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호 기획: 책의 진화와 미래] 책의 진화와 미래

인간을 위한 도구이자 지식∙정보의 전파 기술인 책을 둘러싼 환경 변화에서 가장 큰 과제는 독서 생태계가 어떻게 달라질까에 있다. 영상이 지배문화로 군림하고 모바일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면서 독서율 감소 현상이 촉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영화관이나 게임장에 입장하는 것과 같은 스마트 기기(태블릿PC, 스마트폰) 이용보다는 도서관 입관에 해당하는 전자책 전용 단말기의 보급 확산이 독서 생태계의 선순환을 위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책의 생태계 변화 양상185-03-1

2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더 이상 종이책으로는 만나기 어렵게 됐다. 2년 주기로 개정했던 2010년판 기준으로 32권, 1395달러짜리 중후 장대한 종이 백과사전이 연간 용료 69.95달러의 온라인판으로 변신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악착스럽게 종이 매뉴얼을 고집하던 미국 항공사들은 트렁크 1개 분량(약 17킬로그램)의 비행기 매뉴얼을, 한국의 사찰에서는 승가대학 수업용 교재를 태블릿PC로 각각 대체했다. 극히 최근 뉴스들에서 추려본 전자책 패러다임으로의 변화상이다.

산업 측면의 변화도 괄목할 만하다. 출판사와 유통사들이 e-Pub, PDF, 앱북, 플래시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한 전자책 콘텐츠가 컴퓨터(PC), 스마트폰, 태블릿PC, 전자책 전용단말기 등 각종 디지털 매체를 통해 서비스된다. 종이책과 전자책을 동시에 발행하는 출판사들이 늘고 있으며, 전자책 발행을 목적으로 한 1인(저자) 출판사 설립이 급증했다.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전자책 유통-서비스 업체와 직접 계약하는 저자도 적지 않다. 독자 입장에서는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에서 개인이 구매하거나 도서관 등에서 빌린 전자책을 원하는 매체로 읽는 N스크린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전자책을 읽으며 독자들끼리, 또는 저자와 독자가 의견을 교환하는 ‘소셜 리딩’도 확산중이다. 인터넷서점에서는 종이책만이 아니라 전자책 판매량까지 합산한 베스트셀러 목록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종이책 시대에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웠던 일들이다.

2007년 아마존닷컴의 전자책 단말기인 ‘킨들’출시 이후 세계적으로 붐이 일기 시작한 전자책은 저가의 고성능 모바일 기기의 대중화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전자책 출판이 가장 앞선 미국의 경우 출판산업 매출액 전체의 14%(2011년 기준)가 전자책 시장이다.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더 많이 팔린다는 아마존닷컴의 사례는 출판시장 전체로 볼 때 아직까지‘부분적 사실’에 불과하지만 디지털화의 추세는 거스르기 어렵다. 다섯 손가락으로 꼽히는 출판사 그룹의 시장 지배력이 압도적으로 높은 미국 출판계는 유통-서비스업체 플랫폼과 일괄 계약 및 서비스로 콘텐츠 공급기반 형성이 탄탄하다. 이에 비해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 나라들에서는 전자책 시장이 도약하는 티핑 포인트가 언제 도래할지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디지털 출판과 디지털 독서의 패러다임이 책의 세계에서 어엿한 시민권을 얻은 것 만큼은 확실하다.

 

한국 전자책 시장의 과제

미국의 경우 대다수 출판사들이 전자책 시장에 뛰어들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포맷 표준화와 호환성 부족, 보안∙정산을 포함한 디지털 저작권 관리(DRM) 문제, 신간의 약 30%에 육박할 정도로 비중이 큰 외국 번역서의 전송권(전자책 판매 서비스 권리) 확보 등 국내 출판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형 출판사들이 손쉽게 대응하기 어려운 제반 시장환경이 걸림돌이다. 또한 초기 시장 상황에서의 수익성 미비로 전체 출판사의 약 14% 정도만이 전자책 시장에 참여하고 있어서 콘텐츠 부족이라는 가장 큰 문제점이 발목을 잡고 있다. 즉 출판계와 유통업체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능동적으로 시장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 하고 있고, 시장을 견인할 수 있는 관련 기업의 강력한투자도 미미한 상황이다.

