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호 인문학술2: 발레의 탄생 배경]발레가 주는 메시지

178-05-1

발레, 당신에게 다가가다

 발레는 만남이다. 발레를 통해 우리는 수많은 영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신화와 역사, 종교와 철학, 문학과 예술을 만날 수 있다. 발레는 몸으로 그리는 그림이고, 몸으로 쓰는 문학이며, 몸으로 짓는 건축이고, 몸으로 켜는 연주이며, 몸으로 사는 삶이라 할 수 있다. 철학자들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라고 말하지만, 무용가들은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무용가의 존재는 다름 아닌 몸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며 ‘몸의 미학’이란 뜻을 내포한 비유이다. 19세기 말 표현주의 이후 유럽에서 러시아로,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발레가 건너가면서 새로운 신체움직임의 미학이 급격히 대두되기 시작한다. 그동안 서구 합리주의 사상과 동양의 유교사상은 육체보다 정신을 우선시 하여 몸은 정신의 하위에 둔 것이다. 그 결과 몸으로 하는 움직임이나 몸의 느낌은 늘 무시되어왔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오면서 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으며 이것은 몸과 정신이 균형을 찾아간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발레는 ‘문화’와 ‘몸’이라는 이 두 가지의 화두에 중심에 서 있으며 이것은 무용인들 스스로가 고급/귀족문화의 향수에서 대중문화로의 변신을 꾀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2011년, 개막 2주전에 전회 매진된 국립발레단의 ‘지젤’, 예매1순위를 달리며 나탈리 포트먼이 열연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쥔 ‘백조의 호수’를 모티브로 한 영화 ‘블랙 스완’, LG 아트 센타에서 몇 차례의 공연마다 매진행렬을 이루던 남성백조를 등장시킨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 TV개그콘서트에서 남성 발레리노를 패러디하여 인기를 얻고 있는 ‘발레리NO’, 영화를 뮤지컬화 하여 200회를 돌파할 만큼 많은 관객들을 매료시킨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전부 발레를 One source로 한 대표작들이다. 발레의 인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예술계, 방송계를 넘어 이젠 피겨여왕 김연아도 새 쇼트 프로그램으로 선택한 작품이 ‘지젤’임을 감안하면 발레는 문화계 전체의 메인이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듯 발레는 최근 들어 급부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는 일시적인 급상승이라고 볼 수 없다. 고급 향유층만이 즐기는 장르라는 인식의 전환을 위해 발레계 스스로 ‘발레리나의 요정같은 신비주의’를 스스로 탈피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이는 TV 인기 프로그램인 ‘1박2일’에 출연한 유니버설 발레단의 단원들이 대중과의 친밀감을 위해 망가지는 모습도 개의치 않았던 발레리나들의 노력을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중들이 TV, 영화, 뮤지컬, 개그, 패러디 등의 다양한 장르에서의 영향으로 발레에 대한 신비한 판타지와 환상에서 벗어나 함께 배우고, 웃고, 느끼면서 발레에 대한 눈높이를 낮추고 있다.

발레, 모든 동작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TV에 출연한 한 발레리나가 “발레동작에는 의미가 있다”라는 한마디 때문에 대중들이 혼란스러워 한 적이 있었다. 발레의 한동작 한동작에 의미가 있다고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말이었으며, 이는 대중들에게 발레를 더욱 어렵다고 인식시키기에 충분했다. 발레에서 마임은 수화처럼 의미를 내포하는 것들이 없지 않으나, 이는 2시간정도의 공연에서 몇 가지 동작에 불과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마임의 경우 일반인들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스토리가 있는 발레의 경우 어렵다고 느낄 이유는 전혀 없다. 예를 들어 춤동작이 모여 전체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면 마임은 춤과 춤 사이에 인물들의 감정이나 생각 등을 나타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팔을 앞으로 뻗는 것은 ‘당신’, 두 팔을 앞으로 뻗는 것은 ‘누구’라는 의미이며, 두 팔을 가슴에 붙여 모으면 ‘나’, 그 자세에서 어깨를 살짝 올리며 두 팔을 가슴에 붙이면 ‘사랑’, 팔로 X자를 만들면 ‘아니오’라는 의미이며 ‘결혼’은 오른손으로 왼쪽 네 번째 손가락을 가르키고 ‘맹세’는 왼쪽 손을 가슴에 올리고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르키는 동작을 말한다. 이처럼 보통 발레에서의 마임은 일반인들이 추측 가능한 동작들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이런 마임을 얼마나 감정을 실어 실감나게 표현하는가에 따라서 관객의 감동이 달라지니 이런 표현력은 훌륭한 발레리나로서 평가받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스토리가 있는 발레 즉, ‘백조의 호수’, ‘지젤’, ‘호두까기 인형’,‘잠자는 숲속의 미녀’등의 아이디어나 주제는 문학이나 역사,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대부분 얻어왔다. 서양 문화의 밑바탕을 이루는 이들 문학과 역사, 신화 속의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관객들에게 굳이 긴 설명을 하지 않고서도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로 올수록 그러한 성향이 더욱 강해지고 있긴 하지만 발레의 역사는 서양 전통문화를 새롭게 해석해 온 과정이라 할 수 있으며 비너스, 큐피트, 헤라클레스 등을 등장시켜 그 때마다 새로운 인물로 전환시킨다. 이렇듯 발레의 스토리 속에는 수많은 상징과 알레고리를 가지고 있다.

