 아이러니하다. 이 는‘동성애는 비윤리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하며 성소수자 차 별이 유지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집단에 의해 촉발된 측면이 있다. 일부 보수 교회조직이 성소수자의 대항 집단으로 서 조직적 행동을 벌이기 시작하자 성소수자 문제가 첨예한 갈 등의 도마 위로 올려졌다. 그러나 동시에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집단적으로 가시화되었으며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 들의 목소리도 더 많이 생겨난 것이다. 한 예로, 올해 6월에 열 린 제16회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 혐오단체의 조직적 방해 로 인해 축제 장소 섭외와 진행에 있어 최대의 난관들을 겪었 고, 축제 당일에도 주변에 큰 규모의 반대집회가 열렸지만, 사 상 최대 인원인 만 명 이상이 축제에 참여하였으며 많은 시민 들이 현장에서 성소수자 혐오가 심각한 문제임을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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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담론장의 보수 정치학

2011년, 10만 명 이상 시민의 서명을 통해 주민 발의된 서울 시학생인권조례는 기독교계 미션스쿨의 자율성을 침범한다는 이유로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전면으로 내세워진 반대의 이유는 임신·출산에 따른 차별 금지, 성소수자 학생에 대 한 보호 조항이 청소년에게 비윤리적인 성행동을 허용하고 부추긴다는 것이었다. 성적 낙인과 보수적 관념, 청소년 보호주 의를 결합시켜 혐오를 부추기고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선동하 여 또 다른 큰 차원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반대자들이 들고 나온 피켓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엄마, 나 학교에서 항문성교 배웠어요”

일부 보수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반(反)성소수자 운동은 교 회가 처한 재생산의 위기에서 왔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교회 외부에 새로운 적을 둠으로써 교회의 영리사업화, 비리, 성범 죄 등을 비판하는 교회 내부의 목소리를 규율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보수교회가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고 인권규범의 발전에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양한 인권 가치의 옹호가 교회의 이해관계를 흔드는 외부적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독교계 미션스쿨의 학생들이‘종교의 자유’를 이유로 종교 수업과 의례를 거부해 사회문제가 되었던 전례가 있다. 성 소수자 문제는 사회적 혐오와 반대를 쉽게 환기시킬 수 있는 가장 취약한 고리로서 선택적으로 악마화되었다.

최근 보수언론인 출신이자 공영방송 이사를 지내고 있는 한 인사가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발언과 함께“동성애자는 더러운 좌파”라며 인권활동가들의 실명과 경력, 사생활을 거론하며 공격하였다. 이는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뿐만 아니라,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이후 강화된 매카시즘과 함께 진보적 인 사에 대한 낙인찍기의 일환으로서 ‘동성애’혐오가 활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보수 정치 전선을 구축하려는 일군 의 집단이 혐오를 손쉽게 작동시킬 수 있는‘동성애’문제를 맨 앞에 부각시킴으로써, 진보적 가치에 대한 공격을 활성화하 고 있는 것이다.

인권행정의 기로: 적극적 차별행위자가 될 것인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선동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반대에 의해 국가 및 공공기관이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성소수자의 집회의 자유,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적극적 차별 행위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 사례에서 국가기관의 중립성이 어떠한 방식으로 차별을 행하게 되는지를 볼 수 있다. 이번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를 위해 행사개최지인 서울시청광장 주변 도로에 대한 집회신고를 냈다. 반(反)성소수자 단체들은 집회를 방해할 목적으로 인근 지역 여러 지점에 집회신고를 냈다. 그러나 서울지방경찰 청은 두 집회의 충돌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양쪽 모두의 집회에 대해 금지통고를 했다. 선순위로 신청된 행사와 그에 대한 방 해 목적의 집회를‘충돌’이라는 중립적 규정을 통해 사실상 퀴 어문화축제의 집회를 불허한 것이다. 퀴어문화축제가 제기한 금지통고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져 결국 퀴어퍼레이드는 합법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횡단보도 하나, 질서유지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반대집회가 곳곳에서 열렸다.

