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호 기획] 중국의 민족관 : 팍스시니카시대 중국의 민족관-패권주의적 민족개념의 외연적 확대

183-03-1

팍스시니카시대 중국의 민족관패권주의적 민족개념의 외연적 확대

팍스시니카(Pax Sinica)!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을 이해하는 총체적 코드라고 할 수 있는 이 한마디는 오늘날 한국에 대한 중국의 문화전략을 본다면 에드워드 사이드의 화법을 빌어 추악한 신조어(ugly Neologism)라고 정의한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중화주의의 21세기적 재현이라고 할 수 있는 팍스시니카는 왜 우리에게 평화(Pax)의 이미지보다는 추악하거나 위협적인 부정적 이미지의 독트린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상상의 공동체, 근대의 신화라는 ‘민족’ 개념은 21세기에도 동아시아에 있어서는 여전히 유효하며, 정치 경제 뿐만 아니라 문화전략으로서의 가치는 오히려 과거보다 더욱 강조되고 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다민족, 다언어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오랜 세월동안 이와 같은 내재된 분열의 요소들을 한자와 한문화라는 매우 폭넓은 개념으로 결속하고 이것을 지속적으로 통일의 이데올로기로 공고하게 다져왔다. 현재 중국에는 대략 13억 인구 56개의 민족이 존재하는데 이중 漢族을 제외한 55개 소수민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1억 정도이다. 이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은 소수민족은 장족(壯族)으로 1,500만여 명이고, 인구가 가장 적은 민족은 락파족(珞巴族)으로 2,30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은 한족을 중심으로 55개 소수민족을 아우르는 중화민족이라는 민족개념을 탄생시켰고 이 민족개념은 중국의 전통적 패권주의와 결합하면서 외연적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본 글에서 중국의 민족관형성의 사적연원과 근대적 민족관의 정립과정 및 오늘날 한중관계에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일별해 보고자 한다.

