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호 과학학술: 통증] 죽이는 통증, 살리는 통증

통증은 우리의 몸을 상처로부터 지키고, 우리 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감각이다. 통증이 너무 심한 것도 문제가 되지만, 전혀 없는 것도 문제가 된다. 통증은 적당한 수준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모든 통증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배가 아프다는 것은 위장 기관이, 다리가 아프다는 것은 다리가 쉬고 싶다는 몸의 신호다. 통증이 없다면 우리는 아픈 부위를 깨닫지 못하다 친명적인 상처를 입거나 질병에 될 것이다. 야누스의 얼굴처럼 고통과 유익을 함께 주는 통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군인들은 전쟁터로 나갈 때 진통제를 소지한다. 심각한 상처를 입은 군인은 상처 치료보다 통증을 줄이는 것이 더 급한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상이 심하면 상처 때문이 아니라 통증 때문에 쇼크로 죽는다. 통증을 다스리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통증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사실 모든 통증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배가 아프다는 건 위장 기관이, 다리가 아프다는 것은 다리가 쉬고 싶다는 몸의 신호다. 통증이 없다면 우리는 아픈 부위를 깨닫지 못하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거나 질병에 걸리게 될 것이다. 야누스의 얼굴처럼 고통과 유익을 함께 주는 통증에 대해 알아보자.

 

최고의 통증은 무엇일까?

 

사실 통증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각이다. 이런 통증에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와 같이 이런 질문은 유치하지만, 우리의 흥미를 끈다. 다행스럽게도 다양한 통증에 순위를 매긴 학자가 있다. 캐나다의 로널드 멜재크(Ronald Melzack)는 사지가 절단된 환자에게 나타나는 ‘유령 고통’을 상담하면서 다양한 환자가 겪는 고통을 설문조사로 수치화하기 시작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그는 1975년 발표한 책(The McGill Pain Questionnaire: major properties and scoring methods)에서 다양한 통증의 정도를 수치로 표현해 놓았다.

이 책에서 우리가 흔히 최고의 통증으로 생각하는 출산은 3위에 해당한다. 2위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절단, 1위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ausalgia)으로 부르는 통증이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을 겪는 환자는 바람만 불어도 살이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고통을 느끼는 부위는 주로 팔다리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말초 신경이 손상돼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 질병에 걸린 사람은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극심한 통증은 극히 일부에게 나타나는 것이지만, 일반적인 통증은 누구나 경험한다. 칼에 베이거나, 뾰족한 것에 찔리거나, 단단한 물체와 부딪치는 등 주로 물리적인 자극을 받으면 고통을 느낀다. 통증은 너무 뜨겁거나 차가워도 생긴다. 뜨거운 물을 손에 쏟거나, 한겨울에 발이 꽁꽁 어는 동상을 입으면 아픔을 느낀다. 화학적인 자극에도 통증을 느끼는데, 예를 들어 고춧가루를 손에 뿌리면 화끈거리며 괴롭다. 몸에 염증이 나서 겪는 통증이 모두 화학적 자극에 해당한다. 이들 물리적 자극, 열 자극, 화학적 자극은 통증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원인이다. 자극은 감각기관을 통해 통증 신호로 바뀌고, 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면서 통증을 느낀다.

 

통증 감각을 느끼는 곳은 어디?

 

우리가 통증을 느끼는 과정을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몸에서 자극을 느끼는 기관을 감각기관이라고 부른다. 빛은 눈, 소리는 귀, 냄새는 코, 맛은 혀가 느낀다. 통증은 어떤 감각기관이 느낄까. 통증을 느끼는 감각기관은 피부에 있는 ‘통점’이다. 중학교 과학교과서에는 우리는 여러 종류의 촉감을 느끼는 기관이 피부에 존재한다고 배웠다. 통점은 고통, 촉점은 촉감, 온점은 뜨거운 감각, 냉점은 차가운 감각을 각각 느낀다.

통점에 있는 통각 세포들을 모두 ‘통증을 느끼는 전문가’다. 그러나 통점은 눈, 코, 입, 귀처럼 특별한 모양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냥 피부 아래 특별한 기능을 하는 세포가 모여 있는 것으로 눈으로 구별하기는 어렵다. 겉보기에는 특별해 보이지 않은 통점의 세포는 다른 세포와 뭐가 다를까.

