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호 학술기획2: 자본주의의 위기와 해법] 사회적 기업을 통한 공동체 자본주의의 실현

요약

오늘날의 경제위기를 바라보는 맑스주의자들과 자본주의자들의 시선은 어떻게 엇갈리며 어디에서 조우하는 것일까. 이번 호 학술기획은 서로 다른 이념적 지평을 가진 두 학자의 원고를 통해 자본주의의 한계와 대안을 고민한다. 첫째 원고는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만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주류경제학자들을 비판하며,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시도한‘21세기 사회주의’를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둘째 원고는 초기자본주의의 이타적 정신을 설명하며, 정직을 잃어버린 현 사회를 비판한다. 이어 사회적 기업을 핵심으로 하는 공동체 자본주의 개념을 통해 그 이상을 제시한다.

 

 

뉴욕 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경기침체(recession)를 넘어 공황(depression)의 위협까지 받고 있다. 소위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의 붕괴가 전지구인들을 불행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던 소위 닷컴(.com) 기업들에 대한 과잉기대와 탐욕이 나스닥 버블의 붕괴를 일으키면서 발생했다. 그럼에도 미국중앙은행은 주식시장의 폭락을 반성하기보다 금리를 대폭 낮추고 통화증발의 방법을 통해 급성위기를 만성위기로 변질시켰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의 붕괴: 현대 자본주의 문제점의 귀결

더욱이 2001년 발생한 9·11테러 사태에 대한 정책적 대응 방법 역시 ‘눈에는 눈, 피에는 피’라는 비상식적 복수의 방법으로 대처하면서 막대한 군비조달을 위해 무리한 재정지출이 초래되고 금융정책 역시 통화팽창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전 세계 금리는 대폭 낮아지고 유동성은 급격히 증대되는 과잉초과유동성의 시대가 지배하게 되었다. 이 과잉초과유동성이 사람들의 탐욕과 맞물리면서 소득이 거의 없는 서민들에게 2/28(최초 2년간은 낮은 고정금리, 그후 28년간은 매우 높은 변동금리를 적용)이라는 허황된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는 소위 서브 프라임 모기지대출을 급격히 증대시켰고, 결과적으로 집값 버블이 붕괴되면서 오늘날의 세계경제 위기를 몰고 온 것이다.

 

특히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수재로 불리던 인재들이 오로지 돈과 출세에만 눈이 멀어 월가의 투자은행(IB)에 몰리고,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구조의 금융상품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정부 로비를 통해 규제를 완화시켜 그들이 하고 싶은 방법대로 돈 버는 기회만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번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를 자본시장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통해 증폭시켰던 증권화 및 구조화된 상품 MBS, CDS, CDO 등인데, 이들 상품들의 유동적 특성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부실규모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이는 흡사 피 속에 세균이 침투해 우리 몸 전체를 돌면서 온 몸을 망가뜨려 사망에 이르게 하는 패혈증과 같다. 이것이 지난 10여 년 동안 전 세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한 소위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의 실체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레이거노믹스나 대처리즘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문제를 야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초기에는 1970년대의 오일 쇼크로 인한 스태그플레이션과 고비용 복지부담 등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바람직한 대안으로 등장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가개입이 시장의 활력을 저해한다는 시카고학파의 대규모 규제완화와 국가개입의 축소를 통한 시장중심의 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과감하게 전개하기 시작한 결과, 과도한 복지병으로 신음하던 영국이 대대적 산업구조조정과 민영화를 통해 갱생하게 되었다. 고물가로 고통 받던 미국 역시 물가안정의 통화정책과 감세, 규제철폐 등으로 시장이 활성화돼 금융산업 등을 통한 신성장 동력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고 해야 할 정도의 탐욕과 자만으로 인한 지나친 규제완화와 시장만능주의는 미국에서도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를 초래하게 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파국을 초래하게 되었다.

 

초기 자본주의 근본정신: 아담 스미스의 정신과 막스 베버의 해석

그동안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이기심으로 가려져 있었던 초기 자본주의의 창시자 아담 스미스는 자신이 주창한 상업사회의 철학적 근본정신이 되는 그의 명저 『도덕적 감성론』(1759)에서 인간이 갖고 있는 공평한 관전자(Impartial Spectator, 일종의 양심)에 의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선행으로부터 오는 만족감이 결코 작지 않음을 강조했다. 그는 초기 자본주의의 성패와 상업사회의 진보는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여하에 따라 평가된다고 주장했다. 즉, 공동체에 대한 배려와 가치가 전제될 때에만 자본주의의 진정한 발전이 담보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자들 중에는 신자유주의가 아담 스미스의 고전적 자본주의 입장으로 회귀한 것을 비판하며, 그를 자유방임주의자로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는 스미스의 도덕철학 체계를 분석하면서, 스미스의 자유주의는 무질서한 사익추구를 용인하는 자유방임주의가 결코 아님을 밝히고 있다. 스미스의 자유주의는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공정한 범위 내에서만 각자 자유로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을 인정하는 자유주의, 즉 공정성이 매우 강조된 질서 하에서 사익추구만을 인정하는 질서자유주의였다는 것이다.

