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호 인문학술2: 지젝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사회적 국가가 어쨌다구? 지젝의 공산주의론 비판

208-05-1-1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1949~) ⓒgukgetxo.com

 

공산주의 이외에는 어떠한 답도 답이 아니다?

 

지젝은 어떤 사상가인가? 분명한 것은 오늘날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학자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지젝은 라깡 정신분석을 바탕으로 헤겔(독일관념론 철학), 유대-기독교 전통, 맑스-레닌주의를 종합한 사상가라고 평가되었다. (지젝 애호가들 중에는 필자가 지젝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면서 지젝을 단순화시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지면이 많지 않으므로 단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지젝은 다양한 전통을 자신의 논의에 끌어들였지만 많은 지젝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이것들을 종합하는 데 결코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지젝은 중요한 사상적 전통을 종합했다는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부각시키는 데 성공한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바로 이것이 지젝의 진정한 능력이다!) 하지만 지젝의 사상 원용 방식은 지극히 자의적일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그것들을 맑스-레닌주의적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종속시키고자 노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차적 관점』에서는 심지어 다른 저서에서는 단지 암시적으로만 긍정하던 스탈린주의를 명시적으로 옹호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스탈린주의자이기도 하다.

어쨌든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젝은 근본적으로 정치철학자라는 것이다. 정치철학자이기 때문에 지젝이 문제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진정으로 유능한 정치철학자를 필요로 한다. 다행히 최근에 피케티와 같은 탁월한 정치경제학자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무척 위안이 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지젝은 『낙원에서의 곤경(Trouble in Paradise)』이라는 책에서 피케티의 대안을 철저히 거부하고 공산주의만이 유일한 답이라는 매우 관념론적인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천 페이지나 되는 『21세기 자본』은 물론 그동안 쓴 다른 저서나 논문들을 통해 이미 피케티의 정치경제학은 스티글리츠나 폴 그루그먼 등 탁월한 진보적 경제학자들도 경탄해 마지않는 대단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피케티는 분배 문제를 마침내 경제학의 중심으로 복원시킨 탁월한 경제학자다. 그런데 『낙원에서의 곤경(Trouble in Paradise)』에서 지젝의 피케티 비판은 고작 몇 페이지도 되지 않는다. 진지한 정치경제학적 논의 없이, 지젝은 피케티처럼 분배문제로 접근하면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공산주의라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뻔한 비판으로 독자들을 이끌어 간다. 사실 피케티에 대한 이러한 식의 비판은 지젝 책을 많이 읽은 독자들에게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지젝주의자라면 당연히 그가 피케티를 그렇게 비판할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이외에는 어떠한 답도 답이 아니라고 말이다. 이미 오래 전에 지젝은 롤즈의 ‘정의론’에 대해서도 유사한 비판을 행한 바 있다.

 

대안없는 대안 이론

 

필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바로 이것이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은 오직 공산주의밖에 없다는 지젝식의 이분법은 오늘날 심각한 불평등 상황을 교정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피케티나 롤즈와 같은 매우 진보적이며 동시에 탁월한 정치경제학자나 정치철학자를 아주 싫어한다는 점에서 지젝은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진정한 동맹자이다. 피케티의 책이 출간된 이후 맑스주의자들도 피케티의 ‘사회적 국가론’ 또는 ‘복지국가론’을 엄청나게 비판했다. 그 비판의 핵심적 내용 중 하나가 피케티의 이론 속에는 엄밀한 자본 개념이 없다는 것인데, 이러한 비판은 놀랍게도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자들도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자들은 불평등을 옹호하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있고 맑스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자는 목적을 갖고 있을 터이지만, 결국에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진지하고 이론적인 노력을 ‘가장 나쁜 이론’으로 만드는 데에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누진적 과세를 통해 자본을 통제하고 더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아주 모범적으로 서유럽과 북유럽에 유지되었던) 사회적 국가 또는 복지국가 체제를 다시 구축하자는 대안을 철저히 무시한다면 과연 어떤 더 평등한 체계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신)자유주의의 대안은 공산주의밖에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젝은 엄청나게 많은 글을 쓰고 있는데 이러한 논의를 여기에서 일일이 다 논평할 수는 없으므로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의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그 책에서 지젝은 오늘날 사람들이 ‘자유주의(또는 민주주의) 대 전체주의’라는 이분법 속에 빠져 있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한다. 자유주의가 아니면 전체주의라고 믿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신)자유주의를 택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지젝의 대안은 다음과 같다. 항상 그렇듯이 지젝의 주장은 분명하며 동시에 매우 궤변적이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를 중시하는 체제 같지만 사실상 전체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어차피 같은 전체주의라면 자유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라는 전체주의를 채택하자는 것이다.