 

차이는 세포막에 있다. 세포는 껍질에 해당하는 ‘세포막’을 통해 외부와 여러 물질을 주고받는다. 세포막에는 ‘채널’이라고 부르는 세포소기관이 있는데, 이들은 주로 신호를 만드는 역할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채널을 통해 특정 물질이 이동할 때 세포는 그것을 특정한 신호로 인식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감각과 통증에 관여하는 채널은 9개 정도가 알려졌다. 치통, 피부염, 관절염 등의 염증성 통증에 관여하는 ‘캡사이신채널’이 대표적이다. 인체의 부위가 손상되면 칼륨이온, 세로토닌, 히스타민 등의 ‘통각 유발물질’이 만들어진다. 이들이 채널을 통해 세포 안으로 들어오면 세포는 통증 신호를 인식하게 된다. 이 외에도 상처를 입었을 때, 화상을 입었을 때 등 통증의 종류별로 다른 채널이 존재한다.

 

신경 중에 가장 느린 통각신경

 

통점의 세포에서 인식한 통증 신호는 통각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통각신경이 다른 감각신경에 비해서 매우 가늘어 신호를 느리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촉각이 초속 70m로 전달되는 데 비해 통각은 초속 0.5~30m 정도다. 예를 들어 몸길이 30m인 흰긴수염고래 꼬리에 통증이 생기면 최대 1분 뒤에 아픔을 느낀다. 실제 우리가 압정을 모르고 밟았을 때 발바닥에 깊이 들어간 다음에야 아픔을 느낄 정도로 통각은 전달 속도가 늦다.

통각신경이 다른 감각신경에 비해 가는 이유는 더 많이 배치되기 위해서다. 피부에는 1㎠당 약 200개의 통점이 빽빽이 분포하는데, 통각신경이 굵다면 이렇게 많은 수의 통각신경이 배치될 수 없다. 이렇게 빽빽이 배치돼야 아픈 부위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반면 내장 기관에는 통점이 1㎠ 당 4개에 불과해 아픈 부위를 정확히 알기 어렵다. 폐암과 간암이 늦게 발견되는 것도 폐와 간에 통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신 통각신경의 느린 속도는 촉각신경이 보완한다. 통증이 일어날 때 대부분 촉각도 함께 오기 마련인데, 우리 몸은 경험을 통해 촉각에 반응해 통각의 느린 속도를 보완한다. 뾰족한 것에 닿았을 때 반사적으로 손을 뗀다던지, 등 뒤에서 누군가 건드리면 휙 돌아보는 것이 좋은 예다.

 

태어날 때부터 통증 없는 사람

 

앞서 최고의 통증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했지만, 정반대로 통증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있다. ‘선천성 고통 무감각증(Congenital Insensitivity to Pain with Anhidrosis, CIPA)’이라는 희귀병을 앓는 사람은 유전적 결함으로 태어날 때부터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통증 감각을 뇌에 전달하는 신경세포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2011년 영화 <통증>은 선천성 고통 무감각증 환자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다뤄 호평을 받았다. 이 병을 앓는 사람은 통증을 겪을 일이 없으니 행복할까.

현실은 정반대다. 이 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 중 절반 이상은 고열로 3살 이전에 사망한다. 더위를 감지해 땀을 내는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어릴 때부터 크고 작은 상처를 달고 산다. 문틈에 손이 끼이거나, 음식을 먹다가 혀를 깨무는 일이 다반사다. 고통이 없으니 상처가 나도 위험한지 모르는 것이다. 이 질병을 앓는 환자가 25살 이후까지 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통증은 우리 몸을 상처로부터 지키고, 우리 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감각이다. 통증이 전혀 없는 것도, 너무 심한 것도 문제가 된다. 통증은 적당히 수준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통증 신호 전달을 차단하라

 

과학자들은 통증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통증을 없애려면 통증 신호가 발생하고 뇌에 전달되는 여러 단계 중 한 부분을 차단하면 된다. 통증이 생기는 상처 부위에서 통증 유발 인자를 억제하거나, 신경에서 통증 신호가 전달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는 뇌가 통증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시중에 널리 알려진 진통제들은 통증 신호가 전달되는 단계 중 하나를 막는 방법을 쓴다.

가장 유명한 아스피린은 상처가 난 부위에 직접 작용한다. 아스피린의 주성분은 아세트살리실산이라고 부르는 물질로 세포가 염증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막는다. 세포에서 염증 반응이 일어나려면 사이클로옥시게나제-2(cylcooxygenase-2, COX-1)라는 효소가 필요한데, 아스피린은 이 효소를 방해한다. 이미 발생한 염증의 통증은 남아있지만, 염증이 추가로 생가지 않으니 서서히 통증이 사라진다. 아스피린 외에도 소염 기능이 있는 약품들은 진통 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타이레놀은 신경에서 통증 신호가 전달되지 못하도록 막는다. 타이레놀의 주성분은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이다. 아직 타이레놀이 통증 효과를 내는 정확한 과정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통점이 있는 말초신경보다 중추신경에 주로 작용한다고 알려졌다.

