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호 특강취재: 2014학년도 학술단체협의회 하반기 학술특강 <라깡의 프로이트로의 복귀 어떻게 다시 읽을 것인가?>] 라깡은 프로이트를 넘어설 수 있을까?

203-12-사진▲홍준기 강연자가 라깡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학술단체협의회(이하 학단협)는 9월 29일부터 11월 3일까지 매주 월요일, 서울교정 본관 401호에서 2014학년도 하반기 학술특강을 개최한다. 우리나라에 라깡의 정신분석학이 수용된 지 약 10년가량 지났지만 그동안 학계에서는 방대하고 난해한 라깡의 이론을 소개하고 이해하려고만 했었다. 이에 학단협에서는 라깡의 이론을 문제화함으로써 우리가 라깡을 통해 무엇을 사유할 것인가를 묻는 특강을 준비했다. <라깡의 프로이트로의 복귀 어떻게 다시 읽을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총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본 특강은 40명의 수강 정원이 모두 마감됐다. 이를 통해 프로이트와 라깡에 대한 높은 관심을 알 수 있었고, 강의 현장에서도 수강생들이 강연자에게 여러차례 질문을 하는 등 열정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홍준기(프로이트 라깡 정신분석연구소 소장) 강연자는 지난 1강에 이어서 10월 6일에 열린 두 번째 강의에서 ‘상징계와 실재의 전쟁: 라깡과 프로이트, 클라인의 무의식과 충동 개념의 비교’라는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다.

 

프로이트주의에 철학을 더하다

 자크 라깡(Jacques Lacan, 1901~1981)은 프랑스 태생의 철학자이며 정신분석학자이다. 잘 알려진 바,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정신분석학을 최초로 정립한 학자인데 라깡은 프로이트주의에 철학적 구조를 제공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철학적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철학적 진리를 추구하게 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자 했다. 또한, 언어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분석하는 이론을 정립하여 ‘프로이트의 계승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인간의 욕망, 또는 무의식이 말을 통해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즉 “인간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진다”는 것이다. 말이란 틀 속에 억눌린 인간의 내면세계를 해부한다고 하여 정신분석학계는 물론 언어학계에서도 새 바람을 일으켰다. 이것은 환자를 치료하는 수단에 머무르지 않고 철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그의 가장 큰 업적이 되었다. 또한 정신분석을 언어화함으로써 임상적으로 적용하기 쉽도록 개념화·명료화했다.

 

라깡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 상징계, 상상계, 실재

 강연자는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들이 기초적으로 어떤 지평에 놓여 있는가를 살피면서 프로이트와 라깡의 개념이 어떤 차원에서 미묘하게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되었는가를 먼저 살펴보았다. 라깡은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존재라면 누구나 다 상징계, 상상계, 실재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사용한다고 보았다. 말하는 존재가 필요한 세 가지는 ▲말해지는 대상(실재) ▲말(상징계) ▲의미의 고정(상상계)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누군가와 대화 할 때 상대방의 말을 모르는 경우에도 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물론 정말 모르는 경우에는 대화를 잠시 멈추고 “그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하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잘 몰라도 알고 있다고 가정을 하거나 막연히 ‘이런 뜻이겠구나’하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데 매사에 “그 단어가 무슨 의미입니까?”하고 묻는다면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할 것이다. 라깡은 우리가 정상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의미가 고정되어 있는 상상계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개념이 사람들마다 서로 달라서 소통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대화하는 순간에는 서로 같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바로 그것이 의미의 고정인 상상계인 것이다.

상징계는 차이의 체계이다. 기표는 다른 기표를 지시할 뿐 실재 자체를 충만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표현할 수 없는 빈 곳이 존재한다. 언어로 표현된 것은 실재가 아니라 현실이고 언어적 규정을 벗어나는 어떤 잉여가 실재할 수밖에 없다. 실재와 상징계의 관계는 실재가 우선하고 상징계는 비록 불완전하게나마 그것을 표현한다. 또한 언어적으로 실재를 규정하는 순간 상징계는 그 규정으로부터 배제되는 잉여적인 실재를 생산해낸다. 실재는 상징계에 의해 생산되지만 상징계의 규정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상징적 질서의 일관성을 위협한다. 그러므로 실재는 상징계에 탈존(ex-sistance)한다고 할 수 있다.

