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호 책지성: 자크 오몽, 『이마주 – 영화·사진·회화』] 다섯 개의 렌즈로 들여다본 이미지의 세계

이마주표지

보이는 이미지와 보이지 않는 이미지

 이미지는 외부 세계만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도 존재한다. 눈을 거치지 않고, 아무런 매개 없이 직관을 통해 표상되는 ‘마음속의 상(心像)’이 그것이다. 반면 그림이든 영화든 혹은 사진이든 구체적인 ‘상’들은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눈을 통해 보이는 이미지들이다. 우리가 극장 스크린에 영사된 영화의 장면들을 눈으로 보았다면,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으로 나온 뒤에도 부분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영화 장면들을 우리 내면의 스크린에 떠올릴 수 있다. 앞서 극장 스크린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시각적 이미지’라면, 후자의 이미지는 우리의 지성에 호소하는 ‘비시각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자크 오몽(Jacques Aumont, 1942~ )의 『이마주』는 볼 수 있는 형태를 가진 이미지, 곧 시각적 이미지에 관한 책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영상’이라는 용어는 ‘이미지’를 번역한 것인데, 이때의 ‘영상’은 좁은 의미에서 영화, TV, 비디오, 광고, 사진 등과 같은 시각 기호를 지칭한다. 영상을 연구하는 학문인 ‘영상학(映像學)’은 영어로 ‘Science of Image’이며, 독일어로는 거울(Spiegel)과 그림(bild)의 합성어인 ‘Spiegelbild’, 프랑스어로는 ‘Image’다. ‘이마주’는 바로 오몽의 책 제목인데, 그렇다고 영상학에 관한 책은 아니다. 원제 “L‘image-Cinéma/ Arts Visuels”에서 ‘영화/시각 예술(번역서는 영화·사진·회화)’이라는 부제가 말해 주듯, 이 책은 카메라와 무관한 회화 영역까지도 포괄한다. 오몽이 ‘이미지’라고 부르는 것은 “일반적 이미지의 특수한 한 양상인 시각적 이미지”이며, 『이마주』는 “성질, 형태, 쓰임새, 생산방식이 어떠하든지 간에 모든 종류의 시각적 이미지에 공통된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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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오몽(Jacques Aumont, 1942~ )

영화와 시각 예술을 아우르는 이미지의 일반성

 오몽이 기존의 영상학과 달리 보다 광범위한 시각적 이미지를 다루게 된 까닭은 대학교수로서 20년 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영화미학이 여타의 학문과 동떨어져서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영화에서 프레임 설정((불)cadrage, (영)framing)은 회화의 그림틀(cadre, frame) 개념을 무시하고 논의할 수 없다. 동시에 정지된 하나의 프레임으로서 사진의 순간성을 고려하지 않고 연속적인 영화 필름을 구성하는 개개의 포토그람((불)photogramme)을 언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영화와 인접 예술 분야와의 연관성은 초기의 ‘motion picture’라는 명칭에서도 드러난다. ‘움직이는 그림’을 의미하는 이 명칭은 일본에서 ‘활동사진(活動寫眞)’으로 번역되어 1903년에 한국으로 들어와 그대로 사용되었다. 그림이나 사진과 달리 ‘움직인다’는 영화 특유의 운동성이 강조된 이 명칭에는 사진의 정지된 포토그램(photogram)들의 연속을 통해서 움직임의 환상을 만들어 내는 영화 이미지의 속성이 함축되어 있다. 그렇다. 영화의 움직이는 이미지는 1초당 24개의 정지된 프레임들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환영에 불과하다. 현재 영화 용어로 정착된 ‘미장센(mise-en-scéne)’ 역시 ‘장면 속에 무엇인가를 놓다’를 의미하는 프랑스어로 오랫동안 ‘연출’에 해당하는 연극용어로 사용되었다. 연극에서 연출가가 3차원의 무대 공간에 사물이나 인물을 배치하는 것을 뜻하던 미장센은 영화에서 프레임 내부에 배경, 인물, 조명을 비롯하여 카메라의 움직임을 연출하는 ‘화면구성’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카메라를 사용하여 3차원의 현실을 2차원으로 재현한 영화의 이미지는 최종 결과물에 있어서 연극 보다는 회화나 사진과 더 많은 유사성을 지닌다. 동시에, 오몽은 현대에 이르러 극대화된 이미지의 증가와 매체 간의 상호 교환성에 주목한다. 회화는 전시장이나 화집이 아닌 인터넷 상에서도 볼 수 있으며, 영화 역시 극장 외에도 TV나, DVD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가속화된 이미지들의 혼합·교환·이행은 회화, 사진, 영화, TV, 비디오를 각기 별개의 분야로 분리시켜 연구하는 일을 점점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오몽은 “가능한 한 가장 일반적인 개념 수준에 머물자”, 그리고 “이미지에 관한 특정한 하나의 양상에서 출발하여 이론화하지 말자”는 입장에서 이미지 문제를 다룬다.

