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호 인터뷰: 김세원 가톨릭대 교수] 문화,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

세계화로 인한 각 국가와 지역의 교류 증대로 문화는 더욱 혼재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도 서구 문화의 급속한 유입과 끊임없는 재생산으로 더 이상 ‘우리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고, 다문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혼란의 상황에서 문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김세원 교수는 2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한 뒤 현재 가톨릭대학교에 재직하면서 논문과 저서를 통해 비교문화경영을 연구·전파하고 있다. 이에 그를 만나 세상을 바라보는 창으로서의 문화와 다른 문화를 대할 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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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 않은 이력

Q. 교수님의 이력이 평범하지 않은데요. 특히 오랜 특파원 생활이 눈에 띱니다. 외국에서의 오랜 특파원 생활이 교수님의 연구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을 듯합니다.

파리에서 특파원 생활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많은 영향을 미쳤죠. 파리는 근대 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인데다, 한국인에게는 어느 정도 파리에 대한 환상이 있잖아요. 다만 다른 특파원과 비슷하게 약 3년 정도로 그렇게 오랫동안 특파원 생활을 하진 않았습니다. 특파원 생활 이외에도 학업으로 인해 외국에 있었던 적도 있어서, 전부 합치면 대략 5년 정도 외국 생활을 했어요. 일찍이 미국보다는 유럽에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리 생활이 더 남달랐습니다.

 

Q. 외국 생활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지요.

사실 저의 책『문화로 세상읽기』에서 많이 언급했지만,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일화가 매우 많은데요. 그중 휴가에 대한 일화가 기억납니다. 제가 92년에 영국의 로이터 펠로우십 프로그램으로 프랑스의 보르도 대학에서 1년간 연수를 받고자 했을 때였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영국과 프랑스에 각각 팩스로 연락을 취했습니다. 즉각 답장이 왔던 영국과는 달리 보르도 대학은 2~3주가 지나도 답장이 없는 겁니다. 그해 9월에 보르도 대학으로 건너가 사무실로 갔더니 제가 보낸 팩스가 모두 팩스 기계에서 나온 채로 널려 있는 겁니다. 어떻게 된 영문인가 봤더니 담당 직원의 말이 휴가를 다녀와서 못 봤다는 겁니다. 이때 제가 그동안 생각하던 선진국도 국가별로, 지역별로 모두 다른 문화와 삶의 양식을 가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틀

Q. 비교문화경영이라는 분야가 생소한데, 무엇을 연구하는 분야인가요?

비교문화경영은 지역별 문화의 차이가 기업경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합니다. 문화는 특정한 경계와 영역을 가지지 않고 지역 또는 국가 별로 다양하지 않습니까? 1990년대 초부터 글로벌 스케일이 부각하면서 전 세계가 하나로 통합된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지역주의로 인해 ‘글로벌화(Globalization)’보다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라는 용어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화는 더욱 혼재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죠. 기업의 활동을 예시로 설명하겠습니다. 특정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현지화를 위해 경영에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가 됐습니다. 경영학은 대체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에서 발전했는데 일종의 국제표준(Global Standard)처럼 된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작동하는 맥락은 미국의 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선진국이라도 유럽에서는 미국의 경영 철학이 획일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죠. 아시아에서는 하물며 어떻겠습니까?

 

Q. 비교문화학적 관점에서 한류를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요?

한류의 콘텐츠, 특히 한국 드라마 속에는 동양의 유교문화가 많이 녹아 있습니다.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가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한류를 형성하면서 광범위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확인하기 힘들죠. 물론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예외입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한류가 현지의 문화와 충돌하거나 마찰한다기 보다 단지 인기가 없는 것입니다. 그 문화의 맥락에서 한국의 대중문화 콘텐츠는 다른 문화적 맥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죠.

중국과 일본에서 혐한의 대두는 일종의 질투라고 여겨집니다. 일본은 한때 한국을 강제 점령한 국가로서 근대 아시아에서 강국이었고, 중국은 동아시아 문화의 종주국을 자처하니까요. 자국 청소년에게 한국의 대중문화가 접근하는 점에 대해 경계한다고 봐야죠. 문화충돌이나 마찰과는 다른 맥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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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경계에서 한국을 보다

 

Q.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문화의 힘은 무엇입니까?

이론적으로 설명하자면 상부구조를 언급할 수 있겠는데요. 마르크스는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중 하부구조를 강조했고, 생산양식이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은 상부구조를 강조합니다. 대표적으로 그람시(A. Gramsci)는『옥중수고』에서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결정한다고 언급합니다.

이를테면 한국인의 ‘정(情)’문화를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한 연구는 30개국을 대상으로 90년대 초에 “친구가 운전하는 차에 함께 타고 가던 중 고속도로에서 친구가 사고를 냈다.
법정에서 증언한다면 당신은 친구를 위해 거짓말을 할 용의가 있습니까?”라는 설문을 합니다. 여기서 한국은 1위를 합니다(친구를 위해 거짓 증언을 하겠다). 반대로 미국인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규범은 지켜져야 하므로 진실된 증언을 할 것이다. 대신 감옥 간 친구를 위해 사식을 넣어 줄 용의는 있다.’(웃음) 트롬페나스(F. Trompenaars)와 햄던-터너(C. Hampden-Turner)가 말한 문화의 7가지 척도 중 보편주의(Universalism)와 특수주의(Particularism)로 설명한다면 한국은 규범을 강조하는 보편주의보다 인간관계를 우선시하는 특수주의에 초점을 맞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의 ‘정’문화가 일견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하지만 전후 한국의 급속한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문화의 힘을 알 수 있죠.

