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호 인문학술:판단과 의사결정]결정의 조건과 근거

 

인간은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일까? 이는 심리학의 오랜 관심사 중 하나이다. 하지만 과연 심리학만이 인간의 판단과 결정을 연구하는 학문일까? 당연히 아니다. 심리학의 역사는 다른 사회과학 분야에 비해 매우 짧은 것이며 따라서 심리학 이전에도 많은 학문 분야에서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을 연구해 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경제학이다. 비록 재화와 용역같은 경제적 대상을 중심으로 한 판단과 의사결정 연구이지만 인간이 어떤 측면을 중요하게 고려하여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에 대해 관심을 모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경제학은 또 다른 심리학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심리학에서 보는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는 요인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여기서부터는 경제학과 심리학이 역사적으로 조금 다른 관점에서 출발을 하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합리성(rationality)에 대한 논쟁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초기 경제학에서 관심을 가졌던 인간 판단의 결정 근거가 기대가치 혹은 기대효용과 같은 객관적 지표들이었고 심리학자들은 이 지표들의 실제적 영향력에 깊은 회의를 품었기 때문이다.

합리성 가정에 대한 위배들: 기대가치와 기대효용 이외의 요인들에 의한 영향력

인간은 과연 합리적인 존재인가? 이는 심리학보다 훨씬 더 긴 역사를 지닌 철학에서도 오랜 논쟁의 대상이 되어온 이슈이며 따라서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님은 분명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다수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합리적인 측면보다는 그렇지 못한 부분에 더 관심이 많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합리성에 관한 논쟁과 연구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하는가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었다(Shafir & LeBoeuf, 2002). 왜냐하면 많은 심리학 연구들이‘인간은 이래야 한다’라는 것과 같은 당위성을 최대한 배제한 가운데 인간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편향요인(bias)들에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편향요인들이 자주 오류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우리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Slovic & Lichtenstein, 1983). 그리고 이러한 편향에 관한 연구들은 다양한 영역에서‘판단과 의사결정’이라는 주제로 관찰된 데이터들이 축적되면서“왜 인간이 편향으로 인해 합리적인 판단에 도달하지 못하는가”라는 다소 부정적 관점에 입각한 관점에서“인간은 어떤 편향들에 주로 합리적이지 못하게 되는가”라고 이후 보다 가치중립적인 방향으로 전환되었으며, 보다 더 최근에 이르러서는“인간이 정말 합리적일 필요가 있는가?”라든가“합리성이라는 것이 과연 판단의 가장 중요한 근거로 따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와 같은 매우 근본적인 점을 탐색하는 입장으로 연결된다(Shafir & LeBoeuf, 2002). 이 긴 흐름을 한편의 원고로 모두 알아보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지만 인간이 주로 어떤 측면을 고려하며 무엇을 지향하는가에 관한 논의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대표성 휴리스틱: 인간 판단의 근거에 대한 재고찰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이 바로 확률에 대한 판단이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든 원인이나 결과가 얼마만큼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확률 판단이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확률 판단에 있어서조차도 인간은 전혀 다른 요인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는 것을 관련 연구들은 잘 보여주고 있다. 판단과 의사결정이라는 분야의 연구자들에게는 매우 유명한 일명‘Linda의 이야기’연구이다. 아래의 예를 한 번 보자 (Tversky & Kahneman, 1983).

Linda는 28세의 독신 여성이다. 그녀는 몇 개의 여성 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특히, 학대로 고통을 받는 여성들을 위한 보호시설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으며, 낙태권리를 주장하는 시위와 행진에도 자주 참여하고 있다.

위와 같이 Linda에 관한 정보를 준 뒤 실험 참가자들에게 Linda가 은행원일 확률을 추정케 한다. 그 결과는 대부분 높지 않다. 하지만 다른 참가자들에게 Linda가 페미니스트인 은행원일 확률을 물으면 추정된 확률은 크게 높아진다. 전자가 후자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후자의 추정값은 무조건 더 전자보다도 낮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이 관찰된다. 이를 연구자들은 대표성(representativeness) 휴리스틱 혹은 편향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 관련 연구자들은 이러한 결과가 사람들이 확률 판단을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인 유사성(similarity)을 중심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Markman & Medin, 2002).

그리고 이 예는 인간의 판단과 결정에 좀 더 깊은 함의를 제시한다. 확률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은 분명 비합리적 판단을 했다. 하지만 유사성이 인간의 판단에 더 중요한 요소라면? 이제는 반대로‘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이 실제 세상에서 확률을 추정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가용한 유일한 단서인 유사성을 판단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확률 추정을 해야 하는 인간이 확률 정보는 존재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사용가능한 정보를 사용해 결정에 이르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탓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고려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혹은 지킬 필요도 없는 기준을 설정해 놓고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우리가 비합리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회의를 심리학자들로 하여금 가지게 했고 자연스럽게“인간이 과연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위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으로 관심을 옮겨가기로 했다(Shafir & LeBoeuf, 2002).