 

지젝의 헤겔 수용

 

지젝의 이러한 논의가 얼마나 논리적으로 그리고 이론적으로 설득력이 없으며, 잘못된 이분법에 빠져 있는지를 우리는 금방 느낄 수 있다. 스스로 주장하듯이 지젝이 진정한 헤겔주의자라면 그는 자유주의도 전체주의도 아닌, 즉 민주적인 방식으로 자본을 통제하는 ‘변증법적 종합’의 단계가 있다는 것을 말했어야만 했다. 말이 나온 김에 지젝의 헤겔 수용의 문제점에 대해서 언급해보자. 헤겔 전문가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지젝의 헤겔에 대한 설명은 매우 단편적이었다. 이러한 한계를 스스로 의식했는지(그리고 아마도 그가 공산주의로 선회할 때 사실상 가장 많이 의존한 바디우에 대한 ‘질투’ 때문에) 지젝은 최근에 『헤겔 레스토랑』에서 헤겔에 대해 체계적인 서술을 시도했다. 필자는 『헤겔 레스토랑』에서의 헤겔에 대한 설명이 그가 여태껏 헤겔에 대해 서술한 것 중 가장 체계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지젝이 그 책에서 헤겔에 대해 쓸 때 독일의 가장 뛰어난 헤겔 전문가 중 하나인 디터 헨리히(Dieter Henrich)의 『칸트와 헤겔 사이(Between Kant and Hegel)』의 논의를 쭉 따라가면서 헤겔에 대해 서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헤겔 레스토랑』에서 헤겔에 대해 그렇게 잘 서술하던 지젝이, 국가 이론을 다룬 헤겔의 『법철학』에 대해 언급할 때에는 완전히 『법철학』의 문외한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왜 ‘헤겔 전문가’ 지젝이 국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말꼬리를 슬쩍 흐리고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자유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일까? 그것은 복지적 개입을 주장하는 헤겔의 ‘국가론’을 결코 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국가의 개입을 싫어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자와 공산주의자는 다시 한 번 일치한다는 것이다. 지젝은 전체주의를 옹호한다고 말하면서 사회적 국가(복지국가)라는 ‘전체주의’는 왜 싫어하는 것일까? 왜 국가에 의한 자본통제,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국가를 주장하는 피케티를 지젝은 그토록 비판하는 것일까? 아마도 전체주의적이지 않는 민주적 사회국가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공산주의자들은 가장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지젝이 디터 헨리히의 책을 요약해서 『헤겔 레스토랑』에서 헤겔에 대해 기술한 것은 매우 증상적이다. 디터 헨리히는 헤겔 전문가이기는 하지만 매우 보수적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사회적 국가를 이야기하는 헤겔의 『법철학』의 정치철학적 의미에 대해서는 그다지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지젝은 국가 부분에 대해서 보수주의자인 디터 헨리히와 입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지젝의 잘못된 이분법은 민주주의의 회복과 불평등의 극복을 위해 방해가 될 뿐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언급하면서 지면상 다소 거칠 수밖에 없었던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지젝 뿐만 아니라 (소위 진보적이라고 평가되는) 다른 철학자들에게도 거의 항상 발견되는 이러한 잘못된 이분법을 극복하는 것이 오늘날 철학과 인문학의 진정한 과제가 될 것이다.

홍준기 | 프로이트 라깡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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