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호 인터뷰: 최일구 전 MBC 주말뉴스데스크 앵커] 언론노조파업, 그 전말과 사회적 의미

지난 1월 MBC를 시작으로 KBS, YTN, 연합뉴스 등 언론계 전반에 걸친 노조파업이 있었다. 노조파업 사태는 여전히 미해결된 채 한국사회의 큰 숙제로 남아 있다. 이에 본보에서는 최일구 전 뉴스데스크 앵커를 만나 언론노조파업과 공정언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봤다.

 

언론노조 설립의 배경

Q. 선생님께서는 1985년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 때 사회부기자로 MBC에 입사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당시 한국의 언론환경은 어땠습니까?

그때가 5공 말기였죠. 당시에는 기자들한테 정부에서 프레스카드를 나눠줬어요. 회사신분증 하나와 프레스카드를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죠. 당시 입사한 수습기자들은 프레스센터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았어요. 산업시찰 같은 것들을 했죠. 당시에는 ‘~는 하지 말 것’, ‘이거는 크게 보도할 것’ 등 항상 보도지침이 있었어요. 그게 당연시되었던 시대였었죠. 87년 민주항쟁을 시작할 때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웠어요. 그 당시는 동대문경찰서를 출입하던 시기였었는데, 하루 종일 시위대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던 시기였었죠. ‘무슨 광장에 대학생들이 독재타도를 주장하며 농성, 시위를 벌였다. 이에 맞선 경찰들을 향해 대학생들이 보도블럭을 깨트려 던졌고, 이 과정에서 몇 명이 체포되었고, 부상당했다’는 내용을 기사화해도 보도가 안 되었었죠.

 

Q. 지금의 언론환경을 80년대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87년 체제 이전이 노골적이었다면 지금은 87체제 이전으로 돌아갔다고 할 정도죠. 그렇게 노골적이진 않지만요.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은 대중이에요. 대중은 다 알고 있는데, 그걸 갖다가 아니라고 오리발 내밀고 있는 형국이에요. 가령 PD수첩에서 얘기하는 4대강 같은 거 뉴스데스크에서도 의제로 다루는 걸 꺼려하고, MB정부에서 계속 이어져 왔던 거에 대한 불공정보도 등 청와대방송과 같은 사례가 많아요. 한미FTA 날치기 통과 후 도심에서 시민들이 시위를 많이 했어요. 그러나 우리 방송에서는 그것이 심도 있게 다루어지지 않았어요. 들은 얘기로는 취재기자들이 시민들에게 보도 똑바로 하라고 맞기까지 했답니다. 87년 시위대 소란 속에서 폭행을 당했던 그 장면이 떠오르면서 그 상황이 87년의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Q. 언론노조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6·10민주항쟁이 시작된 날 명동성당에 시위대들이 들어 갔어요. 그달 17일 시위대 일부가 거기서 나오기로 했는데 시위대가 MBC취재차량 위에 올라갔죠. 그 바람에 백미러와 앞유리가 깨졌고 천장에도 올라가 취재를 포기해야 했죠. 오죽하면 시민들이 보도가 안되어 화가 났을까? 그 심정을 이해하면서 이 안타까운 현실에 눈물이 앞을 가렸죠. 그런데 MBC에선 오늘밤 뉴스에 시위대가 다 빠져 나갔으니 평온해진 명동의 모습을 보도할 준비를 하라고 했죠. ‘ 오히려 더 과격해져 넥타이 부대들이 시위대에 합류하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항의했지만 별 수 없었죠. 현 강원도지사 최문순 선배와 함께 성명서를 썼어요. 동기와 함께 300장 정도 인쇄해 제작거부에 들어간다는 의사를 전달했죠. 몰래 MBC로 들어와 야간기자들만 있을 때 보도국에 확 뿌려버렸지요. 어렵게 회사에 들어왔는데 겁이 나기도 했어요. 당시 전두환이 집권하던 시기였으니까요. 그 자리에서 바로 도망갔죠. 다음 날 사회부장이 호출해 다시 들어갔어요. 경찰출입기자들의 제작 거부가 도화선이 되어 6·29선언 이후 7월에 방송민주화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그 해 연말 11월에는 40여명이 모여 노동조합을 만들었죠. 언론사로는 한국일보가 그 전에 먼저 노조를 만들었고 방송사로는 MBC가 처음으로 노조를 만들었던거죠.

