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호 책지성:지그문트 바우만『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네트워크가 넘치는 시대, 왜 우리는 고독에 몸부림칠까?

 203-11-2

 우리는 거미줄과 같은 사회 연결망에 촘촘히 연결돼 있다. 카카오톡은 하루에도 수십 개 씩 친구들의 메시지를 전하고,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는 ‘페북용 친구’들의 여유로운 일상과 깊은 사색들이 분 단위로 업데이트 된다. 어떻게 알았는지 지구 반대편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친구요청을 해오기도 한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거쳐 세상엔 찾아내지 못할 사람이 없으며 마주 하지 못할 사람도 없다.
일찍이 이렇게 사람과의 연결이 넘치는 사회는 없었다. 하지만 이토록 개인이 외로운 시대 또한 없었다. SNS를 통해 끊임없이 누군가와 대화하고 ‘좋아요’를 클릭함으로써 수십 번 공감을 표하지만 그럴수록 커져가는 공허함에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갈 뿐이다. 그러한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을 시도할수록 늪에 빨려 들어가는 것과 같이 깊은 외로움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네트워크가 넘쳐나는 시대. 그런데 왜 우리는 더욱 더 고독에 몸부림치게 되는 것일까?

사회가 출렁이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 )은 최근 가장 많이 회자되고 있는 유럽의 사회학자다. 탈근대 사상가로서 1989년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간의 깊은 연관성을 분석한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를 출간해 세계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영국 노동운동과 계급문제에 대해 연구했으나 점차 불안정한 근대성의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현대사회의 유동성(액체성)을 개념화한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 리퀴드 러브(Liquid Love)』,『 유동하는 공포(Liquid Fear)』등의 저작을 통해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그중『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우리가 유동하는 근대를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저자가 우리에게 보내온 편지이다. 44개의 편지에는 고독, 세대차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질병 권하는 사회, 공포에 대한 공포, 경계 긋기,운명과 성격 같이 우리가 평소에 고민하는 것들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들어있다.
액체 혹은 유동이라고 번역되는 ‘Liquid’는 바우만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이다. 그는 개인의 해방과 자아실현, 개인과 공동체 등과 같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이‘액체화’됐다고 선언한다. 이는 기존 근대 사회의 견고한 작동 원리였던 구조·제도·풍속·도덕 등이 해체되면서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바우만의 독특한 개념이다. 그는 세상이 갈수록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기존의 정치·사회 제도는 빠르게 해체되거나 소멸한다. 기존의 사회가 정해진 형태를 유지하는 고체성(견고함)을 가진 것과는 달리 현재는 유동성(액체성)의 성격을 가지고 예측 불가능하고 안정적이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이러한 유동적인 사회가 참혹하게 파괴한 것은 공동체이며 사회의 구조·제도·풍속·도덕이 해체된 자리에 사람이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 ‘개인(개별)화’이다.  ‘개인화’ 또한 바우만이 몇 개의 저작을 통해 집중해 온 개념이다. 삶의 모순을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도의 불합리함을 개인의 부족함으로 돌리게 되면 개인은 분노를 자기검열과 자기비하의 감정으로 변질시키거나 자기 자신에 대한 폭력과 고문으로 분출하게 된다. ‘사회가 구원해주기를 바라지 말라’고 요구하는 사회에 대해 개인은 자신의 힘만으로 극복하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개인은 사회현상을 홀로 극복하기 위해 고독한 투쟁으로 내몰리게 되며 이는 리처드 서넷(Richard Sennett)이 말하는‘공적인 인간의 몰락’을 초래한다.
그는 “지금 우리는 ‘개인들의 사회’라는 최초의 시대를 살고 있다”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가 맺는 관계가 일시적·한시적인 계약 관계이다 보니 인간은‘우리’라는 공동체에서 벗어나 홀로 떠돌고 방황하는 유목민적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공공의 문제를 공공의 장에서 이야기하는 일이 무의미해지고, 공적 책임과 윤리 역시 개인적이고 사적인 문제로전락하고 만다. 사회는 더는 개인의 불운을 집단으로 해결해 주지 않고, 해결해 주겠다는 약속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고 지속시키는 기존 방식은 퇴색하고 사람들은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단절에 대한 공포와 홀로 있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는 그의 주장은 현대인의 끝도 없는 외로움과 불안의 심연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관계에 로그인한다

