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호 기획: 주폭] ‘주폭’은 없다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은 서민이 서민 잡는 범죄를 ‘주폭’이라 정의하며,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하고 있다. 물론 경찰이 민생범죄를 줄이는데 앞장선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적 위주 수사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데다 주폭 문제가 과연 형사 처벌로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따른다. 이에 본보에서는 주폭 및 주폭 척결사업의 사회적 함의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이해를 재고하고자 한다.

 

다른 사회적 이슈들에 가려 큰 논란으로 확대되진 않았지만, 지난 5월부터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실시한 ‘주폭 척결 캠페인’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의미 있는 정책 가운데 하나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하다는 의미는 이 정책의 필요성 내지 당위성을 역설하는 것이 아님을 먼저 밝혀두는 바이다. 때문에 우리는 왜 이러한 정책이 등장했으며,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주폭(酒暴)’이라는 개념은 ‘상습적이고 고질적인 범죄형 주취자’를 뜻한다. 즉 음주 상태에서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자를 의미한다. 이들은 지역의 영세 상인을 대상으로 협박과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서울경찰청은 ‘조폭과 다름 없는 주폭’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주폭과의 전쟁’을 광범위하게 펼쳐나갔다. 이는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의 취임과 맞물린다. 그는 과거 충북경찰청장으로 재직하면서 ‘주폭’ 개념을 만들어 ‘주폭 척결’을 주요 과제로 실행한 바 있다. 당시 지역 내 상인들과 주민들의 호응이 비교적 긍정적으로 나타나자, 이를 서울경찰청에서도 동일하게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무리한 정책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장 개인의 판단이 지나치게 작동함으로써, 전담반까지 설치하는 등 관련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비판의 핵심은 먼저 ‘주폭’과 음주로 인한 단순 폭력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자칫하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폭’이라는 집단이 그토록 사회적으로 긴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가 하는 점 역시 정책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회적 타자로서 주폭과 한국사회의 변화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과거 마을이나 동네, 시장에서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이들은 항상 있어 왔다. 그들은 우리 삼촌이거나 같은 반 친구의 아버지이기도 했으며, 일부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 수년, 아니 수십 년 동안 그렇게 살아오기도 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를 과거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특히 도시인들은 공동체가 무너진 상태에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살아갈 뿐이다. 이러한 문화에서 개인의 자유나 공간을 침해하고 파괴하는 것을 단순히 ‘술김’으로 넘길 수는 없다. 때문에 경찰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막아준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 한국의 현대사에서 볼 수 있었던 검열과 통제, 억압의 문화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를 훼손시킴으로써 자칫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측면의 자유를 잃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형법을 비롯한 다양한 법적 장치를 통해 폭력행위에 대한 처벌이 가능함에도, 굳이 ‘주폭’이라는 특정한 주체를 호명함으로써 ‘사회적 낙인’을 가하는 것은 곧 공권력의 과잉 행사라고 보여 지기도 한다.

1970년대 유신정권과 80년대 5공화국의 한국사회는 독재정권의 억압적 장치들이 구체적 일상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전자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히피문화의 영향으로 ‘장발족’이 등장했지만, 박정희 정권은 이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실제로 70년 8월 서울시는 ‘히피족’ 일제소탕에 나서 하룻밤 사이 장발족 7백여 명을 적발했는데, 당시 처벌법규는 형법 제245조(공연음란죄)와 경범죄처벌법 144호(신체노출), 동12호(업무방해), 동27호(허무감), 동28호(폭언소란) 등 이었다. 이듬해 7월에도 대대적인 장발족 단속으로 4천여 명을 적발했다. 단속된 이들은 학생과 연예인, 유흥업소 종업원, 구두닦이, 부랑아 등이었고, 적용되는 법은 경범죄처벌법 제1조27호(타인에게 혐오감을 줌)이라는 내용이었다. 특히 ‘허무감’, ‘타인에게 혐오감을 줌’이라는 지극히 주관적 감정이나 행위까지도 단속의 대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국가권력의 억압적 기제는 단순히 이념적 차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일상적 차원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삶과 일상을 통제하는 방식으로도 이뤄져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5공화국의 삼청교육대는 국가권력의 파시즘적 양상을 가장 잘 드러낸 사례이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전과자 및 폭력배를 대상으로 영장 없이 검거한 시민의 수가 당초 목표의 세 배를 초과한 6만 명을 넘었다. 이들 대부분은 무고한 시민이었지만, ‘잠재적 범죄자’라는 낙인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70년대의 장발족 및 경범죄자들과 80년대의 폭력배 및 전과자들은 파시즘적 국가권력의 입장에서 ‘척결’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이제 21세기 새로운 형태의 유사 파시즘적 정권 하에서 바로 ‘주폭’이 새로운 척결 대상으로써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주폭 척결의 성과 혹은 효과