한족 중심의 四夷主義

중국의 민족관에 대한 이해는 사이주의(四夷主義)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四夷主義는 한족을 중국민족의 주류 또는 중심으로 인식하고 그 외의 모든 민족과 그들의 문화를 주변부로 보는 관점이다. 중국이 소수민족을 사이주의(四夷主義)적 관점에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戰國策>, <左傳>, <詩經>등과 같은 문헌의 기록을 통해 타자화 된 민족에 대한 중국의 초보적 민족관을 엿볼 수 있다. 이 문헌들을 살펴보면 중국은 소수민족을 四海의 ‘海外’가 아닌 ‘海內’로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지정학적 위치의 원근에 따른 인식일 뿐, 이를 근거로 오늘날 중국이 소수민족을 ‘同類’ 또는 ‘同族’으로 인식했다는 근거로 주장하는 것은 牽强附會적인 해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중화주의의 형성이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한나라 때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시기부터 소수민족은 중국의 인식 속에 사이주의(四夷主義)적 시각으로 타자화되기 시작한다. 중국은 그들이 지배하고 관할하는 영역을 우선 외형적으로 ‘황제국’과  ‘제후국’으로 분류한 뒤, 중원의 漢族은 황제국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소수민족을 포함한 주변 제후국을 藩國(울타리 국가)으로 冊封한 후 주종관계를 유지하였다. 漢族의 생활무대인 중원을 천하(天下)나 사해(四海)로 일컬었고, 그 통치자는 하늘로부터 천명(天命)을 받은 천자(天子)라고 했으며, 한족 제후들과 마찬가지로 소수민족 지도자들 역시 책봉(冊封)의 형식으로 자치권을 부여하여 그들을 통치하고자 했다. 책봉을 통한 외교관계는 무력을 통해 성립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소수민족들은 중앙정권의 책봉을 원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사이주의(四夷主義)에 입각한 민족관은 중국과 동아시아 諸國들 뿐만 아니라 海內의 소수민족들과의 빈번한 충돌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고, 청나라 때까지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은 사이주의(四夷主義)적 시각에서 타자화를 공고히 하는 과정을 거쳐왔다. 이처럼 중국은 소수민족을 경계하면서도 이들의 문화를 중화문명의 ‘亞類’로 인식하는 중첩된 시각을 견지해왔고, 이러한 시각은 조선과 월남 같은 주변국가에 대한 인식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나타난다. 19세기 아편전쟁을 전후하여 서구 제국주의세력의 아시아 침략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청나라와 주변 민족과의 관계도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근대 이전 청나라와 소수민족의 관계는 정치적인 주종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는 경제적 종속을 의미하는 근대 제국주의적 지배와는 다른 것이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로 재편되는 대외정세 가운데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은 더 이상 정치적 주종관계에만 의미를 둘 수 없게 된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중국은 소수민족, 더 나아가서는 주변국가까지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민족관을 고민하게 된 것이고 시점에서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이 싹트게 된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입각한 민족자결, 연방제, 민족자치가 소수민족정책에 반영되면서 지구상의 다민족 국가 가운데 중국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소수민족을 관리해 올 수 있었다. 중국정부는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모든 민족은 평등하며 한족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또한 소수민족의 고유문화와 자치구를 인정하고 정치 경제 문화 교육정책에 있어서 소수민족을 우대하는 정책을 지향해 왔다. 중국정부는 소수민족과 주변국가와 얽힌 민족문제를 愚公移山의 故事와 같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소수민족이 한족에 편입되는 것은 시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보았고 이는 오랜 역사의 경험 속에서 주변 이민족은 결국 漢文化라는 블랙홀에 흡수시킬 수 있다는 문화적 자신감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또한, 중국공산당은 문화적 전통과 관습, 혈연에 기반한 소수민족사회에 대한 강압적 해체를 시도하는 것은 오히려 분리주의자들을 키우고 확대시킬 위험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중국의 정치적 안정과 공산당의 유연성을 검증받기 위해서 소수민족정책은 당근과 채찍 중 당근을 주는 쪽에 비중을 두는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愚公移山의 과정에서 중국사회가 겪어야 할 진통은 시간에 맡겨두기에는 적지 않은 대가를 요구하였다. 티벳문제는 중화인민공화국 초기부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더욱이 적당한 당근정책만으로는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의 범주에 묶어 두기에는 부담스러운 대외적인 요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체로 중국의 변방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지하자원 매장량이 풍부한 소수민족자치구의 독립이나 자치권 확대요구는 곧 영토와 자원주권의 문제로 확대될 위험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거나 혈연적 문화적 공유의식이 있는 주변국가가 개입할 경우, 중국의 소수민족문제는 국제분쟁으로 확대될 위험마저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오히려 중국의 소수민족을 통해 주변국가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論點先取적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속내를 합리화 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중국정부가 채택한 것이 古代史에 대한 재해석이며 동북공정은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팍스시니카의 민족관과 중화제국의 상상

한국은 독자적 문화를 가지고 있음에도 한자문화권의 국가로서 문화적 정체성(identity)에 대한 문제가 常存해 왔다. 또한 오랜 세월 유지되어 온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한중교류사에 있어서 중국의 한국인식은 폄하적인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20세기 일본제국주의의 대륙침략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중국의 한국인식은 잠시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즉 식민지경험, 비록 중국은 반식민의 형태였지만, 근대사적 공유점 갖게 되었으며 한국문화와 민족을 바라보는 ‘중화주의’적인 관점은 ‘피압박민족’의 同病相憐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낳게 하였다. 중국은 1949년 이후 중국은 패권주의 외교를 부인하고 있으나 8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나타나고 있는 동아시아 諸國과의 문제(역사와 영토)에 접근하는 방식은 여전히 중화적 패권주의를 견지하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민족관은 전통적 四夷主義와 패권주의의 변종에 불과한 것이지만 중국은 국제무대에서의 역할증대를 배경으로 더욱 집요하게 전개할 것이다. 2011년 한민족의 전통민요 ‘아리랑’과 부채춤을 중국의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사례가 보여주듯 중국의 패권주의적 민족관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의 민족관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 다양한 대응을 모색하고 있지만, 持難한 한중 양국의 역사 속에 점철되어 온 중국의 민족관에 대해 근본적인 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으로 남는다. 중국은 한반도문제에 대해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평화와 협력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임계점에 이르게 된다면 팍스시니카의 중심담론, 즉 四夷主義적 민족관으로 회귀하게 될 것이며, 그 회귀점에는 중화제국의 상상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김경석 / 중국어학과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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