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호 인문학술: 신비주의] 신비주의, 존재에 대한 끝없는 물음

신비주의 개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우리나라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오해와 논란의 대부분은 개념 형성 과정에서 겪었던 역사적 경험의 일부 측면이 과도하게 부각된 탓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본보는 신비주의 개념을 둘러싼 오해와 역사적 배경, 신비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핵심 요소 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작가 고어 비달(G. Vidal)은 자신의 소설『율리아누스』에 서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Julian the Apostate)의 비범한 체 험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날이 질 무렵 나는 다시 태어나 동굴 밖으로 비틀거리 며 나왔다. 그때 그 일이 일어났다. 석양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빛에 의해 사로잡혔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에게 주어졌던 체험이 나에게도 주어졌다. 나는 일자(一者)를 보았다. 나는 태양에 흡수되었으며, 내 혈관에는 피가 아 니라 빛이 돌았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나는 창조의 근저 에 자리하는 단순함 그 자체를 보았다. 그것은 언어와 마 음을 넘어선 곳에 있기에 신의 도움 없이는 아는 게 불가 능하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명료했던지, 우리가 그것 의 일부인 것처럼 우리의 부분으로 항상 거기에 존재하는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여태껏 알지 못했는지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묘사가 자신의 체험을 기술한 것인지 혹은 상상력의 소 산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체험의 기술은 종교사에서 드물지 않다. 이른바‘신비적 합일(mystical union)’체험을 통해 인 간이‘궁극적 실재’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모든 종교 전통에서 빠짐없이 발견된다. 이 체험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신비주의(神秘主義, mysticism)’다.

신비주의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편으로 인간 종교 성을 규명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될 것이라 각광받기도 했 고, 이단 혹은 악마숭배 등으로 비난받기도 했다. 이 글에서 신비주의 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출발해 개념의 명확한 정의, 역사적인 전개 등을 살펴보고, 신비주의가 우리에게 어떤 의 미를 갖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을 참조. 「신비주의란 무엇인가?: 개념에 대한 오해와 유용성 중 심으로」, 『인문논총』71집, 2014]

209-4-1

신비주의 개념에 대한 여러 오해들

▶신비주의는 비합리주의 혹은 반이성주의다: 실증주의적 세계관은 형이상학적 세계관에 기초한 종교적 주장의 진리성, 특히 궁극적 실재를 포함한‘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을 강조 하는 신비주의에 회의적이다. 그러나 이성의 힘을 강조했던 피타고라스(Pythagoras), 플라톤(Plato), 플로티누스 (Plotinus) 등의 사상에 배어있는 신비적 성향을 고려할 때, 신비주의를 곧장 인간 합리성의 반대편에 위치 지우는 것은 성급하다. 종교사에는 루미(Rumi)와 같은 시적 감수성을 강 조한 신비가에서 플로티누스와 같은 지성적 유형에 이르는 폭 넓은 스펙트럼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비주의를 반이 성주의라고 결론내리기보다는 감정과 이성, 직관과 논리와 같 은 일견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극적 쌍을 통합하려는 움 직임으로 여길 필요가 있다.

▶신비주의는 초자연주의다: 신비주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을 강조하는 탓에‘초자연주의’와 동일한 개념으로 오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신비주의는 비물질적 차원이 인간에게 드러나는 여러 가지 초자연적 경험들뿐만 아니라, 보이는 차 원과 보이지 않는 차원, 자연과 초자연 등 일체의 이원성을 소 거시키는 경험을 최종 목표이자 핵심으로 제안한다. 즉, 신비 주의적 전통들이 계시, 채널링(channeling), 접신(接神), 유 체이탈, 초능력 등을 언급하지만, 이 현상들이 최종 지향점은 아니다. 환언하자면 신비적 합일 체험을 정점으로 여러 초자 연적인 경험들이 망라될 수 있지만, 그 최종 단계인 합일 체험 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다면 신비주의로 보기 어렵다. 다시 말해 계시, 채널링, 임사체험 등은 이원성이 완전히 소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비주의의 전체라 보기 곤란하다. 실제로 대부분의 신비주의 전통들은 궁극적 합일 체험을 제외한 여타 체험들에 무관심하거나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할 것을 조언한 다. 그러니 초자연적 현상이나 경험이 곧 신비주의의 전모라 고 간주하는 것은 신비가들의 주장과도 상충한다.