 200-11-1-2▲영화의 연속 프레임

이미지에 대한 이론 다섯 가지의 본질적 문제들

 소위 ‘이미지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통합된 연구 영역을 개척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지에 관한 논의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미지와 철학은 오랫동안 거리를 유지해 왔다. 오몽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우리의 문명은 아직도 언어의 문명”이라는 말로 책을 끝맺은 것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이미지에 관한 이론 그 자체는 문자적 설명이지 이미지가 아니다. 이미지도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문자와 같은 방식으로 그것을 전달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미지를 논할 때 문자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지 연구의 최대 난제이다.

오몽은 이미지에 대한 기존의 지엽적이고 특정한 시각을 배제하고 다각도의 통합적 접근을 시도한다. 그는 다섯 가지 본질적 문제들을 설정하는데, 마치도 이미지를 중심에 놓고 다섯 개의 렌즈로 각기 다른 위치에서 그것을 들여다보는 식이다. 다른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그 때 그 때 초점이 달라지지만, 대상이 하나이므로 특정 개념이 중복되어 다뤄지기도 한다. 눈의 편에서, 관객의 편에서, 장치의 편에서, 이미지의 편에서 그리고 예술의 편에서 이미지를 조명하는 본문은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의 세부적인 내용을 설명한다는 것은 일종의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저자의 숨은 생각을 파악하는 것이 아닐까. 오몽의 숨은 생각을 통찰할 능력은 없지만, 마지막 장의 마지막 절을 읽을 때 각별한 진정성이 느껴졌다.

적어도 오몽은 이미지의 과도함을 질적인 풍요로움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100년 전부터 급격하게 증대된 이미지의 범람에 직면하여 우리가 받는 인상은 이미지들이 일상 곳곳에 포진하여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몽은 진정한 이미지의 혁명이 양적 증대에 있지 않고 수세기에 걸쳐 일어난 영적인(spirituelle) 이미지에서 시각적인(visuelle) 이미지로의 이동에 있다고 말한다. 중세 이미지의 경우 감각적 표현이란 순전히 지상적인 외관일 뿐, 이미지의 본분은 시각적 외관을 통해 천상의 비물질적 실체에 도달하도록 해주는 데 있었다. 이런 초월적 힘을 상실하고 이미지가 단지 외관의 기록으로 축소된 시기 동안 점차 이미지의 지위가 전복되었다. 오늘날의 이미지는 표면 그 이상이 아니다. 함축된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중세 이미지처럼 감각적 외관과 차원이 다른 실체와의 연관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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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투스 데 리에바나, <묵시록주해-다섯 번째 나팔을 부는 천사>, 8세기

 

이마주, 어떤 사람이 읽어야 할까?

 이 책은 개론서 보다는 좀 더 전문적인, 보다 전문화된 접근으로 이끄는 길잡이 성격을 띠고 있다. 즉 영화나 시각 예술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특정 분야의 세분화된 지식을 보다 통합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인접 분야와 공유하는 일반적 특징들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전문적인 용어나 이론들이 언급되기 때문에 미술이나 사진, 영화 어느 분야든 어느 정도의 이론 지식이 있어야 논지를 따라갈 수 있다. 반면, 이미지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관통하는 주요 개념들, 예를 들어 재현, 원근법, 추상, 표현, 아우라 등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사전적인 구실도 할 수 있다. 한 번에 줄줄 읽기 보다는 책장에 꽂아 두고 계속해서 참조할 수 있는 그런 책이다.

TIP자크 오몽은 프랑스의 영화평론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활동했다. 파리 3대학 영화과, 파리사회과학고등원(EHESS) 교수를 역임했고, 지난 10년간 파리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영화 아카데미 컨퍼런스를 지휘했다. 저서로는 <이마주>, <영화미학>, <영화감독들의 영화이론>, <영화 속의 얼굴>, <영화와 모더니티> 등이 있다.

 

유영소 / 미술학과 강사

※ 사진 및 그림 설명 출처

-사진 1: 자크 오몽, 출처: jiff.tistory.com

-사진 2:  ⓒUC Riverside Photography Department

-사진 3: ⓒplanet.okfn.org

작성자: khug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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