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호 인문학술2: 동북아 신화의 이해] 고구려의 주몽·유리신화

 
 

‘주몽의 혼인담’의 중층성으로 미루어 볼 때, 고구려 태조왕이 유리신화를 고구려신화에 편입시키면서 유리를 ‘주몽의 친아들’로 부각한 반면에 ‘주몽의 아들인 비류와 온조의 이야기’를 지웠을 것이고, 백제 쪽에서는 고구려를 계승한 시조 온조가 자신을 주몽의 아들로 설정하면서 자연스레 그 혼인담을 수용하였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건국신화 개관

우리의 건국신화 속 건국시조는 공통적으로 천상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 시조가 (1) 직접 하강한 존재인지, 아니면 (2) 지상에서 탄생한 존재인지 분명하게 구별된다. 먼저, ‘건국시조가 하늘에서 직접 하강하여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었다’는 내용의 신화(「직접 하강」형 신화)는 우리 건국신화의 원초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해모수신화와 환웅신화, 그리고 사로 육촌장설화를 들 수 있다.

다음으로, ‘지상에서 탄생한 건국시조’(「지상 탄생」형 신화)를 보면, 천상적 존재[부]와 지상적 존재[모]의 신성혼에 의하여 탄생하는 경우와 하강한 운반체에 의하여 자생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를「천부지모」형 신화, 후자를「천남지녀」형 신화(혁거세신화, 수로신화 등)라 부른다. 「천부지모」형은 시조가‘부모의 신성혼’을 통하여 탄생한 뒤 신격으로 좌정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고, 「천남지녀」형은 시조가 부모의 신성혼을 거치지 않은 채‘하강한 개체에서 탄생’하거나 혹은‘스스로 탄생’한 뒤 자신이 지상적 존재의 신성한 여성과 혼인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전자는 ‘부모의 결합’이, 후자는 ‘남녀의 결합’이 중시된다는 점에서, 양자가 서로 다르다. 또한 이들 두 유형은 시조가 지상에서 탄생한다는 점에서「직접하강」형 신화의 시조 행적과 차이가 있다.

이 가운데「천부지모」형 신화는 고대 북방 지역에서 널리 전승된다. 그것은 이와 동일한 구조를 보이는 건국신화가 여럿 발견되기 때문이다. 곧 단군·해부루·동명·주몽·유리신화, 그리고 단군신화 속‘부루 탄생담’등이 그것이다. 따라서「천부지모」형 신화야말로 북방계 건국신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또한 이 유형의 신화는「직접하강」형신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직접하강」형 신화는 대개「천부지모」형 신화에 결합되면서 시조는「천부지모」형 신화 속‘시조의 부친’으로 재설정된다. 가령, 환웅신화는 단군신화와 합쳐지면서 환웅이 단군의 부친이 되고, 해모수신화는 주몽신화와 합쳐지면서 해모수는 주몽의 부친이 된다. 그로 인해 환웅신화와 해모수신화는 각각 단군신화와 주몽신화 내에서는 그 독자성을 상실한다.

이 글에서는 지면관계상 북방지역에 두루 전승되었던「천부지모」형 신화, 그리고 그 가운데 고구려 건국신화의 핵심인 주몽·유리신화를 중심으로 살피면서, 이들 신화의 실상이 무엇이고 그것이 후대의 서사문학에 어떤 관련성을 지니는지 소개하기로 한다.

 

고구려 건국신화의 전승상과 주몽·유리신화의 서사적 특징

고구려 건국신화는 국내외에 걸쳐 수많은 전승문헌목록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문헌별로 내용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가령 <삼국사기>에는 건국시조신화인 주몽신화 외에도 유리·해모수·해부루·금와신화 등이 뒤섞여 있다. 그런데 원래 해모수신화는 북부여의 시조신화이고, 해부루·금와신화는 동부여의 시조와 그 아들에 관한 신화이다. 게다가 해부루신화에는 해모수가 해부루의 부친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고구려신화에는 해모수가 주몽의 부친으로 나오고 주몽과 유리가 부자관계로 설정되어 있지만, 정작 해모수와 해부루의 부자관계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는 이들 신화가 ‘하나의 고구려신화’로 통합될 때 시조‘주몽’을 중심으로 재편성되면서 생긴 일이다. 한편, 부여의 시조인 동명(東明)에 관한 신화의 경우, 중국 문헌에 따르면 백제의 시조이기도 한데, 이 동명은 고구려 주몽과 그 동이성 여부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그러나 최근 학계의 성과를 정리하면, 고구려의 주몽신화는 동명신화를 토대로 형성되었으며, 여기에 북부여의 해모수신화가 덧붙여지고 그 외에 몇 개의 신화가 전승하는 동안에 합쳐졌을 것으로 본다. 먼저, 주몽·유리신화는 건국시조신화요 영웅신화로서‘출생, 성장기 어린 시절, 성장지의 이탈, 건국과 후계자, 즉위 후 공업, 죽음과 능’이라는 서사요소를 동일하게 갖고 있으면서도 세부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곧 전자에는‘시조의 탄생담’이 나오나, 후자는 이 부분이 누락되어 있다. 그러나 <제석본풀이>의 내용을 고려할 때, 후자에도 천부지모형 신성혼에 의한 시조의 탄생담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주몽은 성장지에서 적대자의 박해를 받으나, 유리에게는 부친의 부재 및 정체확인이 문제가 된다. 또한 주몽이 홀로 성장지를 탈출하나, 유리가 모친과 함께 성장지를 떠난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주몽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면서 성장지로 귀환하지 않으며 즉위 전에 혼인하지만, 유리는 부계 집단에 편입하여 부왕의 후계자가 되어 왕위에 오르고 즉위 후에 혼인한다는 점이다. 이러한‘성장지 탈출 및 신왕조 건설’과 ‘부계집단으로 편입 및 후계자’라는 양자의 차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가령 <제석본풀이>가 주몽신화와 유사하다고 보는 기존의 견해와 다르게, 오히려 <제석본풀이>는 유리신화와 비교해야 함을 명확하게 말해준다. 또한 동북아 내지 세계의 다른 민족의 건국시조신화, 그리고 우리의 무속신화와 민담 등을 이들 두 신화와 비교할 때, 둘은 상호 공통점과 차이점을 드러내기 위한 유용한 서사적 기준을 제공한다.