 

MBC파업의 동기와 현황

Q. 지난 1월 25일 기자들의 뉴스제작 거부로 시작된 MBC파업의 동기가 궁금합니다.

작년 PD수첩 광우병보도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에서는 사보를 통해 잘못 보도했다고 스스로 반성문을 쓰고 리포트까지 해버리는 등의 일들이 각 부서마다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죠. 그래서 MBC기자회 회장을 중심으로 보도부장과 보도국장을 교체해 달라고 사장에게 요구했어요. 12월부터 요구하고 언제까지 교체요구를 안 들어주면 제작 거부하겠다고 했어요. 노조에서는 별개로 이미 총파업을 가결시켜놓은 상태였었죠. 기자회가 제작 거부를 한 닷샌가 먼저 시작했어요.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1월말 자동적으로 총파업으로 연결된 겁니다. 결국에는 김재철 사장이 한 달 뒤에 보도본부장하고 보도국장하고 교체를 했어요. 그게 또 후배들에게는 기름을 붓는 인사가 되어 파업으로 연결되어 장기화의 길을 걷게 되었죠.

 

Q. MBC사태 해결은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이러한 절차가 진행 중인지 궁금합니다.

절차가 하나도 진행 중이지 않고 있죠. 방문진에는 9명의 이사가 있어요. 청와대가 3명, 여당이 3명, 야당이 3명의 이사를 선임해요. 과반이 되면 해임안이 통과되는 겁니다. 여야가 6:3인 구조에서는 해임안을 올려봤자 전부 부결이 되는 거죠. 지난 11월 8일 MBC 대주주인 방문진에서는 김재철 사장의 해임안이 9명의 이사 중 반대 5표, 찬성 3표, 기권 1표가 나와 부결됐거든요. 12월 19일 대통령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권의 주체가 MBC사태에 대해 새로운 전향적인 조치를 해줄 것이라고 보고 있고 있어요.

 

Q. 1987년 민주화 이후 여야 합의로 만들어진 현행 방문진-MBC체제의 문제점과 개선점에 대해 의견을 제시바랍니다.

지난 10월 민주통합당이 공영방송 거버넌스 시스템구축관련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어요. 정치권에서도 사장선임방법에 대해 ‘MBC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거죠. 방문진법에 따라서 항상 6:3이 되는 논리는 민주당이 집권하든 새누리당이 집권하든 늘 그래왔어요. 그래서 기존 이사진에 시민사회 대표까지 합쳐서 한 30명의 이사를 구성해서 거기서 사장을 제대로 선임하는 것들이 논의가 되는 거죠. 지금 당장 어수선한 대선정국 상황에서는 힘들 것 같고, 새 집행부가 구성되고 국회가 정상화되었을 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자연스럽게 논의가 될 것이라고 봐요. 현재 MBC를 비롯해 KBS, EBS 등 공영방송 거버넌스를 개선하는 내용의 방송법, 공사법,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법 개정안 등이 국회 계류돼 있는 상태인 걸로 알고 있어요.

 

Q. MBC 언론노조파업에 대해 정치파업이나 사내문제로 보는 입장들이 있습니다.

87년 노조를 만들고 나서 국민들은 쟤들은 밥만 먹으면 파업을 하는 노영방송이다 하지만 파업은 조합원들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에요. 무노 무임이죠. 조합원들 모두 생활인인데요. 이번 같은 경우에는 이전의 파업과는 다르긴 해요. 원래 부장급이상 보직을 맡게 되면요, 부장들은 파업을 안 하거든요. 조합원들만 파업을 하고 부장들이 대신 리포트를 해요. 파업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상처가 아물고. 부장급이상은 안하는 걸로 되어 있어요. 근데 이번 경우는 그게 아닌 거죠. MBC보도가 똑바로 가는 건가? 그건 아니지 않느냐? 이러한 문제의식이 상층부에 있는 간부들에게까지도 공동의 의식으로 형성되었죠.

 

MBC정상화와 공정언론 실현

Q. 언론이 곧 민주주의의 기초라는 관점에서 MBC사태를 수습하는 데 있어 정치가 개입되어야 한다는 입장도 있는데요.

MBC는 70%가 정부의 재출자에 의해 만들어진 공영방송이에요. MBC라는 회사는 공동주파수라는 국민의 재산으로 운영되는 방송사예요. 그럼에도 장기적인 파업으로 이끌고 간다면, 이를 해결해 갈 주체는 방문진을 떠나서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이 MBC사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맞다고 봐요.

