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호 인문학술1: 동북아 신화의 이해] 시베리아 동북아 곰신화의 이해와 전망

 

 

신화연구란?

신화연구는 과거 자연신화학의 관점에서 출발하여 역사지리학적 연구 등 다양한 관점을 넘어 이젠 심리학, 언어철학, 포스트모더니즘적 철학 경향에까지 두루 적용되면서 여전히 화려한 변신과 신비적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과학문명이 발달할 만큼 발달한 오늘도 여전히 신화적 세계의 한 부분이라고 한 해석이 허용되고 있는 점을 보면 신화연구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구 공존될 가능성이 예견된다. 신화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집착은 과연 어디에 그 목적이 있고 언제쯤 그 끝이보여지는 것일까?

신화는 결국 현세적 인간의 삶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즉 나와 동료와 사회 및 자연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설정해야 하는 과정이란 것이다. 많은 신화가 필요한 이유는 그 현재란 것이 서로 다른 시공간과 사건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많은 신화들이 서로 전혀 다른 얘기만하고 있지는 않다는 데 있다. 질서정연한 어떤 방향성의 제시가 있는데 이는 또한 신화 속에는 불변의 것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신화연구는 인간 자체, 문화,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를 겨냥하고 있다. 또한 오늘의 정치 역사적 문제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도 작동하고 있다.

 

단군 건국신화와 창세무가(倉世巫歌)

한국 최고(最古)의 신화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몇몇 신화들이다. 그중 단군신화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그간의 수많은 연구들이 이를 입증한다. 그런데 세계의 대다수 신화들을 볼 때 어떤 부족이든지 그들 자신만의 창세신화와 인류기원신화를 가진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화들은 소위 건국신화 혹은 씨족기원신화 등에 해당될 뿐 창세와 무관하다. 그간 신화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아쉬움을 해소하지 못했었다. 이웃 중국의 반고신화나 일본의 이자나기, 이자나미 신화는 모두 천지창조와 인세창조를 이룬 내용의 신화이다. 단군신화의 어디를 봐도 이런 설명은 없다. 신화사에 있을 수 없는 이런 기현상은 한국의 무속(巫俗)을 연구하면서 해결된다. 수천 년을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무가(巫歌)에 천지창조와 인간창조의 신화가 설명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과 일본과는 다른 환경의 전승이었던 셈이다. 그나마 기형적인 신화형태가 될 뻔한 사정을 무속이 메꾸어 준 것이다. 현재 한국은 이웃의 국가들보다 무속이 강세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직 미신으로 혹은 전근대적인 것으로 취급받는 것이 사실이나 기실은 그렇지도 않음을 학계나 상당수 대중은 인정한다. 아무튼 한국신화의 위신을 무속이 세워준 것만은 확실하다.

 

시베리아 곰신화와 웅녀

시베리아 신화를 논하면서 단군신화가 언급되는 이유는 곰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이 등장한다고 모두 관련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비교연구를 통해서만 확정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의 단군신화와 시베리아의 곰신화를 비교할 때 발견되는 유사점들은 다음의 사항들이다. 곰이 여성으로 인정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암곰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 동일하다. 또 하나는 그 자손이 영웅시되고 이들은 같은 뿌리 조상으로 인정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은 신성시된 조상의 곰세계를 산속에 형성한다. 이들 조상 곰신의 세계는 인간계와 연결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제의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곰을 신성시 한다. 그 의식 이 곰제의(祭儀)다. 이런 곰제의와 연결된 다양한 신화가 존 재하는 점은 필연이다. 당연히 곰신은 이들 무당의 몸주신(主 神)이다. 곰제의와 곰신화는 일체의 곰문화를 이룩하여 전승 된다.

한국은 시베리아적 신화소를 온전히 간직한 곰신화를 가지고 있으나 오늘의 문화 경향을 보면 그 흔적을 찾기가 용이하지 않다. 한편 호랑이에 대한 인식은 상당한 정도에 이른다. 이를 방증하는 대표적인 자료는 한국의 호랑이 설화를 들 수 있다. 동물설화의 통계를 볼 때 단연 압도적인 수를 자랑한다. 어떤 이유와 과정으로 인해 곰이 호랑이로 바뀌었는지 모호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한반도에서는 곰문화에서 호랑이문화로의 교체가 진행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호랑이로 교체된 곰문화는 그 사상과 문화소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기 때문이 다. 한국에서 발견되는 호랑이 관련 자료들은 곰이 가졌던 위상과 동일시된다. 한국에서 곰문화소가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국의 민속과 지명 및 역사적 기록 등에는 여전히 곰문화와 관련된 흔 적이 많이 남아있다. 그러나 좀 더 진전된 연구를 기다리고 있 음은 사실이다. 이렇듯 주인공이 교체된 가운데 곰문화소가 중요하게 된 이유는 근래에 들어 열띤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공정은 이전의 중원고대문명공정에 이은 것으로 핵심은 홍산문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산문화와 고조선과 곰 홍산문화는 그 역사가 일만 년에 걸쳐 이루어진 장구한 역사과정을 드러낸 것으로 근래에 들어서야 비로소 세계의 학자들에 의해 조명을 받게 되었다. 특히 한, 중(만주), 일, 몽골 등 의 학자들이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여러 차례 국제 학술대회를 열어 연구를 진전시키고 있다. 그러나 각국의 입장 은 큰 차이를 보이는데 특히 문제의 중국식 공정이다. 홍산문 명을 중원의 문명으로 못박아 버리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홍산문명은 오늘의 국가와 민족의 구분을 넘 어서는 것이다. 네 것이다, 내 것이다 논할 성질의 것을 넘어 선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이 문명의 영향을 모든 국가가 두루 받아 유전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관계에 정도와 경중은 있다. 그 주요 핵심적 문화소의 연결고리가 어디로 더 흘러 들어갔는가 하는 점은 논의의 핵심을 이룰 수밖에 없다. 문명 의 흔적(장묘문화, 부장품, 옥문화, 부장품의 이미지와 신상 등)은 사실 한반도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그래서 고구려를 비롯한 발해와 부여의 문화를 그들의 문화로 편입시키려는 공정이 시도되는 이유다.