 

스미스의 자유주의가 현실적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공정성을 보장하는 사회적 장치가 존재해야 하는데, 이 교수는 스미스의 체계에서 이를 담당하는 것이 ‘경쟁’과 ‘윤리’와 ‘법’이라고 분석한다. 경쟁은 반칙을 범하는 경기자를 도태시키는 경제적 제재제도이고, 윤리는 공정성을 보장하는 자율적인 규제 장치이며, 법은 공정성을 강제적으로 보장하는 규제 장치임을 명쾌하게 해석하고 있다. 또한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정의’는 사회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규범이고, 사회를 지탱하는 중심기둥으로 강조하고 있다.

 

스미스는 정의와 공정성을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는데, 사람들이 추구하는 부와 권세를 향한 경주는 공정한 경기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아담 스미스의 고전적 자유주의가 오늘날 우리 사회 일부에서 용인되는 유전무죄식의 천민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250여 년 간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의 성공요인이 근면과 절약이라는 청교도적 가치관이라는 것은 막스베버를 위시한 많은 학자들에 의해 판명되었다. 이미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20)에서 예견했지만, 근면과 절약과 같은 정신이 공동체의 발전에는 무관심하면서 개인적인 부의 축적에만 관심을 쏟는 맘모니즘(Mammonism)에 갇혀 있을 때 우리가 직면할 결과는 대단히 부정적이다.

 

초기자본주의가 스미스의 도덕감성론적 이상을 잃어버리고 탐욕과 자유방임의 극치를 달린 결과, 극심한 경기변동과 아울러 크고 작은 공황을 경험한 끝에 마침내 전무후무한 대공황을 겪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끝이 세계경제 대위기를 초래한 것과 판에 박은 듯이 같다.

 

 

공동체자본주의와 사회적 기업: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조화

공동체자본주의는 “다 같이 더 잘사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사회적 약자의 천부인권과 정직, 신뢰를 기본으로 하는 경제정의 하에, 개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가 최대한 보장되고, 창의적 방법에 의한 자발적 나눔과 감사운동이 문화가 되는 자본주의”로 정의한다.

 

이미 UN은 2015년까지 현재 전 세계 빈곤인구와 질병인구, 미취학아동인구를 현재의 절반으로 줄이고 전 지구적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새천년개발계획(MDG)’을 2000년에 발표하고 계획을 진행중이다. 빌 게이츠는 2007년 하버드 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졸업생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를 주창했다.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창의적 방법으로 지구촌을 돕는 사회적 기업들을 지원하는 빌 앤드 멜린다 역시 게이츠 재단을 설립하고 사회적 기업가(Social Entrepreneur)로서의 새 인생을 설계하는 모범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기업이란, 시장친화적인 방법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경쟁력 있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고용과 이윤을 적극적으로 창출하되, 이윤을 사용하는 목표가 주주에게 환원하는 개인 배당에 있지 않고(주주에게는 제한적인 배당을 하고), 오히려 사회적 목적에 주로 사용하는 기업을 말한다.

 

사회적 기업의 역할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십 여 년 전이고, 특히 요즘과 같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관심을 끌게 된 것은 2006년과 2007년 다보스 포럼에 사회적 기업가들이 초빙되면서부터이다. 더욱이 2006년도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그라민 은행의 창시자 유누스 박사가 선정된 것을 계기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부와 기업과 대학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 방안이 논의됐고, 괄목할 만한 결과를 통해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정부나 대기업이 실패한 환경파괴, 인권차별, 실업, 교육 불평등, 경제사회 양극화, 제3세계의 빈곤과 질병 등 사회문제를 민간부문 스스로 시장경제의 원리를 적극 활용해 해결하고자 하는 기업이다. 즉, “비즈니스 파워를 이용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창조하려는 것(Use the Business Power to Create the Better World)”이다.

 

사회적 기업은 창조적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시장경제적 가치(Economic Value)와 그렇게 창출한 기업이익을 사회적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실천해 나가는 혁신적 기업이다. 이러한 시장친화적인 방법을 통해 공동체 발전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이 핵이 되어, 자본주의 시장발전과 국민경제의 성장을 주도하는 공동체자본주의가 바로 신자유주의적 폐단을 극복하는 적극적 대안이라 생각한다.

 

권영준 / 국제경영학부 교수, 기업회계·세무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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