현재까지의 양상을 보면, 국내 전자책 시장은 검색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방대한 학술 저널과 사전류, 그리고 대중용 읽기 분야로는 판타지나 로맨스소설 같은 장르문학, 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인 게임 감각의 아동용 앱북 등에서 강세를 보일 뿐 교양서와 소설을 비롯한 대중서 전반의 콘텐츠가 매우 부족하다. 또한 시장 여건(이용 매체별 매출액 구성)도 여전히 컴퓨터(39%)를 필두로 스마트폰(37%), 태블릿PC(18%), 전자책 전용 단말기(6%) 순의 비중이다. 미국의 경우 킨들을 핵심으로 한 전자책 전용 단말기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고, 일본은 만화가 스마트폰으로 주로 판매되는 시장모형인 것과 비견된다.

전자책과 관련된 뉴스와 담론은 무성하지만, 실제 시장 형성의 관건이 되는 산업구조 및 수용자 이용도는 아직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국내 전자책 시장은 전체 출판시장의 1~2% 점유율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다양한 노력에 의해 산업 가치사슬이 형성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단행본 출판사들이 출자하여 전자책 판매를 관리하는 한국출판콘텐츠(e-KPC)의 활동이 본 궤도에 올랐고 10만 원대 이하의 저가형 전자책 단말기가 눈에 띄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아마존닷컴의 한국 시장 진출도 기정 사실로 전해지고 있다. 수년 내에 눈에 띄는 지형 변화가 이루어질 것은 분명하다.

한편, 교육과학기술부가 2015년부터 학교 교육에 스마트 기기로 이용하는 디지털교과서를 전면 도입(초기에는 종이교과서도 병행 사용)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이에 대한 찬반 양론이 비등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지만, 교육 현장의 변화는 물론이고 학생들의 독서습관 변화에 상당한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책의 미래 기상도

오늘날 전자책을 포함한 디지털 콘텐츠의 등장과 확산은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다. 책의 역사를 보면, 인간은 유사 이래로 문자∙언어의 기록매체로서 가장 정합성이 높은 매체를 책의 소재로 이용해 왔다. 시대에 따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 생산-유통-수용(소비)에서 경제적이고, 가독성이 높은 매체가 곧 책으로서 기능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정보통신 기술과 각종 모바일 디바이스가 발달된 환경에서 책의 내용을 담은 디지털 콘텐츠가 새로운 유통 채널과 기기를 이용하는 것은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전자책이 주류 미디어의 하나로 부상한다고 해서 2천 년을 이어온 종이책의 역사가 조만간 끝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매체마다의 특성과 장단점이 각기 다르므로 다양한 형태의 책이 독자의 수요에 기반하여 꾸준히 공존하면서 진화∙발전할 것이다. 동일한 책의 콘텐츠를 종이책, 각종 포맷과 기기의 N스크린 전자책, 전자책과 종이책 사이의 수요를 이어주는 주문형 종이책(POD : Print on Demand), 오디오북, 독서 장애인을 위한 데이지(DAISY : Digital Accessible Information System) 도서 등 다양한 선택지 가운데 골라서 구매 또는 무료 대여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독서환경이 차츰 정비되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독자 입장에서는 같은 텍스트로 만들어진 콘텐츠라도 고를 수 있는 메뉴가 다기화 된다는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결국 기존의 책 생태계에 상당한 영향을 초래할 것이다. 디지털 환경이 보다 숙성되면서 저작물의 생산-유통-소비 과정 및 여타 콘텐츠 분야와의 융∙복합화 촉진, 출판사와 서점 등 산업계 내부와 도서관의 역할 변화, 단순 소비자에 머물던 독자의 역할이 생산자로 확장되는 프로슈머화 등이 대표적이다.

미래 변화상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술 및 사회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급변하는 지식∙정보 사회에서 정선도가 높고 자기완결적인 콘텐츠를 담는 책의 가치와 역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초기 정보화 단계에서는 종이책의 편집 과정에서만 이용되던 디지털 기술이 광전자매체, 인터넷서점, 전자책, 멀티미디어북 등으로 진화하면서 생산성과 접근성 역시 확장되어 왔기 때문이다.

인간을 위한 도구이자 지식∙정보의 전파 기술인 책을 둘러싼 환경 변화에서 가장 큰 과제는 독서 생태계가 어떻게 달라질까에 있다. 영상이 지배문화로 군림하고 모바일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면서 독서율 감소 현상이 촉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영화관이나 게임장에 입장하는 것과 같은 스마트 기기(태블릿PC, 스마트폰) 이용보다는 도서관 입관에 해당하는 전자책 전용 단말기의 보급 확산이 독서 생태계의 선순환을 위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미국의 선례가 그것을 실증하고 있지만, 현실과 이상의 이율배반이 전자책의 세계에도 적용되는 우리 현실에서는 앞으로 심각한 문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185-03-2

백원근 / 재단법인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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