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호 특강취재: 2014학년도 학술단체협의회 상반기 학술특강 <공동체>] 공동체에 반(反)하는 공동체, 도래하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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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학술단체협의회는 5월 22일부터 6월 12일까지 매주 목요일, 서울교정 본관 401호에서 2014학년도 상반기 학술특강을 개최했다. <공동체>라는 제목으로 총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이번 특강은 네그리, 장-뤽 낭시, 조르조 아감벤 그리고 바디유의 공동체론에 대한 최근 담론들의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공동체적 위기에 대해 어떻게 사유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고자 기획됐다. 박진우(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연자는 지난 6월 5일에 열린 세 번째 강의에서 조르조 아감벤의 공동체론에 대해 설명했다.

 

조르조 아감벤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 1942~ )은 마르틴 하이데거와 발터 벤야민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미학자이다. 그는 본래 ‘성스러운 사람’의 의미를 갖는, 로마법에 따라 희생물로 바칠 수조차 없지만 죽여도 되는, 즉 인간의 법과 신으로부터 모두 배제된 잉여적 존재인『호모 사케르(Homo Sacer)』라는 책을 출간하고 이를 통해 현대의 권력 앞에서 인간의 삶과 생명이 직면한 모순적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학계에 주목을 받았다. 그의 사유 탐험은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모리스 블랑쇼,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장-뤽 낭시, 안토니오 네그리, 알랭 바디우 등 현재의 사상가들뿐만 아니라, 플라톤과 스피노자와 같은 고대와 중세 철학자, 유대교 및 기독교 경전의 이론가와 학자들까지 걸쳐져 있다. 따라서 아감벤을 이해하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공동체의 철학적 이해

강연자는 세월호 사건을 예로 들며 강의를 시작했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극복하기 위해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시장민주주의 원칙으로 국가를 경영하는 등의 직접적인 사유를 통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은 직접적인 사유의 결과가 아니다. 사유 그 자체를 대상으로 삼아 사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담론만을 생산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철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무엇을 어떻게 사유해야 할 것인가? 다시 세월호 사건으로 돌아가서 세월호라는 배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보자. 세월호는 침몰했고 탑승자는 실종됐다. 이때 철학은‘침몰’이 아니라‘실종’을 주시한다. 국가가 세월호라면 국가는 ‘침몰’한 것이 아니라 ‘실종’된 것이다. 아니 어쩌면 국가란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국가란 탑승자가 있는 공동체일 뿐이다.

공동체를 바라보는 근대의 사유는 꽤 낙관적이었다. 1755년에 일어난 포르투갈 ‘리스본 대지진’을 바라본 볼테르는 사람의 모습이 신이 보기에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잘하라는 뜻으로 참화가 일어났고, 라이프니츠는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더욱 선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신이 분노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세월호와 같은 참화는 모든 사람들이 노력한 다면 극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헤겔이 집대성한 근대 철학에 따르면 이것은 이성의 반정립 테제이며 진보를 위한 비극일 뿐이다. 21세기의 사유는 열등한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배제시키는 소속(Belonging)과 귀속(Attribute)의 개념으로 정의된다. 예를 들어, 프랑스 영토의 질서 안에 포섭되고, 귀속되며, 포함된 사람들만이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프랑스 혁명에 동조하며 영토의 질서 안에 귀속된 사람들인 국민(nation)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고 이 범주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배제된다.

 

임의적, 개별적, 특수적

이제 사람들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하나의 이념에 동의하고 프랑스라는 영토의 질서 안에 귀속된 국민인 개인은 국민 속에 포함되는 원소인가? 다시 말해 개인이 집합 속에 포함될 수 있는 있을까?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개별자’와 ‘보편자’이다. 개인을 ‘개별자’라고 한다면‘개별자’의 모든 특수성을 포함한 자가‘보편자’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특성을 포함한, 예를 들면, 신과 같은 자만이‘보편자’이다. 따라서 공동체에서는 더 이상 개별자와 보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개별자’가 가진‘보편자’라는 교집합만이 임의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젠더, 성, 문화 정체성(Identity)이라는 보편적 공동체와 7~80년대 일본과 같이 거주지가 보편적인 공동체(Community)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정체성 혹은 거주지가 상이하기 때문에 서로 배제된 공동체들이 충돌할 때 해결책은 무엇이 있는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철학자들은 ‘공동체에 반(反)하는 공동체’를 생각해 낸다.

