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호 인터뷰: 임흥순 예술가] 사회의 어둠을 비추는 대안의 예술가

미술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임흥순은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원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제주 4·3을 다룬 <비념>(2012)을 통해 새로운 다큐멘터리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위로공단>(2014/2015)으로 지난 5월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미술과 영화의 표현 양식을 접목시킨 독자적 활로를 가진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에서 쏟아지고 있는 8월 25일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에서 임흥순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 세계와 인생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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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영화 <위로공단>(2014/2015)

Q.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시고 주목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많이 바쁘시죠?
네, 많이 바쁩니다. 상의 효과가 큰 것 같습니다. 은사자상은 상금은 없고, 명예입니다. 2~30대, 젊었을 때 상을 받았으면 뭔가 가슴이 부풀고 그랬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은‘조금 더 다른 미술, 다른 영화의 대안을 내가 만들어야 되겠구나’이런 고민을 하지만, 그건 언제나 해왔던 고민이기 때문에…. 만들어 가면 될 것 같습니다. 수상은‘또 다른 사례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지지 또는 응원이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데 더 좋을 것 같기는 합니다.

Q. 노동의 의미에 관한 생각 없이 <위로공단>을 보았습니다. 영화의 내용이나 영상이 현실에서일어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무서웠는데요.

그것은 개인차죠. 그것도 극복해야지. <위로공단>이 그 무서운 사회에 대한 일종의 치료제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알아야지 대처도 할 수 있지요. 현실을 알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은 다르잖아요. 전혀 모르는 것을 맞닥뜨리는 것보다는 말이죠. 그런 차원에서의 예방주사라고 생각하시고 딱 받아들이면 됩니다.

사회를 볼 때 각자 다 다르게 보잖아요, 다양하게 보기도 하고. 고마워하는 대상도 있고, 미안해하는 감정도 있는데, 저는 너무 모른 체하고, 고마운데 고맙다고 얘기하지 못하고, 미안한데도 미안하다고 얘기하지 못하는 것이 좋지 않게 느껴집니다.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드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서로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고마우면 고맙다고 한마디 하는 게 어떤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많이 하면서, 서로 이해하면서, 뭔가 조금 따뜻하게 만들어 가면 좋겠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물론 노동을 대하는 공포를 보여주고 싶은 부분도 있었죠. 우리가 왜 노동을 이렇게 무섭게 대할까? 두려워할까? 그럼 나는 누구지? 뭐 이런 생각. 너무 무서워하지 마시고, 이게 현실이니까요. 이번 작품만이 아니에요. 현실은 두렵고, 무섭고, 불편하고 그래요. 예전에는 그래서 세상의 어두움을 들추어내는 작업들을 했었다면, 지금은 이렇게 어두운 곳을 비추는 작품을 합니다.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하고 싶은 부분을 함께 보는 것이죠. 보신 분들이 각자의 생활과 직업 속에서 불편한 현실을 바꾸어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가

Q. 이력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비주얼 아티스트, 공공미술 작가, 설치미술 작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본인을 어떻게 규정하십니까?

제가 규정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규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요. 그것은 지금 이 사회가 규정해 놓은 것입니다. 미술가든, 영화감독이든 말입니다저는 미술을 하고, 영화를 찍고, 그 영화가 개봉을 하고, 현재 영화라는 장르를 하고는 있지만, 저는 경계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사람은 어쨌든 경계를 흩트려 놓는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왜 노동자세요, 노동자가 아니세요? 또는 영화감독이세요, 아니면 작가세요? 이러한 질문들을 사람들에게 만들어 주는 것이죠. 그런 것들이 사람들에게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Q. “여성적인 문법을 쓰는 감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금천미세스’라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도 그렇고, 영화 <위로공단>도 그렇고, 여성들과 작업을 많이 하셨는데요. 특별히 여성에 주목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작업이라는 것은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거든요. 본인 안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사회를 통해서 자신을 찾아가는 거죠. 가족, 아버지, 그러니까 저의 뿌리인 가족을 통해서 나를 보기도 하고, 아버지 세대의 다른 아버지를 통해서 나의 남성성을 찾기도 하고, 그러면서 베트남 참전 군인들을 찾아가기도 했죠. 그렇게 하면서도 풀리지 않는 것들, 일종의 대안, 희망이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게 찾다 보니까 여성적인 생각, 시각, 시선이었던 거예요.

사회라는 것이 남자들이 만들어 온 중심세계가 한 축을 이룬다면 또 다른 한 축은 여성이 이루어 주변세계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그게 뭘까? 이런 고민들을 하는 거죠. 한 가지 예로 제주도에서는 유교 중심의 남성사회, 무교중심의 여성사회로 분리가 된 것 같거든요. 상하개념이 아닌 동등한 관계. 이것을 육지로 옮겼을 때 그게 뭘까? 그게 마음, 마음 같다는 생각을 했죠. 문자나, 이미지 등 보이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일종의 영속적인 느낌이죠. 그런 것들을 작업화하고 싶은 거였죠. 말로는 이야기를 못하지만 지지해 주는 것, 믿어 주는 것,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자식에 대한 신뢰, 믿음, 잘할 수 있을거야. 그런 것이 저는 사회의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런 것들을 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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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부터, 기본적인 것부터

Q. 보지 못했던 것들, 일상, 이런 것에 주목하고 계시는 것같습니다. “나는 투쟁 현장보다 일상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일상이 실질적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투쟁 현장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가요? 

