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호 과학학술: 중시계 물리학] 중시계 물리학 – 상식과 비상식의 중간 지대

 

 

일반적으로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과학에 관심이 있다면‘고전역학’과‘양자역학’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둘 사이에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 그것이 바로‘중시계 물리학’이다. 중시계는 대립되는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이 겹쳐지는 구간을 일컫는다. 이에 본보는 고전역학과 양자역학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중시계 물리학에 대해 소개하고 향후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18세기 뉴턴(I. Newton, 1642~1727)과 라이프니츠(G. W. Leibniz, 1646~1716)가 세운 수학을 통한 사물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역학은 수학적 기술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사고를 하면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인류에게 심어 주었다. 이후 자연과학은 수학의 엄밀성을 바탕으로 이론을 진행해 나가면서도 인간의‘상식’에 어긋나는 일 없이 탄탄대로를 걸었다. 자연과학이 상식과 배치되기 시작한 것은 ‘빛’의 연구부터이다. 맥스웰(J. Maxwell, 1831~1879)은 1861년 필로소피컬 매거진(Philosophical Magazine)이라는 물리학 논문집에 “빛은 전기와 자기장의 횡파로 구성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공계 대학생이면 누구나 1학년 때 배우는 일반물리학에서 맥스웰의 방정식을 다루는 관계로 독자 중 이공계 출신이라면 익숙하리라 생각한다. 맥스웰은 기존의 전기와 자기에 관한 3개의 방정식에 자신만의 방정식을 하나 첨부하여 4개의 방정식을 풀었다. 이때 그가 얻은 해는 매질의 진행 방향과 진동방향이 서로 직교하는 횡파였고, 그 속도는 이미 알려진 빛의 속도(약 300,000,000m/s 진행)와 일치했다. 빛이 전기와 자기로 이루어진 파동이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 가지 의문점이 떠오른다. 저 머나먼 우주의 별로부터 오는 것도 빛이지만, 우주에는 공기가 없기 때문에 빛을 진동시킬 물질도 없다는 점이다. 파동은 무엇인가 흔들린다는 것인데, 우주에서는 무엇이 흔들려서 빛을 전달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에테르(ether)’라는 물질이 빛을 매개하지 않을까 추측하고 그것을 측정하려 노력했으나 실패하였다. 물리학계에서 기적의 해라고 일컬어지는 1905년에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A. Einstein, 1897~1955)의 특수상대성이론이 발표되면서, 빛은 매질이 없어도 전달되는 것이며 시공간 자체의 성질을 가진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빛은 등속도로 움직이는 어떤 관측자가 보아도 그 속도가 일정하다는 특징을 가지며 소리나 지진파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파동이라는 것이다. 현대에는 빛의 이러한 성질이 상식으로 통한다.

빛이 상식에 어긋나는 더 근본적인 성질은 바로 빛이 파동인 동시에 입자의 성질을 갖는다는 점이다. 광전효과(photoelectric effect)라 불리는 실험에서 빛은 고유의 주파수에 비례하는 에너지를 갖는 입자로 밝혀졌고, 아인슈타인은 이 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빛이 파동이면서 광자라 불리는 입자라는 사실은 현대 물리학의 커다란 줄기인 양자역학을 태동시켰다.

파동인 줄 알았던 빛이 동시에 입자라는 사실은 그동안 인류가 갖고 있었던 상식을 깨뜨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때가 바로 현대 물리학이 탄생하는 순간이며,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일이다. 상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보편적인 경험으로부터 타당하게 설명되는 일들을 상식이라고 한다면 새로운 실험 장치에 의한 미시세계의 경험들은 인간의 상식을 점차 변화시키고 있는 셈이었다. 파동인 줄 알았던 빛이 입자라면 혹시 입자라고 알고 있었던 전자도 파동이 아닐까? 이미 정신을 놓을 정도의 충격을 받은 물리학계에서 이런 질문이 이상할 리도 없었다. 그리고 정말로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슈뢰딩거(E. Schr¨odinger, 1887~1961)(1933년 노벨상 수상) 등을 비롯한 여러 물리학자는 입자로 알고 있던 전자도 필연적으로 파동으로 기술하여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양자역학의 기초를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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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영역 – 중시계의 시작

‘mesoscopic(중시계)’라는 말은, 영어로는 microscopic(미시계)와 macroscopic(거시계)의 중간을 뜻한다. 미시계가 양자역학적 성질이 주로 나타나는 원자 수준의 크기라고하고 거시계가 고전역학계인 물체를 말한다면, 중시계는 양자 역학적인 성질과 고전적인 성질을 동시에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중시계의 등장은 전하의 수송을 다루는 전기전도도(electric conductivity) 문제에서 출발하였다. 그 이전에 오랫동안 고전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던 것은‘옴의 법칙’이었다. 1827년 옴(G. S. Ohm, 1789~1854)은 두 지점 사이에 흐르는 전류는 두 지점 간에 가한 전압에 비례한다는 고전적인 이론을 내놓았고, 그 비례상수인 저항은 도체의 길이에 따라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현재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상식이다.

