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호 영화비평: <그녀 her>] 신체 없는 목소리와 나르시시즘

 

201-08-1

요즘 극장가에는 유명인들이 관객들을 상대로 영화를 해설해주는 프로그램이 성행하고 있는데, 그들 중 한 명이 <그녀 her>(스파이크 존즈, 2013)를 보고 나서 “SF라고 말할 수 없는 SF영화”라는 발언을 해서 작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 영화가 “인간의 외로움과 관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한 것인데, 이러한 태도는 영화의 다른 특성들을 전부 지워버리고 이야기의 요소만 추출하여 평가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즉각적으로 SF팬들과 많은 이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한 영화평론가는 그가 지적한 이야기 요소가 SF장르에서 전통적으로 관심을 보이며 반복했던 주제라는 반박글을 쓰기도 했다. 이 작은 논란이 흥미롭게 다가온 연유는 영화를 이야기할 때 항상 부딪치게 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거친 도식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전자는 영화의 내용만을 해석한 것이며 후자의 반응은 영화가 이야기를 담아내는 양식까지 두루 살피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내용물이 담겨있는 그릇이 있는데 하나는 내용물만 이야기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내용물을 담은 그릇도 함께 두루 살피는 태도이다. 이러한 두 개의 시각 중에 어느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따라간다면 관객은 <그녀>를 로맨스 플롯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으며, 장르적 접근법에서 보자면 기술의 진화에 따른 인간의 감정과 삶의 변화를 표현하고 있으므로 SF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시선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쉽게 파악 가능하고 일차적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에 무게 중심을 둘 것인지,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의 특징을 강조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영화가 탄생한 이래 끊임없이 논쟁거리로 등장한 내용과 형식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신체 없는 목소리

이 글은 내용과 형식에 대한 영화의 논쟁을 다루고자 하는 것도, SF의 특징을 집어내는 것도 아니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지나치게 영화의 내용에만 경도되는 것을 경계하면서 영화가 표현하고 있는 측면을 더 강조하고자 한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가장 먼저 파악 가능한 것은 서사의 줄기이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양식(style)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점 아래에서 <그녀>를 생각해 보면, 목소리라는 중요한 요소를 만나게 된다. 영화의 문을 열고 닫는 것은 시어도어의 목소리며, 영화의 중간을 채우는 것은 사만다의 목소리이다. 여기서 목소리는 영화의 대사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어도어의 목소리는 음성인식으로 연애편지를 대필해주는 그의 직업을 나타내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목소리가 타인과의 사랑과 관계를 규정하고 있음을 은유하는 장치이고, 사만다의 목소리는 시어도어의 성격과 감정, 행동을 규정하는 장치이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시어도어는 하루하루 쌓여가는 권태감과 별거하고 있는 부인과의 관계로 지쳐가고 있었는데, 우연히 인공지능 운영체계를 알게 되어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게 된다. 운영체계의 이름은 사만다인데 시어도어는 그녀와 매일 이야기하고 감정을 나누게 되면서 호감을 느끼게 된다. 시어도어의 컴퓨터에 설치되자마자 사만다는 그의 컴퓨터를 정리해주면서 순식간에 그에 대해서 파악하고 그가 쓴 편지에 대해서도 완벽한 조언을 건넨다. 시어도어는 그녀가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해준다고 믿고 있는데, 사실은 그 반대 관계이다. 왜냐하면 사만다는 설치되자마자 엄청난 능력으로 그의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그의 상황에 맞춰 여러 가지를 조언해 준다. 중요한 것은 영화는 그런 사만다의 모습을 신체없는 목소리(Acousmetre)로 그려내면서 그녀의 완벽함을 한층 더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체 없는 목소리란 영화에서 음원이 확실하게 등장하지 않아 사운드로만 존재하는 이미지를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이나 배경음악처럼 보조적인 수단으로 작동하지 않고 캐릭터의 행동과 내러티브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동한다. 프레임 안에 존재하지만 부재 그 자체로서 존재하고 내러티브에 능동적인 역할을 하는 사운드를 말한다. 비록 그 존재가 보이지 않지만 주인공과 서사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신체 없는 목소리는 대개 권력이나 전지성의 효과를 발휘한다. 예를 들면 스릴러에서 주인공을 움직이게 만드는 전화기 너머의 범인 목소리 같은 것이다. 단 동기화된 시각적 이미지가 등장하는 순간, 신체 없는 목소리의 힘은 사라지게 된다. 스릴러에서 전화기 너머의 범인의 모습이 프레임에 등장하는 순간, 그 힘을 잃고 경찰에 체포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만다는 시어도어가 가지고 다니는 휴대용 기기와 컴퓨터에서 나온다고 상정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그 목소리가 동기화되어 표현된 적이 없다. 그래서 시어도어는 마치 꼭두각시처럼 사만다의 목소리가 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 이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장면은 그가 사만다와 처음으로 외출을 한 순간이다. 시어도어는 사만다가 걸으라고 말하면 걷기 시작하고, 재채기를 하라고 하면 재채기를 하고, 그녀가 말한 음식을 그대로 주문한다. 이때 카메라가 보여주는 시어도어의 표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클로즈업이 포착한 시어도어의 표정은 환희에 가득 차 있는데 그것은 관계에 대한 기쁨이 아니라 완벽한 사랑에 빠졌다고 믿는 자신을 발견한 환희에 가까운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사만다는 그의 이상형이 투영된 완벽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주체와 객체 사이에서

