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호 인터뷰] 학문의 즐거움을 맛보라 – 남순건 대학원장

남순건 대학원장은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Yale 대학교에서 입자물리이론으로 이학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Virginia Tech, MIT, 서울대학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92년부터는 본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터뷰를 위해 지난 9일 본관 3층에 위치한 대학원장실을 찾았다. 그는 본 인터뷰가‘대학원생들과 소통하는 중요한 창구 중 하나’임을 강조하며, 대학원 운영철학과 바람직한 구성원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용감한 도전은 우수한 연구의 토대

Q.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대학원장님께서는 물리학을 전공하셨는데, 학문의 길로 첫 발을 내딛으며 어떤 꿈을 갖고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젊은 날의 저는 상당히 용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젊은이의 패기와 열정으로 ‘20세기 물리학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이론을 남겨보자’는 것이 석사과정 입학 당시 꿈이었지요. 물론 이는 쉽지만은 않은 일입니다. 그래도 26살에 쓰게 된 첫 논문이 학계에서 인정받아 3년 뒤 출판된 교과서에 참고문헌으로 수록되는 등의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아직 물리학 역사에 남을만한 이론을 수립하지는 못했지만, 젊은 날의 그 꿈은 오늘날의 저를 만들어 준 가장 큰 동인입니다.

Q.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첫 논문을 완성하신 것으로 보아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셨다고 생각됩니다. 연구 환경과 같은 외적인 측면에서도 효과적인 지원이 이뤄졌는지요?

해외에서 학문을 수학했기 때문에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큰 어려움없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가장 우수한 대학의 연구 환경도 해외의 일반적인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했고, 연구 성과 역시 저조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많은 재원이 해외로 빠져 나갔습니다. 물론 지난 2~30년 동안 대학의 연구 환경은 크게 개선됐고, 논문의 양적∙질적 증가도 두드러지지만 아직까지 그 격차는 분명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는 재정적 측면보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더욱 잘 나타납니다.

Q. 대학원의 역할은 무엇이며, 향후 어떤 철학을 바탕으로 대학원을 이끌어 갈 계획이십니까?

대학의 생명은 교육과 연구입니다. 특히 대학원은 연구의 기본이 되는 교육을 받고 연구를 수행하며, 사회에서의 지도자적 역할을 학습하는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원생들이 각자의 연구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계획입니다. 즉 ‘용감한 원생’의 경우 ‘용기 있는 도전’을 통해 ‘우수한 연구 성과’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리고자 합니다. 이는 곧 “연구 중심의 대학원”이라는 학교 전체의 기조와 방향이 반영된 것입니다. 다만 이 모든 측면을 대학원 혼자만의 힘으로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가령 대학원생의 연구 환경에 지도교수의 역량이나 연구 활동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구성원 스스로도 각자의 연구 환경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지난 6월, 한국연구재단이 한국학술지인용색인 인용지수 분석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본교는 인용 횟수 기준 상위 1% 저자가 소속한 대학 2위, 상위 10% 저자가 소속한 대학 3위에 오르는 성과를 이뤘습니다. 그 원인을 무엇이라 보시는지요?

본교 전임교원 수는 2007년 923명에서 2012년 1,418명으로 5년 간 40% 가량 증가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실로 대폭적인 체질개선이 이뤄진 것입니다. 물론 이는 기존에 계신 교수님들보다 새로 오신 분 들이 뛰어나시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새로 부임하신 교수님들의 신선한 열정과 기존 교수님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융합되어 학교 전반의 분위기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또한 학술지게재 및 논문발표장학, 대외 연구비 수주 지원과 같은 적극적인 사업 추진으로 연간 약 55억원의 과감한 투자를 집행한 것 역시 이 같은 성과의 기반이 됐다고 판단됩니다.

문제의식의 공유와 발전적 대안 마련에 노력

Q. 값비싼 등록금 문제는 해마다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대학원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등록금 문제는 원생들은 물론 다른 구성원들의 여론 수렴과 소통이 전제돼야 하며, 이를 통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조화로운 해결책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교 역시 많은 국고지원금과 기부금, 그리고 장학금 제도를 통해 원생들의 부담을 경감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 여기서 가장 이상적인 메커니즘은 학교는 초기 환경에 투자를 집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원생들의 연구 경쟁력과 성과가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학교로 유입되는 외부 지원금 역시 증가하므로 원생들은 보다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포항공대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장학금은 물론 경우에 따라 그 이상의 혜택을 오직 연구를 통해 제공받고 있습니다.

Q. 계열별로 연구되는 학문의 특성이 각기 다르다는 점에 착안할 때, 말씀하신 메커니즘이 동일하게 적용되기 힘들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일각에서는‘연구 성과’라는 획일화된 기준을 적용함에 따라 효과적인 장학지원이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연구의 양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현재의 정책에 어느 정도 불합리성이 있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가령 ‘논문 쪼개기’와 같은 폐해는 그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 보다는 그것이 수반하는 긍정적인 부분이 아직까지는 더 많다고 봅니다. 질적 성장은 오직 양적 성장 속에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저 역시도 30년 가까운 연구 활동을 하며 항상 우수한 연구 성과만 내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계열별.학과별 학문 연구의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앞서 제가 말씀드린 부분이 다소 이공계열에 편향된 이야기인 것은 사실입니다. 때문에 다양한 계열의 의견수렴을 통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그에 따른 최적의 해결방안을 모색할 계획입니다.