만족: 판단의 지향점

위의 질문에 가장 중요한 이슈는 바로, 언제 판단을 완성하는가? 즉, 결정을 내리는가로 귀결될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가장 먼저 시도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Herbert A. Simon이다.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의 거목 중 한 사람인 Simon이 주목한 점은 인간의 인지능력이 지니는 한계점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결정 상황이든 선택될 수 있는 대상의 수는 무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안들 모두를 일일이 평가 한다는 것은 인간의 인지능력 밖의 일이라는 것 역시 분명하다. 따라서 모든 대안, 그리고 개별 대안들이 지니는 여러 속성들을 분석하고 다른 대안과 비교하여 최적의 대안을 선택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그다지 현실적이지 못한 방법일 것이다. 그보다는 자신이 그 결정으로 만족되는 순간이나 수준에서 판단을 확정하고 생각을 멈추는 것이 더 절절하고 현실적일 것이다. 즉, 만족이 일어나는 순간에 결정이 일어나며, 따라서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은 ‘최적’이 아닌 ‘만족’을 지향한다고 Simon은 주장한다.

예를 들어, 작은 음식점의 주인이 아르바이트 학생을 한 명 채용하려고 하는데 광고를 본 학생들을 계속해서 면접한다고 가정해 보자. 몇 명을 만나본 후 주인은 세번째와 다섯번째로 본 여학생과 남학생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주인은 이제부터 이 두 명의 후보자를 놓고 치밀하고 꼼꼼하게 비교를 시작한다. 그리고 둘 중에 더 낫겠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선택한다. 당연히 더 이상의 면접은 없다. 하지만 그 주인이 만약 더 많은 학생들을 면접했다면 아마도 더 괜찮은 아르바이트 학생을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족스런 몇 개의 대안(즉, 여학생과 남학생)을 발견하는 순간 의사결정자는 일단 멈추고 그 대안들을 비교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합리적’인 사람인 양 치밀하게 그 대안들을 비교한다 . 이를 Simon은 제한된 합리성 (bounded rationality)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최적의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만족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Simon, 1978).

획득과 손실: 관점이 결정하는 인간의 판단

인간은 최적이 아닌 만족을 지향한다는 Herbert Simon의 이론은 인간이 어떤 판단 근거를 사용하는가에 대한 보다 더 자세한 관찰들로 이어졌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프레임 효과(frame effect)에 기초한 Amos Tversky와 Daniel Kahneman의 조망이론(prospect theory)이며 더 나아가 1970년대 이후의 무수한 휴리스틱(heuristic) 연구들도 여기에 뿌리를 둔다고 할 수 있다. 그 중 프레임 효과와 조망이론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한 마을에 600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런데 무서운 질병이 발생했고 이 질병은 마을 사람 모두를 죽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응해 두가지의 치료 프로그램이 있다. 이 두 프로그램의 예상 결과는 다음과 같다.

* 프로그램 A: 200명을 살릴 수 있다.

* 프로그램 B: 33%의 확률로 600명을 구하고, 67%의 확률은 아무도 살리지 못한다.

응답자들에게“당신이 질병관리본부의 책임자라면 어떤 프로그램을 선택하겠는가?”라는 질문을 제시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로그램 A을 선택하겠다고 응답한다. 하지만 질문에서 프레임, 즉 관점을 약간 바꾸게 되면 반응은 정반대의 양상을 띤다.

* 프로그램 A: 400명이 죽는다.

* 프로그램 B: 33%의 확률로 아무도 죽지 않고, 67%의 확률로 600명이 죽는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로그램 B를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불일치가 의미하는 바는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두개의 프로그램 A는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600명의 사람들 중 200명이 사나 400명이 죽으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두 개의 프로그램 B 모두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왜 이런 불일치가 일어난 것인가? 다시 말하자면, 왜“600명 중 200명을 살리는 방법”은 선호가 되는 반면“400명을 죽이는 방법”은 선호가 되지 않는 것일까? 이를 위해서는 먼저 A와 B의 차이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가장 중요한 차이는 A보다 B가 더 모험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A는 결과가 확실하고 B는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A를 선호하는 것은 모험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더 강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으며 B를 더 선호하는 두 번째의 경우에는 오히려 모험을 감수하려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일어났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첫 번째의 경우에서보다 두 번째의 경우에 사람들은 모험을 감수하려는 경향을 보인 것일까?

