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호 학술기획1: 자본주의의 위기와 해법] 세계 대공황을 극복하는 맑스주의자들의 대안

요약

오늘날의 경제위기를 바라보는 맑스주의자들과 자본주의자들의 시선은 어떻게 엇갈리며 어디에서 조우하는 것일까. 이번 호 학술기획은 서로 다른 이념적 지평을 가진 두 학자의 원고를 통해 자본주의의 한계와 대안을 고민한다. 첫째 원고는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만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주류경제학자들을 비판하며,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시도한‘21세기 사회주의’를 그 대안으로 제시한다. 둘째 원고는 초기자본주의의 이타적 정신을 설명하며, 정직을 잃어버린 현 사회를 비판한다. 이어 사회적 기업을 핵심으로 하는 공동체 자본주의 개념을 통해 그 이상을 제시한다.

 

세계가 난리다.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이 빠지면서 시작된 경제공황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적자(嫡子)인 파생상품의 경로를 타고 전 세계로 공황을 전파시켰다.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더욱 많이 수용한 나라일수록 파생상품을 많이 사들였고, 결국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왔다. 유래 없는 공황 앞에서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외소하기 그지없다. 그 자신이 신자유주의의 전파자였던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최근 워싱턴 컨센서스는 완전히 파탄났다며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언급했다.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며 전 세계에 신자유주의를 전파하던 미국에서는 감히 입에 담기도 불경한 ‘국유화’가 공공연하게 얘기된다.

신자유주의로 분칠한 자본주의자들은 예전부터 경제위기가 올 때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 그렇다는 둥, 시장에 더 많은 자유를 줘야 한다는 둥의 얘기를 녹음기처럼 반복했다. 자본주의자들이 신봉해 마지않는 ‘보이지 않는 손’의 보살핌 하에서는 그 어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도 있을 수 없다는 근거 없는 신념 때문이다. 80년대부터 영국의 마가렛 대처, 미국의 레이건 등을 통해 자본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민영화, 감세, 규제철폐를 외치며 무제한의 자유를 자본주의자들에게,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에게 부여한 결과는 바로 전대미문의 세계 대공황이다. 창고에는 팔리지 않은 오렌지가 썩어가고 있는데, 동네의 아이들은 쓰레기통을 뒤진다고 하는 자본주의의 경제공황. 그 공황은 물자가 모자라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자가 과잉생산돼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데에 큰 특징이 있다.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일어나는 공황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자 본주의자들에게는 공황이 매우 당혹스러운 상황이겠지만, 사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공황이란 새삼스러운 상황이 아니다. 자본주의자들의 ‘교리’에서는 그들의 유일신이자 전지전능하신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수요와 공급의 아름다운 조화 속에 끝없는 유토피아가 펼쳐진다고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과학’에서 공황이란, 자본주의가 지극히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상황, 즉 자본주의의 유일신 ‘보이지 않는 손’이 아주 정상적으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이윤추구욕망에 빠진 자본가들은 조금이라도 돈이 될 듯해 보이는 곳이 있다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투자를, 아니 투기를 해대기 시작한다. 이러한 자본가들의 무정부주의적 행태는 산업의 특정 분야에서 엄청난 거품, 즉 과잉생산을 일으킨다. 이번에 발생한 전 세계적인 대공황의 경우엔 미국의 주택시장에서 엄청난 거품이 형성됐다. 그 누구도 자본의 이윤추구욕망을 통제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이러한 거품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뿐만 아니라 무절제한, 그리고 무책임한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는 언제 꺼져도 이상하지 않을 주택시장을 위태롭게 지탱하며 거품을 더욱 키우는 모래기둥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미국 주택시장의 위태한 상황을 전 세계로 전달시킬 수 있었던 것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때문이었다. 비우량주택담보대출을 증권화해서 파생상품으로 만든 금융사기집단들은 이 첨단사기상품들을 전 세계에 미친 듯이 팔아댔다. AIG가 보증을 해주고 S&P(스탠더드 앤 푸어스)나 무디스 같은 저명한(?) 신용평가기관들이 우량 판정을 내린 이 사기상품들은 전 세계로 미국의 주택 거품 위험을 실어 나르는 첨병의 역할을 했다. 인터넷과 같은 발달된 기술들은 단시간 내에 엄청난 양의 파생상품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쉽게 거래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이제 모든 것은 준비되었다. 막만 올라가면 되는 상황. 그리고 드디어 막은 올라갔다.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자 전 세계는 아비규환으로 바뀌었다. 누군가가 파생상품을 ‘대량살상무기’라고 한 것은 정말 적절한 표현이었다. 파생상품을 통해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에 함께 올라 타 취해있던 전 세계의 사람들은 거품이 꺼지자 함께 추락하게 되었다. 전 세계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정도로 경제가 망가지는 상황 속에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산을 떨고 있다.