 공적인 공간에서 문제를 해결해 왔던 인간의 오랜 전통은 몰락하고 홀로 거대한 거인과 싸워야 하는 현대의 개인들은 단절에 대한 공포와 홀로 있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피를 못잡고 지쳐가고 있다. 바우만은 이 책을 통해 “우리는 SNS와 인터넷 서핑에 빠져 고독을 누리거나 사색하는 방법을 잃어 버렸다”고 말한다. 잠시의 심심함도 감당하지 못하고 스마트폰과 컴퓨터 앞에서 소중한 고독을 허비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근육과 상상력을 이용해 고독으로부터 탈출할 능력이 없는 현대인은 인간관계에서도 참을성을 잃어 버렸다. 컴퓨터를 켜고 친구를 접속하듯 인간관계를 로그인하고 로그아웃하게 된 것이다. 인간관계를 유지해 나갈 근력이 떨어진 현대인은 사람과의 감정관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여러 사람들의 ‘좋아요’ 클릭수로 자신의 인간관계 정도를 측정하게 된 사람들은 관계를 로그인하고 로그아웃하길 반복한다. 결국 진정한 관계의 부재 속에서 더욱 깊은 외로움과 고독 속에 빠지며 이를 잊기 위해 또다시 로그인을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바우만은 고독을 이기는 능력을 잃어버린 현대사회에 한숨 쉰다. 하지만 그의 한탄은 무력해진 개인에 책임을 묻는 것과는 다르다. 그는 현대를 최고 권력의 공백 기간인 ‘인터레그넘(interregnum)’이라고 설명한다. 기존의 왕이 죽었지만 새로운 왕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시기라는 의미다.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는 사회적 환경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약해지고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시대에 대한 연민과 이어지고 있는 역사에 대한 믿음을 읽을 수 있다.

203-11-1

프로메테우스와 마주하는 시시포스

 우리가 살고 있는 ‘유동하는 근대’는 잔혹하고 불안하다. 그러나 바우만은 삶에 대한 불안함에서 발생한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 자신이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 사실은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공동체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우리가 처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벗어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율적인 공적 영역에 도달하려면 사람들이 북적이고 활기 넘치는 광장을 통과해야하며, 그 광장에서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만나 사적인 관심사라는
언어를 공공선이라는 언어로 또 공공선을 사적인 관심사로 전환하면서 서로 소통하며 함께 노력해야 한다.” 

 진정한 묶음 공동체의 부활. 이것이 바우만이 말하는 우리의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다. 바우만은 이 책의 마지막 편지에서 시시포스의 신화를 인용한다. 시시포스는 계속해서 돌을 끌어올려야 하는 자신의 삶을 비관해 자살을 선택한다. 시시포스의 운명은 자신의 노동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에 비극적이다. 그렇지만 타인을 위한 삶을 선택했던 프로메테우스와 만나는 순간 시시포스는 노예에서 실천가로 탈바꿈할 수 있다. 바우만은 “자신만의 부조리한 상황에서 홀로 무겁게 돌을 굴려야만 하는 시시포스가 이제는 타인의 비참한 고통에 맞서 반항하는 프로메테우스와 마주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마련해야 한다는 카뮈(A. Camus)의 말을 인용한다.  ‘나’가 아닌 ‘우리’가 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모적 이야기를 확산시키며 ‘개인들의 사회’를 고착화하고 있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아닌 진정한 광장, 아고라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선언이다. SNS를 통해 로그인하는 쿨한 인간관계가 아닌 개인과 공공, 공공과 개인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아고라에서만이 시시포스가 비극을 극복하고 프로메테우스를 마주할 수 있다.


박 지 선 / 컨벤션전시경영학과 석사과정

*그림 설명 및 출처

그림1: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 ⓒ blog.ohmynews.com/saesil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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