국정, 시정에 대한 항의를 의식해 성소수자 관련 사업이 폐기, 불허, 무산되기도 했다. 법무부는 성소수자인권재단인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사단법인 설립신청을 불허하기도 했다. 성 소수자 관련 사업이 ‘보편적인 인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서울시주민참여 예산사업으로 성소수자 청소년에 대한 상담을 제공하는 <청소년무지개와함께>사업이 선정되었으 나, 해당 사업 지역인 성북구청은 보수교회 지도자들의 반대로 사업안을 연내에 제출하지 못해 결국 해당 예산이 불용 처리되었다. 무엇보다 지난 11월, 서울시가 추진해온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이 바로 서울시의 입을 통해 ‘무산’된 것도 유사한 과정이었다. 성소수자들은 이에 항의하여 6일간 서울시청 점거 농성을 벌였다.

지난 8월, 여성가족부는 <한국교회동성애대책 위원회>의 민원을 받아들여 <대전광역시 성평등 기본조례>에 규정되어 있는 성소수자 보호 조항 이 ‘양성평등기본법’의 입법취지에 어긋난다며, 대전시청에 해당조항의 삭제를 요구했다. 결국 삭제된 개정안이 통과되어 성소수자 관련 인권규 범이 사라지게 되었다.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기 본법이 규정하고 있는 ‘한부모 여성, 장애여성, 이주여성 등 취약계층 여성 대한 복지증진’의 취지에서 왜 성소수자 여성이 포함될 수 없는지에 대해 합리적 근거를 내놓지 못하고 ‘해당법은 남녀가 함께 만드는 양성평등사회 실현’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으며, 성평등기본조례를 제정한 모든 지자체에 대해 ‘성평등’을‘양성평등’으로 바꿀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반성소수자 단체들이 여성가족부의 영문명칭인 ‘젠더(gender)’가 ‘사회적 성’을 의미하며 ‘동성애를 옹호하는 개념’이 라며 명칭 변경을 요구하고 있으며, 여성정책의 핵심축인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정책[실질적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사회 모든 영역의 정책과정에서 성별 관점을 반영하고 평 가할 수 있도록 하는 여성정책 패러다임, 1995년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4차 세계여성회의에서 여성정책의 새로운 전략적 패러다임으로 채택됨]을 폐기하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여성 가족부의 성소수자 배제 입장 표명은 여성가족부의 근간을 흔 드는 패착이 된 것이다.

소수자 보호를 위한 국가 책무성이 필요한 때

이러한 난관에 부딪히면서 성소수자인권운동은 성소수자 인권규범을 만들기 위한 입법적 대응,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를 제한하기 위한 사법적 대응, 인식개선을 위한 문화적 대응, 성소수자 커뮤니티 역량강화를 위한 조직적 대응, 한국이 가입· 비준한 유엔의 인권협약을 준수하도록 하는 국제적 대응 등 최근 몇 년간 활동 영역의 폭을 넓혀오고 있다. 성소수자 문제는 공히 인권 행정에서 ‘관리되어야 하는 위기’로 간주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보수교회조직의 거대한 자원과 조직력 및 민관거버넌스, 새로운 보수 정치 연대로의 확장 등 현재적 사회 상황은 성소수자 인권을 유보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인권행정의 변화는 성소수자 인권운동뿐만 아니라, 시민적 자율성, 다양성, 인권의 가치가 통하는 정치사회적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가운데 촉진될 수 있을 것이며, 시민사회가 소수자 보 호를 위한 국가적 책무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나갈 때 가능해 지리라 전망한다.

정현희 / SOGI법정책연구회 상임연구원

* 사진 설명 및 출처

퀴어문화축제 당일 주변에서 반대집회를 열고 있는 성소수자 혐오단체 회원들 ⓒ www.koreaobserver.com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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