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호 기획: Glocalization] Zoom in or Zoom out : Glocalization

세계화(globalization)가 국경 개념이 허물어지는 오늘날의 세계적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라면, 지방화(localization)는 지방이 경제활동의 중심이 되는 추세를 반영하고 있는 말이다. 이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을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ion)’이라고 한다. 이에 본보는 이러한 글로컬라이제이션 개념의 탄생과 글로벌과 로컬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공간적 스케일에 대해 살펴봤다

 

최근 대학문화와 관련한 언론 보도에는 극심한 취업난 속 스펙 쌓기에 열중하고 있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자주 그려진다. 물론 정도는 다르지만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90년대 중반에도 취업난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젊은 세대의 마음을 어둡게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세계화라는 구호가 유행어처럼 혹은 당연히 따라야할 규범처럼 번져가기 시작한 것도 90년대 초중반의 일이라 기억한다. 세계화가 무엇이고 왜 세계화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누가 세계화의 승자 혹은 패자가 되는지에 대한 논의는 (적어도 내 기억에는) 세계화라는 구호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때문에 우리는 금융위기와 IMF 구제금융의 여파 속에서 그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 세계화를 온몸으로 체감해야만 했다. 항복문서에 서명하듯 구제금융 서류에 서명하는 고위 관료들을 보며 충격에 휩싸였고,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벌어지는 크고 작은 폐해에 좌절했다.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파악하기도 전에 세계화라는 힘과 그것이 가져온 절망 앞에 무방비로 서있을 뿐이었다. 이후 ‘글로벌(global)의 힘’에 대항하는 ‘로컬(local)의 힘’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한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은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글로벌과 로컬의 결합을 강조하고 있다.

 

Glocalization의 등장

 Globalization과 localization의 합성어인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세방화’ 혹은 ‘지구방화’라는 어색한 우리말로 번역되기도 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은 이미 지리학·정치학·사회학·경영학 등의 사회과학 분야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공통적으로 글로벌과 로컬의 힘이 모두 중요하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이 개념의 탄생은 1990년대 몇몇 사회과학자들의 유명한 저서를 통해 학계에 알려지게 된 것을 시초로 한다. 이 중 네트워크 분야의 저명한 사회학자 Barry Wellman과 옥스퍼드 대학 지리학과 교수인 Erik Swyngedouw의 공헌을 빠뜨릴 수 없다. 물론 경영학에서의 글로컬라이제이션에 대한 논의가 우리에게 익숙하고, 실제로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본 지면에서는 이를 다루지 않기로 한다. 글로벌 기업의 현지화 경영전략으로 대표되는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은 이미 다양한 저서와 매체를 통해 잘 소개되고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글로컬라이제이션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두 학자에 초점을 맞추어보면, 서로 다른 학문배경과 전공분야만큼 이 단어를 만들어내게 된 이유 또한 매우 상이하다. Wellman는 개인 간 네트워크와 사회조직에 관심을 갖는 학자로, 그의 초점은 개인과 조직이 어떠한 형태로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있었다. 즉 개인 혹은 고립된 공동체가 어떻게 글로벌한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사회연결망을 변화시키는지에 주목했다. 반면 지리학자인 Swyngedouw는 정치·사회적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과 로컬의 ‘두 가지 힘’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한 공간적 스케일(spatial scale)로 글로컬라이제이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에 아래의 논의에서는 현대사회를 공간적 스케일을 토대로 이해하기 위해 Swyngedouw의 글로컬라이제이션 개념을 설명하기로 한다.

 

정치적 전략으로서의 스케일

 일반적으로 글로벌과 로컬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이분법적 사고에 머무를 때가 많다. 즉 글로벌은 주로 세계의 경제구조, 자본과 같은 추상적이며 동시에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반면 로컬은 국가와 지역공동체, 노동, 지역 문화와 같은 구체적인 속성으로 인식되곤 한다. 따라서 ‘글로벌의 힘’은 세계적 자본처럼 모든 세상을 동일하게 혹은 평평하게 만드는 힘이며, ‘로컬의 힘’은 이에 저항하는 지역적 고유성과 지역 공동체로 해석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과연 글로벌과 로컬이라는 두 가지 공간적 스케일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일이 가능하고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러한 이분법적 논리를 거부하는 것에서 글로컬라이제이션에 대한 논의는 시작한다.

