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호 테마서평: 세계화의 한계] 라틴아메리카의 피와 눈물, 한국 교양의 아이돌 되다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실천문학사, 2011)

『프리다 칼로』, (헤이든 헤라라, 민음사, 2003)

『에비타 페론』, (알리시아 두호브네 오르티스, 홍익문화사, 2001)

우리는 이제 나름“먹고 살 만하다”고 느낀다. 그것이 실체이건 아니건 간에 말이다. 그리고 그“먹고 살 만함”다음 단계의 뭔가 그럴듯한 것을 찾는다. 이런 것을 소위 문화니 교양이니 하는데, 이것들이 결코 손쉽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져서 소비되는 것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얄팍한 현실이 존재한다. 최소한 한국에서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 문화나 교양이란 것이 아주 저렴하다. 큰 고민이 없었으며 자연발생적이지도 않아 깊이가없는데다 무엇보다도 진정한 즐거움과 감동이 빠져있다. 그저 좀 있어 보이는 놈들이 먹는다니 파스타를 먹고, 그런 놈들이 마신다니 와인을 마시기 때문이리라. 방귀깨나 뀐다는 녀석들이 읽는다는 책을 읽고 그들의 이론을 떠벌리며 문화의 아이콘을 복사한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체 게바라(Che Guevara, 1928~1967),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 에비타 페론(Evita Perón, 1919~1952)에 관한 이야기가 이러한 현상의 한가운데에 있다. 자연발생적이지도 않은데다 인위적으로 거품에 의하여 조장된 현상이다 보니 언제 또 그들에 관한 관심과 애정이 신기루처럼 없어질 지도 모른다는 현실은 슬프기까지 하다. 싸구려 유행이 학문과 교양의 한가운데까지 들어와 있는 것이다. 갖은 부귀를 누리며 사는 초호화 아파트의 외래종 애완견보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기는 하지만 지리한 사랑을 받고 자라는 황구가 더 좋아 보인다. 비록 알량하고 초라할지 몰라도 우리가 스스로 발굴하여 사람들의 애정 속에서 커나간 인물과 현상들이 더욱 큰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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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꿈꾸지 않는 나라의 체 게바라

이러한 점에서 보면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과 그 인물들의 삶과 지향은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팔리고 있는 현실과 정반대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체 게바라라고 하는 인물은 대세의 기득권을 박차고 변방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친 인물이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쿠바에서 혁명을 하고 그 혁명의 정신을 세계에 실현하고자 죽음을 마다않고 끝까지 투쟁하다 결국 남미의 한 구석에서 제국주의의 총에 죽어간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서 대세의 교양과 문화는 오히려 극복해야 할 과제이며 그가 추구하였던 인간 해방의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대세라는 이름으로 이들의 문화를 깔끔한 양장의 책에 담아 그 이야기를 뽀송뽀송하게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 인물에 대한 동경과 아이콘화가 프랑스에서 진행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스스로 이러한 인물을 발굴하여 출간이나 하였을까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타인에 의하여 만들어진 교양과 문화의 한계가 극명하게 느껴진다. 혁명을 꿈꾸지 조차 않는 사람들의 문화적인 소비로서의 체 게바라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한 면에서 전봉준, 김개남 장군보다 더욱 알려지고 멋있어 보이기까지 한 체 게바라 현상을 문화적인 허영심으로 의심하는 것이다.

메소아메리카 원주민 여인, ‘샤방샤방’한 프리다

프리다 칼로 역시 이와 유사하다. 그녀는 소위 요즘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화가 중 한명으로 꼽힌다. 독일계 아버지와 메소아메리카 원주민 엄마 사이에서 혼혈의 정체성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21살 연상의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와 기구한 사랑을 하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치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그리고 그녀의 삶과 작품 모두에 그러한 극적인 효과가 더해져 오늘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다. 이러한 열광에 힘입어 우리나라에도 그녀의 이야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체 게바라 현상과 맥을 같이 하는 상황이 여기에도 숨어있다. 메시까(Mexica)와 마야 원주민들의 촌스러운 민예품이 주는 투박함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사람이 바로 프리다이다. 그녀의 삶과 예술은 멕시코 토착문화가 가진 감성적, 기술적인 특징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그녀 작품의 예술성은 그 작품 자체에 있다기 보다 그 작품이 가지는 의미와 내면의 이야기에 있다고 말할 정도이다. 즉 멕시코란 나라가 가지고 있는 오래된 고대문화의 전통이 프리다 칼로 예술의 원천이요, 한 인간으로서 그녀가 가진 영광이자 한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국의 논평가가 이야기 해주는 위대한 예술가 프리다 칼로에 열광하지만 그와 같은 맥락에 있는 멕시코 원주민과 그들이 만드는 예술품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거나, 그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마음을 천박한 싸구려로 치부한다. 결국 우리의 이해와 취향은 애당초 가식에 바탕을 두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프리다 칼로가 영감을 받은 원주민 문화와 그들의 예술세계에 대하여 아는 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를 근간으로 하는 프리다의 삶과 예술성에 감탄한다고 하는 것은 뉴욕경매시장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그녀의 작품을 구입하는 서양과 서양인에 대한 동경 이상이기 힘들다. 즉 내가 사랑한 것은 그녀가 아니고 그녀의 짙은 화장과 명품가방이었던 것이다.