Tversky와 Kahneman은 두 A 각각에 포함되어 있는“살린다”와“죽는다”는 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살린다는 것은 구한다이며 따라서 획득과 손실의 관점에서 볼 때 획득에 가까운 반면, 죽는다는 것은 손실에 가깝다. 따라서 이를 통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은“사람들이 무언가를 손실의 관점으로 볼 때 그 확실한 손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도 큰 부담이기 때문에 더 모험적이다”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경향성은 특정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사람들이 자기 의 직업과 연관된 내용으로 위의 문제를 재구성해 제시받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온다. 예를 들어,“ 1년 이상 생존할 확률”과“1년 이내에 사망할 확률”로 메시지를 다른 관점에 기초해 제시 받은 숙련된 의사들조차도 치료방법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차이를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관찰됐다(McNeil, Pauker, Sox, & Tversky, 1982).

위의 A와 B 중 기대가치나 기대효용에 기초해 우열을 가리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최종 결정이 가능한 이유는 획득과 손실이라는 두 가지 프레임을 통해 대안의 속성 중 어떤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가에 대한 중간 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후 심리학은 판단과 의사결정의 근거가 되는 다양한 요인들을 하나하나 밝혀가면서 인간이 지니는 주관적 측면들을 조금씩 이해해 나가기 시작한다.

결론: 정서의 영향력과 이해를 통한 인과관계의 이해

그렇다면 이러한 연구들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판단과 결정에 작용하는 힘이 논리적인 분석이나 사고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깊게 생각해 보면 정서와 동기일 것이다. 그리고 이후의 연구들을 보면 결정의 순간에서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이성보다는 정서임이 더욱 분명해 진다. 실제로 행동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의 순간인 결정 직전까지의 여러 가지 생각이 두 대안 C와 D 중 C를 선택하는 것으로 기울다가도 정작 결정 자체는 D로 내리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는 생각의 긴 과정과 결정에 따른 행동이 불일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심리학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학문 분야에서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 왔지만 해답을 제대로 얻지 못한 주제이기도 한다. 일명‘태도와 행동 간에 존재하는 불일치’현상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결정에 미치는 정서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대부분 심리학자들이 동의하는 바가 하나 있다. 바로, 이성과 논리가 정서보다 언제나 우수하다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다. 하지만‘이성과 논리’의 중요성과 우수성이 지나치게 역설된 20세기를 거치면서 정서가 판단과 결정에 작용하는 영향력과 긍정적 효과를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연구자들과 일반적인 대중 모두 범했다. 그 결과 우리 인간이 저지르는 대부분의 실수나 오류들을 감정의 탓으로 돌리며 정서 혹은 감정이라는 단어 자체를 부정적인 맥락에서 사용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서는 어떤 요인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결정이 정서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뇌에서 정서를 담당하고 있는 영역만 선별적으로 손상받은 환자들이 어떤 증상을 보이는가를 관찰함으로써 분명하게 확인될 수 있다. 이 환자들은 이성과 논리를 담당하고 있는 뇌영역이 상대적으로 덜 손상 받았기 때문에 수학, 퍼즐, 논리 문제 등을 예전에 비해 크게 어렵지 않게 풀어낼 수 있지만 아주 사소한 결정조차도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게 된다 (Loewenstein, Weber, Hsee, & Welch, 2001). 인간이 결정을 내릴 때는 무언가 어떤 느낌이 동반되어야 하며 그 느낌이 존재하지 않으면 결정의 순간에 판단의 근거가 약하기 때문에 주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게임이나 도박 중독 등 특정한 행동으로부터 빠져나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유형의 환자들 중 상당수에게서 정서적 단편성으로 인한 성격장애가 자주 발견된다. 즉, 잘못된 결정이나 결정 자체가 힘든 경우에는 정서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중요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게다가 각기 다른 문화나 집단 간에 나타나는 수많은 정서적 차이는 판단과 의사결정에 있어서 왜 문화차나 집단차가 그렇게 빈번하고 극심하게 나타나는가에 대한 대답을 위해 좋은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이는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관한 향후 연구에 중요한 함의를 전달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정서와 관련된 연구들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학문분야들과의 연결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물론이고 병리학과 같은 세포 수준의 연구들까지 각기 자기 영역에서 특정적으로 다루는 정서들이 개별적인 수준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분명한 점은 이러한 개별 연구영역에서 다루는 정서에 관한 수많은 연구들이 통합되어 정서와 생각 그리고 최종 행동에 이르는 인과관계를 우리가 파악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인간이 왜 그리고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래의 학문에 있어서 융합과 통섭이 왜 중요한가를 이 분야에서도 여실히 말해 주고 있다.

 


김경일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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