 

무위(無爲)의 공동체

낭시의 공동체, 블랑쇼의 공동체가 바로 그것이다. 즉‘공동’의 의미를‘함께 있다’로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자유로운 개별자, 임의적 개인이 그저 나란히 함께 있는 공동으로서의 공동체이다. 코나투스의 총합인 스피노자의‘내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일시적이고 우연적이며 개개인이 혁명적일 필요가 없는 공동체가 바로 그것이다.

아감벤은 무위의 공동체에 대해 앞서 언급한 철학자들과 유사한 사유를 하지만 공동체가 생겨나는 계기가 다르다고 본다. 벤야민이 말하는 메시아적 계기가 바로 그것이다. 고대와 근대의 구분이 없는 시간 속에서 과거가 나에게 문을 열고, 지나가고 난 후에만 알 수 있는 메시아적 시간이 도래할 때 새로운 무위의 공동체가 생겨난다고 말하고 있다.

그 공동체 안에서 어떠한 삶이 지속되는가에 대해 아감벤은 사도 바울 이후 유대교가 모두에게 개방된 것처럼 법을 넘어서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법이 존재하더라도 법이 아닌, 존재하지만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법-의-형식’, ‘ 삶-의-형식’인 상태가 된다고 한다. 아감벤은『Opus Dei(하나님의 일)』에서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초기 공동체를 예로 들며 역사 속에서 버려진 공동체에서 나타난 삶의 형식을 재고한다. 즉 샤를르 프리에가 말하는 서로 함께 있으며, 공통의 목적이 아닌 오직 사랑만이 존재하는 사랑의 공동체와 같이, 대안적인 영역의 공동체가 바로 도래하는 공동체이다. 현재 아감벤은『호모 사케르』를 중심에 두고 필요한 개념을 해석하고 설명하며 서브텍스트를 생산해 내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그가 말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아감벤이 말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삶에 대한 정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철학자들은 무위의 공동체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정체성이나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가 아닌 변화와 운동이라는 개념의 새로운 공동체가 도래할 것이 분명하다면 이제 우리는 그 속에서 과거와 달리 어떻게 새로운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해 사유해야 한다. 이에 롤랑 바르트는 아감벤의 철학적 접근과 다르게 문학에서 찾은 답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는 토마스 만의『마의 산』, 다니엘 디포의『로빈슨 크루소』등에 등장하는 공동체를 분석해 사회적 삶을 살기 위한 나와 이웃 간의 올바른 거리를 정립하고자 했으며 공동체의 의견이 대립할 경우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도래하는 공동체의 새로운 형식의 삶은 역사 속에서 버려진 공동체와 문학에서 이미 존재한 공동체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철학은 설계도를 작성하는 일

학술특강에 참석한 한 원생은 지젝이 말하는‘가운데가 뻥 뚫린 깃발’국가라는 공동체가 아감벤이 말하는‘법은 있으나 법이 아닌 상태’와 동일한 것인지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대해 강연자는 국가는 실종된 상태로 있어야 존재가 확인되는 것이며 현재 대한민국은 실종 상태라고 답변했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실종 상태인 국가. 국가, 공동체, 정체성 등의 모습이 어떠해야 한다는 논의는 현실성이 없으며 어쩌면 무용일지도 모른다. 사업의 주체가 누구이며, 예산은 얼마를 집행하고, 어떠한 방법으로 진행할 것인가와 같은 사회과학적 논의가 더 중요해 보인다. 하지만 철학은 ‘설계도상의 작업’이며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수많은 철학자들은 ‘공동체’에 대해서 나름의 정의를 해왔다. 과거 공동체의 성향을 정의하고 미래 공동체의 모습을 예견했다. 철학은 우리가 살아갈 세계에 대한 설계도를 작성하는 일이다. 전쟁에 나가기 전 배우는 총검술과 사격술이다. 이제 설계도를 다시 그릴 때가 도래했다.

 

송영은 | lovericki@khu.ac.kr

 

* 그림 설명 및 출처

 – 그림 1: 박진우 강연자가 조르조 아감벤의 공동체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직접 촬영)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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