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호 인터뷰: 고희경 대성 디큐브 아트센터 극장장] 관객과 예술가 사이, 아름다운 소통의 매개자

고희경 극장장은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신방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서울 예술의 전당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2009년까지 예술홍보, 공연기획, 교육사업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 <11시 콘서트>, <교향악 축제> 등 수 많은 히트작들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현재 서울 신도림에 위치한 대성 디큐브 아트센터의 초대 극장장으로 활동 중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기 위해 도전하는 그를 만나서 한국 공연 예술계의 문제점과 발전 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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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의 만남, 새로운 시작

 

Q. 이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어떠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려서부터 예술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갖고 있었습니다. 어린이합창단이나, 회화도 하고,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서예도 했어요. 물론 클래식 음악도 좋아했고요. 하지만 예술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예술의 전당에서 공채를 하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막연하게 ‘이건 일반 사무실이랑은 다르겠다. 딱딱한 사무실에서 일하기는 싫고, 재미난 일이 없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됐어요. 당시 모집분야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공연을 기획할 만큼 많이 접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예술홍보로 지원을 했습니다. 그래서 87년부터 예술의 전당 공채 1기로 입사해 예술홍보, 공연기획 등의 업무를 맡아서 2009년까지 일했습니다.

 

Q. 예술 비전공자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힘들었던 기억이 있나요?

학부에서는 불문학을 전공했어요. 인문학을 한 거죠. 입학할 때만 해도 어문계열로 들어가서 중간에 과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문학계열의 전공을 하고 싶었어요. 계속 문학을 공부하려고 했는데 대학원을 떨어졌어요. 그러다 업무를 시작하고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제 일을 학문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석사과정에서 홍보를 공부했고, 20년쯤 일하니 예술의 본질에 대해서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을 하다보니까 예술가분들이 ‘당신은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몰라’라는 얘기를 말하진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느꼈죠. 그래서 심도 깊은 기획을 하고, 파트너십을 갖고 예술가와 함께하기 위해 예술의 본질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박사과정 전공은 공연예술학입니다.

 

Q. 지금까지 20년 이상 예술 분야에서 활동한 기획자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야 해결책도 현장에서 나와요. ‘11시 콘서트’도 사실 관객들이 뭘 원하는가를 현장에서 생각했기 때문에 나왔던 것이죠. 또 간혹 작품이나 공연에만 집중해있고 실제 공연이 만들어지는 현장에서는 한 발 떠 있는 예술가분들이 계시기도 한데, 관객들은 돈과 시간을 내서 왔기 때문에 냉정합니다. 예술가와 관객들을 서로 만나게 하려면 기획자는 현장에서 현실감을 가지고 발을 땅에 붙이고 있어야 해요. 다음으로 작품의 본질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요새 공연이나 기획을 하면 기획이 마케팅이고, 마케팅 전략이 본질을 잡아먹기도 해요. 가령 11시 콘서트 같은 경우 연주를 잘 해야 하는 연주자가 ‘거의 주부들이 오니까 연주 대충하고 설명이나 잘 하면 되겠지’ 할 수도 있는데, 절대 지속되지 못해요. 관객들은 제일 먼저 알아요. 그래서 예술가가 무슨 생각을 하고 뭘 하고 싶은지를 기획자가 끊임없이 끄집어내서 ‘그게 이거다’라고 관객들에게 연결하고 보여줘야 합니다.

 

Q. 다양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국제적인 예술가들을 만났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과 예술가는 누구인가요?

제일 인상적인 사람은 지리 킬리안(Jiri Kylian)입니다.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묻는 것이 ‘지금 분단 상태에 있는데,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나 ‘특이하게도 독자적인 글자를 쓰는데, 그것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것들이었죠. 그래서 그는 무용가이자 철학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이끄는 NDT(Netherlands Dance Theater)에서 Ⅲ 그룹은 40~60세의 나이든 무용수들로 구성됐어요. NDTⅢ의 춤은 움직임이 적고 격렬하지 않아요. 서양 춤은 사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못 한다고 해요. 이런 생각을 능가해 춤을 서양의 무용어법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그리고 연극이 소극장에서만 공연되고 있을 때 대형극장에서 고전을 해보자해서 ‘토월 정통연극 시리즈’를 만들었어요. 러시아 연출가 지차트콥스키(G. Ditiyatkovski)가 한국 배우들과 함께 ‘갈매기’라는 작품을 했는데, 큰 반향을 일으켜 연극기획으로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는 올해의 연극상, 동아연극상에서 기획특별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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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文化)적 오지(奧地)에서 도전

 

Q. 한국 대표 문화기관인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20년 이상 일했는데, 새로 개관하는 대성 디큐브 아트센터로 이직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사실 전당에서 할 만큼 했고, 역할도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공부를 더 하려고 했는데, 그러던 차에 제안이 있었어요. 이곳이 매력적으로 느껴진 이유는 신도림 연탄공장 부지에서 제조업만 하던 기업이 이 일을 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 제가 뭔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그게 저를 너무 자극했어요. 가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이를 회사에서 알아주셨죠. 탄광에서 제조업만 하던 기업이 문화예술의 가치가 높다는 것을 인식한 결과 ‘문화적 오지(奧地)’라고까지 불리는 지역에서 새로운 관객들과 만나는 계기가 된 것이 흥분됐습니다.