 

자본주의자들이 싼 똥, 노동자 서민이 치우다

그런데 각 나라들이 마련하는 대책을 들여다보니 참으로 가관이다. 금융자본의 대책 없는 사기 행위로 벌어진 이 사태에 대해 자본주의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지는 않고 오히려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그들의 부실을 메워주고 있는 것이다. 각국의 정부들이 얘기하는 소위 ‘국유화’라는 것도 잠시 금융회사를 정부 소유로 한 후 국민의 세금으로 부실을 메워서 ‘민영화’를 통해 자본주의자들에게 안전하게 돌려주는 것이다. 파생상품 등의 금융기법만 첨단 사기인줄 알았더니 공황에 대한 정부의 대책도 파생상품 못지않은 사기이다.

경제공황이 오면 자본주의자들도 무척이나 힘들 것이다. 전에는 일주일에 골프를 두 번 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 번 밖에 못 칠 터이니. 자본주의자들이 그런 큰(?) 어려움을 감수하고 있을 때 노동자 서민들은 일자리를 잃고 거리의 노숙자가 되고, 공공요금을 낼 돈이 없어서 수도와 전기가 끊기고, 학비가 없어서 휴학해야 하고, 심지어는 괴로움에 목숨을 끊기도 한다. 자본주의자들의 잘못에 애꿎은 노동자 서민이 큰 피해를 보는 것도 억울한데 그들이 만들어 놓은 부실까지도 노동자 서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으로 메우는 이 기가 막힌 광경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

언제 경기가 좋을 때조차도 노동자 서민들의 삶이 풍요로웠던 적이 있던가. GDP가 성장하고 재벌들이 엄청난 이윤을 낸다는 소식이 신문지면에 가득할 때조차 노동자 서민들은 비정규직으로 실업자로 고통을 받아왔다. 자본주의자들이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고용해서, 그리고 정규직에 비해 임금을 절반만 주고 맘대로 부려먹어서 이윤을 많이 내면 그것이 과연 국가의 경제가 발전하는 것인가. 소수의 자본주의자들의 호주머니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반면 다수의 노동자 서민은 더욱 가난해지는 상황에서, 평균을 내보니 성적이 올라갔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가.

주류 경제학자들은 현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금융분야에서의 투기행위를 규제해야 한다고 얘기하며, 정부의 직접적인 재정투자 수요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방법은 현재의 무자비한 신자유주의식 경제가 불러일으킨 위기를 완화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대안은 바로 그 지점에서 그친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관심사는 자본주의 체제가 위기 없이 영생무궁토록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범위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와 주류경제학자들의 엇갈린 시선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시선은 주류 경제학자들과는 다른 곳에 있다. 그들의 시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당하고 수탈당하고 억압받는 노동자 서민들에게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노동자를 착취해서 자본가가 이윤을 얻어내는 착취사회라는 것을 밝혀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임금노예의 삶을 근본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계 경제대공황의 시기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고민하는 대안은 당연히 주류 경제학자들의 좁은 범위를 넘어선다.

필자는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책을 쓰면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민중들이 단결해서 만들어나가는 ‘21세기 사회주의’ 실험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2006년 기준으로 1인당 GDP가 7,200달러 밖에 안 되는 베네수엘라에서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은, 1인당 GDP가 20,000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가고 대학등록금이 없어서 빚쟁이가 되는 한국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이제 더 이상 돈이 없다고 병원을 못가거나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어졌다. 뿐만 아니라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정부의 지원으로 협동조합을 결성하도록 해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 두 자리 수를 훨씬 넘던 베네수엘라의 실업율은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베네수엘라에서 ‘21세기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1999년의 선거에서 승리한 차베스는 미 제국주의와 소수의 매판자본을 위해 돌아가던 석유산업을 국유화한 후, 그 재원으로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등의 강력한 복지정책을 펴 나갔다. 즉, 베네수엘라의 노동자 민중이 선거에 승리하면서 정치권력을 잡고 석유산업 국유화를 통해 경제권력을 획득했기 때문에 변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 권력은 소수의 자본가들 손에서 다수 대중의 손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러한 베네수엘라의 사례는 MB악법과 신자유주의 역주행으로 고통 받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모범을 보여준다. 차베스의 다음 말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준다.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입니다.”

 

임승수 /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저자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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