성녀와 창녀 사이의 살벌한 가벼움: 에비타 페론

에비타는 어떤가. 20세기를 살아간 이 세상의 여자 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사람 중 한 명이라는 데 이견이 있기 힘들다. 영부인으로 시작하여 정치가로 사회사업가로 활동했으며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외모가 항상 주목을 받았고, 기구하고 짧았던 삶은 체 게바라나 프리다와 같이 극적인 감성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그녀를 가벼운 마음으로 소비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문제가 뒤따른다. 바로‘정치’이다. 그녀는 정치인이고 그 정치적인 성향이 아주 강했다고 하는 점이 우리의 우아한 커피숍에서의 헤이즐넛 향과 어울리기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그녀에 대한 애정과 비판이라는 양면이다. 책제목에서도 항상 꼬리표처럼 달려 다니는 이미지를 떼어내지 않고 있다. “부유한 자들의 창녀, 가난한 자들의 성녀”즉 그녀에 대한 평가를 할 때는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각인시키고 있다. 그 균형이 기계적인 중립이요, 기득권들이 만들어 놓은 왜곡된 이미지이건 아니건 중요치 않다. 결국 에비타 현상이 절실함에 감동받고 공감되어 되새김질을 통하여 들여온 것이 아니다보니 점잖은 가식적 비판이 여기에 붙어 다닌다. 그녀가 짊어졌던 시대의 고민은 파멸적인 포퓰리즘으로 이해되고 그녀의 정책은 독재라고 낙인찍혔다. 남은 것은 절세의 미인이라는 살벌한 가벼움과 가난한 자에 대한 광적인 애정이라는 에피소드뿐이다. 오늘날 아르헨티나와 중남미의 현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은 간 곳 조차 없다.

프랑스와 미국사람이 쓴 라틴아메리카 영웅 이야기

그러기에 이 책들을 읽다보면 비정상적으로 균형 잡혀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그래서 체 게바라는 좋은 사람이라는 거야, 나쁜 사람이라는 거야?’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에비타는 훌륭한 정치를 한 거야, 아니면 국가를 파탄으로 이끈 장본인 이라는 거야?’다소, 혹은 많은 가치중립적인 면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한 요소가 교양인의 객관적인 것인 양 느끼게까지 만든다. 프랑스 사람이 쓴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도 그럴 것이라 생각해 본다. 한국 사람이 느끼는 이순신과 유관순 혹은 광개토대왕의 느낌은 아니다. 우리의 감성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진리라고 고집피우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이순신 장군은 분명 오늘의 현실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고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저술들에서는 기계적인 객관은 있고 한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눈물과 진정한 공명이 빠져 있다. 프랑스 사람이 그리고 미국 사람이 쓴 라틴아메리카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이 풍부한 자료와 고증을 통한‘균형 잡힌 시각’이라는 이름하에 묘한 색깔을 만들어낸다. 분명 이 저술들은 각각의 인물들이 살았던 그 곳의 형제와 이웃을 위해서 쓰여진 것이 아니다. 소위 글로벌화된 문화세계의 다양한 독자층을 염두에 둔 저술이다. 그래서 객관적이기도 하지만 그놈의 객관이라는 것이 역사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저술은 철저히 주관적이고 교묘한 식민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마치 교양 있는 영국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위대한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의 이야기 같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새로운 것을 알고 배우고 느낀다는 것은 결국 즐거운 일이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떨치고 살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그러니 이 세 권의 책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그렇지만 잘 읽어 보자. 그리고 좀 더 사색하고 다시 찾아보고 의문을 가지고 또다시 되새김질해 보자.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온전히 그들을 우리의 가슴으로 접할 날을 준비해 보자. 당장 온전한 먹거리가 없는 상황에서 패스트푸드라고 마다할소냐. 장작불로 가마솥에 끓인 된장국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읽어 보자. 체 게바라, 프리다 칼로, 그리고 에비타 페론.

송영복 / 스페인어과 교수

*사진 설명 및 출처

사진1: 왼쪽부터 체 게바라, 프리다 칼로, 에비타 페론 (출처: media.sul21.com, wgsn.com, taringa.net)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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