 

201-05-1

 

전승문헌상 차이로 본 주몽신화의 서사적 의미

다음으로, 고구려신화가 국내외에 다양한 전승문헌 목록을 갖고 있는 탓에 기록상 차이가 존재하며 그로 인한 차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 하나가 ‘주몽 혼인담의 중층성’문제이다. 주몽신화에서‘주몽의 혼인담’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나오지 않으나, 동서의 유리왕조와 백제본기의 온조왕조에는 실려 있다. 물론 두 부분의 내용도 서로 차이가 있다.‘ 주몽이 졸본 여성과 혼인하였다’는 몇 개의 이야기도 전하는데, 이는 주몽이 건국과정에 원조 집단의 여성들과 혼인한 사실을 반영한다. 이러한 ‘주몽의혼인담’의 중층성으로 미루어 볼 때, 고구려 태조왕이 유리신화를 고구려신화에 편입시키면서 유리를‘주몽의 친아들’로 부각한 반면에‘주몽의 아들인 비류와 온조의 이야기’를 지웠을 것이고, 백제 쪽에서는 고구려를 계승한 시조 온조가 자신을 주몽의 아들로 설정하면서 자연스레 그 혼인담을 수용하였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또한 주몽의 모친 이름이 하백녀, 하백지녀 유화, 그리고 유화 등으로 다르게 전승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가령 <광개토왕릉비>·<위서>에 하백녀가 등장하고 12세기 이후 <삼국사기>·<제왕운기>와 같은 국내 문헌에 비로소 ‘유화’가 등장하는데, 필자는 이들 두 신격이 서로 달랐을 것으로 믿는다. 그리하여 주몽신화가‘하백녀의 감응’을 핵심으로 하는 동명신화를 바탕으로 형성되고 나중에 해모수신화가 덧보태지면서 ‘세 여인의 목욕과 유화의 잉태담’이 꾸며졌으리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삼국사기>에서 시조모 유화가 아들 주몽에게 새로운 땅에 가서 나라를 세우게 하나, <동명왕편>에는 주몽이 스스로 건국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도 문헌상 중요한 차이점으로 이해된다. 이는 여성신격과 남성신격이 각각 건국사업에 주체적으로 관여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우리의 건국신화는 주로 남성신격이 주체적으로 건국 사업에 관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후대에 이루어진 왕가의 신화(석탈해·삼성신화 등) 및 무속신화(<성주무가>)에도 이러한 양상이 나타난다. 여성신격이 주체적으로 신격 수립 작업에 관여하는 경우는 오히려 주변 민족의 신화나 우리의 구전신화에 많은데, 이는 건국신화에서 누락시킨 여성신(가야산 여신, 수성할미, 지리산 성모 등)의 이야기를 민간에서는 지속적이고 꾸준히 전승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유리신화의 독자성

끝으로 유리신화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신화는 유리의 출생담이 누락되어 있다. 그런데 주몽신화를 보면, 주몽의 출생과정에 ‘해모수와 하백녀의 결합(사통)담’과 ‘일광감응 난생담’이 이중으로 결합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전자는 따로 전승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몽신화가 동명신화를 근간으로 생겨났음을 고려할 때, 바로 전자의 사통담은 주몽의 출생담보다는 유리의 출생담에 결부되어야 마땅하다. 이는 유리신화와 유사한 서사구조를 보이는 <제석본풀이>를 보아서도 그러하다. 유리왕은 고구려 초기 주몽 이후 해씨계의 첫째 왕으로서 시조의 성격을 지니고, 유리가 비류·온조 집단과의 왕위 계승 투쟁에서 승리하여 왕위에 오른 탓에 자신의 정통성을 과시할 목적으로 신화를 꾸몄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함께 유리는 태조왕의 할아버지로 설정되어 있는데, 고씨계 왕들의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태조왕대(53년∼146년)부터 유리신화가 건국신화로 수용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7세기 초 국사가 개편될 때 고씨계 중심의 역사로 재조정되면서 유리신화는 주몽신화의 뒷부분에 놓이게 된다.

한편, 유리신화는 역사서에 전하는 고구려의 왕권설화와 비교할 때 이들 설화의 ‘전범성’ 내지 ‘모형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크다. 가령 주몽과 유리신화에 ‘명궁 및 3인 남행’ 대목이 나오고 주몽의 ‘황룡타고 승천하기’와 유리의 ‘공중에 솟구쳐 창틀 타고 태양으로 향하기’가 유사하며, 유리왕처럼 고국천왕과 산상왕이 각각 ‘발기와 왕위 투쟁'을 하고 있고, 유리왕 이야기에 나오는 ‘왕비와 후비의 총애 다툼’이 각각 중천왕과 산상왕의 이야기에 나온다. 한결같이 이들 왕권설화가 유리왕의 설화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다.

 

이지영 /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

 

* 그림 설명 및 출처

 – 그림 1: 주몽을 키워준 금와왕의 이야기를 담은 우표(우정사업본부 발행). (출처 : blog.daum.net/e-koreapost)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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