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호 사설] 노인의 눈빛

 

감정의 흐름은 미묘하다. 스스로 굉장히 이성적이고 냉철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인간의 들숨과 날숨으로 이뤄진 공기 속 감정의 흐름을 외면하고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이 하루를 보내며 느끼는 감정은 몇 가지나 될까? 유명한 심리학자나 단체의 연구를 통해 감정을 몇 가지로 구분한 자료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감정 간의 구분선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사람들마다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감정의 표현에 있어서 ‘난 지금 화가 나. 곧 폭발할 것 같아’, ‘ 난 몹시 행복해서 배가 간질간질한 느낌이야’ 등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고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얻을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이처럼 감정이란 다양한 표현성을 허용하지만 특정 언어로 기술하기 모호한 상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필자는 경험적으로 느끼고 있다.

우리 곁에서 소리 없이 녹아있는 감정의 기류는 사회의 구조나 문화의 흐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회의 네트워크와 문화의 배경은 인간과 인간을 잇는 연결선 그 자체로도 볼 수 있다. 어떠한 현상과 사건, 혹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무의식적으로 감정적 기류를 흘려보내고 스며듦은 감정의 주체가‘나’지만 완벽한 주인은 아님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예기하지 못한 상황에 의해 의도치 않은 감정이 생성되어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인간은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완전한 수용보다는 일부의 수용과 방출을 택한다. 이러한 내뱉음은 결코 비인간적이지 않다. 인간은 본능에 따라 스스로 보호하려는 마음을 갖고 태어나 자신만의 방공호를 만들어 내면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의 방출과정을 겪으면서부터 는 그 방향성에 대한 문제에 부딪힌다. 흘러들어온 곳으로 회송할 수 없거나 방향에 대한 감각을 잃게 된 경우에는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기도 하며, 외적 갈등으로 과감히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한 에피소드를 말하려 한다.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필자는 두 달 사이 이 사건으로 인해 감정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목격했다. 다음은 그중 한 경우다. 퇴근길 만원 버스 안에 살기 가득한 눈빛의 노인이 버스에 올랐고 그는 젊은 승객들에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노인의 말에 의하면 다른 젊은 학생들은 목숨을 잃었는데, 만원 버스 속 젊은이들은 살아있음을 누리는 죄인이었다. 처음엔 심장을 떨게 만드는 고함 소리에 놀라고, 누군가를 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무서운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하차 지점에 무사도착하기를 바라며 그 노인을 살피는 동안 살기 가득한 눈빛은 사실 두려움이 들어찬 눈동자가 보내는 떨림이었음을 곧 느끼게 됐다.

사실 이와 같은 사회적 사건·사고로 인한 요동치는 감정은 인간적인 심사며, 그것은 특히나 감정 면역력이 약한 자에게 더욱 강렬히 모습을 드러낸다. 앞서 말했듯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소유할 수 없다. 하지만 다양하기도, 모호하기도 한 감정의 흐름 속 생존을 위해서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그 흐름을 잘 타는 법을 알아야 한다.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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