이에 반해 병원에서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진통제인 모르핀은 척수나 뇌에 직접 작용해서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통증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뇌가 통증을 통증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뇌에 직접 작용하기 때문에 다른 진통제가 듣지 않는 말기 암 환자에게도 모르핀은 진통 효과를 발휘한다.

 

진통제와 부작용

 

그렇다고 진통제가 만능은 아니다. 모든 종류의 통증을 제어할 수 없고, 자주 사용하면 효과가 떨어진다. 사람마다 잘 듣는 진통제가 있어서 자신에게 맞는 진통제를 찾아야 한다. 게다가 모든 진통제에는 부작용이 있다. 통증이라는 현상은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 일어나며, 우리는 모든 과정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통증을 완벽하게 제거하면서 부작용도 전혀 없는 진통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오랫동안 쓰인 아스피린은 혈액 응고를 방해하기 때문에 위궤양 환자는 아스피린 복용을 피하는 것이 좋다. 안전하다고 알려진 타이레놀도 과하게 사용하면 신장이나 간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모르핀의 부작용은 두말할 것도 없이 위험하다. 중독성이 있고 과다하게 사용했을 때 신경계를 교란하므로 환각 상태에 빠진다.

특히 모르핀 등의 진통제 사용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중독성이 있는 마약이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과, 치료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남은 생애를 인간답게 살려면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한다. 우리나라 병원은 모르핀 사용을 될 수 있으면 자제하는 편이다. 반대로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말기 환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모르핀 사용을 권장한다. 어쨌든 의사의 지시에 따라 사용해야만 중독의 위험에 빠지지 않고 통증을 제어할 수 있다. 약한 통증이라면 진통제에 의지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 목욕이나 마사지 등으로 긴장을 완화하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줄어든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통증의 강도는 심리적인 요인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진다.

 

통증의 뿌리를 차단하는 첨단 진통제

 

기존 진통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여러 부작용을 줄인 첨단 진통제를 찾는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가장 유력한 방법 중 하나는 통증이 일어나는 가장 첫 번째 단계인 ‘채널’을 직접 제어하는 것이다. 즉, 통점에 있는 세포가 받은 자극을 신경 신호로 바꾸지 못하도록 애초부터 막는 방법이다.

캡사이신 채널을 세계 최초로 발견한 서울대 오우택 교수는 캡사이신 채널을 여는 역할을 하는 불포화지방산 ‘12-HPETE’이 진통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을 밝혀, 진통제 ‘PAC20030’을 개발했다. 이는 캡사이신 채널이 열리는 과정을 근원적으로 차단해 통증을 막는다. 임상실험을 거쳐 범용성과 안전성이 확인되면 실제 환자 치료에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방법은 통증을 일으키는 채널에 직접 작용하는 만큼 선별적으로 통증을 완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령 캡사이신 채널을 막으면 치통, 피부염, 관절염 등의 염증성 통증을, 열 자극에 작용하는 채널을 막으면 화상으로 인한 통증을 선별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방법은 중추신경을 자극하지 않기 때문에 중독 현상도 없다.

한편 ‘문 조절 이론(gate control theory)’이라는 통증을 줄이는 재미있는 방법이 있다. 이 이론은 굵은 촉각신경으로 전달된 촉감이 가는 통각신경으로 전달되는 통각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우리 뇌는 감각을 받아들일 때 다른 감각이 섞여 들어오면 혼란을 느낀다. 촉각이 세지면 통각을 더 많이 방해하므로 통증을 덜 느끼게 된다.

문 조절 이론을 사용한 ‘경피성 전기 신경 자극(TENS)’이라는 치료법도 있다. 예를 들어 피부에 상처를 입은 환자가 있다면, 상처 입은 피부 주위에 전기자극을 지속적으로 주는 장치를 붙인다. 환자의 뇌는 촉각을 느끼느라 바빠서 통증을 상대적으로 적게 느낀다.

여러 가지 진통제를 언급했지만, 우리 몸은 원래 ‘엔도르핀’이라는 천연 진통제를 가지고 있다. 엔도르핀은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할 때나, 출산이 가까워졌을 때 분비된다. 운동에 집중할 때 발목이 삔 것을 잊는다던지, 전쟁터에서 상처를 입어도 아픔을 못 느끼다 병원에 와서야 느낀다던지 하는 것은 모두 엔도르핀의 작용이다.

통증은 우리 몸이 주는 경고 신호이니만큼 아프다고 마냥 싫어할 일만은 아니다. 통증 감각이 있음에 감사하면서 자신의 몸을 더 소중히 한다면, 통증이라는 불청객으로부터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김 정 훈 / 동아사이언스 과학교육연구센터 시앙스몰파트장, 시앙스가이드 편집장(navikim@donga.com)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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