Q. 우수한 원생들이 국내 타 대학 또는 해외 대학으로 진학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을 모색하고 계신지요?

큰 목표를 위해 해외 유학을 선택하는 현상은 결코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 아닙니다. 어느 대학이나 마찬가지로 본교 역시 모든 분야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미처 다루지 못하는 부분을 타 대학에서 수학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반대로 우리 학교에 타교 출신 원생들이 증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때문에 이러한 현상 자체에 대해 어떤 제도적 접근을 하는 것 보다는 더 좋은 연구 환경, 능력 있는 교수진, 그리고 우수한 성과를 우리 스스로 외부에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Q. 본교 대학원의 경우 복수석사학위 제도가 일부 학과를 중심으로 시행 중입니다. 이와 같은 연유로 교환학생 제도 시행여부에 대한 관심도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구상 중인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대학원 과정에서의 교환학생은 학부 과정에서의 그것과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학부에서의 교환학생이 경험적 측면에 가중치를 두는 반면, 대학원에서의 교환학생은 그 이상의 수준 높은 전문성이 담보돼야 합니다. 본인이 교육받고, 연구하는 분야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면밀하게 따져봐야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생들의 수요 수준 역시 정책을 수행하는데 중요한 고려대상입니다. 개별적 수요를 일반화하여 학교에서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형평성 부문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학생들의 수요가 있고, 그것이 정확하게 파악되면 재차 논의했으면 합니다.

Q. 최근 한 대학원을 대상으로 실시된 ‘우울증 실태 및 관련요인조사’에서 취업.진로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이 대학원생 우울증의 주요 요인으로 밝혀졌습니다. 실적 향상을 위해 다양한 지원이 이뤄지는 반면, 졸업 후 원생들의 진로에 대한 지원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인데요?

사실상 경제적인 어려움은 학교에서의 장학금과 추가적인 연구비 지원으로 상쇄돼야 합니다. 이 부분을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필연적으로 연구 본연의 깊이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졸업 후 취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지지요. 일반적으로 석사와 박사 졸업생들은 학부와 달리, 성적 보다는 그동안의 연구 성과가 취업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물론 대학원 측도 재정과 같은 여러 현실적 문제들로 재학생들을 위한 지원정책을 선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도적 보완을 통해 재학 기간 원생의 역량 강화에 보다 많은 지원을 할 예정입니다.

학문의 즐거움을 전파하는 교수, 그 즐거움을 맛보는 원생

Q. 대학원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대학과 대학원 교육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사실 앞이 조금 불투명해 보일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대학원생의 삶입니다. 연구에 깊게 몰입하다 보면 점차 그 벽이 높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학부 시절에는 중간, 기말고사라는 난관만 잘 넘기면 충분히 스스로 성취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연구는 앞으로 가다 보면 더 큰 세계가 있고, 그것을 지나면 보다 큰 세계가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좌절감이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세계적인 석학도 자신보다 깨어 있는 사람이 늘 보이게 마련입니다. 때문에 동료들 간의 대화나 운동처럼 자기 스트레스를 해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수님들 역시 학생들을 상하 관계로 생각하기 보다는 함께 연구할 동료를 배출한다고 생각하신다면, 보다 만족감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Q. 연구자의 첫발을 내딛는 원생들이 반드시 갖춰야 될 자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젊은 시절 제 이야기를 하며 말씀드린 ‘용감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용감함, 패기, 그리고 열정은 대학원 생활을 헤쳐 나감에 있어 반드시 요구되는 덕목입니다. 누구나 풀 수 있는, 풀어놓은 연습문제를 다시 한 번 푸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연구는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때문에 항상 어렵다고 인식되지요. 하지만 용감함, 패기, 열정이 있다면 이를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것을 극복함에 느끼는 기쁨이 있다면, 이는 또 다른 어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 줍니다.

Q. 끝으로 자신의 학문을 정진하고 있는 대학원생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쉽지 않더라도 꼭 해야겠다는 일이 있을 때, 항상 용기를 갖길 바랍니다. 조금 지나면 그 일에서 기쁨을 맛볼 수 있고, 그 기쁨은 다시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동인이 될 것입니다. 학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 낯설고 어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그 안에서 기쁨을 느끼게 되고, 점차적으로 더 큰 기쁨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단계에서 학문의 즐거움을 느낀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돼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대학원이라는 공간에서 교수는 이런 학문의 즐거움을 전파해주는 역할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맛보고 스스로를 갈고 닦아 습득된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대담·정리 _ 한승원|aimar@khugnews.co.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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