글로컬라이제이션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는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사회현상의 구성에 있어서 정형화된 스케일(scale), 즉 최적의 공간적 단위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금융은 글로벌 스케일로, 노동은 로컬 스케일로 한정하여 접근하는 것에 대해 반기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이론에 따르면 스케일은 정치적 행위자들의 선택에 의해 구성되며, 이는 곧 정치적 의사결정의 산물이다. 가령 우리는 국가라는 체제를 당연시 여기지만, 이 국민국가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베스트팔렌조약을 기점으로 나타난 특정 시기(현재)의 특정 스케일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최근의 EU라는 초국가적 스케일 역시 고작 수십년의 역사를 가진 새로운 정치적 스케일에 불과하다.

스케일의 탄생과 적용은 그 자체로 정치적 전략에 해당한다. 이는 미국이 왜 북핵문제를 6자회담이라는 틀로써 접근하려 하는지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현재 미국은 북핵문제를 동아시아의 안보문제로 설정하여 한반도 주변국들의 힘을 빌리고, 이를 통해 북한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껄끄러운 상황을 모면하려는 하는 정치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은 미국과 북한의 양자 간 스케일을, 미국은 6개국이 참여하는 동북아시아의 스케일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제주 해군기지를 둘러싼 논쟁도 여러 가지 스케일이 중첩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그곳을 살아가는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이는 삶의 터전과 관련된 로컬한 이슈이고, 대한민국 정부에게 이는 국가 안보와 관련된 내셔널한 문제가 된다. 또한 한미동맹으로 미국 함정이 제주도 해군기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이는 동아시아 전체의 이슈가 된다. 끝으로 외국의 환경운동가들과 평화운동가의 참여는 강정마을과 구럼비 바위가 글로벌한 이슈가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다양한 공간적 층위에서 국가 안보라는 내셔널한 스케일이 이 사업을 추진하기에 가장 유리한 스케일이라는 판단을 한 반면,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은 연대의 폭을 넓히기 위해 보다 넓은 이슈로의 스케일 확장전략을 택한 것이다.

 

 

 

 

▲ 노엄 촘스키 교수가 강정마을에 추진되는 해군기지 반대 운동에 동참을 호소중이다. ⓒwww.newscham.net

다차원의 스케일(Multi-scalar) 접근

  단순히 글로벌과 로컬의 시각을 넘어 정치적 전략으로서의 스케일이 지속적으로 생겨난다는 사실은 단순히 사회현상을 해석하는 차원의 문제를 넘어선다. 흔히 언급되는 신자유주의, 즉 국제적 자본이동과 작은 정부의 지향, 그리고 시장논리에 따른 사회구조의 재편 등은 분명 글로벌한 차원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글로벌한 힘이 실제 공간에서 재현되는 것은 바로 로컬의 요구, 전략, 저항 등과의 독특한 결합을 통해 생겨난다.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도 룰라주의로 대변되는 브라질의 전략은 자본주의와 복지정책의 독특한 결합, 즉 자본주의의 글로컬라이제이션으로 설명될 수 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할 방법으로 제안된 복지에 대한 논의는 분명 국가적 논쟁이기도 하지만 보육료와 영유아 예방접종, 다자녀 지원 등 실제적인 정책의 결정은 지방자치단체에 수준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거리 흡연에 대한 규제는 온전히 지방자치단체의 결정에 달려있다. 왜 거리 흡연 규제에 대한 입법이 중앙정부나, 국회에서 이루어지지 않고(더욱이 담배의 제조와 판매가 중앙정부의 통제 하에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지방 자치단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방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스케일의 힘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즉 건강추구권이라는 글로벌하고 내셔널한 스케일의 힘이 존재하며,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길거리 흡연의 금지로 인한 정치적 이해득실(강남구 입장에서는 강남대로에서 흡연하는 사람은 강남구 주민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담배판매로 인한 지방정부의 세금수입(재정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는 담배판매에 대한 유혹이 클 것이므로)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제정함으로써, 길거리 흡연은 자치구별 스케일로 구성되는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향후 사회의 다양한 부분에서 일어날 변화들은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공간적 스케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일 수 있다. 때문에 사회현상을 단순히 글로벌이라는 ‘대세’로 설명한다거나, 국가나 로컬 단위의 ‘고유성’으로 한정해서 설명하는 것은 그 적실성을 잃어가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의료, 교육, 기업지원, 정당정치, 안보전략 등 다양한 문제가 어떤 스케일에서 논의될 것인지를 논하는 것은 어떤 의제가 누구에 의해, 어떤 의도로, 어떤 방식으로 설정되는 가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지상현 / 지리학과 조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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