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호 기획: 공소시효] 살인죄 공소시효에 관한 소고

범죄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종료될 경우 범죄자는 향후 처벌 가능성에서 벗어나게 되며, 수사기관은 수사를 더 이상 진척시킬 수 없다. 이에 대해 피해자의 가족들은 범인을 잡지 못해 계속 고통을 받는다. 최근,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었으며 이를 위한 법률안(일명 태완이법)이 발의되었다. 이에 본보에서는 공소시효제도의 존재 이유,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의 필요성 등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08-3-1-1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일명 ‘태완이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길 희망했던 지난 5월 20일이 지났지만 기대했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태완이법은1999년 5월 20일 대구 동구 효목동의 한 골목길에서 누군가로부터 ‘황산 테러’를 당한지 49일 만에 숨진 태완군(당시 6세) 사건이 영구미제로 남게 될 위기에 처하자 발의(서영교 의원)된 법안이다. 이는 지난해 이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구법 15년)가 다가오면서 시효를 없애자는 여론 형성에 힘입은 바 크다. 이와 더불어 최근 태완군 가족이 온라인에서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청원하는 운동을 벌이게 되면서 살인죄 공소시효 문제가 또다시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살인 등 강력범죄만큼은 시효로 도피하지 못하도록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공소시효제도란?

공소시효제도란 범죄행위가 종료된 후 검사가 일정 기간 공소를 제기하지 않고 형사사건을 방치하는 경우에 국가의 형벌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공소시효제도가 형사법상 다른 제도와 구별되는 것은 국가의 형벌권을 근거 짓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형벌권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제(또는 제한)’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국가의 형벌권을 시간적인 한계에 구속시켜 놓은 것이 바로 공소시효제도인 것이다. 따라서 공소시효는 국가에게는 범죄자에 대한 형벌권 행사를 방해하는 시간적 ‘장애물’로 작용하는 반면, 범죄자에게는 시간을 통한 도피로써 사법적 ‘면죄부’를 얻을 수 있는 지하통로인 셈이다.

우리나라 공소시효의 기간

현행 형사소송법은 제249조에서 일정기간의 경과로 공소시효가 완성된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 기간은 법정형의 경중에 따라 달리 정해져 있다. 그간 공소시효는 그 기간이 지나치게 짧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지난 2007년 12월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사형에 해당하는 살인죄에 대해 15년에서 25년으로 그 기간을 연장하였다. 그러나 법 개정 이전에 발생한 범죄에 대해서는 종전의 규정을 적용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태완군 사건의 공소시효 기간은 여전히 15년에 머물러 있다. 한편, 이러한 공소시효 기간은 그간 모든 범죄에 전면적·일률적으로 적용되어 사실상 예외가 인정되지 않았다. 최근에 들어서 비로소 특별법 형태로 공소시효의 특례제도를 마련하여 형사소송법상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으로 13세 미만의 여자 및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있는 여자에 대한 강간죄와 준강간죄 등의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아동·장애인 대상 강간죄보다 더 중대한 인권침해를 수반하는 살인죄에 대해서도 공소시효를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공소시효제도의 존재 이유

그러면 왜 시간의 흐름을 이처럼 국가의 형벌권(또는 형사 소추권)과 결부시켜 놓은 공소시효제도를 두고 있는가? 공소시효제도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일반적으로 열거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범행 후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숨어 지내면서 겪은 형벌에 대한 두려움과 심리적인 고통은 사실상 형벌을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고, 사회적 응보감정도 약화되어 더 이상 형벌부과의 실익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오랜 세월이 경과되어 범행 당시의 범죄인이 아닌 이미 달라진 인격체로서의 범죄인에 대하여 사실상의 현재 생활상태를 붕괴시키는 형벌권 행사로써 법적 안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범행 후 시간에 흐름에 따른증거력 약화로 인하여 범죄 사실을 증명하기 어렵고 그로 인해 자칫 오판의 위험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공소시효제도는 이러한 사유들 가운데 어느 하나만이 아니라 이것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제도라고 하겠다.