그런데 1970~80년대 즈음해서 반도체 및 금속 소자의 기능을 높이기 위해 점점 더 작게 만들고 불순물을 줄이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던 때, 소자들의 전기전도도 성질이 기존 옴의 법칙과 맞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실험하던 소자의 크기가 작아져서 양자역학의 성격을 가지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중시계 물리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론물리학자가 있으니, 그는 란다우어(R. Randauer, 1927~1999)이다. 란다우어는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망명한 물리학자로 NASA를 거쳐 그의 나이 25세에 IBM에서 반도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전기의 저항은 전류가 흐르는 도체에 불순물이 존재하여 전자가 이들과 충돌함으로써 발생한다. 불순물이 여럿 있으면 전자는 여러 번의 충돌을 하게 되고, 도체가 길어지면 그 길이에 따라 저항은 늘어난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란다우어는 양자역학적인 성격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전자가 지나가는 길은 하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불순물과 충돌하고 지나가기도하고 또는 뒤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충돌하기도 하면서 여러가지의 길을 동시에 지나가기 때문에‘비상식’적인 도체의 저항이 나타나리라 예측했다. 전자가 불순물과 연속적으로 충돌하면서 양자역학적인 파동의 간섭이 일어날 경우 고전적인 옴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란다우어는 IBM에서 행하는 실험 결과 중 이해가 가지 않는 결과들을 통찰력 있게 관찰하였고 이를 통해서 그의 이론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양자역학적인 도체의 저항은 그 길이에 단순하게 비례하지 않는다. 현재 그의 이론은 대학원 교재에서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다.

더 나아가 매우 작은 도체를 만들어서 불순물이 하나도 없는 도체를 만들면 어떻게 될까? 전기 전도도(흐르는 전류를 가해진 전압으로 나눈 값으로 정의)는 무한대가 되는 것일까? 란다우어의 이론을 조금 더 확장해서 이론을 만들게 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도체의 전기전도도를 측정하더라도 그 장치가 도체에 영향을 미치고, 이 영향은 도체와는 무관한 우주적인 상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때 전기전도도는 2e×e/h의 정수배로 주어진다(e는 전자의 전하량, h는 플랑크 상수라 불리는 양자역학의 기본 상수이다). 이 가설은 1988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반 비스(B. J. van Wees) 등에 의해서 실험적으로 관측되어 물리학계에 보편적으로 알려진‘전기전도도 양자화’현상이다. 이미 이쯤 되면 고전적인 금속의 전기전도도 이론이 맞지 않고‘상식’에 벗어나는 양자역학에 익숙해져서 무엇이 상식인지 혼동되기도 한다.

 

양자역학이 갖는 비상식적인 결론들

양자역학적인 도체는 왜 우리 상식에 그토록 위반되는 것일까? 우리가 느끼는 일상생활의 예로 야구를 들어 보자. 가끔 프로야구에서도 장타를 치고 3루까지 갈 때, 흥분한 나머지 2루 베이스를 밟지 않고 가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3루까지 가면 아웃이 된다. 고전적으로 설명하면 달리는 주자는 2루를 밟았거나 아니면 밟지 않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아웃이거나 아니거나 분명하게 결정된다. 그럼 양자역학적으로는 어떨까? 양자역학에 의하면 달리는 주자가 3루에 도착하는 것은 2루 베이스를 밟고 가기도 하고 동시에 안 밟고 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만 심판이 2루 베이스에서 선수가 과연 2루 베이스를 정말로 밟는지를 관측한다고 하면 둘 중 하나의 결과로 결정된다. 가장 황당한 것은 그 심판이 무엇이라고 말할지는 확률로만 주어지고 아웃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경기 결과는 심판에 의해서 영향을 받으며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는 확률로만 말할 수 있을 뿐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기본 방정식인 ‘슈뢰딩거 방정식(Schr¨odinger equation)’은 물질의 상태가 시간이 진행됨에 따라 어떤 상태로 나아가는지를 말해주는 미분 방정식이다. 이 미분 방정식은 마치 파동을 기술하는 상태와 흡사하며, 이 파동은 물질을 측정하였을 때 어떤 결과를 가질지 확률만을 말해 줄 뿐 정확히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확히 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원자 세계에 가면 확률로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의문점이 생긴다. 원자 수준을 측정하는 장비나 측정하는 사람들은 원자보다 매우 크기가 크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측정’을 하는 행위 역시 양자역학으로 기술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의 물리학에서는 이 부분을 명쾌하게 답하지 못하고 있다. 슈뢰딩거 방정식의 결과를 해석할 때 측정결과에 관한 해석이 있을 뿐 슈뢰딩거 방정식 자체는 ‘측정’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기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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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상식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 양자결맞음의 문제

