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호 대담] 대학원생 인권, 단기적 해결보다 장기적 관점으로

송재룡 대학원장 / 박진홍 서울 총학생회장

 

작년 말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가 실시한 전국 단위 대학교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조사>를 통해 대학원생의 인권과 연구 환경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본교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다양한 후속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러한 관심도 이전처럼 곧 사그라들 것이라는 불안한 인식도 함께 존재한다. 이에 본보는 총 2부에 걸쳐 대학원생 인권 문제의 발생 원인과 해결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대학원생의 연구환경 실태를 짚어보고자 한다. 먼저 송재룡 대학원장과 박진홍 서울 총학 학생회장을 만나 대학원생의 인권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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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공유

 

Q. 대학원생 인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송재룡 대학원장(이하 송재룡): 최근 본교에서 발간한『경희대학교 대학원 연구공동체의 인권향상 방안』을 보면 응답자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대학원생들이 부당처우를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고 보면 대학원생을 직간접적으로 부당하게 처우한 교수님들에게 먼저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그 관련 교수님들 중 일부 혹은 상당수가 본인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못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대학원생의 인권 문제를 개인적 의식 차원에서만이 아닌 대학 공동체의 문화정서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함을 말해줍니다. 일종의 집합적 단위의 문화정서적 경향은 개인의 의지 및 정서를 초월해 작동하기도 합니다. 집단주의, 장유유서와 같은 우리의 문화, 스승의 절대적 권위가 인정되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놓이면 대학원생의 인권 사안들이 소홀해지고, 문제가 제기되더라도 교권을 주장하면서 무마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학생인권-교권의 담론적 환경에서 지속해서 대학원생의 인권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진홍 서울 총학생회장(이하 박진홍): 대학원이라는 울타리 밖에서는 모두 같은 시민입니다.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는 대학원과 학계에 진입하면서 형성되는데요. 내부의 분위기와 환경, 이것들이 관계를 조직하고 지위에 따른 행동과 마음가짐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혹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지금도 부당처우를 받고 있는 다양한 사례들은 모두 문화적인 토대 위에서 발현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Q.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부당처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지 않을까요?

송재룡: 지금과 같은 토양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 문제를 제기해봤자 변화는 없을 것이다” 라든지, “ 저 분이 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으니까” 이렇게 치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부정적인 문화정서적 담론이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발적으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 있죠.

박진홍: 네, 맞습니다. 또한, 정문만 통과하면 마치 서발턴의 습속을 내재화하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쉽사리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거죠. “ 조금만 참으면 된다”, “ 모두가 감내해왔던 길이다”. 그렇게 스스로 치부해버리면 마음이 오히려 편할 수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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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인 담론의 변화 속에서 구체적인 방안이 도출돼야

 

Q. 대학원생의 인권 문제를 담론의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단기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듯 합니다.

송재룡: 네. 지금까지 문제가 지속돼 왔는데 어떻게 쉽게 변화하겠습니까?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대학(원) 공동체의 담론을 변화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됩니다. 이 문제가 심각한 사안이라는 점을 대학원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동의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야 합니다. 인권 문제가 발생했다고 즉각적으로 일회적 해결책을 처방하면 그 효과는 미미할 것이고 관심과 집중도 금방 사그라들 것 입니다. 다행히 대학원생의 인권 문제에 대해 교수님들도 공감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입니다.

박진홍: 저도 최소 1년에서 2년 동안은 인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총학생회장 취임 직후, 대학원생의 인권 문제에 직면해서 총학생회 단독으로 일을 추진하고자 했습니다. 처음이었기 때문에 의욕적이었죠. 그런데 저희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우리끼리 해서 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원생들 중 관심 없는 사람도 있었고, 계열별로도 편차가 심했습니다 .

 

Q. 학교 당국은 대학원생의 인권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송재룡: 우선 총장 주재 회의에서도 언급됐고, 부총장 연석회의에서도 논의된 바 있습니다. 교수의회 의장단과도 논의를 가졌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실행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원생들과 직접 맞닿아 있는 모든 교수님이 함께 행동해줘야 합니다. 학장·부서장 회의에서 논의는 됐지만, 아직 모든 교수님들께 충분하고 깊이 있게 전달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시작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박진홍: 이 구조 안에서는 학생들만이 아니라 교수님들, 학교의 직위를 담당하신 분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다행히 대학원장님, 총장님이 대학원생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Q. 담론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학교에서 인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가시적인 계획이 논의되면 원생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까 싶은데요. 

