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호 인문학술: 니체의 예술철학]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예술철학 -니체, 비극 속에서 디오니소스적 그리스인을 발견하다-

니체는 근대 이후 현대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친 사상가로서 철학 외에도 문학, 정신분석학, 심리학, 사회학, 정치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해왔다. 이렇게 영향력이 크기에 지금까지 니체가 저술한 책의 번역은 물론 학술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니체에 대한 오해와 편견들도 확산되었는데, 이는 니체의 전반적인 사상 체계를 이해하지 않은 채 단편적으로 혹은 표면적으로 니체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에 본보에서는 니체 철학의 방법론적 특성과 중심 개념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한번 짚어보고자 한다. ‘디오니소스’를 통해‘니체의 예술철학’에 한 발짝 색다르게 다가서 보자.

 

『비극의 탄생』과 초기 니체의 예술철학

“신은 죽었다(Gott ist tot)”는 선언(宣言)과 함께 허무주의의 철학자로 널리 알려진 니체의 원래 직업이 철학자가 아니라 ‘고전문헌학자’였다는 사실은 일반인들이나 비전공자들에게는 아직도 생경한 이야기이다. 니체가 출판한 첫 책『비극의 탄생』은 고전문헌학자로서 니체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제목이 시사하듯 이 책은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니체 스스로 답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미 고전문헌학의 경계를 넘어 니체 고유의 예술철학서가 되어버렸다. 총 25개의 아포리즘으로 이루어진 글에는 ‘인간은 왜 예술을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비극’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있다.

『비극의 탄생』을 집필하던 당시의 젊은 니체는 여전히 낭만주의와 쇼펜하우어적인 영향 하에 있었으며, 예술을 인간의 내적 의지와 충동의 산물로 간주하였다. 그는 이 내적 예술충동을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라는 두 상징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관점에서 예술은 서로 대립되는 두 개의 충동 간에 일어나는 투쟁과 화해의 모든 과정이었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아폴론이 상징하는 것은 찬란한 그리스의 시각예술이다.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을 바라보면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은 그것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파르테논신전의 조형미는 어떤 가감(加減)도 허용할 수 없는 완벽한 조화의 미를 눈앞에 펼쳐주며,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은 이것이 마치 꿈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하게 된다. 니체가 아폴론으로 상징하는 예술세계는 마치 꿈과 같은 현실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가상의 경험이다. 그 속성상 태양의 신인“포이보스 아폴론”¹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미적 구현이기도 하다.²

아폴론의 예술적 아름다움은“대낮의 현실과 대비되는 꿈 속 상태의 보다 높은 진리성, 완전성”을 의미한다. 아마도 2500여 년 전 그리스인들은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파르테논신전을 올려다보면서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파르테논신전은 아테네 여신을 섬기기 위한 종교시설 이상의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신전은 아폴론적 이성과 합리성의 시각화였으며,  ‘적절한 한정’과 ‘개별화의 원리’의 상징물이었다. 특히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즉 파르테논신전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질서정연한 도시의 보호하에서 그리스인들은 안정적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니체는 이 명랑한 도시 분위기를 만들어 낸 그리스인들의 삶의 이면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그리스인들이 그토록 찬란한 빛의 세계를 만들어 낸 까닭을 그들이 어둠의 공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들의 민족적 지혜³는 사실 염세주의의 극단을 보여준다. 그들은 삶의 공포와 모순을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그 어둠의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아크로폴리스 곳곳에 아폴론 신의 정신을 새겨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낮의 세계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크로폴리스에도 이윽고 어둠이 내려앉게 되고 그리스인들은 다시 삶의 모순과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낮을 지배하던 ‘개별화의 원리’는 어둠 속에서는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한다. 아름다운 몸매를 뽐내던 벨베데레 아폴론 조각상의 날카로운 선과 손동작은 더 이상 세계의 척도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아폴론이 물러나고 더 이상 태양의 풍요로움이 아테네 땅에 미치지 못하는 시간에 그들의 삶을 붙들어 준 것은 바로 디오니소스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본래 그리스 고유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삶을 위해 디오니소스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올림포스 12신에 그 이름을 포함시켰다. 아폴론과 대립적인 성격을 지닌 디오니소스는 모든 ‘개별화의 원리’의 파괴를 상징한다. 디오니소스적 도취는 개별화의 원리가 파괴되었을 때 느끼는 공포를 ‘즐거움에 넘친 황홀감’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마력을 지녔다. 그것은 개별화의 고통을 파괴로 보지 않고 오히려 ‘근원적 일자(一者)’와의 합일로 느끼게 해준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마력 하에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결합이 다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소외되고, 대립되고, 억압된 자연이 자기의 잃어버린 탕아인 인간과 다시금 화해의 제전을 축하하게 된다.”-『비극의 탄생』

