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호 기획: 총선으로 바라본 정치방향] 4·11 총선 이후의 한국정치

지난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을 거치면서 이미 정권에 대한 평가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대선을 몇 개월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의 총선은‘전망투표’가 중첩된 선거였다는 점에 비추면, 심판론에만 기댄 채 안이한 태도를 취했던 야권에 대해 국민이 경고를 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4·11 총선 이후 한 달, 끝나지 않는 평가

 

4월 11일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총선 결과와 선거 과정에서 발생된 여러 문제들을 둘러싸고 당분간 여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총선은 그 자체로 ‘의회권력’을 교체하는 중요한 시기였지만, 올해 말에 진행될 ‘행정권력’의 교체는 한국 정치를 또 한 번 격랑으로 몰고 갈 것이고, 총선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대선에서의 승부를 결정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4·11 총선은 야권단일화를 추진한 범야권이 142석, 새누리당을 포함한 범여권이 158석의 의석을 얻었다. 특히 새누리당은 선거 한 달 여 전까지만 해도 사실상 패배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는 점에서 의외의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총선의 결과는 정확히 ‘여권의 승리’라기보다는 ‘야당의 패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참여연대가 선거 직후 논평에서 밝힌 바와 같이, 야권은 ‘후보선출과정에서의 공천 파동, 경선 부정 논란, 막말 파문’ 등을 통해 유권자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정권 심판론에만 기댄 채 뚜렷한 개혁 정책과 비전은 제시하지 못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박근혜 위원장을 중심으로 구성된 비대위가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를 통해 심판론의 영향을 차단하고, 오히려 문제가 된 인사들은 적극적으로 공천을 배제하는 등 여론의 향배에 민감한 모습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을 거치면서 이미 정권에 대한 평가는 최고조에 이르렀고, 대선을 몇 개월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의 총선은 ‘전망투표’가 중첩된 선거였다는 점에 비추면, 심판론에만 기댄 채 안이한 태도를 취했던 야권에 대해 국민이 경고를 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새누리당은 여전히 문제 인사에 대한 여론의 향배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과반 의석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성추행 전력, 논문 표절’으로 문제가 된 2명의 당선자를 압박하여 탈당시킴으로써, 30%에도 못 미치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과 달리 40%를 훌쩍 넘기는 정당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리얼미터, 4월 넷째주 주간 정례조사). 반면 민주통합당은 당 지도부 선출을 둘러싸고 ‘친노-호남 담합’ 논란 등 당 내부 갈등이 지속하고 있다. 또한 야권연대의 한 축인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경선 부정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이에 이른바 ‘당권파’가 반발하면서 당의 진로가 어떻게 될 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개월 남은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속단할 수 없다. 대선은 정권 심판에 근거한 ‘회고투표’ 보다는 국가 비전을 판단하는 ‘전망투표’의 성격이 강하므로, 어떤 정치세력이 유권자의 지지를 얻을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다만, 지난 4·11 총선에 대한 평가에서 한국의 정치세력들이 직면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의 단초는 확인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국민들이 요구하는 2012년의 정치적 비전

 