송재룡: 저는 대학원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형식의 공동 선언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단순히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언이라는 상징적 장치를 통해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문제의 심각성에 지속해서 관심을 갖게 하자는 것이죠. 또한, 학기별로 대학원생과 교수 간 열린 토론을 개최하고자 합니다. 함께 모여서 조금씩 인식의 차이를 줄여나가고, 이를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알리자는 것입니다. 전공 분야마다 교수와 학생 간 상호작용 및 소통 빈도의 차이가 있고, 따라서 각기 다른 유형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컨대 단순하게 말하면 실험·실습을 위주로 하는 전공 영역에서는 양자 간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더 밀접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경우 그 밀접함과 친밀함 속에서 자칫 인권 문제가 왜곡되어 묻혀질 수도, 또는 과장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므로 계열별로 학생-교수가 참여하는 열린 토론을 진행해 자칫 서로 간의 관계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좁혀나감과 동시에 대학원생의 인권 문제가 중요한 이슈임을 공론화할 것입니다.

박진홍: 최근 여러 대학에서 아직 가시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인권 센터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우리학교도 대학원생의 생활을 전담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송재룡: 모두가 쉽게 다가올 수 있는 친근한 공간이면 좋을 것 같네요. 학교에서‘뭐 좀 한다’고 하면서 참여하라고 하면 학생 입장에서는 쉽게 오기 힘들죠. 기왕이면 명칭도 인권 센터말고 다른 것으로 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신경정신과에 치료를 받으러 간다고 하면, 이를 보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몰아버리는 일종의 낙인 효과(stigma effect)가 있잖아요.

박진홍: ‘대나무 숲’같은 명칭을 붙이면 좋을 것 같아요. 원생들이 편하게 와서 이야기할 수 있고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이면 좋겠습니다. 다른 학교에서 만든다고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송재룡: 또한, 사안이나 사건 별 피해 사례 각각에 맞는 대처방안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전까지는 문제를 제기한다 하더라도 결실이 없고 오히려 본인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의식과 더불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방법도 없었을 겁니다. 그러므로 사안에 따른 구체적인 방법을 세워야 합니다. 이를‘매뉴얼’로 구체화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기된 문제에 따라 해결의 절차를 명시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제기했을 때 해결돼 나가는 구체적인 과정이 보이기 시작하면 기존에 원생들이 공유하던 부정적 담론들도 점차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아는 바에 의하면, 일부 외국 대학들은 그러한 매뉴얼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매뉴얼에는 한국 대학 문화의 독특한 성격도 함께 고려돼야 하겠죠. 그러나 단기간에 매뉴얼이 완성되진 않을 것입니다. 제 임기 동안 해나갈 것이고, 그 다음에도 계속해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사회적 위치로부터 자유로워지길

 

Q. 대학원생을 위한 조치들을 생각하신 것 같은데요. 반면 교수의 권위에 대한 제한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교수의 권위는 일종의 성역화된 느낌이 있습니다만.

송재룡: 지금까지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혹은 책임 소이가 적거나 불분명하다는 핑계로, 불거졌던 문제들이 유야무야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이건 간에 자신의 권위와 권한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교수 사회도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미래의 지성을 가르치는 일은 분명 훌륭한 일이고, 교수라는 지위에 기대되는 역할의 수행이 중요하다는 것도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교수’에게 특권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에 걸맞은 높은 책무의식을 가져야 하고, 과거의 비합리적인 것들을 시대에 따라 스스로 통찰하면서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총학생회는 대학원생의 인권 문제에 대해 향후 어떤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박진홍: 앞서 말씀드렸듯이, 처음 총학생회장에 취임하면서 스스로 많은 부분을 개혁하는 데 앞장 설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실제 취임 이후에 총학생회의 의지와 역량만으로 이 사안에 맞설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대신 저희의 역할은 총장님, 교수님들, 학교 관계자와 원생 간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즉, 최소한의 문화 및 담론 전환을 이루기 위한 최대한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계열 별로 편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관심을 갖는 원생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원생도 있습니다. 알릴 기회가 있다면 지속해서 알리도록 노력해서 원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대학원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요?

박진홍: 문화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선행함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가 저를 포함한 우리 원생들이 스스로의 의식 차원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교수님들의 역할은 학문적인 가르침과 지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학술적인 부분 그 이상의 다른 것들에 매여 있다면 우리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부터 비상식에서 벗어나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의 지성인으로서, 과거의 도제 관계와 유착관계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새로운 상식을 정착시키는 첫 세대가 바로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송재룡: 대학원도 하나의 공동체라는 점에서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이 학문 공동체의 구성원인 우리 모두는 좀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며 그것을 실현해가는 과정에 놓인 사람들입니다. 다만, 현실적인 상황에 학문의 목표가 종속되어 순수한 학인(學人)의 모습이 없어져가는 부분이 아쉽습니다. 모든 원생에게 학문에 집중하는 모습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학문에 깊이 있게 천착하는 과정에서 좀 더 학문 연구를 이어갈지, 아니면 사회적 실천의 영역에서 세상의 발전에 기여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문에 깊이 있게 파고드는 열정을 살리십시오. 대학원 기간만큼은 좀 더 순수한 열정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현실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부단히 학문을 연마해 문화세계의 창조를 실현할 수 있길 바랍니다.

 

대담·정리 : 이진수│geoleejs@khu.ac.kr
사 진 : 박혜영│hy000p@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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