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호 인터뷰: 임동근 매핑 및 모델링 연구소장] 도시에서, ‘도시’를 보다

임동근 매핑 및 모델링 연구소장은 서울대학교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공학석사를 마친 뒤 파리7대학에서 지리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공간연구집단에서 활동하며 ‘도시’와 ‘도시현상’에 대해 사회과학적인 방법에서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도시화가 이뤄졌고,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현재 우리에게 도시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이자 장소의 개념을 넘어선 삶의 일부다. 이에 지난 2월 12일 신사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신사장에서 임동근 연구소장을 만나 ‘도시’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도시에서, ‘ 도시’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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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도시학

Q. 사전에 ‘도시’는 “정치·경제·문화의 중심,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설명돼 있지만 이 표현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이어서 그 개념이 머릿속에 선명하지 않습니다. 도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될 수 있나요?

현재 도시를 한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어렵습니다. 국가 혹은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도시를 규정해왔고, 지금까지도 이에 대해 합의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도시 인구에 대한 기준으로 덴마크·아이슬란드는 250~300명 이상, 프랑스·독일은 2,000명 이상, 미국은 2,500명 이상, 한국은 2만 명 이상, 일본은 5만 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인구수만 놓고 보더라도 제각각이라 ‘도시란 무엇인가’보다는 ‘도시를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하는 물음이 더 타당합니다. 일반적으로 보통 인구 100만 명이 넘는 지역을 ‘대도시(大都市)’라 하고, 한국에서는 인구 5만 명 이상이면 행정적으로 ‘시(市)’로 분류하지요.

도시와 관련된 개념 중 한국어로 번역하기 힘든 단어가 몇 가지 있는데, 바로 ‘city’와  ‘urban’입니다. 이 단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온 말인데, ‘도시’와 ‘도시적’을 일컬을 때 사용됩니다. ‘도시적’이라는 말 속에는 문화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도시 문화’라는 것이 있다는 뜻이죠. 문화는 처한 상황에 따라 행동방식이 달라지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방식’이 핵심입니다. 도시적인 생활방식과 비(非)도시적인 생활방식이 있으며, 현재는 도시가 아닌 지역에 사는 사람들까지 도시 문화에 길들여져 있는 상황입니다. 농사를 짓다가 흙 묻은 장화를 신고 모든 물품이 다 모여 있는 ‘하나로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것처럼 말이죠.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city와 urban을 잘 구분하지 않는데, 점차 이를 구분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Q. 언제부터 도시가 학술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고, ‘도시학’이란 학문은 무엇인가요?
이는 모두 20세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도시가 성장하기 시작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서구에서 도시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 이전의 이야기는 국가에 중심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국가 권력, 즉 세력권의 중심지로서 도시에 초점을 맞췄었죠. 이후 경제적으로 특화된 기업도시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논의의 흐름이 달라졌습니다. 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상관없이 의사결정의 중심지로서 도시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죠.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한국에서도 도시를 연구하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도시’하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비춰지곤 하죠. 주류 학문에 ‘도시’라는 접두어를 붙여 도시지리학, 도시정치학, 도시사회학, 도시경제학 등의 소재적 신선함을 더할 뿐입니다. 하나의 정통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커리큘럼과 역사, 그 학문에 대한 사회적 직업구조가 마련돼야 합니다. 이에 도시학(Urbanisme)은 소재 중심의 느슨한 결합으로 아직 ‘학(學)’으로서 홀로 서기에는 무리가 따라 보입니다.

 

Q. 현대사회에서 도시는 왜 중요할까요?

오늘날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살지 않는 사람들의 삶까지도 결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도시인에게 친환경 상품이 인기를 끌자 농촌에서 평범하게 벼농사를 짓던 사람이 우렁이 농법으로 방식을 바꿔 쌀을 재배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도시가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비도시지역의 1차 산업 종사자는 도시 의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점점 더 그 영향력은 증대합니다. 도시화율이 높아질수록 도시를 벗어난삶을 상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도시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도시 안에서 사람들이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등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대안사회,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

Q. 대안사회로서 도시를 보는 두 관점, ‘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대안사회론은 현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과연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껏 대안사회를 논의하면서 대안도시를 이야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도시는 다만 주어진 환경일 뿐, 도시가 어떠해야 한다고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던 겁니다.

대안사회로서 도시는 디스토피아적일 수도, 유토피아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를 극단적으로 사유한 대표적 두 사람이 있는데, 마이크 데이비스(Mike Davis, 1946~ )와 에드워드 글레이저(Edward Glaeser, 1967~ )입니다. 우선 데이비스는 『슬럼, 지구를 뒤덮다』(2007)에서 제3세계의 대도시화, 슬럼의 확산을 살피며 빈민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디스토피아적인 도시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권력이 키운 도시와 여기에 모인 빈민들은 대립관계이며, 도시는 이들의 열악한 삶과 환경을 방치 혹은 활용하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신자유주의 이후 도시의 변화를 “도시의 묵시록”이라 표현합니다.

반면 글레이저에게 도시는 인간을 더 풍요롭고, 더 행복하게 만드는 대상입니다. 하나의 도시는 산업 발전 과정에 따라, 경제 구조에 따라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변하는 자연법칙을 가진 생태계 그 자체입니다. 그의 책『도시의 승리』(2011)는 도시의 생명력을 “대공황조차 대도시의 불빛을 끄지는 못했”고 “도시의 내구력은 인간이 가진 심오한 사회적 성격을 반영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글레이저의 입장에서 도시가 실패하는 이유는 오로지 ‘정부의 무능한 정책’ 때문입니다.