▶신비주의는 이단 혹은 나쁜 종교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의‘신비종교(mystery cult)’가 쇠퇴하면서, 신비주의는 서 구 종교에서 주변부로 밀려난다. 특히 기독교가 지배적인 위 치를 굳히면서 신비주의는 예전과 다른 취급을 받게 된다. 그 주된 이유는 인간이 신과 합일해 신성을 직접 알 수 있다는 주 장 때문이었다. 전통적인 기독교나 이슬람이 제시하는 사후 천국과 달리 신비주의는 신비적 합일 체험을 종교의 궁극적 목적으로 제안했던 것이다. 사후 구원을 역설하고, 신과 인간 사이의 건널 수 없는 심연을 설정하는 정통적 입장에서 신과 인간의 신비적 동일성을 강조한 신비가들은 의혹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 Eckhart), 마르게리 뜨 뽀레뜨(M. Porete), 아빌라의 데레사(Teresa of ´vila), A 십자가의 요한(John of Cross) 등 많은 신비가들이 이단으로 비난받았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

동서양의 교류가 본격화된 이후에는 유신론적 입장에 선 서 구 종교가 동양 종교를 폄하하기 위해 신비주의 개념을 적극 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신의 은총 없이 자력만으로 궁극적 실재와 합일할 수 있다는 동양 종교의 가르침이 교리적으로 위험하며, 인간의 합리성을 도외시하는 초자연주의적이라는 비판이었다. 또 수행자의 자력적 노력만을 강조한다는 이유로 동양 종교에 영향을 받은‘뉴 에이지(New Age)’를 비판하는 입장도 넓게는 여기에 속한다.

▶신비주의 개념은 편견을 숨기고 있다: 우선 신비주의 개 념이 서양에서 만들어진 탓에 동양 종교의 독특성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특히 불교의 입장에서 유일신을 궁극적 합일의 대상으로 제안하는 서구의 신비주의는 수용하기 어렵 다는 것이다. 예컨대 선불교는 서구적 신비주의에 해당하지 않 는다는 단언이 대표적이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신비주의 개념에 서양 중심주의가 숨겨져 있다는 비판도 존재 한다. 얀센(Jantzen)과 같은 학자는 신비주의 개념이 문화의 독특성을 간과하는 보편주의적 발상이라면서, 동일성을 찾겠 다는 시도가 서구적 유신론을 종교의 표준으로 삼아 차이를 도 외시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숨기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런 비판들은 결국 종교의 고유성과 독특성을 신비주의라 는 비교의 개념이 훼손할 수 있다는 염려를 반영한다. 물론 서 구가 근대에 다른 문명권에게 가졌던 제국주의적 편견을 반성 하자는 견해는 타당하지만, 그렇다고 동서양 종교를 비교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거나 신비주의 개념 자체에 문제가 있다 는 비판은 적절치 않다고 여겨진다. 이 단어가 서양에서 유래 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동서양 종교에는 이른바‘초월 체 험’이 가능하다는 믿음에 기초해 이를 목표로 삼는 흐름이 엄 연히 존재하는 데다, 이에 주목하자는 태도 자체가 차이를 간 과하려는 정치적 의도를 숨기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 다. 더구나 동서양의 교류가 어느 때보다 활발해진 현대에 종 교의 비교 작업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신비주의는 곧 비밀주의다: 대부분의 신비주의 전통은 수행법을 포함해 체험으로 얻게 되는 통찰을 비밀로 할 것을 엄격하게 요구했다. 비밀 엄수의 의무는 신비적 통찰을 과장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앎이 체험자를 포함해 주변인들에 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종교사에서 흔히 목격되듯 비범한 종교 체험은 체험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막 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니 비밀주의는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리스의 신비종교 전통이 입문자를 엄격하게 선발했던 점이 나, 유대교의 카발라 전통이 입문자를 불혹을 넘긴 기혼 남성 에 국한시켰다는 사실은 전통의 신중함을 잘 드러낸다. 그런 데 이처럼 비밀을 강조하는 태도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큰 오 해를 불러 일으켰다. 즉, 역사적 배경이나 종교적 차원의 고려 없이 신비주의가 곧바로 비밀주의로 간주된 것이다. 연예인들 의 대중 매체 기피나, 광고 기법의 하나인‘티저(teaser)’를 신비주의로 통칭하는 언론의 태도가 오해의 단적인 사례다.

