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호 영화비평: <족구왕>(2013)] 낭만적 거짓과 현실의 비천함

203-08-1

우문기 감독의 <족구왕>(2013)을 보자 이용승 감독의 <10분>(2013)이 떠올랐다. 이는 단지 <족구왕>과 <10분>이 독립 영화 진영에서 호평을 받은 이유와 두 영화의 주인공 모두가 20대 청춘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족구왕>이 내게 불러일으킨 기시감은 이 작품의 주인공인 만섭(안재홍)의 모습이 <10분>의 주인공인 호찬(백종환)의 모습과는 정 반대의 인상에 기인한다. 물론 두 영화의 스타일과 서사는 전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족구왕>은 영화 곳곳에 만화 같은 연출이 숨어 있는 스포츠 영화이고, <10분>의 쇼트는 대부분 핸드 헬드(Hand-held)로 촬영되어 있으며 장르의 관습과는 거리가 먼 영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두 영화를 비교하려는 이유는, 두 영화가 주인공을 그려낸 바탕에 어떤 공통적인 정서구조가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두 영화는 같은 정서가 잉태한 이란성 쌍둥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실을 가리는 낭만적 거짓

 

이런 생각은 두 영화가 공통적으로 20대 청춘의 남자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했다. <족구왕>의 만섭은 군대 제대 후 학교로 바로 복학을 한 상태지만 등록금 문제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는 중이다. <10분>의 호찬은 방송국 교양PD가 꿈이지만 한 공공기관의 6개월 인턴으로 근무를 하게 된다. 이처럼 두 영화는 주인공의 행보에 대한 전제 조건으로 재정적인 문제를 끌어들인다. 하지만 두 인물이 여기서 보이는 태도는 천양지차이다. 만섭은 교내 음료 자판기를 관리하는 일과 학교 앞 고깃집에서 일을 하며 근근이 버티지만 결국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한편, 인턴으로 일을 시작한 호찬은 사무실에서 능력과 성실함을 인정받기에 이른다. 그를 눈여겨보던 부장(김종구)은 정규직 자리가 나자, 그에게 정식 직원이 될 것을 권유하기 시작한다. 방송국 교양PD가 꿈인 호찬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업에 관심이 없었지만, 명예퇴직한 아버지와 도우미 일을 하는 어머니, 미술 공부하는 동생을 생각해 정규직 지원을 결심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두 영화는 경제적인 곤란에 시달리는 주인공을 전경화(前景化) 하고 있다. 만섭은 학자금 대출의 상환을 요구하는 전화에 시달리지만 그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결국에 그는 등록금을 내지 못해 수업에서 쫓겨나기 직전의 상황에 이르고 만다. 영화는 그런 만섭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동정을 구하지 않는다. <족구왕>의 카메라는 주인공의 사회적 배경이나 경제적 활동 등의 사건보다 그가 집중하는 족구를 둘러싼 일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만섭은 자신의 상황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재미있어 하는 일에 더 열심이고 영화는 그것의 미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반면에 호찬은 경제적인 조건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인 방송국 PD의 꿈을 포기한다. 물론 호찬이 그것을 포기하기까지는 극심한 경쟁과 불투명한 미래가 한몫 거들고 있지만, 카메라는 경쟁주의 사회의 모습보다 호찬의 가정환경을 묘사하는 것에 더 많은 힘을 쓰고 있다.

 

<족구왕>은 청춘에게 미래보다 지금 현재의 일 또는 좋아하는 일을 즐기라고 말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청춘에 관한 명제를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도 그것에 큰 이의를 달지 않는다. 만섭이 학교에 복학하자 그의 같은 과 선배인 형국(박호산)은 그에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일침을 가한다. 그러나 만섭은 토익도 본 적이 없으며 학점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그런 그에게 형국은 공무원 시험이 대안이라고 말하지만, 만섭은 그보다 연애에 더 관심이 있다고 답한다. 그의 대답과 함께 카메라는 캠퍼스 곳곳을 부유하기 시작한다. 영화가 포착한 캠퍼스는 여유와 낭만을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은 만섭을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보게 된다. 그에게 청춘은 재미있는 일을 즐겨야 하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에 충실하다보면 물질적인 보상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넌지시 속삭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만섭이 고급 외제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 모습을 통해서 말이다.