 

Q. 이를 넘어선 도시 사유 방식에는 무엇이 있나요?
요즘 들어 사회과학 분야에서 ‘장치분석’방법론이 화두로떠오르고 있습니다. 1960년대 유행하던 구조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탈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어, 현재 장치분석 쪽으로 그 흐름이 이어지고 있죠. 장치로 사유하는 방식을 처음 시도했던 그룹은 CERFI입니다.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 1930~1992)는 1968년 제도형성 연구 집단인 CERFI를 창설했습니다. 이 집단은 사회과학자 집단 내 좌파이면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학자들의 공동연구를 진행하였고, 매주 사회학자, 도시학자, 경제학자, 심리학자 등 20여 명의 학자들이 세미나를 열어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습니다. 초기 연구 주제는 정신분석학이었으나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와 교류하며 1970년대 최초, 장치로서의 도시를 분석하게 된 것이죠.

1973년 CERFI가 발간한『도시의 계보학: 도시, 영토, 집합시설』에서 저자들은 도시를 ‘명령기계’와 ‘은유’로 구분합니다. 먼저 “도시-명령기계(la ville-ordinateur)”측면에서 CERFI는 도시를 효과로, 도시 내 집합시설을 소비가 아닌 생산수단의 일부로 파악합니다. 즉 도시는 사회적 결과물, 기능적 혹은 문화적 산물(product)이 아니라 생산의 도구(outil)며, 생산의 연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 외부에 각각 ‘소비’와 ‘주체’라는 범주로 독립된 것이 아닙니다.

이어서 “도시-은유(la ville-m taphore)”는 ‘도시를 말하지 않는 도시담론’을 말합니다. 도시라는 은유는 19세기 이래 다양하게 변주되는데, 옛 시스템과 새로운 시스템이 농촌과 도시라는 쌍으로 존재하기도, 농촌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도시에 집중되는 모습으로 재현되기도 했습니다. 그중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의 15세기 연구에서 도시는 기능의 은유로 나타납니다. 장사를 하는 상업기능, 물건을 만드는 생산기능, 돈을 대는 금융기능은 각각 도시로 치환되고 도시의 유형으로 발전합니다. 이때 도시의 기능들에서 권력의 효과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기능에 따른 도시 유형들은 다만 도시를 지나가는 흐름들(자본, 인간, 에너지, 정보 등)에 따라 결정된 것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CERFI의 연구는 ‘영토’와 ‘집합시설’의 계보학으로 발전하게 되고, 기능 도시는 하나의 현상으로서 영토의 흐름과 이를 작동시키는 집합시설에게 그 자리를 내어줍니다.

 

Q. 오늘날 도시는 공간의 개념을 넘어서 삶의 일부이자 현실 그 자체입니다. 미래의 대안사회로서 도시를 바라볼 때 갖추어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요?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기보다는 ‘실제’ 도시가 굴러가는 ‘방식’을 살펴야 합니다. 물적인 것을 분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관념적인 어떤 새로운 것을 꿈꾸는 것은 망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실제적인 장치들을 연구하거나 운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도시 범죄율을 낮추고 싶다면 가장 먼저 도시 범죄를 일으키는 요인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짚어봐야 합니다. ‘지금 도시 범죄를 둘러싼 장치들이 이러한 상태인데, 이 장치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 장치를 바꾸는 과정 속에서 실질적인 대안과 전망, 실천력이 나오게 됩니다. 이 과정이 생략된 상태에서 단순한 역(逆)으로 유토피아를 그린다? 어불성설이죠.

이에 더 많은, 도시 각론(各論)이 필요합니다. 도시학이라는 총론(總論)에 매달리기 보다 도시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장치들의 각론을 띄워야 합니다. 하나둘 각론을 구성하여 이들끼리의 접점지대를 찾아 학제 간 연구가 이뤄질 때, 비로소 도시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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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학자, 임동근

Q. 선생님께서 도시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도시학자가 되어야지’라고 마음먹어서 지금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도시 현상들이 궁금했고, 이를 해결하고자 했을 뿐이니까요. 도시화율이 90%를 넘는 한국사회에서 도시에 관심을 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보입니다. 저는 말을 위한 말, 개념을 위한 개념, 학문을 위한 학문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학자’라는 호칭 또한 다소 불편하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고요.

Q. 요즘 도시와 관련해 관심 있는 연구 주제는 무엇인가요?
서울은 세계적인 대도시입니다. 그동안 서울에 외국인이이만큼 산 적도 없었고, 수도권 내 이동 인구가 이 정도로 늘어난 적도 없었습니다. 매순간 서울은 그 기록을 경신하고 있죠. 도시에서 대도시 차원으로 넘어갈 때 재밌고 새로운 현상들이 쏙쏙 튀어나옵니다. 요즘은 서울의 대도시적 현상에 주목을 하고 있죠. 서울이란 대도시 집합시설의 작동방식, 생산물, 권력관계, 변화과정 등이 주된 관심사입니다. 이와 별개로 연안지역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현재 도시들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연안지역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로 뻗어나가기에도 용이한 지점입니다. 연안지역에서 발생하는 대도시들이 각자가 지닌 태생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며 크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피고 있습니다.

Q. 학문에 정진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 편의 논문을 완성하는 것처럼 자신의 연구 방향을 설정하시기 바랍니다. 논문을 쓸 때 우리는 우선 ‘문제 설정’을 한 뒤 ‘가설’을 세우고, ‘방법론’을 정합니다. 이때 논문의 가장 첫 단계인 문제 설정에서 여타 논문들과 다른 내 논문만의 변별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학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마르크스가 좋아서 마르크스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마르크스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마르크스가 사유하는 방식을 배울 필요는 있지만 그 내용을 달달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주변을 잘 둘러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세요. 그러면 자신의 연구 방향이 바로 설 것입니다.


    대담· 정리 : 박혜영│hy000p@khu.ac.kr
사    진 : 김경민│ada132479@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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