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호 인터뷰]축제가 남긴 그림자, 싸이 신드롬의 사회적 의미-한예종 한국예술학과 이동연 교수

지난 2012년 최대 화두를 꼽으라면 단연 싸이를 빼놓을 수 없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자, 언론에서는 이를 앞다퉈 다뤘고 상당수 전문적인 분석들도 쏟아졌다. 어느 정도 싸이 열풍이 잦아든 지금, 이제는 축제의 한복판에서 빠져나와 무엇이 우리를 휩쓸고 갔는지 한 번쯤 되짚어볼 때이다. 이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를 만나 싸이 신드롬의 의미와 향후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개척지를 향해 나아가는 문화연구

Q. 90년대부터 쭉 대중문화 연구를 해오셨는데, 구체적인 동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문학이론을 공부했습니다. 주로 소설비평을 많이 했어요. 90년대는 문화자본의 시대, 문화비평의 시대, 문학연구에서 문화연구로 이행하는 시점이었습니다. 제 은사님이셨던 강내희 선생님이 한국에서 문화이론을 처음으로 연구하셨던 분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문화이론과 문화연구 쪽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지금 제가 편집장으로 있는『문화과학』이라는 잡지를 20년 전에 같이 만들었는데, 그런 작업에 참여하면서 문화연구를 보다 집중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Q. 이력을 조사하다 보니, 게임문화재단 이사로도 역임하셨을 뿐 아니라, 『게임의 문화코드』(이매진, 2010)라는 저서에서 대중문화를 읽어내는 중요한 코드로서 게임을 분석하셨던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게임도 분명히 문화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연구가 거의 안 돼 있었습니다. 주로 게임 중독 현상을 다루는 심리학적 연구나 임상연구, 아니면 소프트웨어 개발과 관련한 연구들이 많이 진행돼 있었죠. 산업적·교육학적·심리학적 기초는 있는데, 문화적 기초가 없었던 것입니다. 게임이란 일상문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콘텐츠인데, 영화나 문학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문화연구가 덜 되어 있다 보니, 같은 문제의식을 지닌 연구자들과 공부하게 됐습니다.

 

싸이 신드롬의 대중성과 탈국적성

 Q. 싸이가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기존 아이돌과 비교해 본다면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싸이는 여러 조건에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아티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창작성이나 음악성이라는 관점보다는 대중성의 측면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대중의 코드를 잘 읽을 줄 아는 뮤지션이고 자신만의 독특한 랩 스타일을 갖고 있는 가수입니다. 노래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멜로디 정도를 구사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무엇보다‘싱어송라이터’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 됩니다. 아이돌처럼 남이 만든 곡을 부르는 역할보다는 대중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더 많은 것이죠. 뿐만 아니라‘싱어송라이터’중에서도 현재로서는 거의 비교할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기존의 문법과 다른 독특한 캐릭터를 갖고 있습니다. 형식화된 퍼포먼스보다는 즉흥적이고 현장 중심적인 퍼포먼스를 지녔다는 점도 큰 장점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Q. 실제 해외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한국이라는 국가적 코드와 함께 인식되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제3세계는 아니지만 원래부터 선진국이었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강남스타일>을 들었을 때, 인도나 이란, 동유럽의 음악처럼 이국적으로 들리지는 않습니다. 음악자체가‘파퓰러(popular)’한 소스를 사용하기 때문이죠. 기본적으로 일렉트로닉한 비트에다 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놓고 보면 사실 듣기에는 굉장히 세련되고 편한 겁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언어로 되어 있고, 가수가 누구인지도 모르니, 정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한국이라는 정체성이 각인되는 경우는 있는듯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음악을 듣고 즐기고 춤추는 상황에서 싸이가 한국인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강남스타일>의 가사조차도 굳이 뜻을 알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반복되는 후렴구(‘오 섹시 레이디’, ‘오빤 강남스타일’)만 알아도 충분하죠. 언어적 장벽이나 국가성 등은 <강남스타일>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상당히 초국화되고, 탈국적화된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싸이와 애국주의 코드와의 상관성

 Q. 싸이의 전세계적 성공을 국내에서는 굉장히 애국주의적 태도로 수용하고 있는데요, 정작 싸이 본인도 해외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코드를 많이 활용하고 있는지요?

굉장히 많이 언급하고 활용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 스스로가 애국적 코드를 갖고 있는 가수이고,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드러내기를 원한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과거처럼 의도적이거나 경직된 태도로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워낙 유머러스한 뮤지션이기 때문에 한국인이라는 강한 자의식을 보여주기보다는‘한국사람 잘 놀 줄 안다’는 식의 정체성을 보여주려고 하죠.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나 <앨런쇼>에서도 예정에 없던 한국어를 내뱉은 적이 있는데, 의도적으로 했다고 합니다. 싸이 스스로도 어떤 식으로 자신에게 피드백 될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강력한 한마디를 던져주는 겁니다. “대한민국 소리질러”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퍼포먼스로서는 굉장한 임팩트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싸이는 퍼포먼스에 애국적 코드를 동원해서 판을 즐겁게 만들어내는 능력을 지닌 가수입니다. 그런 점에서 애국적 코드를 정치나 이념으로서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상당히 이용을 잘하는 뮤지션이라고 생각합니다.