 

욕구, 요구, 욕망 그리고 대상 a(Objet a)

 욕구는 실재이며, 요구는 상상계, 욕망은 상징계에 해당된다. 모든 생물은 태어나면서부터 욕구를 가지고 태어난다. 예를 들어, 아기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 그것을 채우기 위해 엄마에게 요구를 한다. 강연자는 “욕구와 요구는 어떤 경우에도 일치할 수 없으며 욕망이라는 것은 동물적 주체에서 인간적 주체로 발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욕망은 언어적 현상이다. 욕망의 차원으로 진입한다는 것은 언어, 법, 규범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이며, 언어의 세계에 들어갔다는 것은 결여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이자관계(상상계)에서 삼자관계(상징계)로의 진입이며 결여를 받아들임으로써 진정한 주체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라깡은 충동과 관련하여 향유(Jouissance)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향유는 육체와 관련해 인간이 느끼는 충동, 정서(Affekt)의 측면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라깡이 욕망이라는 말로써 욕망은 결핍이고, 상징계에 속한다는 점을 부각시키려 했다면 향유는 충동을 가진 인간이 육체에서 체험하는 그 무엇을 강조하려고 했다.

대상 a(Objet a)는 주체와 타자를 연결시켜주며 비어있는 곳을 완벽히 채우는 것을 의미하는 형식적·이론적 개념이다. 환상을 통해 형성되어진 인간의 욕망이 추구하는 대상이며 동시에 이 욕망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라깡은 대상 a를 욕망의 대상-원인이라고 부른다. 중요한 점은 대상 a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체는 항상 무언가를 욕망하지만 욕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주체 자신도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고 누군가를 욕망하지만 우리의 욕망은 현실이 아니라 환상 속에만 존재하는 대상을 향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어렸을 때 자신을 잘 보살펴주던 어머니의 어떤 특성을 닮은 사람을 욕망의 대상으로 선택한다. 환상이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대상을 ‘모호한’ 욕망의 대상으로 변형시키는 은밀한 장소인 것이다. 욕망의 대상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므로 우리는 이것이 무엇이었는지 분석을 통해 사후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 뿐이다.

대상 a는 부분적 대상이므로 어떤 사람이 우리의 욕망을 자극할 때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은 그(그녀)의 어떤 부분적 특징이다. 그(그녀)의 목소리, 시선, 손짓 등 그 부분적, 실제적 특성이 환상의 공간 속에서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욕망의 대상으로 ‘승격’된다. 환상개념을 달리 설명하면, 완전히 상실되어 사라진 전체적‧절대적 대상(어머니의 육체)을 부분적 대상으로 메우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라깡이 대상 a의 예로서 어머니의 가슴, 시선, 목소리, 똥을 제시한 까닭은 인간이 처음으로 만나는 충동(구순기적 충동, 시각충동, 청각충동, 항문기적 충동)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라깡,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말하다

 라깡은 프로이트로의 복귀를 주장하며 자아 심리학에 반대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정신분석학을 정립하였다. 문제는 라깡의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복귀 선언이 초기의 프로이트 무의식 담론으로의 복귀를 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연자는 라깡이 후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비판하고 있는데, 프로이트의 자아 이론이 자아심리학으로 수렴되는 것 이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는지 재고하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라깡의 문제적 개념인 ‘실재’의 차원에 대해서도 재점검해보았다. 왜냐하면 프로이트 후기 정신분석학의 요체라 할 수 있는 「자아와 이드」 논문은 「문명 속의 불만」에서 새로운 개념인 ‘승화’라는 개념과 연결되는데, 프로이트 담론이 지닌 단순한 한계로 제시한 ‘실재’라는 라깡의 개념을 점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를 대표하는 수많은 철학자들은 사회적 대안의 지평을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인 ‘혁명’ 새롭게 규정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문제는 이들이 라깡의 ‘실재’ 개념에서 이러한 가능성을 본다는 점이다. 본 강의에서는 프로이트의 개념인 승화가 오히려 라깡의 ‘실재’보다 현실적이고 높은 차원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수 있음을 이야기해 보았다.

강연자는 “앞으로 남은 4회의 특강에서 ‘프로이트로의 복귀’라는 라깡 정신분석 이론의 슬로건이 라깡의 담론에 어떻게 작용하였는지를 다룰 것”이고, “라깡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비교하며 프로이트로의 복귀라는 라깡의 테제를 문제화함으로서 라깡 담론의 한계점을 극복할 수 있는지 사유의 모험을 함께 감행해보려고 한다”며 강의를 마쳤다.

 

 

김일권ivandurak@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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