 

삶의 예술적 정당화

그리스 신들은 자주 실수를 범할 뿐 아니라 부도덕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스스로 인간적 삶을 살아감으로써 인간의 삶을 긍정”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리스 신들은 다른 종교적 신들과는 다르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신들의 유혹, 즉 미망(迷妄, at´e)의 탓으로 돌렸다.『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의 여인을 빼앗은 아가멤논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 “내가 이런 짓을 한 탓은 나에게 있지 않고, 제우스와 나의 운명과 어둠 속을 헤매는 에리뉘스(Erinys, 복수의 여신)에게 있소이다. 내가 아킬레우스에게서 명예의 선물을 손수 빼앗던 그 날, 바로 그들이 회의장에서 내 마음속에 사나운 아테를 보냈기 때문이오. 신이 모든 일을 이루어 놓으셨는데 난들 어찌 하겠소?”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은 아가멤논의 부도덕한 행위에 좋은 변명의 구실을 제공하였다. 그리스인들에게 신은 도덕적 허물을 덮어 자신들의 삶을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니체는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에게서 다른 차원의 정당화를 발견하였다. 우리는 이것을‘미적 정당화’라고 부를 수 있다. 초기 니체에게 두 신이 상징하는 예술세계는 일종의 ‘가상의 가상’이었다. 미적 현상은 니체가 볼 때 근원적 일자가 만들어 낸 환영의 모방이자 반복이었다. 이러한 예술 행위⁴는 인간 스스로가 가상을 만들어냄으로써 근원적 일자가 만들어낸 가상인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시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예술적 정당화는 도덕적 차원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정당화한다. 또한 예술적 정당화는 인간 스스로가 창조적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미학적 행위 자체가 정당화의 근거가 된다. 따라서 니체에게 중요한 것은 행위를 추동하는 맹목적 의지나 행위가 초래한 결과가 아니라 행위 자체였다. 그에게 의지는 창조적 행위를 실현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니체는 삶을 단지 욕망의 분출이 아니라 행위와 창조의 과정으로 해석하였다는 점에서 쇼펜하우어와 구별된다. 니체는 의지를 체념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관성을 극대화시켜 창조적 행위를 실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주관성은 현존하는 규정적 한계들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창조적이다. 디오니소스적인 체험은 모든 경계와 제한적인 형식화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207-04-01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wikipedia.org