 

Q. 저서인『문화로 세상읽기』에서 ‘문화경계인’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요. 이 시점에서 “우리가 경계에 서서 문화를 본다”는 것은 무엇이고,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에 동아일보 재직 시 썼던 용어였는데, 외국인의 관점에서 한국의 문화를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이는 남을 잘 보자가 아닌 타자로서 자신을 돌아보자는 의미였습니다. 자기정체성은 나를 돌아봄으로써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통해 자신을 인지함으로써 발생합니다. 자신이 속한 사회와 국가, 그 속의 나는 외부의 눈에서 바라봤을 때 더욱 분명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문화의 경계인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한국에 커피 전문점과 커피 소비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요. 이를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나 음료에 대한 기호가 아닌 문화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선진국의 커피 문화의 확산, 커피에 대한 기호도 분명 영향을 주었겠죠.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우리에게 만남의 장이 필요했다고 봐요. 예전에는 다방이 있었습니다. 다방에는 마담과 여종업원이 있었고, 그들은 고객과 폐쇄적인 관계를 맺었죠. 그런데 90년대 중반 이후 다방은 지상으로 올라왔고 투명한 유리로 외관이 바뀌면서 열린 공간을 지향하게 됐습니다. 그 공간은 관계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그러면서 일종의 트렌드로 정착하게 됐죠.

 

Q. 새삼스럽게 유행한‘의리’문화는 한국인의 대표적인 문화입니다. 의리 문화가 가지는 맹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의리는 남을 가족처럼 생각하려는 한국인의 관계지향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관념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집단의 범위가 굉장히 협소한 소집단을 지향한다는 점이죠. 타인에 대해 특별한 관계를 강조해 소집단으로 들어온 사람들, 즉 조직에 속한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면서 부정적인 점이 야 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화는 앞서 언급했듯 한국이 지금까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문화적 바탕이 됐죠. 그러나 이러한 문화를 이제는 다시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한국인은 유독 노래방, 찜질방, 피시방과 같은 방을 좋아합니다. ‘방’들도 소집단을 지향하는 성향이 공공 공간과 연결돼 탄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러한 방들을 넘어 공간을 확장하고, 생각을 확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Q. 최근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의 화두로 ‘소통’이 줄곧 언급돼 왔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계적인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사회에서 통용되는‘위계질서’라는 담론이 문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인의 호칭 문제를 예시로 설명하겠습니다. 우리의 호칭 문화는 매우 잘 발달했습니다. 아버지를 일컬을 때 영어권은 한두 개 정도 되죠. 한국어는 대화하는 상대의 격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부르잖아요. 이 점도 마찬가지로 한국인의 관계지향적인 성격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죠. 호칭에 내포한 중요한 문제점은 호칭이 관계를 설정해준다는 점에서 그 사람의 속성은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관계를 아주 무시해서는 안 되죠. 하지만 특정 맥락에서 설정된 관계가 그 상황 밖까지 연결되면 학연, 지연, 혈연 등이 매개되는 소집단을 형성하게 합니다. 직장에서 상사와의 관계가 설정됐다면 회사 밖에서는 벗어날 필요가 있는데 그렇지 않죠. 특정 상황에서 관계를 전체로 확장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면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포용적인 자세의 필요

 

Q. 한국도 거주하는 외국인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다문화 사회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이러한 다문화 사회에서 타문화를 대하는 데 있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름’과‘틀림’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직 말로는 동의하면서 은연중에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는 미지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일종의‘불확실성의 회피’죠. 민족중심적인 생각을 바꿔서 문화를 스스로 가둬두기보다 다른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쉬운 예로 프랑스의 경우 사르코지 전 대통령조차 헝가리계 이민자 2세였지 않습니까? 프랑스가 문화적으로 융성한 국가로 불리는 것은 타문화에 대한 개방적인 자세가 문화적인 바탕에 깔렸기 때문이겠죠.

 

Q. 끝으로 대학원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제가 전하고 싶은 말은 자기 학문에 몰입하더라도 가끔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이 지금 서 있는 학문이라는 거대한 지도 속에서 좌표를 확인하라는 겁니다. 즉, 자신이 어떤 분야를 공부하더라도 자신의 분야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말라는 겁니다. 자신이 공부하는 분야는 단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프리즘이죠. 한 가지를 깊게 파고 들어가야 그것이 연구이고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본인의 분야에 매진하되, 때로는 눈을 들어 주변의 학문과 세상을 둘러보는 넓은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담·정리 : 이진수| geoleejs@khu.ac.kr
사 진 : 김일권| ivandurak@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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