반대로 별거중인 그의 부인 캐서린(루니 마라)은 신체가 존재하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어도어의 과거 회상 장면에서 캐서린은 항상 그와 손을 잡고 있거나 포옹하고 있는 식으로 등장한다. 서로 만질 수 있는 그녀를 그는 현실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녀가 떠난 이유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그녀와 직접 만나는 장면을 살펴보자. 시어도어는 캐서린을 만나 자신이 사만다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고백한다. 사만다는 자신과 이야기가 잘 통하고 단순한 컴퓨터가 아니라고 말하자 캐서린은 시어도어에게“현실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신경 쓰지 않는 유령 관계”에 불과하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캐서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어도어는 신체를 가진 다른 여자들과의 데이트를 실패한다. 영화는 실패의 순간을 입맞춤과 정사의 순간으로 육체를 강조하는 식으로 그리고 있다. 

여기서 영화의 제목이 왜 ‘her’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어도어는 마음의 빈 구멍을 강조하며 그것을 채워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순간의 감정을 중요시하게 여긴다. 그 감정 욕망의 결핍을 채워주던 대상은 바로 사만다이다. 사만다는 시어도어의 욕망의 대상, 즉 목적어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대상인 사만다를 신체 없는 목소리로 그려내면서 시어도어가 대상에 사로잡힌 상태를 보여준다. 이때 시어도어는 거울 이미지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기뻐하는 나르시시즘적 존재이며 사만다는 시어도어의 욕망에만 반응하고 그에게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객체이다. 사만다를 통해 그는 마음의 빈 구멍(결핍)을 채웠지만 캐서린 같이 몸을 가진 다른 이들에게 결핍을 채우지 못했다. 그녀들은 시어도어와 마찬가지로 욕망을 가진 다른 주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영화는 사랑이나 이성과의 관계 혹은 기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영화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대신에 나르시시즘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영화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상태만을 그리고 있는 게 아니다. 시어도어가 캐서린에게 “네가 어떤 사람이든, 세상 어디에 있든”사랑을 하겠다고 편지를 쓰는 마지막 장면은 그가 나르시시즘에서 빠져나온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함에서 풀려난 그가 비로소 사랑하는 사람 그 자체를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며 하늘과 땅의 중간지점인 건물 옥상에 앉아 있던 장면은, 욕망의 대상과 주체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했던 주인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백태현 /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강사

 

* 그림 설명 및 출처

 – 그림 1: imdb.com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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