신비주의의 역사적 전개

상술한 여러 오해는 신비주의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연유를 짐작할 수 있다. 신비주의의 연원은 고대 그 리스와 로마의‘신비종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본디‘미 스터리’라는 단어는‘눈이나 입을 가리다’라는 그리스 어‘무오(μυω)’에서 유래했고, 이는 곧 비밀 엄수를 의미 했다. 비밀스러운 지식을 핵심으로 삼는 신비종교는 입 문자들을 신중하게 골랐으며, 입문자는 배웠던 내용이 나 자신들의 경험을 외부인들에게 비밀로 지켜야만 했 다. 비밀을 유지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대단히 성공적이 어서, 신비종교의 구체적인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 그 전모는 오늘날에도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이런 측면이 바로 앞서 지적한 것처럼 신비주의가 비밀주의로 오인 되는 주된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고대 신비종교가 인간 영혼에 신적인 혹은 초 월적인 차원이 존재하고, 의식의 변형을 통해 이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핵심으로 삼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동시에 신비종교는 향정신성 약물의 사용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 신비주의가 초자연적인 혹은 엑스터시적 체험만을 추구하는 비합리적 종교로 비난받았던 것도 놀랍지 않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비종교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 교로 부각되면서 쇠퇴한다. 특히 확장 일로에 있던 기독교 에 맞서 고대의 신비종교를 부흥시키려던 로마 황제 율리 아누스의 시도가 실패하면서 신비종교는 그리스 철학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다. 이후 16세기까지는‘신비 적(mystical)’, ‘신비가(mystic)’와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지 만, 서구 종교사에서 신비가들은 의혹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신비가들의 비범한 삶의 태도와 종교적 주장이 찬탄 의 대상이 된 동시에 전통적 교리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 었기 때문이다. 특히 궁극적 실재와 인간 영혼의 동일성을 주 장하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비가들은 적지 않은 탄압을 받았 다. 이런 오해와 탄압은 신비주의를‘이단’과 결부시키게 된 이유가 되었다.

동서양의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신비주의는 다시 등장한다. 서구인들이 동양 종교를 접하면서 신비주의가 여러 종교를 비 교하는 개념으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신비주의는 강력 해진 유물론적 세계관에 맞서는 대항마로 각광받기도 했다.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 된 유물론은 종교적 세계관을 비합리적 이라 공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이를 대체하려 시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를 옹호하려던 일군의 사상가들은 인간 종 교성의 뿌리를 교리나 제도가 아닌 개인적 체험에 기초한 신 비주의에서 찾으려 노력했다. 교리, 경전, 의례가 아닌 개인의 종교적 감정과 체험에서 참된 종교성의 원천을 찾았던 슐라이 어마허(Schleiermacher), 성스러움의 개념에서 종교성을 재 발견하려 했던 루돌프 오토(R. Otto), 신비주의가 종교의 핵 심이라고 강조한 윌리엄 제임스(W. James) 등이 이 입장을 취했던 대표적인 사상가들이었다.

물론 신비주의적 보편성은 허구에 불과하며, 종교의 독특성 을 간과한다는 비판도 강력하게 등장했다. 궁극적 실재와의 합일이라는 체험을 입증하는 것도 어렵거니와 유의미한 비교 작업이란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여러 종교가 궁극 적 실재를 공(空), 도(道), 신(神), 천(天)과 같이 명백하게 다 르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하라는 것이다. 이런 비판 에 대해 포먼(Forman)은 발생 빈도가 더 높은‘순수 의식 경 험’개념을 제시하면서 문화적 맥락을 초월한 경험이 가능하 므로, 신비주의는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209-4-1-2

체험, 수행, 사상으로 구성된 신비주의

그렇다면 의미 있는 논의를 위한 신비주의의 개념 정의는 무엇일까. 필자는 신비주의의 필수 요소들에 초점을 맞추면 그 특징이 보다 잘 드러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신 비주의란“인간이 궁극적 실재와 합일되는 체험을 할 수 있으 며, 의식을 변화시키는 수행을 통해 체험을 의도적으로 추구 하고, 체험을 통해 얻어진 통찰에 기초해 궁극적 실재와 우주, 그리고 인간의 통합적 관계를 설명하는 사상으로 구성된 종교 전통”으로 정의될 수 있다. ‘체험, 수행, 사상’이 핵심적인 요 소라는 것이다.

우선‘신비 체험’은 합일 체험을 필두로, 보이지 않는 차원 이 직접 경험되는 여러 사건들을 뜻한다. 궁극적 실재나 존재 의 근원에 대한 직접적 앎을 주는 체험은 무어(Moore)가 주 장하듯 비전, 엑스터시, 관조, 합일과 같은‘변형 의식 상태’ 에서 가능하다. 인간 의식이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여러 상태 로 변화될 수 있는 일련의 흐름이라는 견해는 제임스 이후 종 교체험을 설명하는 이론적 틀이었다. 이 중에서도 궁극적 실 재와 인간이 완전히 하나가 된다는 신비적 합일 체험은 그 핵 심이다. 합일 체험을 통해 궁극적 실재 혹은 존재의 본성을 알 게 된다는 점에서 체험은 신비주의의 결정적인 요소다. 하지 만 체험이 주관적이라는 점과 그 앎이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 는 점은 신비주의의 근본적 딜레마다. 특히 앎의 내용이 언어 를 초월한다는 입장은 소통과 공유라는 점에서 신비주의의 입 지를 불가피하게 약화시킨다.