중시계는 양자역학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한쪽 발은 고전역학적인 실험 장치에, 다른 발은 추상적인 양자역학의 세계에 두고 있다. 그러면 중시계에서 얼마나 양자역학적이며 얼마나 고전적인가를 정량적으로 말하는 것이 가능할까? 답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평면 구조로 되어있는 도체가 있다고 가정하고 그 위에 약간의 불순물이 있다고 하자(금속 대부분이 아무리 깨끗해도 불순물을 가지고 있다). 만약 이 물질이 완전히 양자역학적 성질을 갖고 넓이도 무한히 넓다고 하면, 무한히 먼 곳까지 헤매면서 돌아다니는 입자의 경로까지 모두 고려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가설을 두고 실제로 계산을 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계산이 어려워서가 아니고 가정이 특이하기 때문이다. 즉, 무한히 넓으면서 완벽히 양자역학적이라는 가정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유한한 온도에서는 열적인 운동으로 말미암아 전자가 지나가면서 양자역학적인 성질을 잃고 고전적인 성질을 갖게 된다. 전자가 지나가는 길 주변의 원자들이 에너지를 주고받게되면 관측자의 성격을 갖게 되어 앞서 말한 것 같이 양자역학적 성질을 잃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자기장을 가하고 전기전도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통해서 얼마 동안 양자역학적인 성질을 유지하는가를 말해주는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데, 이 시간을‘양자결맞음 시간’이라고 한다. 필자는 수업시간에 즉흥적으로 학생들에게 이 시간이 대략 얼마나 될까를 물어보고 학생들에게 그 실험값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때 대부분 학생이 놀라는 것을 발견했다. 학부 때부터 열심히 양자역학을 공부하였는데 그것이 적용되는 시간은 고작 0.000000001초라니! 약간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전 세계 어느 실험실의 극저온에서 행한 실험에서도 결맞음 시간은 대략 그 정도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낮은 온도에서 전자가 양자역학적인 성질을 잃는 주된 이유는 전자들 간의 충돌 때문이다. 현대의 양자역학 이론에 의하면 전자의 온도를 하강시키면 전자의 충돌은 줄어들어 양자결맞음 시간도 점차 늘어나야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모든 실험 결과에 낮은 온도의 결과를 보면 결맞음 시간이 더는 증가하지 않고 정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연구자들은 그런 결과를 담은 논문들에 본인들의 실험이 정확하지 않고 그 부분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해석해 놨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모한티(P. Mohanty) 교수는 이러한 양자결맞음 시간이 증가하지 않는 이유가 실험의 오류가 아니라 자연계의 근원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해 학계에 커다란 파장을 주었다. 왜냐하면, 모한티 교수가 옳다면 전자들 상호작용을 고려한 양자역학 이론을 송두리째 다시 써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학회가 열리고 토론이 이뤄진 이후에 모한티 교수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뒷받침할 이론이 부족했고 기존의 실험결과에 자성체 불순물이 남아있어 실험을 방해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극히 낮은 온도에서의 양자결맞음 시간에 대한 명쾌한 이론과 실험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문제는 지금도 중시계 물리학에서 풀리지 않는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

 

냉동고 속 슈뢰딩거의 고양이(Schr¨odinger ’s cat)

인간도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니 인간의 생각도 양자역학적인가?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는 ‘상태’를 기술하는 것에 있다. 양자역학에서 상태란 측정하기 전에는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어떤 것이고, 고전역학에서는 측정과 무관하게 자체적인 상태를 가지고 있어 측정을 통해 드러나는 것뿐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중식당에 들어가서 자장면을 주문할 지 짬뽕을 주문할지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하자. 양자역학에 따라서 정말로 그는 자장면을 시키는 사람과 짬뽕을 시키는 사람의 중첩 상태일까 아니면 고전역학적으로 미세하게 결정되어있지만, 너무 미세해서 알지 못하는 것일까.