 

서울경찰청은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지난 6개월간의 정책성과를 발표했다. 508명의 주폭을 구속했고, 평균 전과는 21.6범이라고 밝혔다. 그들은 주로 폭력, 업무방해, 갈취, 협박 등의 전과를 갖고 있었으며, 유사 범죄를 반복적으로 저지르고 있다고 언급했다. 범행 장소는 식당, 주점, 상가 등이 대부분(64.4%)이며 노상 및 주택가(19.9%)와 경찰서 및 관공서(4.2%)도 포함되었다. 이러한 결과 발표를 통해 경찰청이 노리는 효과는 분명하다. 경찰의 주폭 척결 사업이 매우 적절하고 타당한 것이라는 점, 그리고 이 사업이 소위 ‘서민’들의 생계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민중의 지팡이’ 혹은 ‘국민을 섬기는 경찰’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것이다.

 

주폭 척결과 관련한 근본적인 물음은 이런 것이다. 과연 주폭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과연 경찰이 전담반을 설치해서 단속할 만큼 한국사회에 위협적인 존재들인가 라는 점이다. 500명이 넘는 주폭을 검거하고 구속했다고 성과를 발표했지만, 그들 대부분이 저학력, 저소득층의 일용직 혹은 실업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사회적으로 철저하게 소외된 자들이며,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더라도 범죄 의도를 가진 목적형 범죄자라기보다는 그야말로 단순히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시비와 폭행, 사고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즉 자신의 인생과 삶에 대한 실패와 실망, 좌절의 표출이라고 봐야 한다. 그들 상당수는 알콜중독일 가능성이 높은데, 이에 대해 처벌 중심의 강경한 정책은 결과적으로 음주 폭력이 반복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들은 짧게 복역한 이후에 다시 그곳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결국 근본적인 정책이라기보다는 표면적으로 주폭이 일시적으로 망각되거나 사라지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게 된다. 비록 ‘주폭과의 전쟁’이 특정 기간 동안 평화로운 시장과 동네를 보여줄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평화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이며 인공적일 뿐 근본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다.

 

주폭 척결 아닌 공동체 복원 지향해야

 

‘주폭과의 전쟁’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처럼 국가권력의 의도가 개입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현재 ‘주폭과의 전쟁’이 갖는 정치적 혹은 문화적 함의는 무엇일까? 주폭 척결정책 등장이 서울경찰청장의 개인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MB 정권 하 다양한 국면에서 인권의 파괴가 일어난 점은 분명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각종 시위현장과 노동자 파업 현장에서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있었다는 점도 단순한 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다. 즉 MB정권은 공권력을 보편적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민 혹은 주체들에게 국한시키는 특징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 결과 또 다른 특정한 계층이나 부류, 세대는 공권력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존재로 분류된다.

이러한 현상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흐름과 맞닿아 있는데, 그렇게 배제되는 존재들의 대부분이 비정규직, 실업자, 청년 백수, 청소년, 노숙자, 장애인, 시위대, 파업노동자 등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들은 시민이지만 시민으로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주폭은 바로 그러한 연장선상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폭력과 배제, 추방의 논리가 일상화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경쟁 원리가 일상화되면서 대중의 심리는 타인과의 경쟁을 통해 그들을 짓밟는 데 익숙해져 있다. 대중은 더 이상 자신의 고통과 어려움, 문제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묻지 않는다. 단지 내 눈앞에 존재하는 거추장스럽고 성가신 존재에게 모든 원인을 돌리고 분노를 표출할 따름이다.

주폭은 ‘존재’한 것이 아니라 ‘탄생’한 것이다. 주폭은 없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방식으로 ‘호명된 주체’로서 주폭은 오늘날 한국사회가 어떤 지점에 와 있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기호’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주폭을 척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자들이 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 그들을 보살핌으로써 어떻게 공동체를 회복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다.

 

권 경 우 / 문화평론가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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