‘신비 수행’은 의식을 변형시켜 신비적 합일 체험을 얻으려는 다양한 기법을 의미한다. 모든 신비주의 전통 은 명상, 기도를 포함한 다양한 의식 변형 기법을 발전 시켰고, 그 기법은 향정신성 물질을 사용하는 방법, 호흡 조절과 같은 비약물적 방법으로 크게 나뉜다. 통상 신비 주의 전통은 중독과 같은 부작용 때문에 약물보다는 윤 리적 완성과 더불어 호흡과 같은 통제할 수 있는 기법들 을 더 선호했다. 라스키(Laski)는 의식을 변형시키는 요인들을‘방아쇠(trigger)’라고 불렀고, 명상, 만다라 (mandala), 기도, 호흡조절, 만트라(mantra), 약물, 마 취, 최면, 트라우마, 스트레스, 출산, 성행위, 미적 경험, 아름다운 경관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신비 수행을 통한 의식 변형 과정은 통상적으로‘집 중-비움-드러남’의 세 단계로 요약될 수 있다. 특정 어 구의 반복적 음송, 화두(話頭) 참구, 시각적 이미지의 활 용, 호흡을 세는 것 등은 마음을‘집중’시키는 행위이고, 이는 분별적 사고에서부터 자아 개념에 이르는 의식의 모든 내용을‘비우는’조건이다. 이처럼 능동적인 노력 을 통해 자신을 비우면, 일상적 의식에 가려져 있던 층위가 자연스럽게‘드러난다는’것이 수행의 원리이다. 그 점에서 신비 수행의 요체는 능동적으로 수동적이 되려는 역설적인 노력에 다름 아니다.

끝으로‘신비 사상’은 합일 체험에 수반되는 직관적인 통찰에 기초해, 궁극적 실재와 현상 세계의 관계, 궁극적 실재 와 인간 본성과의 관계, 수행법과 체험의 관계 등을 설명하는 이론 체계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교리와 같은 인간의 지성적 활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들이 모두 포함된다. 모든 신비주 의 전통은 신비 체험에 입각해 우주론, 인간론, 수행론과 같은 이론적 틀을 반드시 제시한다. 교리체계로도 표현되는 신비 사상은 수행과 체험이라는 주관적, 체험적 차원을 이론화시 킴으로써 타인과 소통하고 공유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신비주의, 존재의 신비를 엿보는 렌즈

신비주의라는 종교 전통은 존재한 적이 없다. 합일 체험을 가졌다는 신비가들의 삶과 사상이 신비주의라는 명칭으로 포 착되었을 따름이다. 신비가들은 치열한 수행 혹은 신의 은총 을 통해 궁극적 실재를 아는 체험을 했다고 주장하며, 그 체험 을 공유하기 위해 영감에 찬 시어(詩語)를 비롯해 사변적인 철학, 심지어 침묵에 이르는 다양한 방식을 채택했던 사람들 이었다. 또 궁극적 실재 앞에서 성별, 인종, 신분, 지식과 권력 과 같은 어떠한 인간적인 구별도 의미를 잃는다고 역설했다. 이 과정에서 교리보다 체험을 강조한 탓에 배척당하고 목숨을 잃기도 했다. 요컨대 신비가들은 신비적 합일 체험을 통해 인 간과 신, 보이는 차원과 보이지 않는 차원의 관계를‘근본적으 로(radically)’재규정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급진성은 숱한 스캔들로 이어졌다. 그러니 신비가들은 인간과 존재의 신비를 엿보게 만드는 화두와도 같다. 바로 이런 연유로 인해 우리는 여전히 신비주의에 주목해야만 한다.

성해영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교수

*그림설명 및 출처

그림1.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성녀 데레사의 엑 스터시(Ecstasy of St. Theresa)>(1647~1652)   ⓒWikimedia Commons

그림2. 힌두의 만다라. 만다라는 종교 의례나 명상 시에 사용하는 상징적인 그림이다.  ⓒPhotograph courtesy Drepung Gomang sacred art tour group

작성자: khugnews

이글 공유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