 

영화가 말하지 않는 것들

 

<10분> 또한 미래보다 지금 현재의 일에 더 집중하라고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현실은 낭만적이라기보다 비참한 것 혹은 고난한 것에 더 가깝다. 호찬은 방송국 PD를 꿈꾸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 PD가 되기 위한 관문은 쉽게 열리지 않고 경제적인 압박은 그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그는 부장과 직원들의 장담을 믿고 정규직 자리에 지원하지만, 회사는 다른 이를 신입 사원으로 선택한다. 호찬은 부장과 상사들에게 책임의 눈빛을 보내 보지만 아무도 그에게 했던 발언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새로운 사원으로 입사한 은혜(이시원)에게 호감을 보이기 시작한다. 호찬은 인턴의 업무로 다시 돌아가 신입 사원을 보조하기까지에 이른다. 거기서 그가 보여주었던 성실성과 업무의 능력은 더 이상 중요치 않아 보인다. 인턴인지 아닌지와 정규직인지 아닌지를 통해 모든 것을 판단하기 시작한다. 그가 보여주었던 업무 파악의 능력은 자주 고장 나는 복사기를 고치는 것으로 대체된다. 그에게 조언을 해주었던 직원들은 자신들의 안위에만 신경을 쓴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지진 대피 훈련에 임하는 그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으로 그들의 그런 경향에 쐐기를 박는다.

 

이 글은 영화가 사회적 리얼리즘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가 가질 수 있는 가치 중에서 리얼리즘을 맨 위에 두려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족구왕>이 가지고 있는 거짓된 진실이 수행하는 낭만성에 대한 것이다. <족구왕>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낭만성은 독립영화라는 표상 때문에 더 쉽게 강화된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독립영화는 주류 상업 영화가 보여주는 허구적 낭만성을 갈등의 현실로 대처하는 것이다. 이 말은 독립영화가 무조건 현실의 비루함을 담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독립영화는 그런 점들을 더 담아 낼 수 있기에 쉽게 낭만적인 기호를 취득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때때로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족구왕>은 낭만적인 서사를 독립영화라는 낭만적 수사 그 자체로 한층 더 강화한 현실도피적인 영화이다. 이것을 어떻게 보면 좋을까. 어쩌면 <족구왕>은, 물론 영화 자신이 직접적으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불안한 청춘들에게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최대한의 위안을 제공해주려는 기능을 발휘한다. 악한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지 않는 착한 가면을 쓰고 있는 <족구왕> 속에 도사리고 있는 상품적인 측면이 카메라에 숨어 있다.

 

<족구왕>의 결말은 만섭이 족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영화의 카메라는 외제차를 운전하고 있는 만섭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지만, 영화는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승을 차지한 만섭이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라는 미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화가 그려낸 형국의 모습이 만섭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형국은 3년 전 족구대회에서 우승을 했던 전설의 족구왕이지만, 졸업도 하지 못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면서 족구 대회에 참가를 하고 만섭과 함께 우승컵을 들게 된다. 영화는 그것을 통해 헤어졌던 연인과 다시 만남을 시작하는 것으로 형국의 미래를 암시하지만, 그의 미래 역시 불투명하다. 만섭도 그와 같은 길을 걸어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의 플롯이 만들어낸 이야기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영화는 그것에 대해, 더 정확히는 불행할지도 모를 미래에 대해 눈을 감아 버리기 때문이다. 영화가 말하는 청춘은 아름답게 박제된 것에 불과하다.

 

다시 첫 문단으로 돌아가 보자. 거기서 언급했던 공통의 정서는 지금 동시대의 청춘 담론을 말한다. 현재 우리 시대는 마음의 치유가 간절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학은 대기업 취직 양성소라는 오명을 쓴 지 이미 오래이고, 장기 불황으로 사회 진입의 기회는 더 좁아지고 있다. 20대 청춘은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그보다 윗세대들은 그들에게 더 힘을 내라고 외치거나 지금의 고통은 청춘이기 때문이라는 이상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른바 힐링 담론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새로운 문화 산물이 되었고, 소비주의와 더욱 강력하게 결합하고 있다. 현실도피적인 문화는 증상만 있을 뿐 증상에 대한 원인 제거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소비주의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원인을 제거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감정까지 상품화하는 기제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족구왕>에 보냈던 대중들의 환호가 반갑지 않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백태현 /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강사

*그림 설명 및 출처

(출처: movie.naver.com)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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