 

Q.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두고 각 대통령후보선거캠프에서 여론을 자기 후보 쪽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미디어를 통해 여론 비틀기를 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하는데요, 그 대표적 인 사례가 MBC의 <안철수 대통령후보의 박사학위논문표절 의혹보도>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러한 미디어스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다른 미디어에서는 취급도 안했던 기사예요. 해당 기자의 경우 방통위인가 방송심의위원회에서 경고를 받았잖아요. 해당 기자만의 특종으로만 그 일을 한 것인지, 아니면 모종의 힘이 작용돼서 그런 일을 하게 된 건지. 그 진실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다른 미디어에서는 잘 취급되지도 않았고, 그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사화하지 않았다는 미디어도 있어요. 굳이 기사 아이템으로 다뤘다는 것은 모종의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작동했을 것이라고 보는 거죠. 대중은 다 알고 있어요. 왜 저 뉴스가 저기서만 나올까? 대중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단은 다르겠지만. 서울대에서도 논문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잖아요.

 

Q. MBC정상화를 위해 어떤 수순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일단은 이번 투쟁을 통해서 보면 해고자가 너무 많아요. 김재철 사장 취임한 후 그의 비리를 폭로했던 노조위원장이 2년 전에 해고 됐어요. 올해 파업에 들어가 8명이 해고됐고, 219명이 징계됐죠. 저도 3개월 정직이지만, 6개월 정직, 대기발령. 그것도 모자라서 잠실에 있는 MBC아카데미에서 저를 포함해서 재교육을 받고 있죠. 그 기간이 끝나더라도 본직에 발령 내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대량징계의 칼이 사라져야 한다고 봐요. 무엇보다 앞서서는 김재철 사장의 교체가 있어야 하고요. 이것 바로 MBC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첫 번째 단추가 될 겁니다. 해고자들, 징계자들의 철회. 이런 것들이 선행되어야 해요.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되어야만 활기를 되찾고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언론노조파업, 그 사회적 의미

 

Q. 언론노조파업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미국의 경우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국책을 뒤집는 기사를 자꾸 씀으로써 언론의 자유가 시작된 거예요. 오늘날 우리의 경우를 보면 4대강 문제, 그건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못 다루게 하는 거예요. 풍자도 마찬가지죠. 미국의 경우는 그런 일이 없잖아요. 우린 아직 멀었다는 거죠. 그러나 희망이 있는 것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을 해 보자고요. 그때 뭐가 있겠어요? 친일파들이 득세할 때인데. 건국 이후에는 보수가 득세했고요.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87년 민주항쟁을 겪었던 거죠. 거기에서 언론이 한 단계 민주화가 되고 있었던 거거든요. 이번에 MBC, KBS, YTN들이 다 파업하고 그랬는데요, 그래도 전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국도 갑자기 어느 날 아침에 100%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게 아닌 거 마냥 우리도 한 순간에 언론의 자유가 이루어질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역사를 바꾸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거거든요. 1년 동안 파업을 하다보니까 우리의 바람은 이건데 세상은 그게 아닌 거예요. 그러나 아직은 희망은 있다! 조금씩은 보이고 있다! 후세들 때는 우리 때보다는 조금 더 나은 민주화시대가 열리지 않겠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Q. 끝으로 MBC사태를 지켜보는 국민들과 원생들에게 당부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먼저 국민 여러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두 번째는 소통하는 미디어를 만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장기간의 파업을 통해서 파업을 하고 어디 하소연할 데 없는 민중들이 많겠구나! 현장의 소외된 목소리들이 많구나!’라는 걸 느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복귀를 하게 된다면, ‘현장의 소외된 목소리를 앞으로 더 많이 대변해야겠구나! 그래서 소통하는 미디어를 만들어야 되겠구나!’ 이런 걸 교훈으로 삼아서 좋은 방송을 만드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젊은 후학들에게 해 주고 싶은 얘기는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이런 부분들이 제대로 활성화된 나라들이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언론의 절대적인 생존의 이유는 재벌과 강자들에 대해 끊임없이 감시하고 비판하는 데 있어요.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언론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후학들은 미디어 산업에 종사하더라도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 대해서 성찰을 많이 하고 스스로가 싸워야 돼요.

 

대담·정리 _ 신선희|ohmysuny@khugnews.co.kr

사진 _ 주지영|juju@khugnews.co.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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