 

Q. 방금 신도림을 ‘문화(文化)적 오지(奧地)’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동안 강남이나 종로 일대에 위치했던 주요 공연장들과 다르게, 이 지역에서 아트센터에 기대하는 역할이 궁금합니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가 많은 곳입니다. 강남에 위치했던 벤처기업들이 지금 ‘가산디지털밸리’, ‘구로디지털밸리’로 불리는 아파트형 공장으로 많이 진입했어요. 약 10만 명의 젊은이들이 이곳에 거주합니다. 이들은 업무시간이 끝나면 전부 강남으로 빠져나가요. 이 사람들이 자기가 일하는 동네에서 문화도 즐기고 생활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게 하자는 것이 이곳을 선정한 목적이고, 그런 장소를 만들어보자는 계획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 핵심역할을 우리 공연장이 해야 하는 것이죠.

 

Q. ‘여성 최초 극장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습니다. 여성극장장으로서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요?

전에도 여성 극장장이 계셨어요. 그런데 기획이나 극장업무를 경험하면서 된 것은 제가 처음이라 그런 타이틀을 쓴 것 같아요. 여성이라 힘든 건 젊었을 땐 별 문제가 안 되는 것 같아요. 결혼 후 육아나 가사를 일과 병행하는 것이 제일 어려웠죠. 더군다나 이 일이 근무시간이 정해져있지 않고, 주말에 근무하거나 밤늦게 퇴근하는 일이라 쉽지 않았어요. 저희 아이나 친정어머니가 많이 희생을 했죠. 반대로 여성이어서 좋은 점은 인내심이 많다는 거예요. 또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아요. 예술가분들은 에너지가 넘치는 분들이라 잘 들어주기도 하고 도와드려야지 믿음을 주거든요. 그런 것은 여성이 마찰을 줄이고 잘 해나갑니다.

 

 

예술과 관객의 건강한 만남 이루어져야

 

Q. 과거에 비해 많은 홍보가 이루어지면서 대중들이 공연장에서 직접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대중들에게 예술은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남아있습니다. 예술과 대중의 간격을 좁히기 위한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요?

아까 말씀드렸던 본질, 현장 얘기하고 맥락을 같이 합니다. 예술의 전당에 있을 때 사람들에게 문턱을 낮추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값을 낮추면 사람들이 그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 무료 공연을 하면 굉장히 분위기가 안 좋은데, 유료관객이 많은 공연은 민원도 없고 만족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조건 무료로 진행하는 것 보다는 어느 정도 지불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예술가들과 기획자들은 정말 열심히 하고 진짜 예술이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일해야 돼요. 그런 자세로 일을 하면 관객들이 귀신같이 그 힘을 알아요. ‘무조건 값을 내리면 좋을 것이다, 문턱을 내려라’라고 말하는데, 문턱은 우리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문턱이 있으면 관객들이 그것을 넘어오는 재미 때문에 공연장에 오기도 하고, 아니면 어떤 순간에 자연히 무너지기도 합니다. 예술가는 최선을 다해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기획자는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하고 관객들이 만날까’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Q. 예술경영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공연기획자가 갖춰야할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예술과 공존하는 세상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대중의 반응에 촉수를 잘 세우고 있는 것이 필요해요. 이제 기획을 시작하시거나 관심 있어 하시는 분들에게 신문을 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이는 세상을 보는 틀을 분명히 키워줍니다. 같은 문제를 어떤 식으로 보고, 의사소통할 때 대중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공부에 좋은 자료입니다. 그리고 신문에서 다룬 내용을 네티즌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TV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를 알아야 해요. 세상 사람들과 소통해야 기획은 가능해요. 세상이 지금 무슨 관심을 갖고 있고, 이들을 예술가들과 어떻게 만나게 해줄 건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간혹 ‘유학을 가는 것이 어떨까요?’ 이런 얘기를 하시면, 저는 작게나마 일할 기회가 생겼을 때 현장에서 일을 하는 걸 권합니다. 힘든 현장이라도 그냥 바닥에서부터 한 3년만 참고 일했으면 좋겠어요. 여러 기획사나 공연장에서 경력 3~5년 정도의 사람을 찾고 있는데, 믿을만한 사람 찾기가 쉽지 않아요. 여러 가지로 힘들겠지만, 그걸 견디고 나면 반드시 길이 보이고 생깁니다.

 

Q. 세계 문화예술 수준에 발맞춰 한국 문화예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요소들이 필요할까요?

출연자와 관계된 학교와 무대가 연결돼있는 것 우리나라 공연예술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봐요. 관객들은 무대에 오르는 사람이 교수인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돈을 내고 왔으니 가치에 합당한 공연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교수의 업적 때문에 공연이 이루어지며 이에 동원되는 학생과 학부모가 많습니다. 이런 부분이 예술무대 시장을 심각하게 왜곡시킵니다. 그 왜곡이 반드시 시정됐으면 합니다. 무대와 관객이 순수한 작품으로만 건강하게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체계적인 공연기획 시스템 구성이 필요해요. 주먹구구로 가는 것 보다 각자의 영역을 분담하는 제도가 자리 잡았으면 해요. 요즘은 제가 일을 시작할 때보다 인식이 개선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대에서 공연하는 예술가 중에 기획자를 그냥 보조 정도로만 생각하시 경우가 있거든요. 예술가들과 기획자들이 하나의 시스템을 구축해 파트너쉽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부분은 관객들이 많이 찾아오고 시장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국민소득은 3만 달러 시대를 향해가고 있습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객들의 욕구는 날로 커지면서 요구하는 수준은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이제는 그 갈증을 예술가들과 기획자들이 해소해줄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즉 한국에서 보는 공연이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이란 것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대담·정리 : 송현아 / sha919@khugnews.co.kr

사 진 : 안혜지 / hjahn1678@khugnews.co.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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