슈뢰딩거는 이 문제를 좀더 체계적으로 논의하고 싶었다. 그는 미시적인 세계의 양자역학이 거시적인 상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깊이 있게 생각하여 사고실험(생각으로 하는 실험)을 고안했다. 대략 한 시간의 반감기를 갖는 방사능을 방출하는 원자가 있다고 하자. 물론 이 원자는 양자역학적으로 확률로만 기술이 가능하다. 이 원자 주변에 검출기를 달아서 방사능이 나오면 자동으로 독극물을 방출하는 장치를 만들고 이 장치를 고양이와 함께 상자에 담아서 밀봉한다고 하자(고양이가 살만큼의 충분한 산소가 있다고 가정한다). 한 시간 뒤에 이 상자를 열었을 때 고양이가 살아있을 확률과 죽어있을 확률은 반반일 것이다. 문제는 상자를 열기 바로 직전에 과연 정말 고양이가 죽어있는 동시에 살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죽어있거나 살아있는데 인간이 모르는 것뿐일까? 이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결맞음 시간과 관련되어 있다. 원자 하나가 보유한 양자역학적인 정보는 과연 거시적인 고양이에게 이르기까지 그 양가 상태를 유지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렇지않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성질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이처럼 거시적인 물체의 양자 상태를 연구하기 위해서 근래에 와서는 원자보다 커다란 물체로 하여금 양자역학적인 성질을 가지는 상태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그 시도는 온도를 낮추고 외부 상호작용을 차단하면 그 극한에는 거시적인 물체도 양자역학적인 성질을 갖게 될 것이라는 가설에 기인했다. 이 경쟁에서 초기의 승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산타바바라 대학교 물리학과의 클래란드(A. Cleland) 교수팀이었다. 2010년 이들은 높은 주파수의 역학적인 진동을 갖는 반도체를 미시적 초전도 양자 상태와 결합하여 거시적인 역학계가 양자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물론 이 실험은 매우 낮은 온도로 물체를 냉각하는 조건이 필요하다. 이러한 제약 조건 때문에 거시적인 양자 상태의 국한된 모습만을 관찰하게 되었지만, 앞으로 다양한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얼마나 큰 양자 상태의 물체를 볼 수 있을까?

 

한국의 중시계 물리학

필자가 중시계 물리학으로 박사과정을 하던 1990년대 중반에는 중시계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가지고 계신 분이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어서 다른 분야의 교수님들께 사사해 학위를 취득했다. 고체물리학의 제일원리 구조 계산이나 전자의 강상관계 물리학 등을 하고 계신 학자들이 중시계 물리학에서 자신들의 장기를 가지고 연구하던 시기이다. 한국의 연구자들은 때마침 인터넷의 발달에 힘입어 외국에서 나오는 논문을 ‘코넬대학교 arXiv(arXiv.org)’를 통해 하루 만에 볼 수 있었다. 이 전 세대는 미국에서 논문을 쓰면 6개월 후에나 정보를 접했었다. 젊은 한국 물리학자들의 열심히 일하는 열정과 인터넷의 발달,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중시계 물리학의 특성이 잘 이루어져 이 당시 박사과정을 하던 사람들은 좋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고 자주 만나서 토론하였다. 이들 대부분은 현재 대학교수이거나 연구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연구진이 되었고, 현재까지 모임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 1999년 1월부터 시작한 중시계 모임은 중시계 학교와 워크숍 등을 개최하며 후학을 지원하고 새로운 문제를 집중 토론하는 장으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중시계 물리학은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의 틈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 경험을 바탕으로 생물물리학, 자성체물리학, 양자 정보공학 등으로 그 분야를 확장하여 현재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먼 훗날 중시계 물리학을 소개할 때는 현재의 젊고 패기 있는 대학원생들이 연구하는 생뚱맞고 새로운 주제들이 더욱 많아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안강헌 / 충남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 그림 설명 및 출처

 – 그림 1: (좌) 옴(G. S. Ohm, 1789~1854), (우) 란다우어(R. Landauer, 1927~1999) (출처 :  en.wikipedia.org/wiki/Georg_Ohm,  www.ieeeghn.org/wiki/index.php/Rolf_Landauer)

 – 그림 2: ▲오른쪽 그림은 반도체 표면위에 전극을 올려 놓아서 전자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매우 작게 만든 중시계 양자점접촉구조(Quantum point contact)이다. 여기서 전자들이 통과하는 전기 전도도 G(왼쪽 그림)는 점접촉 구조의 길이나 넓이에 비례하지 않고 오로지 전자가 통과할 확률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2e×e/h 의 정수배의 형태로 전기전도도가 나타난다(e는 전자의 전하량, H는 플랑크 상수). (출처 : http://www.lorentz.leidenuniv.nl/beenakkr/mesoscopics/topics/qpc/physics_today/node2.html)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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