Q. 싸이가 애국주의 코드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싸이 스스로 강한 애국심을 지녔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여러 상황들이 싸이로 하여금 애국주의 코드를 이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알다시피 싸이에게는 대마초 사건이나 병역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본인이 가수로서 살아남으려면 애국심을 이용하는 수밖에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재기하려면 당연히 반성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야 했고, 그래야 사랑받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기 때문이죠. 또 김장훈에게서 애국적 코드를 무대에서 활용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위장이 됐든 포장이 됐든, 싸이는 이제 국제가수이면서, 애국가수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애국주의 코드에 반하는 말을 하고 싶어도 발언할 수 없는 위치에 이미 와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종의 개척자들이 지닌 숙명이라고도 생각됩니다.

Q. 연성적 형태로 국가주의를 유도하는 것이 어쩌면 더 위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요즘의 K-pop은 과거 유신시대처럼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호소하지 않습니다. 탈국적적인 글로벌한 음악 양식으로 곡을 잘 만들어서 다시 외국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강한 애국심을 보일 필요는 없는 겁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인의 시각에는 <강남스타일>의 성공이 거의 이해불가능할 정도의 사건으로 여겨지는 듯합니다. 비록 경제가 좀 성장했다 하더라도 문화와 관련해서는 항상 외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왔다고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죠. 우리 부모 세대만 하더라도 미국 팝을 들으면서 자랐던 세대였기 때문에 미국은 언제나 동경과 모방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전관계가 벌어진 겁니다. 그에 대한 자부심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튜브 조회 수가 13억이 넘었다든지, 싱글차트 2위에 올랐다는 등의 얘기는 저같이 고등학교, 대학교 때 빌보드 음악을 들었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자랑스러운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 사람들이 갖게 되는 민족주의적 반응이나 애국주의적 반응은 어떤 점에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문제는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죠.

 

문화적 다양성과 다종성의 토양을 위해

 Q.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에 대한 비판적 개념으로‘일렉트로닉 노이즈’라는 개념을 사용하셨는데요(「내가 아는 ‘싸이’에 관한 모든 것」『문화과학』, 2012.12), 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일렉트로닉 노이즈는 음성 제국주의라고 하는 책을 썼던 알랭 바디유가 바그너 음악을 분석하면서 언급했던 내용들을 참고한 개념입니다. 일렉트로닉 노이즈는 제국주의 음악은 아니지만 다른 모든 음악들이 지닌 다양함, 잠재성을 다 빨아들입니다. 일종의 제국화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전자 샘플링, 테크노 비트는 대행성이 소행성을 빨아들이듯 다른 음악들을 흡수하고 제거합니다. 이런 전자적 노이즈가 우리 시대 음악적 유행의 대세, 즉 주종이 돼 버린다면, 살아남을 음악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 차원에서 일렉트로닉 노이즈를 얘기했습니다. 일렉트로닉 노이즈는 모든 음악의 경계를 허무는 자유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시대의 음악적 종다양성의 부재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강남 스타일> 같은 노래를 좋아하는 시대라면, 재즈(jazz)나 국악, 크로스오버 같은 잔잔하고 명상적인 음악들은 살아남을 길이 점점 없어지는 것입니다.

Q. 음악적 다양성을 촉발할 수 있는 방법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사실 말은 쉽습니다만, 대안은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송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방송도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 <정재형 이효리의 유&아이>나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이 아티스트들을 초청하는 음악프로그램도 만들었고요. 다만 문제는 방송만으로는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고요. 학생들이 좋아하는 음악이 지금 당장은 주류음악에 치우쳐 있더라도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 음악들이 있음을 안내하고 들려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물론 십대 대부분은 아이돌을 좋아하겠지만 그중 30% 정도라도, ‘나는 윤도현이 좋아’,‘<브로콜리 너마저>가 좋아’, ‘<검정치마>가 좋아’, ‘<3호선 버터플라이>가 좋아’, 이런 식의 취향들이 나올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한 것인데, 아직 그런 교육은 못하는 것 같아요.

Q. 문화적 다양성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이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단 교사들의 문화적인 정보가 부족하고, 그 부분을 학생들에게 설명할만한 재교육 준비가 안 돼 있습니다. 제가 간혹 교사들에게 K-pop에 대해 강의하면, 본인들은 신기해하는데, 막상 자기 수업 시간에 접목해서 학생들한테 설명해주려고 하는 의지는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필요하다면 미디어가 선택의 기회를 좀 더 많이, 넓게 제공해주는 것이 우선적으로 돼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대학원생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대중문화에 대한 연구가 쉬워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문화현상을 분석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 입니다. 그렇지만 좀 더 내실 있는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만 합니다. 책도 최근의 트랜드를 반영한 것보다는, 오히려 고전적인 책들, 오래된 책들 속에서 동시대 현상에 대한 분석적 시각들이 나온다고 봅니다. 저는 싸이의 음악을 분석하더라도 벤야민이나 알랭 바디유 이야기를 많이 참고합니다. 그런 점에서 대중문화 현상을 연구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자세는 독서이고, 특히 많은 고전을 읽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대담·정리: 이철주|vertigo1985@khu.ac.kr

사  진: 강신녀|kangsn@khu.ac.kr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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