대의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최종적으로 대표자를 선출하는 인물 선택의 결과로 나타나지만, 그 과정에서 경쟁하는 후보자와 그가 속한 정치집단(정당)의 문제 인식과 비전은 선택의 중요한 판단 근거로 작용한다. 이른바 ‘시대정신’을 제대로 담아낸 정치집단이 국민의 선택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몇 번의 대통령 선거를 보면, 대체로 시대정신은 ‘정권교체, 경제위기 극복(97년 대선)’, ‘부패, 낡은 정치 청산(2002년 대선)’, ‘경제 활성화(2007년 대선)’ 등으로 나타났다. 물론 선택된 인물이 당선 이후 시대정신을 제대로 구현하는 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하였는가에 대한 평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2012년 한국 정치가 직면한 핵심적 해결 과제는 무엇인가?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경제 민주화와 복지’가 국민들 사이에 주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음은 여러 정황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미 2010년 지방선거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복지’의 수준에 대한 논쟁이 진행된 바 있고, 그 여파는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까지 이어졌다. 또한 대기업의 골목 상권 진출로 야기된 ‘SSM’의 문제와 규제 움직임은 우리 사회가 재벌·대기업만의 성장이 아닌 공생하는 경제 생태계를 원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19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각 당이 경쟁적으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앞세운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새누리당은 올해 초 정강·정책에 ’경제민주화‘를 삽입하고 복지를 강조하여 시대적 요구에 발 빠르게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구체적인 정책과 실현의지이다. 정작 4·11 총선에서는 구호만 요란했을 뿐 정책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은 없었다. 상대적으로 ‘경제민주화와 복지’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던 야권은 선거 기간 동안 새누리당과의 차별성을 보이지 못한 채, 오히려 정책쟁점이 부각되는 상황을 꺼리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의제를 주도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지고도 개혁적인 비전과 정책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총선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도 제기되었다. 한편 새누리당이 정강·정책의 변화를 구체화된 정책으로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총선에서 당선되어 당내 경제 정책을 추진할 인사들이 감세와 규제 완화 등을 내세우며 ‘경제 민주화’와는 거리가 있는 인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시대정신의 윤곽은 잡혔으나 각 정치세력들이 제시하는 비전의 실체는 이제 국민의 시험대에 올랐다.

 

19대 국회 개원과 대선, 한국 정치가 직면한 문제

 

5월 30일이면 새로운 국회가 문을 열고, 곧이어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 불신을 불식시키고 대의 정치를 발전시키는 것 또한 대표를 자임하는 정치인과 정당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 19대 국회의원 당선자와 제 정당이 직면한 몇 가지 문제를 짧게 짚어보자.

첫째,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 ‘사회양극화 해소’ 등 시대적 요구에 대해 비전과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18대 국회 기간 이른바 ‘민생’을 표방한 법안들이 수없이 제시되었지만, 정작 전세대란, 등록금, 비정규직 문제 등 시급한 사회 현안에 실효성 있는 방안은 입법화되지 못했다. 남은 대선 기간까지 비전을 제시하고 시대정신으로 집약된 과제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때만이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정부의 실정과 권력형 비리에 대한 입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정권 말기에 터져 나오는 각종 부정부패 사안들과 민간인 사찰과 같은 초헌법적 사안 등 각종 현안에 대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국정감·조사를 통해 낱낱이 사태를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입법부의 중요한 존재 근거 중의 하나는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다.

셋째, 일방적 국정운영으로 인한 국회 내 충돌을 방지하고, 충분한 대화와 토론, 국민적 합의를 통해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18대 국회 기간 5번의 직권상정을 통해 예산안, 미디어법, 한미FTA비준동의안과 같은 쟁점의안들이 강행처리되었다. 지난 2일,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었지만 ‘의안상정간주제, 신속처리제도’ 등을 도입하면서 오히려 법안심의가 부실해지고, 소수당에 대한 설득노력이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넷째, 유권자들의 투표권, 표현의 자유 보장을 비롯해, 국민의 의사를 대표자 선출에 온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정치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낮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등 선거일에 투표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제도 개선은 매우 더딘 상황이다. 또한 4·11총선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정당 득표율이 의석수로 온전히 반영되지 못하는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섯째, 정당이 민주적이고 투명한 운영을 제도화하고, 정치인들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 국민과의 접촉 공간을 넓혀야 한다. 정당의 모델(포괄정당, 대중정당 등)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론이 있고 개별 정당의 상황에 따라 선택해야 할 문제지만, 분명한 것은 폐쇄적인 정당 운영 시스템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SNS 활성화 등으로 유권자의 의사 표현이 활발해진 만큼, 유권자와 접촉하고자 하는 정당과 정치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한국 정치가 직면한 과제들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2012년, 한국 사회의 정치적 격변은 현재진행형이다. 한국 정치가 한 단계 진화할 수 있을 것인지 국민들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시기이다.

 

황영민 /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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