사람마다 다 다르잖아요. 다 그래야 될 필요도 없고. 앞에 나와서 투쟁적으로 삶에서든, 현장에서든, 또 시위 현장에서든 정말 당연히,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분들의 가치나 의미는 크죠. 그런데 또 다르게 활동하는 사람들도 필요해요. 다 그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또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를 100명이라고 했을 때, 한 10명은 찬성을 하고, 또 다른 10명은 반대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대다수의 80명은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게 저희 아버지, 어머니라고생각을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그것이 일종의 체념일 수도 있고. 하지만 복종이나 포기하고는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포기를 하면서도 또 이어오는 게 있으니까요. 혁명과 분노, 이런 것을 폭발시켜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고 생각을 합니다. 혁명이라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이루어졌으며, 얼마나 성공적이었을까요? 대부분 실패가 많았잖아요. 실패가 두렵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회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생활 속의 80퍼센트는 대부분그런 분들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이야기한 체념이라는 것은, 약간은 순응하면서 만들어 갈 수 있는, 작은 것에서부터 다르게 변화시킬 수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더 큰 변화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순간의 변화보다는 자기가 생활하면서 느껴지는 삶 속에서 자식들에게 교육으로, 남편과 부인 사이의 어떤
신뢰와 같은, 이러한 더 중요한 어떤 진보적인 가치들을 더 만들어 가고, 이것을 부부와 가족 사이에서 지켜 나간다면, 자식들은 그것을 지켜볼 것이고, 또 다른 친구들에게도 말을 할 것이고…. 그렇게 작은 실천들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Q.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비념>의“한국은 사람이 못사는 데야, 한국일랑 들어가지 마라, 한국이 제일 나쁜 데야”, <위로공단>의 “박근혜 대통령의말 중에서 성실히 일한 자들에게는 기회를 주겠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으면 아직도 떨려요. 노동자 중에 성실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요”라는 말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작가님이 보시는 한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비슷하지 않나요? 생각하는 게. 그분들 이야기하고 비슷한 거죠. 한국뿐만이 아니고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한국만 굉장히 특별난 건 아닌데 말이죠. 졸부라고 하죠. 여기에 살면서, 태어나고 자라고 겪으면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사람들을 보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예의 없고, 어떻게 보면또 거만하고,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게 위계관계로 되어 있죠. 돈으로 사람의 위계를 만들어 버리는 게 있잖아요. 돈하고, 지위 같은 것으로. 그런데 그게 좀 심한 것 같습니다. 근대 사회라는 것이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이삼백 년에 걸쳐서 서서히 변화되고 발전한 것이 한국 사회에는 오십 년 만에 만들어진 거잖아요. 그랬을 때, 어떤 문화나 문화적 마인드가 전혀 없으니까 그냥 돈, 돈으로만 일단 어떻게 하자, 그런 느낌이 드는 거죠. 그게 큰 문제입니다.

이제부터는 그런 소양이나 교양, 사람을 대하는 아주 기본적인 예의,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문화 예술이 할 수 있는 부분 중의 하나이고, 이제 그것들 하나하나를 이야기하고 싶죠. 저는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예를 들어 청소하시는 분들 같은 경우도, 한번 태어난 인생인데 똑같이 소중하다고 생각을 해요. 물론 그것에 대한 다른 지점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그런 것들을 똑같이 보고 싶은 거죠. 사람들이 그렇게 좀 생각을 한다면, 나쁜 일들이 조금 덜 일어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했죠.

Q. 그러면 작가님이 하시는 미술이라든가 예술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예를 들어 제주 4·3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주 4·3 전에 누가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어요? 삼만 명이나 죽을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겠죠.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로 내일 당장 전쟁이 터지면 수백만 명이 죽을 수도 있는 것이죠. 그것은 모르는 일입니다. 예술이라는 것

은, 그런 것에 대한 징후로서, 앞으로 일어날 것들에 대해 대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술가가 혹은 예술이 조금 더 섬세하고, 예민하게, 뭔가 자꾸 미리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개미나 곤충들이 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움직이는 것들과 같은 행위입니다. 예술가들은 감각이 조금 더 예민하기 때문에 사회를 감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소설이든, 영화든, 미술이든. 그래서 예술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제가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중요한 거죠. 그러니까 제대로 바뀌든, 안 바뀌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좋든, 안 좋든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되면 되는 대로 지금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대학원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자기가 잘하는 것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의 직업이나 일이 아니고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끌리는 것,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남이 인정 해주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인정할 수 있는 일, 그런 것들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조금씩 실천해 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그런 사람이 되어 있는 거죠. 누구나 자신이 꿈꾸는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저는 자기성찰과 용기가 동반된다면 그 꿈들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담·정리 : 송영은│lovericki@khu.ac.kr
사 진 : 황정환│delijh@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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