불후의 명작, 아름다운 발레 ‘백조의 호수’

 보다 빠르고 변화무쌍하고 강렬한 자극을 원하는 디지털 시대의 관객들이 왜 끊임없이 ‘백조의 호수’를 보는 것일까? 100여년 전의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와 안무가 프티파의 환상의 만남에서 그려진 세계를 함께 느껴보고 싶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무용평론가들은 ‘백조의 호수’가 지닌 절대적 가치에 대한 추구와 느림의 미학이 속도의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의 이중적 심미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짧은 기간에 절정기를 맞이한 고전 발레(classical ballet)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문학가, 음악가, 미술가, 무용가가 함께 빚어낸 절정의 종합예술이며, 고전 발레의 형식적 특징인 조화, 대칭, 질서와 같은 형식적 가치에 주안점을 두며, 특히 질서 감각은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2인무(파드뒤pas de deux)에서 대표된다고 할 수 있다. 프리마 발레리나와 파트너가 함께 추는 아다지오, 각자를 위한 솔로 바리아시옹, 발레리나와 파트너가 함께 하는 코다이 순으로 진행되며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특히 흑조의 프리마 발레리나는 32회의 훼떼 동작으로 ‘한 지점에 시선을 모으는’ 스파팅(spotting) 테크닉의 극치를 연출하게 되는데 발레리나의 기량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나며 인정받게 된다. 토슈즈를 신은 발레리나가 한발은 땅에 딛고 한발은 다른발 무릎에 대고 계속 쉬지 않고 도는 동작인 훼떼는 최고의 발레리나를 결정짓는 테크닉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백조와 흑조의 상반된 스타일의 발레를 감상할 수 있다. 백조는 우아하고 청순하며, 흑조는 강렬하고 요염함을 표현한다. 여기서의 감상 포인트는 백조와 흑조를 한 발레리나가 연기한다는 것이다. 영화 ‘블랙스완’을 통해 이러한 사실이 많이 알려지게 되었지만 ‘백조의 호수’의 묘미는 백조와 흑조를 한 발레리나가 연기하면서 매력적인 양면성을 보여주는 것에 있다. 또한 마치 한명이 움직이는 듯 한 백조들의 아름다운 군무와 제1막에서 지그프리트와 오데트가 호숫가에서 함께 하는 2인무, 제2막 무도회장에서 추는 ‘흑조 2인무’또한 이 작품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1995년 매튜본은 이제까지 튀튀를 입은 가녀린 여성 발레리나의 전유물이었던 ‘백조’ 역을 근육질의 상체를 드러낸 남성 발레리노로 등장시켜 강한 힘과 카리스마로 신선한 자극과 또 다른 감동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또한 머나먼 동화 속 이야기 같았던 원작을 현대 영국 왕실로 그 배경을 옮겨, 사랑을 갈망하는 왕자와 그의 환상 속 존재인 백조 간에 펼쳐지는 흥미진진하고 가슴 아픈 심리 드라마로 바꾸어 한 장면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과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기도 하였다. 초연 당시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남성백조의 등장과 남성백조들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평과 함께 그동안의 관념을 깬 ‘새로운 세대들을 위한 백조의 호수’(LA Times),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작품’(San Francisco Chronicles) 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발레를 통한 댄스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인정받았다. 이 두 작품을 번갈아 감상해 보는 것도 변화하는 발레에 대한 이해와 재미,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백조의 호수’를 보며 여성관객은 한번쯤 아름다운 백조가 되어보고 남성관객은 백조와 흑조를 둘 다 사랑해버린 지그프리트 왕자가 되어보자. 아무래도 상관없다. 상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열려있으며 각자의 것이니까.


최 현 주 / 무용학부 겸임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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