그 연결의 중요한 한 단서가 곰에 있음을 이미 중국인 학자도 알고 있었다. 한 기(基)의 묘에서 발굴되는 많은 곰그림을 그 단서로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넘어 홍산문화의 옥의 모양과 형태가 곰과 닮아있는 소위 옥웅룡(玉熊龍) 옥기나 무덤에서 발굴되는 곰의 머리뼈 등을 들어 중국의 황제 유웅씨(有熊氏)와 연결하여 중국의 요서지역이 신화와 전설시대의 황제족 영역이었음을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한국의 학자들에 의해 비판된다. 즉 황제의 본성은 공손이고, 헌원씨 혹은 유웅씨라고 불리기도 한 점은 확실히 둘의 연결이 모호하며, 곰문양이 보이는 우하량문화 당대의 곰문화는 오늘의 퉁구스나 고아시아족의 것과 동일계로 보고 있으며, 모계와 부계의 차이도 보인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두 문화는 서로 시대적 층위가 다르다는 점이다. 즉 유웅씨와의 관계는 우하량문화의 미약한 영향관계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단군신화는 시베리아의 곰문화를 고스란히 전승하고 있고, 한국어는 고아시아어족에 해당하는 분류에 들어가는 점을 볼 때 그 친연성의 정도는 차원을 달리한다. 문제는 단군의 고조선 역사를 과연 서기전 4~5000년대까지 거슬러 올릴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상대적으로 기록이 미약한 전통을 가진 우리는 이 점에서 불리하다. 그러나 요 근래 재야학자들의 기발하고 왕성한 연구를 볼 때 그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걸림돌은 물론 무수히 많다. 강단사학의 전통, 위서논란, 식민사관의 지속, 그의 현실적 연계, 이로부터 비롯된 주체성 상실 등 여기에 이념적 분단의 현실은 더 복잡하여 모두 풀어야 할 과제들이다.

 

시베리아 곰신화 연구의 전망

시베리아의 곰문화와 곰신화를 논하는 마당에 역사와 오늘의 현실적 문제를 모두 거론해야 하는 상황이 다소 기이하고도 부담이다. 신화는 어느새 역사가 되고 현실적 삶의 문제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신화는 역사가 아니다’라고 우겨대던 식민주의자와 그 추종자들은 이제 이러도 저러도 못하게 생긴 꼴이다. 반면 한쪽에서는 조작도 서슴지 않고 우격다짐을 자행한다. 자연히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를 한번에 확 바꿀 수 있는 사정도 아니다. 신화는 역사다 아니다 가부의 문제를 넘어 또 인간의 문화와 인간의 이해의 영역을 넘어 미래적 화두가 되어버린 양상이다. 가벼이 볼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인문학을 경제 논리로 재단할 수 없는 이유도 명백하다. 그 해석과 노력이 오늘과 내일의 우리와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북방의 곰문화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적어도 일만오천 년에서 이만 년의 역사를 가진다. 그 전통은 홍산문화를 통과해 고조선으로 이어졌고 오늘날 한국문화의 기저를 이루었다. 이 하찮은 신화소 하나는 그러나 수천 수억 인구의 정체성과 역사와 문명론을 가늠하는 위대한 신화소가 되고 있다. 앞으로도 시베리아의 곰신화는 동북아 정치적 역사적 정통성 담론의 핵심 주제가 될 것이고 인간의 삶과 문화를 묻는 지속적인 화두가 될 것이다. 부디 동아시아 공동번영의 토대 연구가 되어지기를 기원한다.

이정재 / 국어국문학과 교수

 


* 그림 설명 및 출처

 – 그림 1: 시베리아 곰신숭배 신상 사진. 홍산문화에도 두루 보이는 삼신 사상이 엿보인다. (출처 : 이정재(1997), 동북아의 곰문화와 곰신화, 민속원.)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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