제도와 현실 간의 간극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우선,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등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지닌 범죄자의 등장으로 인해 공소시효의 존재 이유로서 사실상의 형벌효과는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또한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로 인한 피해가 원상회복되지도 않을 뿐더러 국가가 형벌을 부과하는 전체 의미가 사회구성원의 응보나 범죄자의 내면상태에만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형벌이 주어지는 것은 범죄행위를 했기 때문이며, 처벌 당시 범죄자의 인격은 형벌 그 자체의 관심이 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타 범죄와는 달리 살인 등 반인륜적 흉악범죄는 공소시효제도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극히 충격적이고 심각한 범죄’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까지 법적 안정성 침해를 우려하여 형벌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공소시효를 통해서 ‘불법의 안정성’만을 보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가 스스로 형벌부과의 권한과 의무를 포기하는 것일 뿐이다.

바로 이 점에서 선진국들에서는 일찌감치 살인죄 등 일부 중대범죄에 대해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하여 법적 안정성보다는 범인필벌을 통한 정의의 회복을 더 고려하고 있다. 예컨대 영국, 미국 등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살인 등 중대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독일에서는 1979년 형법을 개정하면서 살해욕구 등 비열한 동기에 의한 살인, 잔인한 방법에 의한 살인 등 모살죄(謀殺罪)에 대해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다. 일본도 2010년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살인 등 법정형이 사형인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과학기술의 발달로 증거력 약화의 문제도 시간의 힘을 극복하게 되었다. DNA 감정을 통한 개인식별 기술과 증거물을 장기간 안전하고 체계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제는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공소시효제도에 적극 반영해야 할 때가 되었다. 실제로「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는 이미 일부 범죄에 대해 DNA 증거 등 과학적 증거가 있을 경우에 공소시효를 10년 연장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살인죄 관련 공소시효 폐지

우리나라도 이제 살인죄에 한해 공소시효 폐지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의 지적처럼 공소시효의 적용 범위와 기간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의 문제는 국민의 법 감정 등을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할 입법 정책의 문제이다. 이미 살인죄의 공소시효 폐지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이를 반영한 법안이 국회에 여러 건 제출된 상태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회 차원에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영화 <도가니>처럼 열광할 만한 결정적 계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그 때문에 정치권이 특별히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문제에 대한 상징적 대응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그렇지만 살인죄의 공소시효 문제는 단순히 법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범죄로부터의 안전을 보장해야 할 국가가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이다. 때문에 이 문제를 방치해 둔다는 것은 국가가 범죄피해를 입은 시민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 점을 깊이 인식한다면 정부와 국회가 이 문제에 대해 마냥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의 부정적 측면

다만,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살인죄 공소시효의 폐지는 곧 국가의 형벌권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범죄자에게 ‘영원히 용서치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측면과 동시에 자칫 무고한 시민이 평생 범죄의심자로 낙인찍힌 채 살아가야 할 위험도 내재되어 있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이 희미해지는 등 피의자가 방어권을 행사할 여지도 그만큼 좁아지게 된다. 한편 수사기관은 공소시효가 없는 범죄의 장기미제사건에 대해서도 현안사건과 같은 지속적인 수사력을 투입해야 한다. 문제는 범죄수사에 투입할 수사기관의 인적·물적 자원이 한정된 관계로 수사력 분산, 그리고 자칫 현재의 범죄위험으로부터 시민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의 경우 그에 대응하는 수사 체제 개편과 더불어, 수사의 장기화에 따른 피의자의 불안한 지위가 부당하게 계속되지 않도록 피의자의 방어권과 변호권을 보장해 주는 방안도 적극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황 문 규 / 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그림 설명 및 출처

<그림 1>: 대구 황산테러 사건 피해자의 어머니가 지난해에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biz.chosun.com)

작성자: khugnews

이글 공유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