디오니소스적인 위안과 관객

디오니소스는 이러한 형식과 질서에 대한 파괴, 즉 아폴론적 세계 질서의 파괴가 일종의 예술적 현상이자 환희의 감정을 가져올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디오니소스-자그레우스 신화는 개별화가 오히려 고통이며, 개별화의 원리가 파괴될 때 이 고통이 극복될 수 있음을 전한다. 디오니소스는 어린 시절 거인들의 딸랑이 소리에 유혹 당했고, 결국 거인들은 어린 디오니소스를 잔인하게 찢어 죽였다. 이를 불쌍히 여긴 데메테르는 디오니소스의 시신을 수습해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다. 니체는 이것이 ‘비극의 비밀스런 가르침’을 내포한다고 말한다. 디오니소스의 죽음과 부활은 “현존하는 모든 것은 하나라는 기본 인식, 개체화는 고통의 근본 원인이고, 예술은 개체화의 속박을 파괴할 수 있다는 희망이며, 다시 도래할 통일에 대한 예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기록에 의하면 그리스비극은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부르던 합창에서 기원했으며, 그리스인들에게 비극은 단순히 슬픈 이야기를 포함한 극이 아니라, 그들이 개별화의 원리로 숨겨놓은 근원적 세계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이야기였다. 니체는 소크라테스적 합리성이 비극에 유입된 에우리피데스 이전의 비극들은 이 ‘디오니소스적 고뇌’만을 주제로 삼았다고 말한다. 비극배우의 가면 뒤에는 항상 디오니소스가 도사리고 있었다. 디오니소스적 그리스인은 스스로가 디오니소스 찬가인 ‘디튀람부스’를 부르는 사티로스가 되어 디오니소스 부활의 기쁨을 함께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아테네의 비극관객은 지친 일상의 삶을 잊고자 극장을 방문하는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근대의 관객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비극합창단의 일원으로서 디오니소스적 도취를 함께하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최초의 원형극장인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은 그러한 착각을 가능하게 하는 이상적인 공간이었다.5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리스인들이 스스로를 디오니소스가 아니라 비극합창단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인들은 비극주인공에 직접적으로 동화되지 않고 비극주인공을 바라보는 사티로스 합창단과 일체감을 느끼려 했던 것이다.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합창단이 무대 뒤가 아니라, 배우와 관객 사이, 즉 무대 전면에 배치되었다는 사실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그들은 합창단의 입장에서 ‘디오니소스적 음악’의 힘을 빌어 ‘디오니소스적 도취’의 황홀경을 체험했던 것이다.

디오니소스적 음악과 비극

‘음악정신으로부터 비극의 탄생’이라는 초판의 부제에서 보듯이 니체는 비극의 본질을 음악의 힘에서 찾았다. 비극의 음악은 단순히 무대 위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보이기 위한 부수적 장치가 아니었다는 것이 니체의 생각이다. 쇼펜하우어의 영향하에서 니체는 음악이야말로 디오니소스적 의지와 충동의 가장 직접적인 반영이라고 말한다. 디오니소스적 음악은 의지로 나타나며, 순수하게 관조적인 시각예술의 미적 현상과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자극하고, 도취를 불러오기도 하며, 춤을 추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한다.

아폴론으로 상징되는 조형적 아름다움을 갖춘 시각적 예술은 고요한 형식의 미를 구현함으로써 인간에게 평안한 감정을 준다. 조형작품 앞에서 인간의 몸은 정적이고 수동적인 관찰자로서 예술작품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 경우 시각은 대상을 분리시켜 구별하고 인지한다. 그러나 청각은 그 본성상 이러한 거리두기와 관조가 불가능하다. 청각은 진동을 통해 우리의 몸에 직접 와 닿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리를 종합한다. 몸에 미치는 직접적인 자극은 인간의 감정을 뒤흔든다. 음악의 강력한 힘은 인간을 춤추게 한다. 춤추는 인간은 더 이상 예술작품의 관찰자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예술작품이자 예술가가 된다. 음악의 힘을 통해 비극의 관객은 자기 자신이 마치 한 명의 살아 움직이는 사티로스 6 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디오니소스의 시종인 사티로스는 여전히 자연적인 예술충동을 자신의 몸속에 간직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디오니소스적 그리스인

니체가 비극 속에서 발견한 디오니소스적 그리스인은 아직 소크라테스라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의 전형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의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이중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의 내면에는 여전히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사티로스가 들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디오니소스적 충동과 질서의 파괴와 자연의 합일이라는 이상을 위해 아크로폴리스 언덕 옆에 디오니소스 극장을 건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디오니소스적 그리스인들은 비도덕적인 삶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여전히 믿고 있었으며, 그들은 비극이라는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세계를 통해서 이러한 인식을 끊임없이 자각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적 합리성이 지배하기 이전의 그리스인들은 삶이 도덕적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리아스』에서는 세계는 변덕스러운 곳이며, 실제로 도덕적 질서보다는 개인의 복수심과 무자비함 등이 지배하는 곳이다.「 오이디푸스 왕」이야기 역시 “세계의 냉혹한 불가지성, 주관적인 의도와 객관적인 운명의 충돌”을 보여준다. 이성과 질서가 완전하게 자리 잡은 세계에서는 진정한 비극은 사라지고 단지 비극의 형식만 남게 된다.디오니소스적 그리스인은 진정한 비극의 정신을 삶을 통해 진지하게 받아들인 최후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후기 니체의 사유에서 디오니소스

초기의 니체는 낭만주의의 경향하에서 디오니소스를 재발견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는 디오니소스의 귀환을 통해서, 분열되어가는 근대 세계가 다시 사회적 결합과 도약을 이루어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지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바그너와의 결별과 함께 폐기되었다. 바그너적인 예술은 더 이상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재발견도 근대의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도 보여주지 못하였다. 니체 스스로도 「자기비판의 시도」라는 제목의 뒤늦은 서문에서 자신의 미숙함을 스스로 문제 삼고 있다. 그러나 ‘디오니소스’라는 이름은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후기 사유에서 디오니소스는 더 이상 아폴론의 대립자로 한정되지 않는다. 디오니소스는 ‘반도덕적 예술신’으로서 아폴론과 결합된 상태로서 등장한다. 이제 그는 삶을 긍정하는 정신의 상징으로서 기독교적인 도덕에 대항하는 신으로 등장한다.7 예술적 충동에서 출발한 니체의 사유는 예술의 창조성과 ‘힘에의 의지’로서의 예술로 연결된다. 디오니소스는 창조적 개인의 자기 고양과 삶의 긍정을 상징하는 존재로 발전한다. 전기와 후기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니체사유에 많은 자극과 영감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이 일관되게 삶의 긍정과 어린아이의 웃음을 위해, 염세성과 니힐리즘의 극복을 위해 후기 사유에까지 등장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의 가장 낯설고 가혹한 문제들 속에서의 삶에 대한 긍정: 자신의 최고유형의 희생을 통해 고유한 무한성에 기뻐하는 삶에 대한 의지-나는 이것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고 불렀으며, 비극시인의 심리학에 이르는 다리로 생각했다.”-「내가 옛 사람들의 덕을 보고 있는 것」, 『우상의 황혼』

 

서 광 열 / 후마니타스 강사

 

***tip
1 ‘포이보스(phoibos)’의 의미는 ‘빛나는’이며, 아폴론의수식어로 주로 사용되었다.
2  빈켈만(J.J. Winkelmann)은 니체에 앞서 이미 아폴론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바 있다. 그는 벨베데레의 아폴론상을 “아름다운 신성의 인간비례”이자 “자연과 정신 그리고 예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것”이라고 극찬했다.
3  니체는 소포클레스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 나오는 실레노스의 지혜에 주목했다. 미다스 왕에게 실레노스는 삶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지혜를 말한다.  “가련한 하루살이여, 우연의 자식이여, 고통의 자식이여, 너는 내게서 무엇을 들으려 하는가? 그것을 듣지 않는 것이 그대에게 가장 복된 것임을 모르는가? 최상의 것은 자네가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네. 태어나지 않는 것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이네. 그러나 그대에게 차선의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곧 죽어버리는 것이네.”
4  여기서 니체 사유의 비도덕적 경향이 드러난다. 도덕적 행위가 행위의 원인이나 결과의 선악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라면, 니체의 예술적 행위는 그 동기나 결과의 아름다움과 추함과 무관하게 그것이 창조적 행위인가 하는 것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 행위 자체가 평가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니체의 예술적 행위는 도덕적 행위와는 다른 것이다.
5  “관객으로서의 대중은 그리스인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관객석이 가운데를 향해 내려가는 반원형 계단식 구조로 되어 있는 그들의 극장에서는 모두가 자기 주위의 모든 문화 세계를 완전히 무시하고, 무대를 마음껏 내려다보면서 자기자신이 합창단원이 됐다고 생각하는 일이 가능했다.” -『비극의 탄생』
6  사티로스[Satyr, Saturos] : 얼굴은 사람의 모습이지만 머리에 작은 뿔이 났으며, 하반신은 염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시종으로서 디오니소스 숭배를 상징하는 지팡이나 술잔을 든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의 신 베스가 원형이라는 견해도 있으며, 로마신화에 나오는 파우누스와 동일시된다. 실레노스 및 마이나데스와 함께 디오니소스의 주연(酒宴)에 참가하였다.
7  “나는 어느 정도 자의적으로 – 아무도 반기독교인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이다 – 그리스 신의 이름으로 그것에 세례를 주었다. 나는 그것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 부른 것이다.” -『자기비판의 시도』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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